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2 회)

 제 3 장

 22

 

베이징을 떠난 《고려항공》려객기는 평양을 향해 날고있다. 1등석에 자리를 잡은 리성원은 바야흐로 이제 밟게 될 미지의 땅과 자기를 맞아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예상외로 평양방문신청은 인차 승인이 되였고 그는 조선광명기술연구소의 《홍승혁소장 앞》으로 자기의 출발항로와 도착기일을 밝힌 확스를 보내였다.

미흡한것이 있다면 자기가 북에 대해 너무도 잘 모르고있는 상태에서 평양을 찾아가고있는 그것이였다.

이럴줄 알았더라면 서해수의 말대로 북의 인터네트홈페지 《우리 민족끼리》라도 부지런히 보았을걸 하는 막급한 후회가 밀려들었다.

《말을 타고 버선을 깁는다는게 바로 형님 꼴이구려. 하지만 혹시 알겠소, 그렇게 기운 버선을 신고 천국에라도 갈는지? 허허허.》

H국제비행장에 그를 전송해주러 나왔던 서해수가 하던 이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했다.

북에 대해 어느 정도의 표상이라도 가지고있었더라면 이다지도 마음이 불안할것 같지 않았다. 설사 그것이 좋든싫든 상관이 없었다. 세상에 초행길처럼 어렵고 두려운 길은 없으려니 생각되였다. 하지만 떠난 길은 열심히 재촉하고있었다.

그의 머리속으로는 이제 자기가 부대껴야 할 현실에 대한 의혹의 질문들이 끝없이 샘솟고있었다.

워싱톤이나 서울에서 떠들듯이 정말로 북이 그런 암담한 사회일가? 제마음대로 말도 한마디 할수 없고 걸음을 하나 옮겨도 조심해야 하는 압박의 세상일가?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주린 배를 그러안고 거리를 헤매고있을가?…

평양에 풋낯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다면 울라지보스또크전시회때 만났던 조선광명기술연구소 소장과 부소장뿐이였다. 그들이 리성원을 초청했다고는 하지만 어떻게 나올지는 만나봐야 알 일이였다.

이때 아릿다운 처녀안내원이 객실에 나타나 잠시후 비행기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에 도착하게 된다고 알려주었다. …

입국사증수속을 마치고 대기실에 들어서는 리성원에게로 여러명의 사람들이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리성원사장선생의 평양방문을 환영합니다.》

제일먼저 다가온 반백의 사나이가 리성원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홍승혁소장이였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여 반갑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 역시 반갑습니다.》

리성원은 어색한대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인사를 나누었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처녀가 다소곳이 머리를 숙여 그에게 절을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전 해외동포사업국에서 일하는 홍송미라고 합니다. 이번에 선생님의 안내를 맡았습니다.》

리성원은 다소 놀라운 눈길로 처녀안내원을 주시했다. 어딘가 혜림이와 비슷해보여서였다.

《나로 해서 수고를 하게 되였습니다.》

이제 한주일정도 지나면 상강인데 10월 중순의 평양은 덥지도, 춥지도 않았다.

승용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홍승혁이 뒤좌석에 나란히 앉은 리성원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체류기일이 4박5일이라지요. … 그동안에 우리의 일도 잘 협의되고 선생님께서도 편안히 좋은 구경을 하시며 즐기시기 바랍니다.》

《홍소장선생과 귀측의 호의에 감사할뿐입니다.》

승용차가 달리는 동안 리성원은 일체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난생처음 보는 독특한 풍경에 취한듯이 덤덤히 차창밖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들이 대렬을 짓고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는 모습이 나타나자 그의 눈이 확 커졌다. 누구라 할것없이 씩씩하게 팔을 내저으며 가는데 꼬리에 붙어가던 한 꼬마녀석이 짧은 다리로 앞서가는 애들과 발을 맞추지 못해 안달아하는것이 참 우스웠다.

차가 평양시내에 들어섰다고 알려주는 홍승혁의 말에 그는 더 큰 호기심을 품고 바깥풍경을 주시했다.

좌우로 고층주택들이 마치 계주라도 하듯 끊임없이 이어지고 중간마다 고전적이거나 현대적인 미와 특색을 가진 갖가지 형식의 웅장한 건축물들이 연줄연줄 흘러갔다.

가끔 홍승혁이 설명해주었지만 리성원은 잘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대화는 자주 끊겼고 서로 옹색해졌다.

리성원의 립장은 저으기 난처해졌다. 세상을 편답하다싶이 해오면서 빠리에 가면 에펠탑과 노뜨르담대사원 혹은 엘리제궁전, 도꾜에 가면 고색이 창연한 에도성, 싼크뜨-뻬쩨르부르그에 가면 에르미따쥬박물관과 마리인스끼극장, 뉴욕에 가면 맨하탄의 월가와 할렘거리, 런던의 버킹엄궁전과 런던탑 등 이런 식으로 매개 나라를 상징하는 기념물들을 기억하고있는 그였다.

그러나 피줄을 나눈 동족이 살고있고 더구나 옛 조상의 성지인 평양의 현실에 대해서는 모르는것이 너무도 많은것이 이상스러웠다. 좀 아는것이라야 외국에서 진행하는 전시회들에서 구입한 북의 화보나 잡지를 보거나 인터네트홈페지를 뚜지다가 눈에 띄운것이고 그나마 대부분이 련광정과 대동문, 을밀대를 비롯한 몇몇 명승고적들에 국한되군 했다. 그외의 놀랍거나 희한한것들은 서방여론의 말대로 북의 선전으로 치부하고 대충 훑어넘기고말았던 그였다.

그런데 요행 그를 곤혹스러운 처지에서 구원해주는것이 있었다. 승용차가 비교적 경사가 진 언덕을 오르려는 찰나 길녘에 서있는 탑우에 하늘로 치달아오르는 말조각상이 안겨왔다. 상당히 낯이 익었다. 서해수와 가끔 보던 북의 영화들의 개시화면에 나오던 특이한 마크가 틀림없었다.

《저 말조각상이 매우 낯이 익습니다.》

리성원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말이 튀여나왔다.

《사장선생도 많이 보셨을겁니다. 천리마동상이랍니다. 옛말의 하루에 천리를 달렸다는 말을 형상한건데 미래에 대한 확신을 상징한거지요.》

《천리마라… 옳습니다. 그렇게 들은 기억이 납니다.》

머리를 끄덕이던 리성원은 한가지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좀전에 지나온 건설장이였다. 넓은 지구에 갓 시작한 건설이여서 몇층 안 올린 주택건설장이였으나 첫어구에 큼직하게 내건 형성도안으로 보아서는 초고층의 살림집구역임은 명백하였다. 보기에도 빨리 잡아 오륙년은 잘 걸릴거라고 생각되였었다. 분명 《만리마속도》라고 쓴 글발이 떠오른것이다. 어딘가 비슷한것 같으면서도 다른 의미가 있는듯 하여 그는 무랍없이 물었다.

《사장선생의 안목이 과연 예리하시군요. 옳습니다. 좀전에 지나온 그 주택건설장이 바로 려명거리건설장입니다. 남들은 몇년이 걸려서도 불가능하다는 초고층살림집들을 비롯하여 수천세대의 고급주택들과 학교, 유치원, 상점 등 수많은 봉사망을 따라세워야 하는 대규모적인 주민생활지구를 1년안에 일떠세워야 하는 거창한 대건설이지요. 방금 선생이 말씀하신 <만리마속도>란 바로 거기에서 탄생한 말입니다. 지금 온 나라가 이 만리마속도창조대전에 떨쳐나섰지요.》

천리마도 번개같을진대 그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날아오르는 만리마라?! 거 도대체 모를 소리군. 저런 한개의 거리를 1년안에 세운다니…

표현은 단순해도 무서운 중압으로 가슴을 압박해왔다.

평양의 제일가는 중심부에 위치하고있다는 김일성광장의 앞뒤로 솟아있는 주체사상탑과 인민대학습당도 이전에 종종 보아둔 기억이 있어서인지 홍승혁의 설명이 그리 생경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진이나 그림이 아니라 난생처음 제눈으로 직접 보는 평양시가지는 매우 인상적이였다.

길가에 호화롭게 장식한 간판이나 광고는 보이지 않는데 대신 대번에 눈길을 끄는 글자들이 보였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미래를 사랑하라!》

《세상에 부럼없어라》

리성원은 네거리의 교차점에서 차가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 구호들에 대해 음미해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기웃한 그는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주시해보았다. 유럽의 대도시들에 비하면 한적한 감을 자아내는데다가 수수한 차림새의 사람들이 이상할만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것이 의아쩍을 지경이였다. 툭 튀여나는 옷차림도 볼수 없고 선진국들의 거리에서도 심심찮게 볼수 있는 알콜중독자나 거지들도 보이지 않는다.

더우기는 자기의 호흡이 빨라지는 원인을 집요히 찾으려 애쓰다 아하 하고 리성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의 걸음속도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빠른 그것이였다.

어찌 보면 하나의 틀에 찍어낸것처럼 한모양새인 저 모습들이 간직한 내면심리는 무엇일가.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지만 구김살을 찾아볼수 없고 활기에 넘쳐있는것이 알리였다. 만일 배고프거나 생활고에 지쳤다면 저렇게 태연자약하고 거침이 없는 행동을 연출해낼수가 없는것이였다.

리성원은 다른것은 몰라도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의 표정만은 똑똑히 가려볼줄 알았다. 그자신이 유년시절에 오래동안 체험한 지울수 없는 추억의 한페지였던것이다. 그것을 평생 잊을수 없기에 그가 빅또르 유고와 그의 《레 미제라블》에 그처럼 애정을 쏟아붓는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그 작품은 리성원자신의 자화상이였고 생의 한 부분이였다. 그는 여가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들여다보는 취미가 있어 어디 먼길을 갈 때면 그것만은 잊지 않고 꼭 가지고 가군 하였다.

그러기에 지금 그의 트렁크에 프랑스어원문으로 된 그 책이 들어있는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였다.

대동강물이 발밑으로 흐르는 다리를 건너선 승용차는 양각도라는 섬에 자리잡은 국제호텔앞에 이르러 멈추어섰다.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방금 지나오면서 안내원이 알려준 미래과학자거리가 웅장하게 내려다보고있었고 그에 걸맞게 특색있는 과학기술전당이 반겨들며 다가오는것 같았다.

3층의 어느 한 호실에 려장을 푼 리성원은 호기심어린 눈길로 방안을 둘러보았다. 비품과 장식처리가 최상급이라고는 할수 없어도 그만하면 투숙객들의 기분과 편리에 맞게 산뜻하고 정갈하게 꾸린것이 아늑함을 주었다.

홍승혁이 그를 방해하지 않으려는듯 피곤하겠으니 푹 쉬라고 당부했다. 문을 닫으려다 홍승혁은 리성원에게 래일 오전에 첫 면담이 예정되여있다고 귀띔하였다.

그가 인사를 남기고 방에서 나간지 한참이 되도록 리성원은 사색에 골몰한채 움직이지 않았다.

틀림없이 어디선가 꼭 본것만 같은 생각을 피할수 없었다. 그것을 방해하는것은 울라지보스또크에서 있은 면담때와는 대조적인 그의 인상이였다. 그때 자기가 꿈을 꾸었는지, 아니면 지금 이 시각에 꿈을 꾸는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신경이 너무 예민해진것 같았다.

리성원은 마침내 입고있던 짧은 연미색덧옷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안락의자에 몸을 묻었다.

문득 여기 평양에서 수륙만리 떨어져있는 집에서 애완용개와 동무하며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안해에게 생각이 미쳤다. 가슴이 아려왔다. 아들을 저승길로 떠나보내고 손녀와 며느리도 훌 날아가버린데다가 남편까지 멀리 헤여져있으니 안해는 문자그대로 독수공방의 신세가 되여버린것이였다.

마치 방울을 굴리는듯 한 초인종소리에 이어 청맑은 녀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선생님, 들어와도 되겠습니까?》

그가 대답을 하자 누구인가 사뿐사뿐 들어왔다.

호텔숙식수속때문에 1층 접수에서 잠간 지체했던 안내원처녀였다.

《혹시 불편하신 점은 없습니까? 선생님은 조국방문이 처음이신데 애로되는 점들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고맙소. 안내양이 정 반대가 없다면 잠간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싶구만.》

리성원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선생님은 년세를 보아도 저의 할아버지나 같은분이시니 그냥 허물없이 제 이름을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면 저도 한결 마음이 편하답니다.》

《초면에 그렇게야 어떻게…》

리성원은 안내원처녀의 사교술이 간단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틀에도 구애되지 않는 그 꾸밈새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생활적이여서 웬만해서는 쉽게 느낄수 없는것이라고 느껴졌다.

혹시 이 처녀도 우리 혜림이처럼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을가.

인물도 그래, 체취도 그래, 언변술도 꼭 자기 손녀를 먹고 게운듯 한 안내원처녀에게 대뜸 정이 쏠리는것이 자신으로서도 이상스레 느껴졌다. 그는 마음을 서서히 가라앉히고 화제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아가씨의 나이를 묻는것은 실례이기에 내 짐작을 말해보려는데 그래도 괜찮을가?》

《호호호, 흥미가 동해요.》

《허허허, 아마 스물두살쯤…》

《어마나! 선생님은 참말 영화에 나오는 도사 같은데요. 대번에 제 나이를 정확히 알아맞히시는군요. 호호호…》

리성원은 안내원처녀를 따라 웃다가 흠칫 놀랐다.

불과 두시간전만 해도 려객기의 좌석안에서 한치의 앞도 가늠할수 없는 초행길에 대해 품고있던 불안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렇다면 이들이 나에게 친절한 환대를 베푸는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리성원의 머리속에서는 의문부호들만이 끊임없이 파도치고있었다.

잠시후에 그들은 승강기를 타고 호텔옥상에 있는 회전식당으로 올라갔다.

식사실에 들어서는 순간 리성원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방이 확 트인 대형유리너머로 평양의 전경이 일망무제하게 한눈에 안겨오는것이였다. 마치도 풍치좋은 대동강에 떠오른 거대한 유람선을 타고 푸른 물결우를 달리는 기분이였다.

강의 량쪽기슭을 따라 각이한 모양새와 높이로 수풀처럼 일떠서서 해빛에 번쩍거리는 건물들은 일매지기도 하고 독특한 멋과 함께 조화로운 극치를 보여주는듯 했다. 헌데 그끝은 눈뿌리가 모자랄 정도로 아득하기만 했다.

리성원은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환상영화의 장면들처럼 느껴졌다. 퍽 오래전에 기업관련 업무로 미국에 갔다가 조선전쟁을 취급한 기록영화를 본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제일 잊을수 없었던것은 미군의 공중폭격으로 산산이 부서져버려 도시의 형체를 찾아볼수 없는 평양의 모습이였다. 어느 동물영화에서 사자무리로부터 히에나떼에 이르는 맹수들에게 말끔히 뜯기워 앙상한 뼈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아프리카들소를 보는것만큼이나 심정은 참담했었다.

영화의 미국인해설자는 신바람이 나서 평양에 투하된 미군폭탄의 수가 시민수를 릉가한다며 백년이 걸려도 조선은 일떠서지 못할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에 비껴들고있는 평양은 그가 가지고있는 관념과 표상으로는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펀뜩 리성원의 뇌리로는 얼마전 서방잡지에서 본 기사가 스쳤다. 이북의 북부피해상황을 전하면서 몇개 군이 통채로 한지에 나앉았으며 피해의 첫 타격은 갈데 없이 어린이들이라고 했었다.

지방의 피해이니 수도에서는 강건너 불보듯 하는건가. 평양의 모든것이 태평스러운것 같기에…

한숨을 내불며 넋을 잃은듯 바깥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서있는 그를 홍송미가 식탁으로 안내했다.

해외동포사업국에서 나온 점잖은 사람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리성원은 식탁을 사이에 두고 그들과 마주앉았다.

북의 특산품이라고 할수 있는 개성고려인삼술과 대동강맥주를 비롯해서 칠색송어찜, 뱀장어구이, 자라료리 등 그가 좋아하는 민물고기료리들이 한눈에 안겨왔다.

세사람은 리성원의 조국방문을 축하하고 성과를 기대하며 잔들을 찧었다.

리성원은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동석자들의 기분을 만족시키려는 의미에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여러잔이나 마셨다. 그의 숙련된 외교술중의 하나였다.

식사를 마친 그가 호실에 내려와 샤와를 하고 거뜬한 몸으로 안락의자에 앉으려는데 손전화기에서 신호소리가 났다.

통화기록을 보니 H시의 《한국》령사관 부령사의 호출신호가 여러번이나 찍혀있었다.

불쑥 베이징에 머무를 때 그가 대양건너에서 걸어온 《친절》한 전화를 받던 일이 생각났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대사관에서 입국사증을 받고 조선광명기술연구소에 확스를 날린 직후였다.

《동남아시아라고 해서 북의 손길이 뻗쳐있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큰 실책입니다. 물론 그들을 만나는것은 사장님의 자유지요. 하지만 일단 그들이 노리는 세뇌공작의 마수에 걸려들면 빠지지 못하고 전갈에게 물리운 짐승처럼 서서히 마취되면서 제정신을 잃고말게 되죠. 그들의 목적이 뭐겠습니까. 사장님 같은 동포기업가들을 구슬려 자금과 기술을 뽑아내서 자기들의 정권유지와 재정난해결에 리용하려는거죠. 사장님으로서는 좀 시끄러우실수 있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애쓰는것은 사장님을 걱정해서랍니다.

후회는 언제나 때늦는 법이니까요.》

(흥, 돼먹지 않은…)

리성원은 손전화기를 침대우에 던져버렸다. 시끄럽다 못해 부담스러울것을 알면서도 이악스레 자기를 위해주는 부령사가 어딘가 가긍해보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양에 도착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의나 모든것이 제 마음에 드는것도 미심쩍었다.

이제부터 평양을 떠나는 마지막순간까지 자기와 같이 움직여야 할 처녀안내원에게 대번에 마음이 끌리는것도 정상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과연 이들이 나에게서 무엇을 바라고있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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