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롱》악단의 초대공연은 막을 내렸다. 아니, 아예 막이 오르지조차 못했다고 해야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애오라지 희망이라는 한가닥의 미련을 가지고 허우적이는 혜림이와 그의 동료들의 꿈을 외면해버리고말았다.

리혜림은 거의 반시간나마 텅 빈 극장의 객석 한가운데 서있었다.

천명이나 수용할수 있는 객석을 차지한것은 수십명쯤 되여보이는 고등학교 남녀학생들과 틀림없는 불량배로 보이는 몇몇 청년들뿐이였다.

그러면 나머지 숱한 관객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메마른 사막의 한줄기 물처럼 순식간에 증발되여버렸는가.

혜림은 무대우에 서있는 악단동료들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연의 흥행은 전적으로 그의 소임이였던것이다.

멀리 2층의 초대석에 앉아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이 어렴풋이 안겨왔다. 불시에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것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이때였다.

《여, 깽깽이악단! 공연을 안할테요?》

《기악연주를 시작해라! 객석도 넓은데 춤이라도 한바탕 추자꾸나. 하하하…》

사자머리를 한 패거리들이 객석의 입구통로를 차지하고 야유조로 줴치는 소리였다. 어떤 년놈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흐물대며 벌써 궁둥이들을 맞대고 몸을 비틀며 돌아간다.

《이젠 어떻게 할 생각이요?! 이 엄중한 사태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보상하시오. 돈은 둘째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극장의 명예가 훼손되였단 말이요. 이런 철부지들의 말을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지.》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눈확이 푹 꺼져들어가고 머리가 완전히 벗어진 극장 지배인이 노란 눈알을 희번득이며 엄숙히 항의했다.

리혜림은 눈길을 떨구고 몸을 옹송그리였다. 비에 함빡 젖은 참새처럼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그지없이 가엾어보였다. 마치 큰죄를 저지른 사람 같았다.

《여보시오, 지배인어른!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무슨 과장이요!》

갑자기 객석을 드렁드렁 울리며 지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지배인이 돌아보니 몇발자국 떨어진 곳에 리성원이 서있었다.

《솔직히 당신이야 손해가 아니라 리득을 본 사람이 아니요! 오늘이야말로 극장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최대수익을 올리지 않았소. 내가 보건대 이 극장은 엄중한 사태가 아니라 최대의 호황기를 맞이했구만. 아마도 보상은 당신이 아니라 우리 손녀애가 받아야 할거요!》

메사해진 지배인은 입을 쓰겁게 다시더니 어디론가 훌 사라지고말았다.

《할아버지!》

혜림이가 자기를 곤경에서 구원해준 할아버지의 목에 매달렸다. 참고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왔다.

《진정해라. 이쯤한 일을 두고 눈물까지 흘리다니. 세상만사란 다 이런거다. 욕망만으로 일이 다된다면 얼마나 좋겠니. 자기가 자기를 아는게 가장 중요한거다. 하지만 걱정말아. 이것도 중대한 기회로 삼으면 되는거다. 가장 중요한것은 자기가 나아갈 길을 옳바로 찾는거다.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자, 할머니랑 어머니랑 집에 가자꾸나.》

리성원은 인자한 할아버지답게 손녀의 등을 어루만져주며 위로해주었다.

《미안해요, 할아버지. 먼저 가세요. 난 좀 있다가 가겠어요.》

조금 진정된듯 하나 아직 울먹이는 목소리로 혜림이가 대답했다.

《그럼, 인차 들어오거라. 저녁에 우리 앞일을 론의해보자.》

리성원은 발길을 떼지 못하는 안해와 며느리를 재촉하며 객석출입구로 향했다.

잠시후 홀로 남은 혜림은 얼굴을 싸쥐였다. 그러더니 객석의자에 다가가 무너지듯 주저앉고말았다.

《롱》로크악단의 초대공연은 시작도 해보지 못하고 완전히 실패했다. 원인을 규명해야 했다. 공연수준이 문제였던가. 아니!

그는 며칠전 H시교외 공원에서 진행한 준비공연이며 이름있는 무도장 《무쵸》에서의 초청공연때를 돌이켜보았다. 분명 신생악단임에도 불구하고 찬사가 비발쳤고 좀 란잡하고 무례하기는 했어도 호응이 대단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도중에 여기저기서 카메라들이 경쟁적으로 섬광을 터뜨렸는가 하면 손전화기로 록음하는 사람들과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들사이에 서로 비난하는 고성에 공연이 일시 중지되기까지 했었다. 공연이 끝났음에도 돌아갈 생각을 않고 휘파람을 불어대며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공연에서 가장 인상적인것은 신선함이였다, 분화구를 찾아 무섭게 몸부림치는 열망과 욕구가 매력적이였다며 제나름대로의 분석을 가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때의 격동이 망막과 기억속에 생생한 혜림이였다.

그런데 그처럼 품들여 준비해온 오늘의 초대공연은 어째서?!

혜림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비칠거리며 동료들이 서있는 무대우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그의 모습을 객석의 바른쪽 출입구의 휘장속에서 오래도록 지켜보는 한 반백의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뜻밖의 사정으로 공연개시시간을 불과 5분 앞두고서야 극장에 도착한 서해수였다. 그럴수밖에 없는것이 오후 4시경에 그는 뜻밖에도 리성원이 보낸 챠일드회사의 상무를 만나 사전일정에 없던 《벼락면담》을 진행해야 했던것이다.

면담의제는 이미 한창 인쇄추진중에 있는 완구상표문제였다. 그런데 상무는 전에없이 기술적인 애로와 회사의 어려운 재정형편을 토로하며 시간과 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우는소리를 늘어놓았다.

자기와 리성원과의 각별한 친분관계를 잘 아는 상무의 말에 그는 심사숙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다나니 면담은 자연히 길어졌고 서해수는 아귀를 채 짓지 못한채 량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달려온것이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극장의 분위기에 그만 가슴이 철렁해졌다.

즉시 손전화기로 자기의 서기를 찾은 그는 오늘공연을 관람하기로 되여있는 회사사원들이 어디에 갔는가고 물었다.

서기의 대답은 상상밖이였다. 공연관람을 갔던 사람들이 방금전에 모두 되돌아왔다는것이였다.

리유는 간단했다. 극장 출입구에서 어떤 젊은이들이 갖은 감언리설로 사정하는 바람에, 돈을 더 주겠다기에 관람표들을 모두 팔아버렸다는것이였다. 의문스러운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요구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들은 위협절반, 회유절반으로 순응시켜버렸다는 사실이였다.

서해수는 사태를 수습하기에는 이미 케가 글렀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 그 젊은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봤다오?》

《다는 모르겠는데 그중의 몇몇 사람은 알리권투구락부에서 본 기억이 있다고 합니다.》

순간 서해수는 뒤통수를 되게 얻어맞은듯싶었다.

그 권투구락부는 리성원의 아들 정석이가 고등학교시절에 다닌 곳이였다. 그 구락부가 불경기를 겪을 때면 리성원이 가끔 후원을 해준다는 말을 언제인가 들은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실마리를 잡은것 같았다. 짙은안개속에 휘감겨있던 어떤 형체가 자기를 서서히 드러내보이는것 같이 느껴졌다.

뒤늦게 객석에 들어서던 그는 혜림이를 살뜰히 위로해주는 리성원을 보자 불쑥 가슴이 섬찍해왔다.

바로 저 눈빛! 아, 얼마나 자연스럽고 능청스러운가?!

오늘 아침에 집에 걸려온 전화도, 때아니게 수족을 얽어매버린 불필요한 면담도, 이중매표작전도 저 《친근》한 혜림이 할아버지의 고급한 두뇌의 산물이라는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은것이였다.

모든것은 벌써 혜림에게서 초대공연소식을 들은 그 시각부터 착실히 구상되였을것이다. 내가 로크악단의 극장공연은 성공적이라 믿고 무방비상태에 있을 때 저 형님이라는 사람은 빈틈없이 작성한 자기의 계획을 실천에 옮기느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돈으로 사람들을 매수하고 관람권 같은걸 휴지장으로 만들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저 이중적인 모습, 자기의 목적추구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가리지 않는 저 성벽…

그런 계략이 있는줄도 모르고 자기는 순진하게도 수당금까지 내대면서 혜림이를 돕느라 뛰여다녔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능구렝이령감의 랭혹성과 집요함, 고도로 치밀하게 흉책을 꾸미는 재간을 나는 죽어도 배워내지 못할것이다. 언제나 말뒤에 말을 감추고 상대를 타진하고 늘쌍 봐야 자기의 진속을 드러내놓을줄 모르는 소귀신… 아, 과연 사랑하는 손녀의 전도를 위한다는 수법이 이렇게까지 가혹해야만 하는가. 이것도 정녕 사랑이라고 해야 할가. 이제 혜림이는 할아버지 특유의 기업정신과 근검절약방식을 삶의 좌우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운명에서 벗어날수 있겠는가.

서해수는 문득 어느 잡지에서 본 동화내용을 상기했다. 완구회사를 운영하는 그였기에 동심을 파고드는 과정에 인상깊게 새겨둔것이였다.

사냥명수인 번대수리의 이야기였다. 할아버지번대수리는 한창때 손자번대수리를 데리고 다니며 먹이를 덮치는 각이한 사냥방법을 가르쳐주면서 말했다.

《얘야, 먹이를 절대로 남에게 양보해서는 안된다. 그건 네가 살아남기 위해서다.》

할아버지번대수리의 사냥훈련은 가혹했으며 그속에서 손자번대수리는 맹금으로 자랐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늙어버린 할아버지번대수리는 하늘을 날 기운도 없어서 나무가지에 앉아 굶주림에 시달리게 되였다. 억센 날개와 발톱을 가진 손자는 바로 할아버지가 앉은 나무에 사냥한 먹이를 가지고 날아와 맛있게 먹어댔다.

저녀석이 어렸을 때 난 사냥한걸 먹여주며 키웠건만.

가긍한 신세가 된 할아버지번대수리는 눈곱이 낀 눈으로 손자를 바라보며 《얘야, 나에게도 좀 주렴.》하고 말하려다 눈굽을 훔치며 돌아앉아서는 부리로 나무가지를 힘껏 쪼았다.

살아남기 위해 먹이를 절대로 양보하면 안된다고 가르친 자기의 말이 생각났던것이다. 손자번대수리는 할아버지의 말대로 양보를 몰랐다. …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생존법칙도 이 동화와 다를바가 없지 않는가.

개구리가 올챙이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듯이 키워준 부모도 시끄럽다고 차버리고 돈만을 하느님처럼 섬기며 제갈길을 가버리는 불효자식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정과 사랑이 허황하고 시대착오적인 금물로 되여버린 이런 사회풍토는 가장 문명하고 발전했다는 아메리카식생활방식이 판을 치는 곳일수록 더욱 농후하고 짙은것이였다.

70대의 늙은이답지 않게 어깨를 꼿꼿이 편채 안해와 며느리를 앞세우고 객석출입구로 사라지는 리성원을 보느라니 서해수는 갑자기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애오라지 손녀에게 기업을 물려주기 위해 권모술수도 불사해야 하는 가련한 존재, 어쩌면 기형적이고 변태적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그 사랑… 로크음악이라는 염병은 고쳐줄수 있어도 황금만능의 이 세상에 지지리도 만연한 흑사병을 피할수 없을것은 자명한 일이였다.

허거픈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서해수는 머리를 가볍게 가로흔들었다. 격분하면서도 리해를 하지 않을수 없고 모순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감동을 금할수 없는 그, 달리될래야 될수 없는 리성원이였던것이다.

서해수는 리성원이 울라지보스또크전시회에서 돌아온 날 그와 마주앉아 주고받은 이야기가 되새겨졌다.

《요새 형님네 회사에서 만드는 <챠일드>계렬의 신형설비들에 대한 반향이 좋습디다. 우리 회사 완구제품들이 그 덕으로 이제는 국내외 안 가는데가 없소. 광택도포인쇄도 그래, 무광택인쇄도 그래… 당당하게 소리를 쳐도 되겠단 말이요.》

《거 기분좋은 말이군. 하긴 이번에 울라지보스또크전시회에서 만난 북에서 온 대표단도 그 설비들과 기술이전에 흥미를 느끼더군.》

《뭐, 북… 그러니 평양에서 온 사람들과 면담을 했단 말이요?! 그래서, 어떻게 됐소?》

흥미가 동해서 바싹 다우쳐묻는 서해수를 재미있다는듯이 바라보던 리성원이 손사래를 쳤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그들이 가격을 가지고 흥정을 하자는데 어림이나 있나. 무던히도 애를 쓰던데 내가 그만한 수에 넘어가 선심을 쓸 사람인가. 가만 보니 그 사람들은 지나치게 순진한데가 있더군. 흠.》

서해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저도 모르는새에 퉁명스러운 말마디들이 튀여나갔다.

《듣기가 거북하웨다.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제 동포들과도 린색하게 군게 자랑이요?》

의외였던지 리성원의 눈이 커졌다.

《엉?! 해수, 그게 무슨 말인가? 요즘 자네 입에서 동포니, 겨레니 하는 정치용어들이 곧잘 튀여나오니 말일세. 요즘 듣자하니 자네가 그 무슨 동포련합회인지 뭔지 하는것과 련계가 있다는 말이 떠돌던데… 설마 그럴리야 있을라구. 만일 사실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걷어치우게.》

《?!…》

《자네나 난 기업가들이야. 정치는 그것을 전공한 사람들이나 하래. 그래, 정치라는게 뭔가. 한마디로 돈을 소비하는것이란 말일세. 이를테면 결과에 대한 담보가 명백하지 않은 투기라고 할수 있겠지. 하다면 자네나 내가 피땀으로 모은 돈을 그렇게 오수를 내버리듯 할수 있는가. 그건 어림도 없지. 난 기업경영책략으로써 정치를 리용하는건 리해하지만 거기에 뛰여드는건 반대야. 세상에 한다하는 유명짜한 기업가들이 정치에 뛰여들었다가 성공한 례를 본적이 있나? 없지!》

리성원의 목소리가 저으기 높아졌다. 제딴의 랭철한 기업의식과 타인의 추종을 일절 허용하지 않는 그의 엄격한 생활신조가 또 과시되고있는것이였다.

서해수는 가슴이 답답해왔다.

《그러니… 자기 동포들을 위한것도 정치란 말이요?! 한겨레끼리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화목하게 지내는것도 다 정치란것이겠소?! 형님, 사람의 정이란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게 아니요. 타향에선 제 고향의 까마귀도 보면 반갑다고 합디다. 하물며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오다가다 만난 동포들끼리 제 리윤만 따지면서 다투다가 그렇게 헤여졌다니 원… 그건 잘된 일 같지 않수다. 내 모르긴 하겠지만 형님도 잘 생각해보시우. 난 가겠소.》

섭섭한 표정으로 서해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음속의 말을 터놓으니 한쪽으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뭔가 맺히는것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리성원은 입이 쓰거운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어느 한곳을 지꿎게 응시하고있을뿐이였다. …

생각에서 깨여난 서해수는 무대우를 바라보았다. 언제 벌써 사라졌는지 혜림이와 그의 동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해수는 맥이 빠진 걸음으로 극장안을 나섰다.

이제 혜림에게 모든것을 설명하자니 난감했다. 사실을 말했다가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자기를 이런 처지에 몰아넣은 리성원을 탓할수밖에 없었다.

그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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