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어느덧 집을 떠난 그 봄부터 다시 봄이 보이는 계절에 서서 난 생각하고있어요. 봄은 대체 어데서 오는건가요? 아마도 보드라운 땅에 씨앗을 묻고 움터나오는 햇순의 향기로부터 오는것이 아닐가요. 그 향기가 뿜어나오기는 우리 젊은 가슴들도 마찬가지일는지도 모르지요.

사람들은 봄은 가꾸는 계절이라 말하지요. 우리네 젊음도 그렇게 가꿔져야 하겠건만 세상천지를 둘러봐야 그 손길을 찾을길 없어 방황의 길을 이어가는 우리 악단이랍니다. 외로운 젊은 마음들이 무정속에 시달리며 갈망의 눈물을 뿌리는 속에 나는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이 편지를 쓰고있어요.

보고싶은 할아버지.

나를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불효한 이 손녀가 보고싶을 때면 내 방에 가보세요. 벽에는 지금도 렘브란트의 《불효자식 돌아오다》가 걸려있을거예요.

아버지는 일찌기 세상을 떠났지만 나로 하여 또다시 그 불효를 면할수 없었으니 효와 불효도 유전인가고 노여워하실수도 있습니다.

감히 단언하건대 난 불효자식이 되려고 할아버지의 곁을 떠난것이 아니예요. 우리 《롱》로크악단의 명예를 걸고 말씀드리는바입니다. 우리 악단의 이름이 시사해주듯이 우리의 목적은 그대로 갈망이라고 특징지을수 있을거예요.

할아버지가 그토록 혐오하고 질시하는 우리 악단의 존재방식은 세계일주이며 리념은 청춘의 희망과 자유라는 신성한것이예요. 우린 온갖 구속과 불평등에 도전하는것을 자기의 존재방식으로 삼으며 할아버지세대가 부패시킨 오늘의 세계를 자기의 눈으로 똑똑히 보고있어요. 그속에서 가장 불우한 운명을 강요당하는것이 우리들 청춘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는지요.

할아버지, 난 지금 알프스산줄기너머에서 이 글을 쓰고있습니다. 서유럽에서도 유명짜하다는 이 도시의 풍경이 굉장해요. 거리에는 할아버지가 그토록 미워하는 랑비군들이 욱실거린답니다. 서른살도 되기 전에 한아름이 더되는 배를 이기지 못해 다리가 구부러든 젊은이들이 갈길을 몰라 헤맵니다.

사람의 모든 욕심은 위라는 크지 않은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지요. 비록 유모아적일지는 몰라도 맛있는걸 남보다 많이 먹고싶어하기에, 또 그것을 위해 파렴치와 부정의도 무릅쓴탓에 오늘의 세계에 확고한 지위를 차지한 억만장자와 거지가 생겨난것이 아니던가요. 이걸 천박하기 그지없는 천진한 손녀의 세계관이라고 하여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사진이 생생히 기억되여있는 나예요.

라인강반에서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처녀, 총각의 싱싱한 모습으로 찍은 그 사진은 정말 매혹적이예요. 그 시절부터 오늘까지 자기의 몸매를 날씬하게 유지하고있다는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사람은 로년기에 들어서면 몸이 나기마련인데.

더구나 할아버지와 같이 큰 기업체를 거느리고 적잖은 자산을 보유한 현대의 갑부라면 그 액수에 짝지지 않게 대체로 살집이 실하여 혼자서는 몸건사도 어렵지 않을가 하는것이 일반적인 견해나 표상일거예요.

어찌 보면 이 세상의 모순은 살찌고 기름진 배에서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거라고 봐요.

하지만 챠일드회사의 사장이며 자본금이 얼마인지 가족성원들도 모르는 우리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나 일흔을 넘긴 오늘에나 단 한치도 더하거나 덜지도 않은 고정불변한 체중과 사소한 에누리도 허용치 않는 확고한 신조로 시종 기업을 위해 분투하시니 그 모습이 참으로 의미가 깊게 안겨와요.

오늘도 이따금 내 귀전에서는 할아버지의 자상하고도 거룩한 목소리가 울린답니다.

《가정이야말로 엄격히 지출을 통제해야 할 소비대상이다.》라던 말이.

얼마나 심오한 의미가 담긴 말씀인가요. 아담 스미스가 세상에 나지 않았더라면 할아버지가 그 유명짜한 경제론의 저자가 되였을지도 모를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혹 이것이 내가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첫째가는 근거일수 있겠어요. 왜냐면 나 역시 할아버지의 투자대상이였으니까요. 물론 지금은 바로 나, 투자대상의 뜻하지 않은 탈가로 삭제당했지만…

할아버지의 기업상속권을 포기해버린 이 손녀에게는 더이상 투자의 가치가 없기때문이겠지요. 정확히 타산하고 엄격하게 지출하는 할아버지의 랭철한 의지를 포함한 극단한 실용주의야말로 오늘의 이 비정한 세계를 만들어낸 뿌리임이 틀림없다고 나는 확신하고싶어요.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도 한생 단 한번의 지출에서 실수를 하셨지요.

난 알아요. 눈물이라는 말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할아버지가 혼자서 우시는걸 보았으니까요. 그때문에 할머니와 다투시는것도 영화화면처럼 목격했구요.

《당신의 눈먼사랑이 어떤 일을 빚어냈는가 말이요. 젊은 아들녀석이 요절한것도 가슴아픈 일인데… 도대체 내 기업의 대를 누구한테 물려줘야 하는가 말이요. 이게 얼마나 가혹한 세례인지 당신은 나처럼 느끼지는 못할거요!》

이렇게요.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이렇게 책망을 하셨댔어요.

어떤 사람들은 기업을 계승한다고 하면 막대한 재부를 넘겨받는것이라고 떠들며 환성을 지를거예요.

그러나 명실공히 그 거대한 부를 낳게 하고 그것을 마지막까지 담보해주는 랭혹한 철리까지 물려받아야만 하는 가혹한 운명이 나한테 고스란히 차례졌던거예요.

《사람은 배가 곯아있어야 공부를 하게 되고 배가 고파야 일을 한다.》

할아버지의 이 엄격한 교리가 손녀인 나에게 향한 채찍이였어요. 얼마나 뜻이 깊은 명언인가요. 많이 먹으면 소화기계통의 피흐름량을 증대시키고 반대로 뇌수에는 적게 공급되기에 사유기능이 낮아진다는 과학적인 진실을 할아버지처럼 표현할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가요.

일찌기 이와 같은 진리를 체득한 할아버지는 자기 육체의 한 부분인 위의 호소에도 가혹하셨지요. 돈가진 사람이 먹고싶은것을 참는다는건 누구도 믿지 않을 일이지만 할아버지에게만은 가능했어요.

내가 아마 여섯살 나던 해였다고 기억됩니다. 어린 나의 눈에 비낀것은 화려한 음식점거리였으며 보는것마다 유혹하는 맛있어보이는 빵과 크림의 세계였어요. 나의 작은 손가락은 그것을 안타까이 가리켰지만 할아버지는 멀리 앞만 바라보면서 말씀하셨어요.

《가자. 집에 가면 할머니가 다 준다. 네가 지출이라는 말을 알면 어른이 된단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귀엽다고 외운 손녀에 대한 애정도 지출에 속한다는것을 알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거예요. 그것은 곧 손녀, 나의 나이가 루적되는 과정이였거든요.

참, 이제야 생동한 실례가 떠오르는군요.

라인강반에 서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 그 인상깊은 사진속의 할아버지는 멋진 털모자를 쓰고계셨어요. 그것이 값진 수달피모자라는것을 안것은 내가 열살을 넘긴 후였답니다. 투자대상이 된 나는 언젠가 옷장속의 그 모자를 만져보며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생각했고 수달을 동정했었어요.

(수달아, 네가 불쌍하구나. 사냥군에게 잡힌것만도 기구한데 가죽마저 40년이 넘도록 시달림을 당하다보니 이젠 털이 다 닳아 네 모습을 찾아보기 힘드니 말이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할아버지에게 도전하게 된 시작이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난 수달처럼 살고싶지 않았거든요.

할아버지의 무상의 기대, 유일무이의 대상인 이 손녀가 도전해나선것은 성별의 구분적표상조차 없던 내가 나는 녀자다 하는 인식을 느끼며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맞게 된 어느 생일날이였습니다.

《할아버지, 래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요?》하고 난 할아버지에게 상기했어요.

그때 할아버지의 두손은 늘 그러하듯 가슴아래에 포개여져있었답니다. 나는 할아버지의 오른손이 어느 위치에 놓일 때 긍정인가, 부정인가를 알고있었지요.

난 힘껏 배운 재간을 부려 래일은 나의 열네번째 생일인데 동무들에게 어느 식당에 오라고 했다는것을 자못 정중하게 말했었지요. 할아버지의 자세와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전과는 달리 반응하시듯 보이더군요.

《그래, 뭐가 요구되느냐?》

난 어줍은듯 할아버지의 귀에 대고 속삭이면서 맞은켠에 앉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는것도 잊지 않았어요.

헌데 나에게 미쳐오는 두눈빛은 어처구니가 없다는것이였어요. 우리 집안의 가정운영에서 규정된 지출항목 이외의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였으니까요.

그러나 놀라운 변화가 나를 향해 온다는것을 나는 시각적으로 감득했답니다. 할아버지의 오른손이 천천히 쳐들리면서 매력적인 눈섭에 가닿는것이였어요. 순간 나의 가슴은 쿵하니 흉벽을 쳤답니다.

그때 할아버지는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고 나에게 물었어요.

나는 그 나이에 이르면서 처음으로 듣는 말이여서 숨이 막히는것을 참으며 겨우 대답했지요.

할아버지는 일어서면서 오른손으로 턱을 쓸어내리셨답니다.

성공이다 하고 나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올렸어요. 그 순간 깜짝 놀라 휘둥그래지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눈동자앞에 어깨가 으쓱해졌어요.

할아버지가 준 돈은 솔직하게 아뢰건대 내가 요구한 액수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어요. 아마도 할아버지는 역시 최소한의 투자로 자기의 애정을 표시한셈이였지요.

하지만 나는 조금도 섭섭치 않았고 지어 깨고소했어요. 나 역시 할아버지의 투자심리를 예견하였기에 요구되는 액수의 배를 불렀던것이였으니까요.

내가 할아버지를 속인것은 그것뿐이 아니였어요. 그 돈은 단순한 생일파티에만 쓰려는것이 아니였으니까요.

그무렵 내또래 애들속에서는 암암리에 련애편지까지 오가고 보란듯이 무도장으로 사내애들을 끼고 찾아가는것이 례상사였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유희인 동시에 완전한 시대적류행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의 엄격한 통제속에서 수녀처럼 살아온 나로서는 금단의 세계가 아닐수 없었어요.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한번 그래보리라 마음도 먹었지만 실천할 용기만은 나지 않았어요.

그런 나를 두고 학급의 녀동무들은 등뒤에서 비웃고 손가락질하며 《겁쟁이》, 《현대판수녀》라는 별의별 별명을 다 붙여가며 놀려댔어요. 그래서 난 할아버지가 준 돈으로 나의 존재를 시위하려 했던거예요.

나는 학교적으로 녀학생들속에서 제일 인기가 있다는 금발머리사내애를 나의 생일파티에 단독초청하기로 결심했어요.

스티븐슨이라는 그 사내애는 학업성적은 타고난 락제생이였지만 매력적인 고수머리에 춤이라면 디스코면 디스코, 탕고면 탕고 지어 람바다까지도 기가 막히게 잘 추어 우리 학교만이 아니라 온 시내의 녀학생들이 정신없이 꼬리쳐대는 선망의 대상이였어요. 그애와 단 몇시간만 같이 지내도 다음날이면 화제거리가 되고 유명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불망나니가 나의 초청에 응했으니 나의 목적은 성공한셈이였어요.

방과후 내가 교문쪽으로 향하는데 그곳에 서있던 스티븐슨이 싱글거리며 다가왔어요.

《생일을 축하한다.》

《고마워. 나의 초청에 반대가 없겠지?》

나도 속으로 무척 놀랐어요. 나의 대담해진 이 말속에 평소에 나에게서는 찾아볼수 없었던 도고함과 배심이 비껴있다는것을 내자신이 긍지로이 느꼈으니까요. 아마도 여적 품어보지 못했던 두둑한 돈지갑의 힘이였을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다른 약속은 다 뒤로 미루었다. 내가 너의 그 검은머리에 얼마나 매력을 느끼고있는가를 너는 다는 모를거야.》

스티븐슨의 말에 나는 속으로 코방귀를 뀌면서 그와 나란히 교정을 나섰어요. 이때 난 수많은 녀학생들의 부러움과 시샘의 눈길들이 내 몸을 에워싸는것을 느끼며 처음으로 승자의 쾌감을 맛보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나자신도 어처구니없는노릇이였지만…

어쨌든 그날 난 즐겼어요. 무도장에서 미친듯이 춤도 추었어요. 물론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맥주도 마시고 스티븐슨이 부어주는 술도 주저없이 들이켰구요.

내가 스티븐슨을 따라온것이 아니라 그가 나에게 봉사한다는, 마침내 그를 굴복시켰다는 자만도취심에 나는 엉망으로 취해버리고말았어요.

검푸른 불빛속에서 나와 같은 무리들이 망망대해속의 고기떼처럼 헤염치는것 같더군요.

과연 우리들은 어느 희망봉을 찾아, 하다못해 그 기슭에라도 가닿고저 혼신을 다하여 필사의 몸부림을 치는것일가요.

나는 그것이 젊음의 염세임을 몰랐답니다. 무작정 즐거웠으니까요.

내 인생에서 가장 이채롭고 자랑스러웠던 이 순간에 바로 할아버지가 나타났던겁니다. 어쩔새도 없이 할아버지가 데리고 온 두 사나이에게 무작정 팔을 비틀리웠을 때 나는 항거의 표시로 발버둥을 쳤고 고함을 내질렀어요. 이른바 돈을 주고 산 값비싼 자유를 유린하는데 대한 단말마적저항이였지요.

그 광경을 보고 스티븐슨이 휘파람을 불어대자 무도장의 젊은이들이 일제히 발을 구르고 온몸을 세차게 흔들어대는것으로 나에 대한 《동정》과 《지지》를 표명했었지요. 그런 그들이 고맙게 여겨진건 무엇때문이였던지 생각이 안돼요.

이윽해서야 술에 취해 몽롱한 나의 시야에 할아버지의 모습이 서서히 비껴왔어요. 강마르고 꼿꼿한 자세에서는 눈에 익힐대도 익힌 서슬진 랭기가 풍겼답니다.

난 그 순간 할아버지의 눈빛에서 똑똑히 보았어요. 자기의 손녀라도 사정을 보지 말라는 무언의 명령을 말이예요.

나는 그렇게 차에 실리웠고 집으로 끌려왔지요. 침대에 쓰러진 다음 나의 심리는 무서운 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무시당한 참을수 없는 억울함, 짓밟힌 자존심의 몸부림으로 하여 눈물을 흘렸고 두주먹으로 침대를 두드리며 통곡했답니다.

난 그제야 나의 정든 이 집이 나를 조부모를 통채로 닮은 또 하나의 인형으로 만들려 한다는걸 깨달은것이였어요.

자유로운 새 세대의 인간이 아닌 할아버지와 같은 랭혈한, 돈으로 모든것을 재고 자본의 힘으로 악착하게 구축해온 불공평하고 부자유스러운 도식과 위선, 기만과 탐욕의 낡은 세대의 삶을 전이받게 될것이라는것이였어요. 그것은 기업의 상속이기 전에 또 다른 구속의 올가미이며 모든 희망과 꿈의 포기이자 절대만능의 힘으로 통하는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는 길이 아닐수 없었어요. 바로 돈의 꼭두각시, 할아버지의 프로그람에 따라 동작하는 로보트!

할아버지는 아마 그때 내가 무엇이라고 부르짖었는지 기억하고계실거예요.

《나도 사람이예요! 나는 결코 할아버지가 씌워준 가면을 쓰고 할아버지가 물려준 구습과 숙명대로만 살수는 없어요! 똑바로 들어두세요! 내 생명은 내것이예요! 기어코 보여줄터예요, 내가 어떻게 사는가를. 만일 그렇게 할수 없다면…》

나는 벌떡 일어나 책상우에 놓인 과일칼을 집어들었어요. 금시 목을 찌르기라도 할 위험천만한 시각에 할아버지가 달려들어와 내 손에서 칼을 빼앗았어요. 그리고선 힘껏 내 뺨을 후려갈겼지요. 사실 내가 자살할 용기까지는 없었어요. 한번 위협해본것인데 문가에 서있던 할아버지가 기겁하여 뛰여든것이겠지요.

난 반듯이 누운채 소리없이 울었어요. 할아버지의 한숨소리가 곁에서 그칠줄 몰랐어요.

《넌 네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않느냐. 네가 다섯살 잡히던 해 할아버지나이의 절반도 못살고 요절한 네 아버지를 말이다. 내가 누구를 믿고 살아가겠느냐. 너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챠일드회사의 상속자란 말이다. 이걸 안다면 아버지처럼 술이나 마시고 유흥에 빠져 허우적거려서는 안되겠기에 그러는거다. 세상을 통찰하는 제 눈이 없으면 자기를 망친다. 그 어디에나 한쪽에는 너같이 천진란만하고 세상물정을 모르는 애젊은 사람들을 타락과 방종에로 유혹하는 별의별 악마의 늪들이 득실거리고 다른쪽에는 엄혹한 약육강식의 론리만이 통하는 생존경쟁의 세계가 너희들을 노리고있단다. 이것은 피할수도, 바꿀수도 없는 인류에게 차례진 숙명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희생물이 되지 않고 살아남는 길이 바로 할아버지가 걸어온 길이다. 남을 짓밟지 않으면 자기가 짓밟혀야 한다. 이것이 늙고 지칠대로 지친 이 할아버지가 지금 너에게 하고싶은 말이다.》

그날 밤 나는 잠들수가 없었어요. 분명 할아버지의 말에는 내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진정이 담겨있었어요. 하지만 그속에선 따뜻한 온기가 아니라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서리가 풍겼지요.

마침내 나는 할아버지의 요구에 도전해나서기로 결심했어요. 정확히 표현한다면 할아버지의 진정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세상을 쥐락펴락한다는 황금을 거머쥔 할아버지까지도 두손을 쳐들고 순종하지 않을수 없는 무정하고 참혹한 현실에 대한 항거의 몸부림이였어요.

챠일드회사의 상속자가 절대로 되지 않을테다! 할아버지처럼 순응과 관조로 살지는 않겠다! 나에게 필요한것은 돈이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운 희망과 자유이며 그것이 꽃펴난 새 삶, 새 생활이다!

이렇게 되여 나는 할아버지가 바라는 경영학이 아니라 음악공부의 길에 나섰고 오늘은 세계일주를 목표로 방랑하는 로크악단의 가수가 되였어요. 이 세상 어디든 비바람만 가릴수 있는 곳이면 우리의 거처지이고 무대랍니다. 우리의 형상주제는 인간의 자유와 희망이며 아름다운 사랑과 미래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 가든 환영을 받고있으며 여기에 힘을 입고 무한한 기세로 광란적인 행군을 하고있답니다.

할아버지에게 우리 《롱》악단의 명랑한 배우들을 소개합니다.

아시아라는 가장 큰 대륙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과분하게도 나랍니다. 유럽을 대표하여서는 에스빠냐 까딸로니아출신 바스기타수 로베르또가 있고 적도의 태양처럼 불같은 정열의 소유자 하싼 라베히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드람명수입니다. 메히꼬태생인 마리노는 전기기타와 함께 천년전에 인디안들이 불렀다는 노래도 막힘없이 부를줄 아는 명물이고 오스트랄리아의 원주민혈통인 와힘은 고열에 녹아내리는 엿가락도 무색할만큼 유연하고 자유분방한 률동으로 무대와 객석을 하나로 융합시켜버리는 우리 악단의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기회에 우리 악단의 주제가를 불러드리니 들어보세요.

 

    우리는 어데로 가나 황금을 찾지 않네

    지구의 미래 인간의 세상을 찾아가네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리상향 보련다

    파도우에 집짓고 하늘에 다락 세우며

 

    우리는 무엇을 찾나 향락이 아니라네

    지구의 미래 인정의 세계를 갈망하네

    전쟁도 전횡도 슬픈 눈물도 없는 땅

    사랑찾아 꿈찾아 희망의 노 저어가네

 

애수에 잠긴듯도 보일테지만 결코 그런것만은 아니예요. 글쎄, 애써 부정은 하더래도 실은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우리들이거든요.

우리들을 이 길로 가게 한것은 할아버지와 같은분들이예요.

만약 할아버지의 품속으로 지금이라도 불쑥 돌아갈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가요!

할아버지, 우리에게 정의와 진실을, 건전하고 아름답게 살수 있는 땅을 주세요. 그러면 젊은 우리는 그 대지에 씨앗으로 묻히렵니다.

우리의 이 소원, 이 갈망을 할아버지가 풀어줄수 있을가요.

이 손녀와 차이는 있지만 할아버지자신도 그 무엇인가를 찾아 방황하는 인생이라는걸 부인하지 못하시겠지요. 아무리 할아버지가 기업만능주의를 설교한다 해도 기업 그자체가 인생은 아니라는것을 할아버지자신도 잘 알고계실테니까요.

난 이것이 영원히 풀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지 않으리라 믿어요.

 

할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린 손녀 리혜림으로부터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