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2 장

 11

 

수림속을 헤치고 스며든 초가을의 석양빛이 군데군데 침울한 빛을 띤 얼룩점들을 그려놓았다. 단풍이 물들었을 땐 계절의 색조가 뚜렷했지만 지금은 나무들이 하나같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있다. 혼성림속에 드리워진 정적은 너무도 무거웠다. 한줄기 바람이 스쳐갈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잎이 떨어지는 소리가 처량하게 들려온다. 끝이 없을상싶은 원시림의 고요는 적막감을 불러왔고 이따금 여위여가는 나무가지를 스쳐날으는 새들의 퍼덕임마저 이상야릇한 공허를 불러들이는것이다. 수림은 머지않아 다가올 엄혹한 운명을 예고하듯 그 어떤 노래를 부르고있지만 두 늙은이는 듣는지마는지 서로 의지하여 무거운 걸음만을 옮기고있을뿐이다.

리성원과 그의 안해 하의영이다.

언제나 남편의 팔을 끼고 그에 의지하여 걷는데 습관된 하의영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남편을 부축하여 걷고있다.

하의영은 목깃에 털을 댄 덧옷을 입고있었다. 시름에 잠긴 눈길은 어데라 없는 먼곳을 응시하였고 이따금 발을 헛짚을 때면 남편을 꼭 낀채 비칠거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긴다.

두사람은 다같이 언어라는것을 상실하기라도 한듯 침묵속에서 걸었다.

리성원은 연황색 짧은 춘추외투의 단추도 채우지 않고 두손을 주머니에 지른채 어데로 가는것인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듯 무심히 움직이고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늙은 부부는 수림이 가을을 거쳐 겨울을 향해가듯이 자기들의 인생도 저물어가는 우수의 길을 걷는다는 생각을 꼭같이 하고있었다. 외로움을 합친 서글픔이 한가슴 가득히 고인 그들이다.

덩실한 집에 둘만 남은것이다. 돈이 있으면 뭘 하고 배고픔을 모르는 만족 또한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이 찾아올줄 어찌 알았는가. 한생은 돛을 잃은 작은 배마냥 덧없이 흘러가는것이다.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이 고독한 무덤을 향해 허둥지둥 달려가는지도 모르는것이다.

어느 나무가지에서 락엽이 떨어져 리성원의 머리에 내려앉자 하의영은 발돋움을 하여 떨구어주었다.

어데선가 부리가 센 새 한마리가 마른 나무가지를 쪼아대는데 그 소리가 한층 구슬프게 들려오는것이다.

하의영은 어깨를 옹송그렸다. 그는 아버지가 하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흥진비래라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좋은 날이 계속되면 불안해할줄 알아야 하고 배가 부르면 고플 날이 온다는걸 알아야 하는거다.》

집안이 오늘같이 된데는 자기의 잘못이 크다는걸 지금에 와서야 느끼는 하의영이다.

《여보, 미안해요. 때늦은 이 후회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남편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리성원은 안해의 목소리를 듣고있다.

후회, 무슨 후회? 그게 과연 누구의탓인가. 자식들에게 하는 요구는 서로 달랐더래도 모두 사랑에서 출발한것이 아니였단 말인가.

평생 나약이라는 말을 모르고 산 리성원은 진정 나약해진 자기를 보고있었다. 자존심도 자부도 돈이 만들어낸 심리에 불과한것임을 깨닫고있다. 그러고보면 자기라는 인간은 온전한 정신도 의지도 없이 살아온것이다. 한생토록 무엇인가를 찾아 허둥거렸다면 그것은 돈과 재산이 전부가 아니였던가. 결국 인생은 괴이한 그 유혹속에 끝없이 방황한것이다.

그러고보면 혜림이도 이 할아버지를 잘 알고있다. 그래서 그애는 자기도 지금 할아버지처럼 방황하는 인생이라고 편지에 썼을것이다.

리성원의 마음속으로는 혜림의 편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우리는 지금 이딸리아의 중부도시 피렌쩨의 거리를 방황하고있습니다. 이곳은 일명 플로렌스라고 불리우기도 하는 국제적인 도시이기도 하답니다. 19세기 후반기에는 통일된 이딸리아왕국의 수도였지요. 미껠란젤로를 비롯한 저명한 예술가들이 활약한 유명한 곳이랍니다.

우리는 방금 보볼리공원에서 한차례의 공연을 마쳤어요. 물론 할아버지가 예언하신대로 관람객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이전에 로크악단이란 음악의 고상한 리념과 정서를 상실한 사이비악단이라고 하셨지요. 아마 이 손녀의 인격을 존중하여 차마 불량악단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을거예요. 그래요. 우리들자신도 우리 악단을 불량악단이라고 부른답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선량한 악단은 과연 어데 있을가요. 현대판 황제들인 대통령이며 수상 등 국가와 정부수반들을 영접하는 공연에 나서는 사람들만이 과연 선량한 음악가들일가요. 대통령들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라체나 다름없는 몸을 기형적으로 흔드는것은 선이고 거리에서 먹고살자고 짧은 치마를 입고 노래를 부르는 우리가 악이라면 세상에 이보다 더 불공평한것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부정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량악단을 만들어냈답니다. 우린 영원히 할아버지와 같은 기성세대와는 달리 악과 부정으로 가득찬 이 세계의 반항아로 살아가려고 마음을 먹었으며 돈과 권세로 상징되는 오늘날의 정의에 도전하여 부정의를 탐색하렵니다.

자신들의 타락을 인정합니다. 살자니 지금처럼 부르고 두드릴수밖에 없었어요.

받아들이기 괴로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의미가 느껴지는듯도 해요. 전세대들의 눈에 찍힌 철부지 《롱》의 모습이겠지요.

할아버지의 그 고견과 대부금거절은 결국 우리를 분발하게 하였고 자기들의 삶을 위해 헌신하게 하였거든요. 결코 나쁘게만 생각하고 받아들일수 없는 할아버지의 조언이며 결단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손녀의 뒤틀린 비꼬움이라 생각지 말아주세요.

이제는 카나다를 떠나온지도 보름은 잘된것 같군요. 아직은 시작이라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노력을 하고있답니다. 사랑과 정, 의리와 량심을 보는 눈을 가지려고 말입니다.

우리 《롱》악단은 보다 광란적인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우리의 광란은 끝없이 방황하는 넋의 몸부림입니다.

《여보, 우리가 이 산속에서 조난당하는게 아니요?》

리성원은 가슴속으로 치밀어오르는 불안감에 으시시 몸을 떨며 물었다.

《아직은 일없을거예요. 우리 집 뒤산인걸요. 앞으로가 걱정이지요.》

《앞이 어째서?》

《당신은 알고있어요.》

《음, 그래. 배가 보이오. 소년시절에 태평양을 건느며 본 흰 돛배가 말이요. 그때 그 배가 거센 파도를 헤가르며 나아가는것이 장쾌해보이면서도 얼마나 위태로워보였던지 모르오.》

고통스러운 침묵을 애써 밀어내며 두사람은 깊은 생각없이 묻고 대답했다.

손녀가 탈가한 지금에 와서 리성원은 그 누구를 탓하고싶지 않았다. 아무리 탓한들 이제는 다시 주어담을수 없는 물이였다.

애오라지 바라는것이 있다면 혜림이가 잃었던 정신적안정을 되찾고 무사히 돌아오는것뿐이였다. 그날이 언제인가는 기약할수 없다.

아무런 재정적후원이 없이 그날 출연료를 가지고 그날의 생존을 유지해야 하는 현대판집시들, 거의나 방랑하다싶이 정처없이 그리고 하염없이 누벼가는 이 세상 한끝에서 과연 무엇이 자기들을 기다리고있을지 모르는 저 철부지들, 기나긴 방황끝에 잦아드는 허무와 후회의 눈물을 기어이 흘리고야말 그 모습들이 리성원에게는 벌써 확연해지는것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말로써 깨우쳐주기에는 그들의 리성이 지내 랑만적이였고 그나마 감성은 리성의 통제를 벗어나고있었다.

지금은 즐거운 첫걸음이였고 모든것을 락관으로 체험하는 시기일것이였다.

할아버지, 여기는 지금 락엽의 계절이랍니다. H시도 비슷할거라고 생각해요. 벌써 느끼는 한기는 우리를 각성시키고있답니다. 준엄한 계절을 우리는 이겨내렵니다. 이겨내면서 따뜻한 봄의 동산을 꼭 찾아보렵니다.

아직 젊은 우리에겐 모든것이 생소하고 의문점이 많아요.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우리의 목적을 걸음마다 의식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렵니다. 봄동산에 당도하면 할아버지께 꼭 알려드리고 안내를 해드리렵니다.

갑자기 숲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뒤설레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것이다.

바람에 쫓기우는 가랑잎들이 자기들을 살려달라고 빌붙기라도 하는듯 로인부부의 품에 헤덤비며 잠시 안겼다 맥없이 떨어진다. 안경낀 눈조차도 뜰수 없다. 각양각색의 무수한 잎들은 그들의 눈앞에서 타래쳐오르기도 하고 잔파도처럼 떠밀려가면서 힘없는 존재의 한탄인양 저들대로의 울분을 와스락와스락 터치고있었다.

리성원은 안해의 팔을 잡아 몸을 뒤로 돌렸다. 그제서야 눈을 겨우 뜰수 있었다. 그러자 두어걸음앞에서 엎치락뒤치락하는 어미새와 그 새끼의 모습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새끼는 세상구경을 하려고 둥지밖으로 기웃거리다가 세찬 바람결에 그만 떨어진 모양이였다. 어미는 걱정되여 앞을 가로막는데 새끼는 가소롭게도 어미더러 비키라는듯 짹짹 항의하며 자꾸 옆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어미새가 기를 쓰고 훼방을 놓자 잔털투성이뿐인 날개로는 안되겠던 모양인지 새끼가 짧은 다리로 달음박질하여 달아난다.

리성원과 하의영은 바람을 등진채 새들의 행동을 하염없이 지켜보고있었다.

깃털이 돋기 시작하면 다 날수 있다고 보는 저 어리석음…

바람이 다시한번 주위에서 회오리를 쳤다. 리성원은 더 어둡기 전에 돌아서려고 안해의 팔을 당겼다. 그러나 묵념에서 채 깨여나지 못한듯 하의영은 비칠거렸다.

순간 리성원은 자기 귀를 의심했다.

《할아버지.》하고 부르는 혜림의 목소리를 들은것 같아서였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나무람마셔요. 할머니도 내가 집을 나가는것을 바라신건 아니잖아요. 불쌍한건 어머니예요. 자식은 있다지만 무용지물이나 같고 집은 있다지만 자기의 집이 아니거든요. 박정한 말 같지만 랭철한 할아버지는 리해할수 있으리라고 믿어요. 어머니는 얼마전에 나한테 자기 심정을 터놓더군요. 자기는 내가 있어 고생을 몰랐고 그런대로 편안히 지내왔지만 앞으로는 안될것이라고요. 어머니가 바라는것은 내가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는것이였어요. 그러니 어머니는 한뉘 자신을 잊고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온셈이지요.

사람이 굳어진 자기의 생활과 관습에서 벗어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가요. 우리 동료들과 같은 모험심이 없다면 그리고 젊음이 없다면 난 감히 엄두도 못낼거예요.

여기 지중해기슭은 따뜻한 기후조건을 가지고있고 유적유물도 많아 관광지로 소문이 나있지요.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는 전란을 피해 여러 나라에서 밀려드는 피난민들과 그들을 적대시하는 현지당국사이의 충돌로 매일과 같이 인명피해가 그칠 사이 없답니다. 죄는 도깨비가 짓고 벌은 구새먹은 고목이 받는다는 말 그대로지요.

그들의 삶의 보금자리들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망쳐놓고 테로와 보복이 살판치는 폭력과 류혈의 란무장으로 만든것은 미국식자유화를 강제이식시킨 미국과 서방나라들이라는것은 삼척동자도 알고있지요. 하건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그 나라 사람들에게 강요되고있어요. 그속에서 제일 불쌍한것이 해마다 늘어나군 하는 연약하고 의지가지할데 없는 어린 고아들과 소년피난민들이랍니다. 올해만도 벌써 10여만에 이룬다는 이런 애들은 밀항업자나 인신매매업자들의 착취와 학대의 표적으로 되고있어요. 무정한 그 패덕한들은 보호자가 없고 불쌍한 어린이들의 약점을 리용해서 노예로 부려먹거나 매춘을 강요하려는 목적으로 랍치하여 매매하고있는거예요.

그애들의 정상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몰라요. 굶주림에 시달리다 끝내 쓰러진 그들을 보다못해 마음이 온순한 라베히와 와힘은 울면서 자기들의 궁핍한 처지까지 잊어버리고 빈약한 저녁식사인 얼마 안되는 빵을 다 내주었답니다. 그런데 그애들이 유럽으로 넘어가려고 이악스레 올랐던 고무뽀트가 세찬 파도에 뒤집혀 생죽음을 당할줄 누가 알았겠어요.

우리 악단의 오늘 저녁 공연은 그애들에 대한 추모의 감정을 담아 더욱 격렬해졌어요. 이 저주로운 세상을 무자비하게 두들겨버리고 목이 터지게 타매하고싶은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관객들도 더 많이 모여들어 몸들을 들썩이며 호응해주었어요.

이것이 할아버지가 애써 외면하고저 하는 오늘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가난해도 많은것을 본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끝없이 저주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명백한건 반드시 돌아갈 날이 있다는것이예요.

어머니에게 나의 인사를 전해주세요.

그리고 제가 다시 편지를 보낼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뜌니지에서 손녀 리혜림으로부터

 

리성원은 눈을 쪼프린채 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딸의 인사를 받아야 할 어머니인 며느리는 이미 집을 나갔다. 그러니 혜림이는 에미의 속궁냥은 알고있었지만 앞으로의 결심까지는 모르고있은 모양이였다.

대체 이 집안에 뭐가 부족하더냐?! 뭐가 실망되더냐?!

리성원은 가슴이 미여질것만 같았다.

며칠전 저녁에 집에 들어오니 며느리가 없었다. 안해에게 물어보아도 도리머리를 한다.

혜림이가 집을 떠난 이후로 말도 웃음도 적어진 며느리였다.

리성원은 며느리가 무슨 일이 생겨 어데 갔다 늦어지는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밤이 깊어오자 손전화로 찾았다. 전원은 차단되여있었다. 끝내 며느리는 그날도, 다음날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어제에야 손전화기를 꺼내보았었다.

짤막한 통보문이 펼쳐졌다.

《시부모님들께 무릎을 꿇고 하직인사를 드립니다. 부디 건강하십시오. 안희경 올림.》

리성원은 그날 처음으로 마시지 않던 술을 취하도록 마셨다. 그리고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여 엉엉 울었다. 곁에 앉은 안해는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물만 훔쳤다.

리성원은 오른손으로 뒤틀리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신음소리를 냈다. 하의영이 제꺽 부축해주었다.

리성원은 아무데건 털썩 주저앉고싶었지만 그럴 형편도 못되였다.

그들은 오래동안 조각처럼 굳어져있었다. 모든것이 정지되여버린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도, 지구의 자전까지도…

리성원은 뭐라고 중얼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지금까지는 남들을 동정의 눈길로 많이 보아온 그였다. 그래서 자기의 주변에 불행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도 자기들을 동정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둘뿐이였다.

지내보니 자기를 동정해줄 사람들이 있는것만도 행복이라고 해야 할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가는 실오리같은 행복마저 나를 외면한것인가. 사람이 산다는것이 이처럼 괴로운 일인줄을 왜 미처 몰랐던가.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하늘이 이런 벌을 연거퍼 내리는가. 아들의 죽음으로도, 손녀애의 탈가로도 아직 부족하단 말인가.

불쑥 하늘에서 불룡이 꿈틀거린다. 무엇이 못마땅한듯, 아니면 무엇을 저주하는듯 서슬푸른 불채찍을 휘두른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분다.

두사람은 락엽속에 묻혀버릴듯 움직이지 않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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