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3 장

 24

 

리성원은 한참이나 어둠이 내려앉은 평양의 밤풍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낮에는 별로 느끼지 못하던 랭기가 저녁이면 어김없이 찾아들었고 해지는 시간도 빨라지는것이 느껴진다.

리성원은 오늘 홍송미와 함께 평양산원과 문수물놀이장을 돌아보았다. 참관에 동행한 그곳의 관리인들이라는 사람들의 설명을 들으며 리성원은 마음속으로 적잖게 놀랐다. 부자나 관리들을 비롯한 특정한 계층을 위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위해 국가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러한 봉사를 한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위하고 바친다는것도 그 어떤 보상을 전제로 하는것이다. 하다면 이 땅에서는 무엇을 목적하여 평민들을 위해 수입과 지출이 맞지 않는 밑지는 놀음을 하는것인가. 미국이나 서방에서 말하듯 선전용이라고 밀몰아붙이기에는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투자가 아닌가.

호텔과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 건너다보이는 거리들의 불야경이 눈길을 끌었다. 화려한 조명색채와 은근한 배경바탕빛이 신비한 예술적조화를 이룬것이 품들여 만든 피사체나 공연무대를 보는듯 눈맛을 흠뻑 돋구었다.

지금껏 보아온 유럽과 아메리카를 상징하는 대도시들의 밤풍경들이 그의 뇌리를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거만하게 치솟은 마천루들이 악마의 눈처럼 번쩍거린다. 밤은 모든 주택들과 건물, 탑들과 공원, 성당과 무도장들을 미치광이같은 몰골로 만들어낸다. 광신적인 육감으로 번쩍거리는 적황색의 불빛이 쉼없이 껌뻑이고 검푸른 색갈의 란무하는 조명빛속에서는 반라체가 된 녀자들의 육체들이 그 땅우에 살아움직이는 모든것을 로골적으로 그리고 닥치는대로 유혹한다. 그 세계의 밤은 영원히 안식을 모르는 각종 음모와 범죄, 쾌락과 타락으로 순간순간이 이어지는 지옥의 시간이다.

하다면 평양의 밤은 어떠할가.

리성원은 문득 평양의 밤거리를 돌아보고싶은 생각이 떠올랐다. 대낮과는 달리 밤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곧잘 드러내는 법이다. 력사의 중대사변들은 대부분 밤에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리성원은 호실에 올라와 겉보기에도 표가 나는 연미색덧옷을 벗어던지고 밤색와이샤쯔차림에 진곤색양복을 걸쳤다.

침실에 있는 경대에 비쳐보니 자기라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마주보고있었다.

호텔 주차장에서 택시에 오른 리성원은 운전사더러 평양역에 가자고 했다.

10분쯤 지난 후에 평양역에서 내린 리성원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주변은 대낮같이 환한데 승용차들이며 대중뻐스들이 쉬임없이 분주히 오가고있었다. 역앞의 그리 크지 않은 야외공원은 렬차를 기다리는 손님들로 북적거리고있었다. 몇메터높이우에 서있는 대형전광판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것이 보였다.

리성원은 흥미가 동해 어슬렁거리며 그쪽으로 몇발자욱 옮겼다.

전광판에서는 생기있고 이쁜 처녀들로 이루어진 어떤 악단의 공연이 펼쳐지고있었다. 무슨 대중류행가수들로 보이는데 시원한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것이 매우 청신해보였다.

어떤 노래를 부르는가 귀를 도사려보니 뜻밖에도 이건 손녀 혜림이가 집에서 코노래로 즐겨부르던 신데렐라의 18번이 아닌가. 느닷없이 가슴이 찌르르해왔다. 너무도 귀에 익은 노래를 듣고보니 손녀애가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가 대중잡아보았다.

내가 지금 와있는 곳이 평양이 옳긴 옳은가?

가만히 손잔등을 꼬집어본 리성원은 좀처럼 리해가 가지 않아 머리를 흔들었다.

그 노래가 끝나기 바쁘게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전명곡들이 련곡으로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리성원은 더욱 놀랐다. 어림짐작으로 보아도 스무살안팎인 일여덟명의 처녀배우들이 잠간사이에 흠잡을데 없는 기악연주와 노래로써 세계를 일주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전광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이 례사롭고 평온한것도 무척 놀라움을 자아냈다.

발길을 돌리는데 여기저기서 밝은 웃음소리들이 그칠새없이 들려왔다. 무료함을 달래려는듯 끼리끼리 모여앉아 장기판이며 주패놀이판을 펼쳐놓은 사람들이 성수가 나서 들썩이고있었다. 저쪽에서는 유희오락장이 흥성거리는데 공기보총사격과 오리목걸기, 수류탄던지기에 열이 오른 아이들과 어른들이 연방 환성을 질러댔다. 아무리 살펴봐도 동냥을 구하는 걸인 같은것은 눈에 띄우지조차 않았다.

리성원은 지나가는 한 처녀에게 여기 가까운 곳에 식당이 어디 있는가고 물었다. 대학생인듯 한 처녀는 앞뒤방향을 다 가리켜주는것이였다.

고맙다고 말한 리성원은 고려호텔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호텔앞에 이르자 은하수식당, 창광식당 등 친근하면서도 부드럽게 안겨드는 각이한 이름을 단 식당들이 차도의 량켠으로 쭉 늘어선것이 대충 훑어도 스무여군데는 잘되는것 같았다.

값비싼 고급건축재료들을 아낌없이 들인것이 분명한 호화로운 식당안의 넓다란 홀들과 흥성거리는 손님들이 대형유리창너머로 환히 들여다보였다.

서양료리집이라든가, 삐짜전문이라고 써붙이고 외국료리들을 봉사하는곳들도 여러곳이나 되는데 역시 사람들로 붐비고있었다.

재미있다는듯 음식점거리 식당들의 네온등으로 장식된 이름들을 띄여보던 그의 눈이 갑자기 번쩍했다. 한쪽끝에서 재미나는 이름을 발견한것이였다.

강냉이전문식당이라?!

리성원은 내심 동하는 흥미를 느끼며 반달음을 놓았다.

식당안은 많은 사람들로 분주했고 빈 좌석이 거의 없다싶이 했다. 안에서는 흥겨운 농악 같은것이 흘러나오고있었다.

얼마쯤 기다려서 좌석을 잡았으나 봉사시간이 끝날무렵이 되여오는듯 사람들이 많이 줄어들어 한결 조용해졌다.

봉사복을 가뜬하게 차려입은 처녀접대원이 다가와 다소곳이 인사를 하며 어떤 음식을 청하려는가고 상냥스레 물었다.

대답이 궁해진 리성원은 할수없이 이렇게 되묻고말았다.

《이 식당에서 가격이 제일 눅은 음식이 뭔가요?》

말투때문인지 해외동포라는것을 알아차렸던지 의아해진 두눈을 깜박이던 접대원이 얼른 출납쪽에 가서 비교적 두툼한 책자를 가져다주었다.

《이걸 보시고 신청하시면 됩니다.》

음식차림표였다. 강냉이로 만든 음식들이 종류별로 사진과 가격까지 받쳐 올라있는데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중에는 강냉이음식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만큼 희한한 료리들도 있었다.

《그럼 이중에서 손님들이 제일 많이 찾는 음식을 가져다주시오.》

곧 접대원이 보기에도 푸짐한 음식들을 내다주었다.

물수건에 손을 씻으며 차려진 식탁을 내려다보던 리성원은 놀라웠다.

정말 이게 다 강냉이로 만든 음식이란 말인가?!

접대원이 해쭉이며 설명해주었다.

강냉이지짐, 강냉이꽈배기, 강냉이튀기완자, 강냉이비빔국수…

리성원은 아직도 김을 몰몰 피우는 지짐을 집어들고 입에 조금 물었다. 따끈하고 고소한 냄새가 코와 입을 유혹하는듯 했다. 그는 접대원이 언제 사라졌는지조차 생각하지 못했다.

료리들의 이름도 그렇고 맛도 자기대로 특색이 있지만 공통적이라고 할수 있는 강냉이특유의 구수한 맛만은 한결같았다.

(허- 거 생각과는 다른걸. 믿어지지 않는군.)

거퍼 감탄을 하며 골고루 맛을 보던 그의 눈앞에 정숙하면서도 사려가 있어보이는 한 로년의 녀인이 띄였다. 녀인은 눈길을 천천히 휘두르고있었다.

리성원은 그가 식사를 하러 온 녀성일거라 생각되였다. 동무하면서 평양녀인과 이야기를 나눌 의향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나이로 보아도 자기와 비슷해보였다. 그는 여기에 빈자리가 있다는 의미로 녀인을 건너보며 바닥이 보이게 편 손으로 마주한 자리를 가리켜주었다.

녀인이 그러는 리성원을 알아보고 반색을 하며 다가왔다.

《자리가 비였습니다. 밤거리를 바라보며 먹는 기분도 좋습니다.》

리성원은 자기옆의 커다란 창문을 피끗 쳐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녀인은 나이에는 잘 어울리지 않을듯 한 웃음만 짓더니 조용히 앉으며 입을 열었다.

《음식맛이 좋습니까?》

《예, 사실 놀랐습니다. 난 해외에서 온 동포입니다.》

《그렇다고 짐작이 갔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그들의 말은 대체로 료리에 대한 이야기로 오고갔다.

한창 그들이 말을 주고받는데 좀전에 음식을 내다주었던 접대원이 급한 걸음으로 다가왔다.

《연구사선생님, 대학에서 전화입니다.》

그 녀인은 리성원에게 사의를 표하고 자리를 떴다.

리성원은 한동안 멍하니 멀어져가는 녀인을 바라보다 뒤이어 돌아서는 접대원을 불러세웠다.

《연구사라니… 저 년세에 아직도 일을 한다는 소린가요? 손님이 아닌가요? 어느 대학의…》

자기가 순간에 너무 많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되여 리성원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러고보면 다 물은것이였다. 그런데 더 놀라는건 접대원이였다.

《그러니 손님도 모르신단 말이군요?》

《예? 예예, 나도 그저 손님으로만…》

접대원은 입을 가리우고 호호호 웃었다.

《장철구평양상업종합대학 연구사선생님이십니다. 오늘처럼 자주 급양부문들에 나와 연구사업을 보신답니다.》

연구사였구나. 그래서 료리에 대해 박식했군.

식당문을 나서니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했다.

리성원은 사방을 두리번거렸으나 어디로 가야 할지 알수 없었다.

한동안 택시라도 잡아볼가 궁싯대던 그가 평양역방향으로 나가볼가 하여 움직이려던 참이였다.

식당문이 열리며 한 녀인이 밖으로 나왔다.

《아니?!》

리성원은 반가웠다. 퇴근길에 오른 녀성연구사였다.

《아니, 선생님이 어떻게 아직 여기 계십니까?》

《실은 호텔을 찾아가야 할텐데 방향을 알수 없어 그럽니다.》

《그렇습니까? 저와 함께 가십시다. 제가 택시를 잡아드리지요.》

《이거 참,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호텔방향과 녀인의 집방향이 같은것을 알게 된 리성원은 택시를 마다하고 함께 걸었다.

깊은 밤이여서인지 인적이 드문데도 리성원은 고요한 밤거리를 걷는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몰랐다. 그는 유정한 이밤에 만난 초면의 녀인과 대화를 계속 나누고싶은 충동을 누를수 없었다. 물어보거나 알고싶은것이 너무도 많은 그였다.

《실례되는 말입니다만 좀 묻겠습니다. 일없겠습니까?》

리성원의 물음에 녀인은 헌헌하게 《어서.》하고 말했다.

《선생께서 그 년세에도 연구사업을 하신다니 놀랍습니다. 그런데… 글쎄, 모욕으로 생각되신다면 대답은 안하셔도 됩니다. 하도 많은 직업중에 하필 식료연구에 종사하시는지… 내 경우와는 하도 멀기에 물은것입니다.》

녀인의 대답은 역시 거침이 없었다.

《허허, 아무 일이든 자기 인민에게 복무하면 되는거지요. 그리고 전 녀성이니까요. 주부란 가정에서 자기가 한 음식을 들며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가 제일 즐거운게 아니겠습니까. 전 그저 나라의 주부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는거랍니다. … 말해놓고보니 쑥스럽군요. 그저 그렇게 살려고 할뿐입니다.》

《주부라… 흔한 말인데 새롭게 들리는게 저로서도 이상하군요.》

리성원은 더는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너무도 많은것을 너무도 짧은 사이에 깨달은 사람의 심리를 체험하며 묵묵히 걷기만 했다. …

잠자리에 들었으나 리성원은 자정이 넘도록 잠들수 없었다.

《음-》

신음소리 같은것이 입밖으로 흘러나왔다. 이어 베개에 묻은 머리가 가로흔들려졌다.

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인정미와 선량함은 고맙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했으나 아직은 다 리해할수가 없었다.

진실은 리해하는것이 아니라 깨달아야 보게 되는것이다.

그의 마음속에서 의혹이 줄어든 대신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하는지 결단을 내릴수 없는 리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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