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2 장

 16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희망과 정을 무한히 갈망하는 불우한 우리 방랑악단의 고통스럽고 구슬픈 행군은 대서양기슭에 자리잡은 여기 뽀르뚜갈의 항구도시에서 계속되고있습니다.

바다길로 세계를 처음 일주한 탐험가 마젤란도 이 항구를 떠나 태평양을 항해하다가 필리핀군도의 어느 한 섬에서 원주민들에게 살해당했다고 예서 들었습니다.

우리들이 찾자는것은 대륙이 아니랍니다. 우리가 모험의 길에 나선것은 자기들을 찾으려는거예요.

태양이라는 불덩어리가 바다에 내려앉으며 세차게 자맥질을 시작하는것이 보여요. 바다물이 주황색쇠물처럼 막 끓어번지면 그 빛을 받아 항구도시 리스봉은 노을속에 잠겨듭니다. 고대사원의 첨탑들과 궁전의 지붕들이 붉게 물들고 떼쥬강대교우에는 빨갛고 알락달락한 딱정벌레같은 차들이 오글거립니다. 아마도 우리 악단은 이 도시에서 묵어가야 할가봅니다. …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의 구절구절을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리혜림은 광란적인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고있었다.

오늘 《롱》악단의 공연장소는 떼쥬강대교가 바라보이는 공원앞이다.

자기의 장구류나 같은 타악기를 열광적으로 두드려대며 온몸을 흔들어대는 흑인청년, 파나마모를 되는대로 쓴 혼혈아출신의 젊은이는 기타를 타며 허밍으로, 휘파람으로 혜림의 노래를 받쳐주느라 비지땀을 흘린다.

 

        우리는 어데로 가나 황금을 찾지 않네

        지구의 미래 인간의 세상을 찾아가네

        세상 끝까지 가서라도 리상향 보련다

        파도우에 집짓고 하늘에 다락 세우며

 

        …

 

처녀의 검은 장발이 휘날리고 그의 희귀한 률동이 오가는 사람들을 부른다. 갈리고 거세면서도 애절한 목소리는 이러루한 음악에 지쳐버린 관객아닌 관객들의 무심한 눈길우를 스쳐지나간다. 거리에서 막 굴러다니는 코흘리개들이 재미가 있었던지 앉거나 선채로 구경을 하다가 저들대로의 흥에 떠서 춤을 같이 춰댄다. 그들의 뒤에서 팔짱을 낀 사나이들과 젊은 녀자 몇명이 물끄러미 바라보고있다. 그러다가는 머리를 흔들며 사라진다.

와힘이 별안간 껑충 뛰여오르며 허공에서 한바퀴를 도는 재주를 부리고나서 허줄한 모자를 벗어들고는 몇 안되는 관객들에게 동냥의 손을 내민다. 고작해서 반짝거리는 동전 몇푼을 담아들고도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깊이 숙인다.

노래를 부르던 리혜림이 마이크를 손에 쥔채 갑자기 홱 돌아섰다. 방금까지 웃음을 머금었던 인상이 무섭게 돌변하며 하싼이 휘두르던 타악기의 채를 나꾸듯 쥐더니 신바르를 힘껏 내리쳤다.

《챙!-》

광란의 음악이 뚝 멎고 이어 악사고 구경군들이고 덴겁을 한다. 아이들을 비롯한 구경군들이 몽땅 달아나버린다.

《롱》로크악단의 공연은 이렇게 배우라고 해야 할 젊은이들의 례절없는 행동으로 원하든 원치 않든 때이르게 막을 내리기도 하는것이다. 관객들이 무례하다면 이 악단의 배우들은 도전적이였다.

방랑악단은 혜림을 옹위하듯 둘러싸고 눅거리려인숙을 찾아 무거운 걸음을 옮긴다.

《마리노, 나 배고프다!》

흑인청년 하싼이 못 견디겠다는듯 아래배를 쓸어내리자 파나마모를 정중히 벗어든 마리노가 고개를 깊이 숙여보인다.

《왕세자전하, 궁중생활 수십년동안 온갖 산해진미를 다 잡수셨겠는데 한끼쯤은 이겨내실줄 아옵니다.》

하싼은 비록 흑인이기는 해도 어느 아랍국가 왕자와 이름이 비슷하다고 하여 세칭 《왕세자》로 통한다.

로베르또가 둘러멘 타악기를 두드리며 와힘과 합창하듯 소리친다.

《왕세자전하에게 영광을!》

《배곯은 세자에게 영광이라… 세자님, 먹을것보다 웃음이 최고이오이다!》

이어 네 청년은 일시에 발장단을 치면서 석양비낀 거리에서 디스코무용을 펼쳤다.

혜림은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토라진 자기의 기분을 돌려세우려 허기를 누르고 이러는것임을 알고있기때문이였다.

얼마나 랑만적이면서도 서글픈 젊음인가. 이들에게 희망이 차례진다면 얼마나 좋으랴. 하건만 지금은 가엾게도 정처없이 방랑하는 청춘들이였다.

리혜림이 이들을 사귄것은 이딸리아 또리노에서였다. 그의 류학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였다. 그때 혜림은 거리에서 노래를 팔며 살아가는 네명의 청년을 보며 자기의 노래가 얼마나 배부른 선률인가를 알게 되였다. 집에서 보내오는 돈은 타산적인 할아버지로 하여 그리 풍족하지는 못했지만 혜림은 불쌍한 청년들을 외면할수가 없었다. 그들과 같이 나누어 먹는 빵의 맛은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것이였다.

혜림은 이 청년들을 카나다로 불러 《롱》악단을 내오면서 청춘의 리상향을 찾는것을 리념으로 내세웠다. 악단의 성원들은 다섯가지 의무를 무조건 준수해야 했다.

첫째로, 량심을 더럽히지 말것, 둘째로, 의리에 충실할것, 셋째로, 방랑은 하여도 타락하지 않는 도덕을 지닐것, 넷째로, 탐욕을 모르며 그것을 추구하는 행위를 하지 말것, 다섯째로, 악단의 리념과 의무에 철저히 복종할것 등이였다.

리혜림은 네명의 청년들과 함께 엄숙히 서약을 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의무를 어느 국가의 법률이나 종교의 교리, 종족의 계률보다 더 신성하고 엄격한것으로 여겨야 했다.

이렇게 발족된 악단이 서유럽을 일주하며 리스봉에까지 이른것이였다.

《저건 뭐예요?!》

앞을 주시하며 걷던 리혜림이 놀란 소리로 물었다. 캬바레의 오색불빛이 쏟아지며 비쳐주는것은 가로등이나 길가의 아무 건물벽에 기대거나 주저앉은 젊은이들의 죽은듯 한 모습이였다. 서있다기보다 허공에 매달아놓았거나 죽은채로 바닥에 내팽개친 송장같아 무섬증을 불러일으켰다. 불빛속에 드러난 초점없는 눈길들이였다. 그중에는 처녀들도 섞여있는데 목을 늘어뜨린게 다치기라도 하면 금시 앞으로 꼬꾸라질 자세였다.

《마리노, 어서 가봐요. 저들이 대체 왜…》

《가봐야 소용없소.》

로베르또가 그쪽을 보지 못하게 혜림의 앞을 막아서며 속삭이듯 말했다.

《가자구, 혜림. 볼 필요가 없단데. 자자, 됐소. 보면 모르겠소? 마약중독자들이요.》

혜림은 그러는 로베르또의 어깨너머로 다시 넘보았다.

저것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학대받는 자기 동세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련민의 정이 솟구치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무정과 랭대속에 시들어가는 저 잎새들은 미구에 죽음이라는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러 부식되고말것이였다.

그들이 자기를 쳐다보며 너의 삶도 우리와 다를바없다고 말하는듯싶어 혜림은 도망치듯 황황히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혜림은 속이 메슥거려 저녁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해버렸다.

《혜림, 그러지 말고 어서 좀 드오. 래일을 위해 건강을 돌봐야 하지 않소. 혜림이때문에 모두가 식사를 하지 않고 기다리고있소.》

로베르또가 구럭에 음식들을 담아가지고 혜림의 방에 찾아와 누워있는 그를 달래였다.

혜림은 더는 버텨낼수가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뭐, 한두번만 겪은 일도 아닌데… 너무 신경쓰지 마오.》

로베르또가 구럭에서 음식들을 꺼내며 펴는데 다른 사람들도 뒤따라 방으로 들어섰다. 모두 혜림이를 걱정하며 위로해주었다.

유일한 처녀이자 악단을 이끄는 혜림이를 특별히 아끼고 정을 기울여돌봐주는 동료들이였다.

《미안해요.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로베르또가 웃으며 혜림의 침대쪽으로 걸상을 당겨앉더니 입을 열었다.

《내 알아보니 뽀르뚜갈사람들은 현대음악에는 그리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는구만. 구전적이면서도 서정적인것을 더 좋아한다오. 건축도 문학도 음악도 말이요. 그래서 내 이 도시에서 수십년을 살아온다는 녀성을 한명 데려왔소.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좀 배울가 해서 말이요. 오늘중에 록음해서 우리끼리 멋지게 형상할테니 너무 걱정마오.》

이렇게 말한 로베르또가 음식을 담은 두개의 접시를 올려놓은 자그마한 탁자를 통채로 들어다 침대곁에 놓아주었다.

혜림은 억지라도 빙그레 웃을수밖에 없었다.

《혜림, 늘 그렇게 웃소. 혜림이 웃는게 제일 황홀하오. 동양미인의 화가 오른 얼굴은 정말 무섭더구만. 자, 어서 드오. 스트레스를 푸는데는 먹는것이상 없다더구만.》

혜림은 머리를 끄덕였다.

저녁식사는 삶은 감자 몇알과 서너마리의 말린 물고기뿐이였다. 이 려인숙에서 제일 눅거리음식이라고 했다.

동료들은 자기들대로 식사를 하려고 옆방으로 몰려들 갔다.

음식을 드는둥마는둥하던 혜림은 종시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갔다.

얇은 창가림을 제끼니 거리의 샨데리야불빛이 눈을 아프게 자극했다.

자기를 위해주는 동료들의 후더운 심정이 마음에 와닿았다. 한참 열띤 공연의 분위기를 잡쳐놓은 자기 처사가 얄밉도록 후회되였다. 신경이 날카로와진 자신이 저주스러웠다. 지금껏 반년가까이 함께 헤쳐온 쓰고단 시련의 고비들이 떠오르면서 그들 매 사람들의 다정한 얼굴들이 눈앞에 다가드는것이였다.

로베르또는 에스빠냐출신의 음악신동이다. 매사에 사려가 깊고 난관에 잘 견디는 사람이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매를 맞으며 자랐다고 했다. 처음에는 자식에 대한 엄한 요구성이라 생각했는데 종당에는 어머니를 버리고 다른 녀자에게 장가를 들었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이 결혼후 임신을 하자 불필요한건 왜 기어코 만들려는가며 당장 없애라고 사정없이 강박하였다고 했다. 부모의 사랑이 제일 그리웠다며 눈물을 흘린적이 한두번이 아닌 그였다.

아프리카태생의 흑인인 라베히는 부모의 얼굴도 모른다. 리듬박자의 귀신이다. 예민한 수감능력을 지닌데다가 일단 음악에 심취되면 선률이 없어도 웃음과 눈물을 자아낼만큼 타악기에 능통한 재간둥이이다. 학교를 다니지는 못했지만 빌어먹으면서도 10대의 나이에 이딸리아에까지 흘러들어가 천성적인 기질로 이악하게 타악기를 배웠다고 했다. 사생아로 자라서인지 자존심이 남달리 강한 반면에 남을 잘 믿지 않는다. 세상은 거짓으로 위장되여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은 음악으로써 그를 발가놓고 야유하고 진실을 호소하고싶다고 열변을 토하군 한다.

와힘은 오스트랄리아원주민혈통이다. 천부적인 률동의 완벽한 체현자다. 못 내는 흉내가 없고 손동작이 매우 빠르다. 세상의 그 어떤 춤이라도 추라면 그 자리에서 신통하게 추군 하여 사람들을 놀래운다. 외형적흠이라면 이마에 끔찍한 허물자리가 나있는것이다. 정형수술을 권고했으나 영원히 잊어서는 안된다며 거절한다. 역시 부모없이 동생을 데리고 류랑생활을 했다. 앓는 동생을 위해 어느 한 마을에서 손재간을 보여준적이 있었다. 승인없이 자기 마을에서 돈을 벌었다고 우악스러운 장년들이 나타나 뭇매를 가하다가 반항한다고 하여 철퇴로 내려치는 바람에 생긴 허물이라고 했다. 동생은 끝내 저세상으로 보내고말았다. 흠뻑할 정도의 사랑을 한번 받아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하였다.

마리노는 고대인디안들의 태고적의 노래도 알고 눈물을 자아내는 감정의 신으로 불리우는 청년이다. 대학시절 실련의 고배를 마신 후 세상의 녀자란 다 증오하고있다. 혜림과 사귀면서 생각을 달리한다고는 하나 아직도 첫 애인을 잊지 못하는듯 하다. 그 처녀의 부모가 돈이 없는 사람에게 딸을 줄수 없다면서 반대했다는것이였다. 문제는 애인인 당사자의 태도였는데 부모의 말에 머리를 끄덕인것이다.

그 다음은 《롱》악단의 주인공인 리혜림이다. 조선사람이지만 카나다공민이다. 유럽의 명문대학에서 류학했다. 피아노와 성악에서 혜성이라는 말을 들으며 공부했다. 우의 악단성원들과는 출신과 가정환경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넉넉한 집안이고 든든한 배경도 있으며 무시할수 없는 기업의 상속자이다. 그런데 왜 이들의 악단에 몸을 잠그었는가. 속박이 싫었고 남들이 지켜주는 조롱안이 싫었다. 마음껏 나래를 펴고 세상을 날고싶었고 모든것을 알고싶었다.

하지만 최근에 후회라고까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좀 흔들리는것 같다. 어머니가 집을 나갔다는것이다. 어머니가 그럴 의향을 이전에 비슷이 비친적은 있었지만 자기가 세계일주를 떠난 후 그렇게 빨리 탈가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혜림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보낼 편지의 구절을 마음속으로 쓰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나한테 배워준 할아버지의 노래가 생각납니다. 할아버지는 자기 어머니, 그러니까 나의 증조할머니의 소원을 풀어드릴 마음으로 한생을 사신다고 하셨어요. 이 손녀도 어머니의 소원을 왜 모르겠나요. 오늘도 리스봉의 밤거리에서 마약에 중독되고 더 타락할 여지도 없이 완전히 페인이 되여버린 우리 세대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청년들의 정신적타락이 과연 그들자신의 잘못만이란 말입니까. 젊은이들이 모두가 그렇게 되여버리면 인간세상의 앞날은 어데 있을가요.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마저 집을 나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엄마가 알려왔지요. 어머니는 그 이상은 달리될수가 없었던거예요.

하지만 희망은 가지세요. 내가 만약 리상향을 찾고 돌아가면 어머니도 반드시 찾아올겁니다. 그러나 기약할수는 없군요. 불쌍한 나의 엄마예요.

세상에는 불우한 인생들이 너무도 많답니다. 억만장자들이 발뒤축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과연 언제면 가셔질가요?…

 

리혜림은 머리속으로 할아버지가 자기 어머니를 그리며 지었다는 노래의 가사를 떠올렸다. 그러고보면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는 지금처럼 메마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오늘에 와서는 그 선한 감정을 마음깊숙이 묻어두고있는것인가. 물론 자식들을 엄하게 키우고 통제를 하는데는 리해가 갔다. 외동손녀에게 자기의 기업을 상속시키려는 할아버지의 마음도 고마울뿐이다. 그러나 다른 집 자식도 아닌 친손녀까지도 지출의 대상으로 여기면서 서로 먹고먹히우는 랭혹한 기업세계의 노복으로 키우려는데는 항거할수밖에 없었다.

자식을 가진 녀성인 어머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딸을 낳았을뿐이지 집안에서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어머니인것이다. 철이 들어 늘 할아버지의 엄격한 손탁에서 엄마에게 구원의 처량한 눈길을 보내던 어린시절이 돌이켜진다. 하지만 엄마는 입술만 깨물뿐 어쩌지 못하고 기껏 참다못해 방을 뛰쳐나가고마는것이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손녀를 엄하게 길들인다.

《혜림아, 엄마와 넌 달라.》

어머니의 서글픔어린 목소리가 울려왔다. 혜림이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에 어머니 안희경이 딸에게 한 말이였다.

랭정한 세상에서 자기에게는 그것이 운명이고 생활이라던, 그것으로써 시부모에게 만족을 줘야 하고 생활과 가정을 유지해야 한다던, 너처럼 조부모와 대립된다면 자기는 이 집안 며느리로서의 명분마저 상실하게 된다던 그 말이 귀전을 울린다. 그리고 너는 이 세상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테지만 나는 어데로 가야 하느냐고 처절하게 웨치던 그 말이 가슴을 허비며 들려왔다.

명백히 어머니의 말은 자기 딸이 할아버지의 상속자로 남게 하기 위한 절규였고 혜림자신에게는 견디여내기 어려운 심리적압박이였다.

불쌍한 어머니를 생각하느라니 혜림은 눈물이 솟구쳤다.

나는 엄마에게 지독한 마음의 상처를 입혔어. 그렇지만 엄마도 날 리해해줘야 해. 나는 지금 현실을 감각하기 시작했어. 하늘과 땅 같은 빈부의 차이를 보고있고 돈에 의해 값이 매겨지는 인간들의 운명과 그 무시무시한 질곡을 보고있어. 앞으로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될거야. 그래, 난 지금 맑다고는 볼수 없지만 어쨌든 창공이라는것을 날고있다. 나나 엄마는 인간이야. 지출대상도 아니고 하인은 더구나 아니야, 아니지 않구!

《하지만… 하지만…》하고 혜림은 중얼거렸다.

벽시계가 0시를 알리고있었다.

《호-》하고 한숨을 지은 혜림은 전등을 끄고 침대로 다가가 누웠다. 널직한 2인용침대의 머리맡에 남아있는 또 하나의 베개를 그는 끌어안았다.

《엄마, 지금 어데 있어?》

이렇게 방황하는 길에서 혹 어머니를 만날수 있지 않을가 하는 한오리의 희망에 마음이 조금이나마 안정되는듯싶었다. 온종일 너무도 지친 그는 소르르 눈을 감았다.

《야, 혜림아! 나다. 엄마다!》

《엄마!》

모녀는 와락 포옹했다. 눈물이 하염없이 솟구쳤다.

《이렇게… 이렇게 지구의 한쪽끝인 런던에서 너를 만나게 될줄은…》

하며 안희경은 딸의 등을 닳도록 쓸고 또 쓸었다.

《아, 얘가 혜림이요? 정말 곱게 생겼구만.》

걸걸한 남자의 조선말소리에 얼굴을 든 리혜림은 엄마뒤에 서있는 한 사나이를 보았다. 키가 크고 인자한 웃음을 짓고있는 얼굴이였다.

《?!…》

《예, 이애가 바로 내가 늘 이야기하던 내 외동딸이예요.》하는 엄마의 얼굴이 붉어있었다.

《반갑구나. 난 여기 런던에서 방직업을 한다.》하며 손을 내민 남자는 쉰살정도 되여보였는데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안희경은 딸앞에서도 눈길을 마주보지 못하고 변명하듯 말했다.

《난… 난 결혼을 했다. 한 반년 잘돼. 너한텐 알릴수가 없은걸 리해해라.》

리혜림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뒤걸음을 쳤다.

《그러지 말아. 저분은 좋은분이란다. 조선사람이고… 네 말을 했더니 몹시 보고싶어했어. 이분도 상처를 했고 자식이 없단다.》

엄마가 따라오며 간절히 설명하나 혜림은 계속 뒤걸음질을 하고있었다.

《넌 이 엄마를 리해해줘야 한다. 20년을 고독하고 외롭게 감옥같은 생활을 해온 엄마라는걸 상기한다. 그런데도 외면이냐. 넌 아직 몰라. 정이란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그리운것인지… 난 모든걸 참아왔고 지켜왔고 이겨왔어. 견뎌왔고 갈망해왔어. 이제 겨우 행복을 찾았는데 그걸 죄라고 생각하니? 내가 인간다운 사람과 살지 못했다는거야 너도 잘 알지 않니. 내가 어떤 모욕적인 지출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네가 잘 알지 않는가 말이다.》

계속 뒤걸음하는 딸을 지켜보던 안희경의 얼굴이 드디여 표독스러워진다. 그러는 그를 진정시키며 남자가 다가온다.

《얘, 혜림아. 난 네 마음을 안다. 네 어머니는 깨끗이 살아온 녀자다. 난 네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고 또 내 임무라고 생각한다. 너에게도 역시 만나면 말하려고 했다. 너도 우리와 함께 살자고 말이다. 난 너를 조롱속이 아니라 창공에 떠올리련다. 마음껏 날도록, 세상을 보고싶은대로 보도록 말이야. 난 우리가 리상적인 한가정이 될수 있다고 본다. 왜냐면 네 엄마도 마음에 꼭 들고 이제 보니 너도 역시 곱고 똑똑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날 믿어라.》

《닥쳐요!》

어느결에 혜림이 반항적으로 소리쳤다.

《가정의 배신자! 변명은 말아요. 아무리 고급한 신사라도 난 싫어요. 엄마 맘대로 해요. 그렇지만 나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떼여낼 생각은 하지도 말아요.》

《아니?! 얘, 게 섯거라! 벼랑이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뒤걸음치던 리혜림은 그만 벼랑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아!-》…

혜림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소리질렀다.

《아앗!-》

온몸이 땀에 젖어있었다.

《참, 꿈도…》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일어선 혜림은 경대앞으로 다가갔다. 매시시해났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힘을 주었다. 솔빗을 쥐고 등까지 기른 검은 머리채를 슬슬 빗어넘기던 그는 거울앞에 마주선 처녀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보니 어머니의 모색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

기쁜 일일가 아니면 불행의 예언일가. 나도 이제 엄마의 전철을 밟게 될건 아닐가.

혜림은 부담스러운 꿈의 여운속에서 헤여나오려 모지름을 썼다. 허사였다.

그는 경대앞에 마주선 처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속삭이듯 물었다.

《넌… 이자 그게 사실이라면… 엄마를 리해하겠니?》

경대안의 처녀는 말없이 앞만 주시하는데 어디선가 그의 말소리가 울려나온다.

《어디까지나 꿈이 아니니. 나 같으면 리해하겠다. 20년나마 꼬박 가정에 충실해온 녀자, 순정을 지켜온 렬녀같은 녀자야. 네 아버지가 그토록 잊을수 없는 정을 대체 주기나 했다던? 변명은 네가 하고있어. 네 엄마도 사람이야. 이제라도 사람답게 살도록 해야 하지 않아. 너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한게 있어? 너는 엄마를 꾸짖을 자격이 있니? 너는 네 밸대로 행동하면서 그래, 엄마는 그러면 안된다는거냐?》

혜림은 머리를 수그렸다.

《네 말이 맞을수도 있어. 그렇다면 난 엄마가 없지 않아. 난 고아나 뭐가 달라? 정말로 이 담에 내게도 그런 불행이 답습된다면…》

혜림은 반발이라도 하듯 다시 머리를 쳐들고 경대를 주시했다. 실내옷차림이지만 자기로서도 자부되는 날씬한 육체가 걸탐스러웠다. 그는 훌렁한 실내옷의 여백을 잡아 뒤로 모아쥐였다. 몹시 황홀해보였다. 볼록한 상체가 들먹이는데 가는 허리가 매혹적인 젖가슴을 지탱해주고있었다. 아직은 그 어떤 사내의 애무의 손길이 닿아본적이 없는 육체였다.

《엄마, 그런 육체를 어떻게 지켰어? 그 모든 욕망을 이겨온 엄마가 돋보여. 설사 다른 일이 있대도 난 리해하겠어. 엄마에게 행복이 된다면.》

혜림의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