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3 장

 19

 

성공을 예감한다는것은 특이한 현상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나 그에 대한 류다른 감각을 가진 희귀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것도 무시할수 없는 현실이다. 또 그런 부류의 인간들속에 자고자대라는 공통점을 찾아볼수 있는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신경계통의 한 부분에 불과한 감각이 성격을 형성한다면 모순일지 모르지만 리성원에게는 무시할수도 있다고 간주되고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남다른 운명의 소유자이기때문이였다. 인간으로서 그는 본래 빈곤하였으나 어쨌든 숙명적이였을지도 모르는 자기의 인생궤도를 수정하였으며 오늘은 큰 회사의 주인으로 물질적인 만족을 누리고있는것이였다. 이와 같은 듣기에도 놀라운 변화과정이 인간 리성원으로 하여금 감각을 중시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평양에서 보낸 확스에 대한 답변을 보류한 후 그의 심리는 불안했으며 자기가 어떤 실패의 첫걸음을 떼는듯 한 예감에 자주 빠져들군 했다. 그 원인은 자신도 알길이 없었다.

그는 조선광명기술연구소의 면담제의를 외면하는것이 옳은 처사가 못된다는것을 깨닫고있었다. 공식적으로 제의해온 면담에 침묵을 지키는것은 대방에 대한 일방적인 무시로서 무례한 행위인것은 물론 기업활동에서의 초보적인 규범을 위반하는것으로 되기때문이였다.

그러자면 대방이 납득할만 한 적당한 리유가 있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로서는 머리만 복잡할뿐 석연한 대답을 찾을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들었다.

그가 회사의 사무실에서 평양초청에 대한 대응방안에 골몰하고있는데 서기가 들어섰다.

《사장님, <한국>령사관 부령사가 찾아왔습니다.》

《부령사가?! 무슨 일로 왔다던가?》

《지나가다가 인사를 하려고 들렸다고 합니다.》

리성원은 코웃음이 나갔다.

역시 나무랄데 없는 외교관이로군.

《례의를 잊어서야 안되지. 들여보내게.》

잠시후 리성원과 한시명은 방안의 안락의자에 마주앉았다.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사장선생의 일에 응당한 관심을 돌렸어야 했는데 너무 뒤늦게 찾아왔다고 욕을 많이 하셨을줄 압니다.》

한시명은 서기가 가져다준 커피잔을 들고 미안쩍어했다.

《별말씀을… 내 일이 아무리 바쁘더라도 아무러면 부령사님의 일에 비길수 있겠소. 더없이 분망한 부령사께서 오늘 이처럼 우리 회사에까지 왕림했을 때에야 불피코 긴요한 용무가 있겠다고 생각되는데요.》

리성원은 불청객의 방문목적을 알고싶어 화제를 본론에로 직방 유도해갔다.

《역시 사장선생은 언제 봐야 실무적이군요. 좋습니다. 이렇게 된바에 흉금을 터놓고 말씀올리죠. 제가 듣기엔 지금 사장선생께선 평양에서 온 초청장을 받고 결심채택이 어려워 주저하고계신다더군요. 거 뭐 가고싶으면 가고 맞갖지 않으면 그만두는것이지 지체높으신 사장님이 고민까지 하실거야 있겠습니까.》

한시명은 여유작작한 태도로 말을 이어갔다.

리성원은 속으로 놀랐으나 애써 침착성을 유지했다.

《고맙구려. 그러잖아도 매사에 빈틈이 없는 부령사어른한테 초청장소식을 알리고 조언을 구하려던 참인데 어느새 벌써 헤아려보고 걱정을 해주니 말이요.》

《사장님이 걱정하고계시는것은 그뿐만이 아니지요. 요즘 챠일드회사제품들의 판로가 막히고 차세대설비개발에 필요한 자금융자도 시원치 않다던데… 무슨 방도라고 가지고계시는가요?》

《?!》

리성원은 상대방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원, 저를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전 어디까지나 외교관이고 우리 동포들을 위해 분투할뿐입니다. 이제부터 저의 말을 주의깊게 들어주기 바랍니다. 서울에 있는 삼로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적이 있습니까?》

리성원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에 대해 어지간히 알고있었다.

몇해전부터 남조선기업계에 불쑥 나타나 최대의 호황기를 누린다는 벤쳐기업으로서 한창 세력확장중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경제계의 신문, 잡지들에서 심심찮게 찾아보게 되는 그 기업의 성공의 밑바닥에는 서울당국의 막강한 후원이 깔려있다고 했다.

《그 삼로그룹을 좌지우지하는 상무취체역이 저와 대학동창생인데 지금 기업확장을 위해 열심히 뛰고있는중이죠.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이 아메리카대륙에 뻗쳐있는 자기네 기업의 발판이 너무 미약한데 미국이나 카나다에서 오래동안 영주해오면서 기업경험이 풍부하고 특히 첨단기술개발에 주력하는 관록있는 동포경제인을 한사람 소개해주면 그를 대리인으로 삼고 사업을 본때있게 내밀어보겠다고 하더군요.》

한시명은 양복주머니에서 려송연을 꺼내 불을 붙여물었다. 잠간새에 방안에는 향긋한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 사장님에 대해 몇마디 건네보았지요. 그랬더니 그 친구가 대뜸 호기심을 가지더란 말입니다. 물론 챠일드회사의 제품판로와 기술개발에 필수적인 자금융자문제 등 애로조항들에 대해서도 자상히 말해주었습니다.》

리성원은 슬며시 긴장해졌다.

《그 친구의 말이 거대한 잠재력을 가지고있는 동남아시아지역의 시장들을 거미줄처럼 휘감고있는 자기 그룹의 판매망을 리용하면 첨단인쇄설비들의 판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것이라더군요. 그리고 웬간한 액수의 자금융자 같은것은 자기의 힘으로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겁니다. 그래, 어떻습니까? 사장님의 의견을 듣고싶군요.》

서로 속이고 속는것이 기업계의 생리라 별의별 달콤한 말에는 놀라지 않는 리성원은 좀 심드렁한 어조로 떠보았다.

《내가 알고있기에는 삼로그룹이 자기의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것이 그리 오래지 않은것 같은데… 무슨 비결로 그렇게 득세하는지 모르겠소.》

《말씀의 뜻을 알만 합니다. 그 그룹의 발전전망이나 그것을 담보하는 배후실세들을 알고싶다 그 말씀이겠지요. 솔직히 말하면 그들은 권력의 최정점과 선을 잇고있습니다. 그래서 무소불위의 위용을 떨치고있는거죠. 더 말하지 않아도 이쯤하면 리해하시겠지요? 차라리 그럴것없이 사장님이 서울에 직접 가서 확인해보는것이 어떨가요?》

《내가 서울에?!》

리성원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기업의 흥망과 관련된 중대사인데 어떻게 한가로이 앉아서 왈가왈부할수 있겠습니까. 그 친구의 말이 마침 며칠후에 기업확장과 관련하여 주주들과 대리인들의 총회가 있다니까 거기에 참석해보시면 아마 일목료연해질겁니다. 사장님이 동의하신다면 제 친구가 특별초청장을 보내겠다더군요.》

리성원의 표정변화를 바늘귀만큼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던 한시명은 능글맞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장은 결심채택이 어려우시겠지요. 평양에서 온 초청장 그리고 서울에서 올수 있는 특별초청장… 선택권은 사장님이 가지고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말하고싶은것은 평양은 공기마저 희박한 페쇄지역이고 서울은 바다같이 무변광대한 <자유의 세계>라는것입니다. 기업이라는 물고기는 바다에 뛰여들어야 살수 있지요. 많이 생각해보시고 오늘 저녁이나 래일쯤에라도 좋으니 련락을 해주십시오. 전 사장님을 진정으로 돕고싶어 그러는겁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리성원은 무의식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회사정문까지 그를 바래워주었다. …

어느새 땅거미가 안개처럼 밀려들어 창밖은 어두워졌다. 서기가 몇번이나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가 사무실에 망두석처럼 앉아있는 리성원을 보다못해 조용히 나가버렸다.

아마 방안에 전등을 켰더라면 그는 하루동안에 몇년쯤 더 겉늙어보이는 자기 사장의 얼굴을 보고 대번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책상우의 대화기에서 신호음이 울리더니 서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방금 댁에서 몇시에 들어오시겠는가고 전화가 왔습니다. 사장님의 손전화랑 사무실전화는 계속 통화중이라고 하면서… 지금 여덟시가 되여옵니다.》

《알겠소.》

짧게 대답한 리성원은 내려놓았던 수화기를 들었다.

그는 서해수를 찾아 부령사가 찾아왔던 사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자기의 결심을 터놓았다.

수화기에서는 서해수의 거센 숨소리가 간단없이 들렸다.

《그러니 형님, 서울행을 결심했다는거요?》

《그래, 결심했네.》

《그럼 됐구려. 형님의 결심을 누가 돌려세우겠소.》

《자네 말투가 왜 그런가? 차라리 역정이라도 내며 가지 말라고 말리면 내가 탓할것 같아서?》

느닷없이 부아가 치밀어오른 리성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말린다고 그만둘 형님이 아니잖소. 공연히 신경을 살리지 마시우.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똑하면 그만이라는데…》

리성원은 인사말인지, 고무인지 알수 없는 서해수의 마지막말을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음미해보았다.

리성원은 그의 시무룩한 얼굴표정을 눈앞에 그려보다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한시명부령사를 찾습니다. … 아, 내 리성원입니다. 당신의 제의에 동의합니다. 수일내로 서울을 방문할수 있도록 문건수속을 부탁합니다. 그럼 안녕히.》

 

안해와 함께 비행기탑승시간을 기다리며 리성원은 H국제비행장대기실에 앉아있었다.

《해수가 되게 노여운 모양이요. 요 며칠째 전화 한번 안하는걸 보면…》

《그래두 당신이 오늘 떠나는걸 모르지 않겠으니 바래주러야 나오겠지요.》

하의영이 대기실입구쪽을 바라보며 위안조로 대꾸했다.

《그러나저러나간에 서울에 가서 다른 불행한 일은 없겠지요? 왜 이리 불안할가요?》

남편의 손에 쥐여진 비행기표를 넘겨다보며 하의영이 눈가에 주름을 짓는다.

《떠나기 전부터 오도방정마오. 세난 애도 아닌데 그런 잔걱정은 걷어치우. 혹시 혜림이나 며느리에게서 소식이 있거들랑 련락이나 해주오.》

리성원은 안해의 걱정이 자기에게도 전이될가 두려웠다.

그들부부가 애타게 기다리는 서해수는 리성원의 탑승수속이 시작되여서야 나타났다.

잔뜩 찌프린 인상으로 씩씩거리면서 다가온 그는 동정이 어린 눈길로 리성원을 바라보며 말을 건넸다.

《정녕 가시려우?》

《그래, 갔다가 이내 돌아서려네. 사실 떠나는 내 마음도 가볍진 않네. 하지만 혹시 알겠나. 우리 기업에 운수가 트이는 좋은 일과 맞부딪치게 될는지?》

《하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소. 그럼 비행기에 오르기 전에 이 신문이나 읽어보시우. 도움이 될거우다.》

서해수는 손에 쥐고있던 신문 한장을 넘겨주고는 바쁜 일이 있다며 대수 악수를 청하고 돌아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진 리성원은 신문을 펼쳐들었다. 밴쿠버에서 발행되는 교포주간지였다.

대충 훑어보는데 두드러지게 큼직한 활자로 된 기사제목이 안겨왔다.

《죽음으로 해부해보는 삼로그룹의 실체》

리성원은 눈확에 힘을 주고 기사내용에 정신을 쏟았다.

메히꼬에 있는 한 유력한 동포기업가가 남조선의 신흥재벌인 삼로그룹과 거의 한해동안 거래를 하다가 쫄딱 망하고 자살을 했다는 사실이 실려있었다. 그의 안해가 남편의 투자금을 되찾으려고 서울의 금융감독기관과 검찰청을 찾아다니며 고소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사설탐정을 고용하여 알아본데 의하면 막대한 그 자금은 삼로그룹을 통해 청와대에 틀고앉은 녀주인의 최측근들에게 비밀자금으로 상납되였다는것이였다. 권력과 재벌간에 이루어진 정경유착의 비참한 희생물로 사람도 돈도 사라져버린셈이였다.

《아니, 청천백일하에 어쩌면 이런 일이 생길수 있단 말인가!》

남편의 분격한 목소리에 놀란 하의영이 신문을 거칠게 앗아들었다.

이내 그의 손도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 부령사라는 량반이 당신을요?!》

하의영은 눈을 부릅뜨더니 신문을 와락 구겨쥐였다. 타는 그 눈빛으로는 손에 쥔 신문도 태울 기색이였다.

《여보, 진정하오.》

리성원은 이러다가 정말 안해가 쓰러질것 같아 그를 의자에로 이끌고가 억지로 앉혔다.

이때였다.

《사장님! 아, 부인님도 나오셨군요. 너무 걱정마십시오. 주인님께서 머지않아 기쁜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실텐데요. … 자, 비행기에 오르셔야죠.》

어디서 바람같이 나타났는지 한시명이 해반주그레한 얼굴에 살가운 미소를 짓고 서있었다.

리성원은 안해의 어깨에 올려놓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역시 빈틈이 없구만. 헌데 이것 참… 오늘 려행은 취소해야 할것 같소. 보오. 갑자기 이 사람의 건강이 나빠져서 그러오.》

한시명의 얼굴이 한순간 수수떡처럼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이였다.

《부인님의 건강이야 우리가 돌보면 되지 않습니까. 모처럼 서울의 특별초청을 받고 가시는 걸음인데…》

리성원의 저력적인 목소리가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아니, 난 안해의 건강을 누구에게 부탁해본적이 없소!》

리성원은 지금까지 하의영의 손에 들고있던 신문을 끄당겨 비행기표와 함께 안해가 앉은 의자옆에 버리듯 놓았다. 그리고는 안해의 팔을 잡아 일으켜세웠다.

그의 도도한 서슬에 눌리운 한시명이 질겁하여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어 그것을 으스러지게 구겨쥐였다.

리성원은 분기를 가까스로 누르고 안해와 함께 대기실입구로 향했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