(제 69 회)

제 21 장

1

 

그후 함흥형무소에 갇힌 조선어학회사건관계자들의 운명은 어찌되였는가?

이듬해 2월 22일에 효창 한징이 또 옥사했다. 보천보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총소리가 울렸을 때 텁텁한 약주 한잔을 놓고 마른명태를 씹으며 그리도 기뻐하던 그가 조국의 해방을 맞아 그 기쁨을 활짝 펴보지 못한채 한많은 한생을 감방에서 마치고말았다.

조선어학회사건관계자 32명가운데서 24명을 홍원경찰서가 립건했고 그가운데서 검사가 기소한것이 16명으로서 그들은 예심에 회부되게 되였다.

그 당시 왜놈의 법에 의하면 사상범에 한해서는 검사의 기소로 직접 재판에 회부되는것이 아니라 예심이라는 한계단을 더 거쳐야 했다. 그 표면상리유는 사건을 신중히 처리하는데 있다고 했지만 사실은 피의자를 될수록 오래 구속하여 더 많은 고통을 주자는것이였다. 예심을 핑게로 시일을 무작정 끌어 피의자들을 몇년씩 감옥에 묶어두는 례가 허다했던것이다. 더우기 조선어학회사건은 피의자도 많고 경찰과 검사의 심문조서의 분량도 방대하여 예심판사가 그것을 료해하는데만도 막대한 시일이 걸릴것이다.

예심은 거의 한해동안 질질 끌었으나 그 결과는 매우 형식적이여서 경찰과 검사의 조서를 거의 그대로 눌러놓는데 불과했다.

1944년 9월 30일에 비로소 예심이 끝나 옥사한 사람 2명, 기소를 면한 사람 2명을 제외한 12명이 재판에 회부되였다.

그들은 함흥형무소 미결감방에서 함흥지방법원의 공판을 또 지루하게 기다렸다. 그후 두달가량 지나서 11월말경부터 조선어학회사건의 재판이 시작되였다. 그들은 두세명 혹은 서너명씩 재판소에 불려다니군 했는데 그 추운 날에도 형무소에서 죄수들에게 입히는 반물색잠옷 같은것을 걸치고 발에는 맨발에 왜놈짚신인 《와라지》를 끌고 얼굴에는 용수를 쓰고 손에는 고랑을 차고 고랑과 고랑은 쇠줄로 삐뚜름히 엮듯 해서 재판소로 끌려다니는것이였다. 재판소에 가서도 곧 법정에 들어가는것이 아니라 한사람도 겨우 들어갈수 있는 《비둘기집》(재판소대기실)에 들어가서 판사가 부를 때까지 끝없이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죄아닌 죄로 재판 같지 않은 재판을 받으러 기한에 떨며 다니는 사이에 어느덧 섣달의 엄동설한이 닥쳐왔다. 그때는 이미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일로를 걷고있던 때였다.

1945년 1월 8일에야 조선어학회사건의 최종판결선고가 내렸다. 리극로 6년, 최현배 4년, 리희승 2년 6개월, 정인승과 정태진 2년 징역형이 선고되였고 나머지 7명은 집행유예 3년으로 석방되였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5명중에서 리극로, 최현배, 리희승, 정인승 4명은 고등법원에 공소했고 정태진은 미결수로 있은 기간을 통산받아 얼마 안 있어 만기출옥할수 있었으나 공소권을 포기하고 복역하기로 했다.

재판은 대개 3심제여서 일본의 재판에서도 지방법원, 복심법원, 고등법원 세단계가 있었다. 그런데 패망이 가까워오자 왜놈들은 재판사무간소화라는 구실로 지방, 고등 두단계로 판결을 끝맺게 해놓았다. 그래서 조선어학회사건관계자들은 지방법원에서 직접 고등법원에 공소하게 되였던것이다. 그들이 고등법원에 공소한것은 고등법원의 판결이 달라지리라 기대한것이 아니라 고등법원의 공판이 있게 되면 서울로 이감되지 않겠는가 하고 일루의 희망을 걸어본데 불과했다.

고등법원에 공소하면 한달, 늦어도 두달이면 판결을 받는것이 관례로 되여있었는데 공소한 후 서너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였다. 그러다가 5월달이 거의 지나가서야 고등법원에서 조선어학회사건의 공소서류를 접수했다는 통지가 왔다.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노릇이였다. 공소한지 다섯달만에 공소서류를 접수했다고 하니 공판은 언제 하겠는지 너무도 아득한 일이였다. 어쨌든 왜놈들은 조선어학회사건을 질질 끌어 그 관계자들을 감옥에서 썩여버리자는 수작이였음이 분명했다.

옥중에서 괴롭고 답답한 나날을 보내던중 7월 중순이 지나서야 고등법원에서 공판날자가 8월 12일이라는 통지가 왔다. 그러나 8월 12일이 지나도 고등법원에서는 공소자들을 서울로 부르지도 않았고 공판에 대한 아무 기별도 없었다.

사실은 일본의 패망직전인 8월 12일에 고등법원에서 조선어학회사건관계자들의 공소를 기각했는데 그때는 이미 통신이 마비되여 공소기각통지서가 함흥에 와닿지 못했던것이다. 그래서 4명은 8월 15일 오전까지도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모르고 함흥형무소 독방에서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날 오후 한시경에 병감의 조선인의무관이 달려와서 《방금 정오에 왜왕이 방송으로 무조건항복한다는 조서를 읽었습니다. 조선이 해방되였단 말입니다.》하고 말했다.

이 말을 듣자 리극로는 이름할수 없는 흥분과 격정에 휩싸였다. 끝내 일성장군님께서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을 해방하시였으니 그분이야말로 우리 생명의 은인이시며 우리 민족의 태양이시다.

이윽고 둥그렇게 선 그들이 손을 맞잡자 리극로는 두손을 쳐들며 《일성장군 만세!》를 선창을 떼니 그들도 목이 터지게 《일성장군 만세!》를 웨쳤다.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일성장군님에 의하여 《이제는 우리도 살고 민족도 살고 나라도 살았다!》는 회생의 기쁨의 눈물이였다.

그들은 형무소문앞에서 함흥인사들이 준비해온 자동차를 타고 함흥시내를 한바퀴 돌았다. 군데군데 운집해있는 군중은 방금 출옥한 조선어학회 학자들을 《조선독립 만세!》의 환호로 맞이했다. 실로 감격적인 순간순간이였다.

그날 밤 4명은 함흥인사들의 호의로 진수성찬을 차린 상앞에도 앉았고 오래간만에 폭신한 이부자리속에 들기도 했다.

19일 자정이 지나서야 그들은 청진발 서울행 렬차를 탔다.

차안은 극도로 혼잡하였다. 그러나 왜놈형무소에서 나온 조선어학회 학자들이라는것을 안 승객들은 스스로 자리를 내주는것이였다. 나라가 해방되자 사람들의 마음에는 너그럽고 착한 마음도 되살아났던것이다.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하루도 쉴 사이가 없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해방된 조선사람들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막혔던 물목을 터친듯 했고 일본어배척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것이다.

감옥살이로 피골이 상접하고 피기 하나 없는 얼굴을 하고 그들은 각처에서 열린 강습들에서 군중앞에 출연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파리한 얼굴자체가 우리 말과 글을 마지막까지 지킨 사람들의 험난했던 길을 웅변적으로 말해주는것이였고 세계에 류례드문 일본제국주의의 죄악을 적라라하게 폭로하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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