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3 장

 28

 

평양에 처음 도착했던 때와는 달리 리성원은 자기의 기존인식이 조금씩 변하는듯 한 감을 자주 느끼군 했다. 이상한 일이였다. 혹시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그런 착각에 들군 하는 성장기라면 몰라도 인생의 황혼기에 그것을 겪는다는것은 꿈에서나 볼수 있을것이다.

리성원이라는 인간개체속에서 이상한 변화가 생기고있었다. 식욕이 회복되고 건강상태도 좋아졌다.

평양에 와서 부딪친 현실에 대한 의혹과 회의, 반신반의라는 익숙되지 않은 이 심리상태는 자기자신에 대한 까닭모를 불만으로까지 번져지고있었다.

알수 없는것은 이 불안한 심리극이 언제까지 지속되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좋아, 어쨌든 좋단 말이야.》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다가 어이없어 웃었다.

헛, 대체 무엇이 좋단 말인가.

아직은 그의 평양행에 대한 뚜렷한 결실이 나타나지 않고있었다. 시일이 흘러가는것이 자기에게 리득일지, 이 땅의 주인들에게 유리할지는 더 두고봐야 했다. 그러나 자신의 육체에 힘과 기운이 뻗쳐오고 그것이 주관적인것이 아니라 객관환경의 영향때문이라는것만은 부인할수가 없었다.

왜서인지 마음이 편해지고 계절에는 관계없이 따스하고 온화한감을 감촉하고있는것도 사실이였다. 더 명백한것은 난생처음 시름이란것을 풀어본것 같이 자기의 심신에 안정이 찾아들었다는 그것이였다. H시의 자기 집에서도 느낄수 없었던 평온감이 낯선 이 평양에서 슬그머니 찾아드는것이였다.

안해 하의영의 측은한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도 고요한 집안에서 애완용개와 말동무나 하고있을 그였다. 남편이 없으면 안해는 피아노도 타기 싫어했고 밥맛도 잃군 했다.

손녀 혜림이에게서는 지금도 편지가 오는지. 온 집안이 방황하고있다고 하던 손녀의 말이 떠오르자 마음이 쓸쓸해났다. 결코 부정하고싶지는 않은 말이였다. 돈이면 기쁨이고 행복이며 자존이라고 여겨왔던 자기와 온 가족에게 이처럼 정신육체적방황이 차례지리라고 꿈에나 생각해봤던가. 집은 있어도 없는것이나 다름없는 처지의 인간들이 있다면 바로 자기들을 가리키는것일거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는 손녀의 해쓱한 얼굴이 떠올랐다. 조부모라 있어도 결국 고아나 다름없는 생활의 길에 훌쩍 뛰여든 손녀다. 고행을 스스로 택한, 생각할수록 머리가 저어지게 하는 손녀의 처사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해맑은 안내원 홍송미였다. 그러고보면 얼굴도 얼굴이려니와 걸음새가 인상적으로 곱다.

《일정은 어쩌시렵니까?》

손녀의 얼굴과 겹쳐드는 처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리성원은 불쑥 이 땅에도 고아가 없을수 없다는 생각이 솟구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쩐지 꼭 고아들의 형편만은 제눈으로 확인하고싶어졌다.

《말씀하십시오.》

리성원은 침을 삼켰다.

이 땅에도 혜림이처럼 가정의 사랑을 잃고 떠돌아다니는 고아들이나 그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이 없을것인가. 그런 애들을 만나 위로해주면 손녀를 위한것으로 되지 않을가.

이 순간 리성원은 자기의 요구가 어떻게 비쳐지리라는것을 알고있었지만 애써 부정해버렸다.

리성원은 부득이 하게 자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너그러움을 띠고 말했다.

《난 아가씨가 어린애들을 무척 사랑한다는것을 알고있소. 나 역시 그렇소. 그러니 오늘은 어린애들을 만나보았으면 하오. 그러되 그… 뭐랄가. 그럼… 한마디로 부모가 없는…》

홍송미의 얼굴이 잠시 굳어지는것 같았다.

그럴테지. 어느 제도에서나 고아들은 사회의 골치거리로 되는 법이니까. 결국 내가 본의아니게 이 아가씨를 딱한 처지에 몰아넣는것은 아닐가.

리성원은 송미가 거부하면 더 요구하지 않고 그것으로 자기의 분석과 판단을 정립할 결심이였다.

《좋아요. 사장선생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가시자요. 그런데 오늘이 일요일이여서… 혹 애들이 어디 들놀이 같은걸 조직했으면 어찔가…》

리성원은 은근히 놀랐다. 처녀의 고민거리가 자기의 생각과는 너무도 어긋났던것이다.

《부모없는 어린애들을 만나자면 애육원이나 육아원, 초등학원들을 찾아가야 할텐데 선생님은 어디에 가보셨으면 합니까?》

《아- 가능하면 소년고아원 같은델 가보았으면 하오. 그러되 평양이 아니라 가까운 평안도쪽이면 어떨가?》

홍송미의 머루알같은 한쌍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한껏 비끼더니 이어 조용한 미소로 번져갔다.

《사장선생님의 심정이 리해됩니다. 그럼 곧 평성애육원으로 떠나셨으면 합니다.》

마치 어린애마냥 달랑거리며 방문을 나서는 홍송미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리성원은 난해한 생각에 빠지고말았다.

내 심정을 리해했다는것은 무슨 뜻일가.

승용차는 거의 한시간쯤 달려 평성땅에 들어섰다.

주택지구와 멀리 떨어져있을줄 알았는데 가까운 위치에 3층짜리 두개의 호동건물이 서로 손을 맞잡고 두팔을 벌려 안을듯 한 모형으로 서있었다.

산뜻한 울타리의 중간마다에 빨갛고 노랗고 파란 오각별모양이나 귀여운 꼬마동물들을 형상한 장식물들이 붙어있고 구내마당에는 알락달락한 갖가지 색갈무늬의 고무깔판을 깔아놓은것이 꼭 동화그림책의 꽃동산을 련상시켰다.

《이게 고아들이 사는 집…이겠소?!》

저도 모르게 리성원의 입에서 침을 넘기는 소리까지 내며 나간 말이였다.

《예, 이쪽건물이 애육원이고 저쪽건물이 육아원입니다.》하고 송미가 말해주었다.

리성원은 어리둥절해지고말았다.

흔히 고아원이라고 하면 부모없는 애들에게 심리적자극을 줄가봐 민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지어놓고 주변에는 키높은 담장이나 철조망을 두르기가 십상이다. 그래야 고아들이 외부에 몰래 새여나가 도적질을 하거나 다른 애들과 싸움질을 하는 등 소동을 피우는것을 막을수 있는것이다. 이것은 어렸을 때 대구에서 고아원생활을 겪어본 그자신의 생활체험이였다.

마중나온 원장과 인사를 나눈 리성원은 더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이 애육원과 육아원을 왜 이렇게 나란히 지었습니까? 년령상도 그렇고 생활방식도 차이가 있어 불편한 점이 많겠는데요.》

리성원은 뒤늦기는 해도 관리인들이 이것을 알아두는것이 좋을것이라는 자기의 생각을 점잖게 에둘러 표현했다.

《어마나?! 선생님께서 그런걸 다… 옳습니다. 하지만 년령상차이로 불가피하게 한형제나 남매 혹은 자매가 애육원과 육아원으로 갈라져있게 되는 경우를 생각해보십시오. 비록 어린 나이라도 피줄이 같은데 얼마나 보고싶겠습니까.》

《아하, 그러니 보고싶을 때마다 서로 만나볼수 있게 나란히…》

전류에라도 닿은듯 꿈쩍 놀라 말도 맺지 못하고 온몸이 굳어졌던 리성원은 홍송미가 어서 들어가자고 거듭 말해서야 걸음을 옮겼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건물안은 아주 넓어보였고 방들도 수두룩했다.

보육실, 교양실, 아동도서실, 자연관찰실과 같은 교육교양과 관련된 시설들이 있는가 하면 지능놀이실, 오락실, 종합놀이장, 물놀이장 등 유희오락시설들도 놀라울 정도로 아담하고 정교하였다. 여기에 목욕실, 리발실과 독자적인 치료병동을 비롯한 보건후생시설들까지 합치니 그 규모나 섬세함에 리성원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매 방에 비치된 시설들과 비품, 도구들은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아이들의 동심에 맞는것이여서 더욱 상상밖이였다.

두 건물을 이어주는 원형관통홀을 따라가니 애들이 일광욕도 하면서 맑고 신선한 공기를 마실수 있게 꾸려놓은 아담한 내정이 보였다.

원장은 모든것이 원아들의 보육과 교육교양, 성장발육과 지능계발에 지향시켜 꾸려졌다고 말했다.

리성원은 미간을 모으고 원장의 말을 되뇌여보았다. 그러다 생각난듯 물었다.

《이 건물의 시공주와 건설주를 알고싶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마 고아들을 특별히 사랑할만 한 리유를 가지고있지 않으면 틀림없이 대부자일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의지가지할데 없고 투자효과의 담보도 없는 이런 고아들에게 이처럼 재부를 아낌없이 퍼부을수 있겠습니까.》

리성원은 자기의 말은 조금도 의심할바가 없다는듯 확신조로 말했다.

《원, 선생님두… 우리 애육원과 육아원의 시공주, 건설주야 물론 국가지요.》

《?!》

《나라에서 이 풍치좋은 곳에 새 건설부지를 잡아주고 설계도 직접 여러차례나 수정, 완성하도록 해주었으며 인민군대가 맡아서 불과 몇달동안에 이와 같이 훌륭히 완공해놓도록 하였답니다.》

리성원은 원장의 말을 도무지 믿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말을 아끼기로 했다. 명백한것은 군대가 고아들을 위해 이런 눈부신 궁궐같은 집을 지어주었다는 그것에는 리해가 가지 않는것이였다.

리성원은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원아들의 신체에 알맞게 깜찍한 식탁과 의자들이 놓여있는 식사실을 지나 보육실로 들어갔다.

순간 후더움이 온몸에 와닿았다. 복도의 공기온도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방에 들어서니 여름날 양지바른 잔디밭에 앉은것처럼 몸이 나른해왔다.

하나같이 볼이 오동오동한 원아들이 가지런히 앉아 무엇인가 맛있게 먹고있었다.

원장이 지금 간식시간이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러고보니 애들의 손에 빵이며 과자 같은것들이 들려있었다. 혈색이 불깃불깃하고 손목과 발목들이 오동포동한것이 영양상태가 얼마나 좋아보이는지 몰랐다.

《그 년세에 힘드시지 않습니까? 제 방에 가서 잠간 쉬셨으면 합니다. 애들도 좀 있다 놀이시간이니…》

아하, 일요일이겠군 하고 생각된 리성원은 원장의 뒤를 따르는데 어쩐지 기분이 뜬 걸음새였다.

한참이나 음료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피아노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리성원은 손녀 혜림의 생각이 불쑥 치밀었다.

《웃층의 음악실에서 우리 원아가 타는거랍니다.》

원장이 리성원의 궁금증을 제꺽 풀어주었다.

《그래요?!》

다시 복도로 나와 교양실로 향하는 리성원의 눈에 희한한것들이 안겨들었다.

꼭 동화세계에 뛰여든것 같았다.

괜찮아. 저것 보지, 곰과 토끼가 셈세기를 하고있구나. 가만, 층계도 애들의 보폭에 맞게 높이를 설정하지 않았는가. 고것 참, 깜찍한걸. 발자국모양을 찍어놓은걸 보면 요걸 짚어가며 걸어보라는것이렷다. 정말 재미있구나. 저건 또, 풍선속에서 애들이 물놀이를 하는게 볼만 해. 정말 품을 들였어. 이런 착상을 한 재간둥이는 누구일가.

리성원은 평양에 도착하여 시내로 처음 들어섰을 때 본 글발들을 떠올렸다.

《미래를 사랑하라!》

《세상에 부럼없어라》

무작정 선전장벽으로만 여겼던 구호가 이제는 현실로 가슴에 촉촉히 흘러들었다. 어쩌면 북에서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시키는 훌륭한 말마디들만 골라냈는지 경탄을 누를수 없었다.

서방세계에서 구호라고 하면 정치가들의 기만적인 공약을 함축한것 이외에 다른것이 아니라는것이 인식의 관례로 되여있다. 정치적야심이 클수록 구호는 더욱 어마어마해지고 요란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구호들을 보는 순간 덮어놓고 의심하고 외면했었는데 지금은 의문보다 감동이 더 치솟는것은 어떻게 리해해야 할가.

리성원은 불쑥 서해수가 생각났다.

그 외로운 인간은 아이들의 완구를 만드는것으로 잃어버린 생활의 공백을 메우며 살지 않는가. 그 친구가 여기에 와보면 기막힌 착상이 떠오를것인데. 이럴줄 알았으면 같이 올걸…

피아노소리가 점점 더 가까와오고있었다. 《음악실》이라는 명패가 붙은 방문을 열고 들어선 리성원은 아연해지고말았다. 피아노와 마주앉은 원아는 몸에 걸친 알락달락 꽃무늬를 수놓은 색동옷만 아니라면 미처 알아보지도 못할 네댓살 난 처녀애였다.

리성원은 연주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조용히 서있었다. 어린 처녀애의 음감이며 연주솜씨가 전문가 못지 않게 매우 숙련되여있었다. 그애가 어릴 때의 손녀로 허상되기도 했다.

연주가 끝나자 리성원은 박수를 치며 원장을 따라 피아노곁에 다가갔다.

오목눈으로 올려다보는 애를 내려다보던 그는 건반우에 놓인 손에서 시선을 멈추었다.

《피아노를 정말 잘 타는구나. … 장차 피아노연주가가 되려는 모양이지?》

리성원은 동정과 련민의 눈길로 바라보며 물었다.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듯 소녀애가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땀방울이 그의 망막에 비껴들었다.

원장이 그애를 안으며 입을 열었다.

《이애의 이름은 경옥이라고 하는데 래년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국제아동예술축전에 참가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련습을 하는중이랍니다.》

《국제아동예술축전에요?! 이 어린게?!》

리성원은 펄쩍 놀랐다.

《난 거기에 가서 이 피아노로 우리 집을 노래할래요.》

소녀애의 낮은 목소리가 그의 귀가로 날아왔다.

그는 더는 말을 못하고 피아노우에 놓여있는 탁상용사진액틀을 보았다.

그 액틀속에서 열댓명가량의 군인들이 어린 원아들을 제가끔 품에 안고 즐거운 미소를 짓고있었다.

사진 한구석에 새겨져있는 글발이 안겨왔다.

《평성육아원, 애육원준공을 기념하여!》

리성원은 자기의 의혹을 야유하는듯 한 사진을 가슴속에 새겨두지 않을수 없었다.

리성원은 작별을 앞두고 바래워주던 애육원 원장과 경옥이라는 처녀애가 눈앞에서 자꾸만 얼른거려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는 차에 오르기 전에 소녀에게 다가가 덥석 안아올렸다. 아무런 서러움을 모르는 천진란만한 애였다. 자기도 모르게 그는 애의 두볼에 입을 맞추어주었다. 절로 눈물이 핑 솟아올랐다.

자선이 아닌 부러움의 눈물이였다.

(너는 아직 다는 모를거다. 세상에는 집이 있어도 고아나 다름없는 애들이 있는가 하면 너처럼 부모조차 없지만 따뜻한 정으로 가득찬 자기집을 가지고있는 애들도 있구나. … 우리 래년 국제아동예술축전때 꼭 만나자. 내 만사를 불구하고 모스크바에 가서 너를 축하해주마. 약속한다.)

원장과 홍송미의 눈가에 의혹과 기쁨이 반반씩 어리는듯 했다.

 

승용차가 호텔앞에 당도했다.

홍송미가 차에서 내렸으나 그때까지 눈을 지그시 감은 리성원은 내릴념을 하지 않았다.

《선생님, 다 왔습니다. … 선생님…》

하도 대답이 없기에 운전사까지 뒤를 돌아보았다. 분명 자는것은 아니였고 얼굴에서 어떤 저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예-》하고 그제서야 대답한 리성원이 눈을 뜨고 천천히 내렸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아니, 그래서가 아니요. 올라가자구.》

홍송미는 고개를 기웃하며 서서히 따라 걸었다.

그들이 1층홀에 들어서는데 대형텔레비죤에서 녀성해설원의 격동된 목소리가 절절히 울려나오고있었다. 그쪽을 바라보았는데 텔레비죤앞에 몇몇 호텔 직원들과 외국인들이 그에 열중하고있었다.

《?!…》

리성원은 붉은넥타이를 맨 아이들이 렬차칸에 올라서서는 눈굽을 훔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동정심이 살아올라 발길을 돌렸다. 시청각을 집중하였다.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는것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꼭 들은 노래인듯이 생각되였다. 이어 렬차에서 내린 애들은 뻐스에 옮겨타더니 어떤 화려하고 아롱다롱한 건물들이 바라보이는 곳에 들어선다. 화면이 정문을 비치는데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라는 명판이 보인다.

아, 저기가 바로 서방사람들도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댄다는 그 국제야영소로구나!

리성원은 텔레비죤의 해설에 귀를 기울였다. …

 

리성원은 방에 들어서는 길로 침대우에 옷을 입은채로 벌렁 누워버렸다.

천정이 그대로 커다란 대형전광판이 되여 흰 이를 통채로 드러낼듯 한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흐르고있었다.

언젠가 이북의 북부피해상황을 잡지에서 본 기억이 상기되였다. 자기로서는 그 정도의 피해면 솟을 가망이 없다고 머리를 가로저었던것이다.

《으음-》

불쑥 새는 신음에 그는 저로서도 놀라웠던지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서방과 이남에서 떠든것과는 너무도 판이한 사랑사가 이북 한끝의 어린이들의 가슴마다에까지 따스하게 간직되고있지 않는가.

초인신호음이 울리고 곧 안내원이 들어섰다.

《?!…》

《저… 아까 선생님이 몸이 말째하신것 같기에…》

리성원은 처녀가 손녀로 바뀌는것을 느꼈다.

《아, 그것때문에… 고맙소. 어서 여기에 와앉지.》

송미는 조용히 리성원의 곁에 와앉았다.

《송미양은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아마 다는 모를거요. 아마 우리 혜림이가…》

리성원은 얼버무렸다. 자기 가정사를 털어놓으려다가 그만두었다. 자존심이 상하는것은 둘째치고 이런 말을 해서 처녀의 행복감을 흐리게 하고싶지 않았던것이다. 또 이 아가씨가 그러한 마음속 상처를 제대로 리해할는지도 알수 없었다.

리성원의 기색에서 그가 사색중에 있었다는것을 느낀 홍송미는 발랄한 미소를 짓고 식사시간이 되면 알려드리겠노라고는 사뿐히 나갔다.

리성원은 고개를 끄덕여보이고 문이 닫기자 옆자리에 놓여있는 잡지들을 뒤적거렸다. 아침에 애육원으로 떠나려고 할 때 부탁했던 잡지들이라며 홍송미가 넣어준것이였다.

한 영문잡지에서 《CNN》이라는 글자를 띄여본 그는 호기심이 들어 펼쳐보았다. 기사의 제목은 《조선의 <오아시스>》라고 박았다.

주로 화약내와 폭음, 죽음의 그림자가 짙은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중동의 국부전장들을 생사를 걸고 누비며 전란속에서 아동들이나 부녀자, 늙은이 등 로약자들이 당하는 처절한 비극들을 직접 취재하여 생동하게 재현해내군 하는 필자를 리성원은 기억하고있었다.

그래서 국제펜클럽으로부터 여러번 상을 받은 대신 워싱톤의 위정자들로부터는 눈총을 받는다는 소문도 날만큼 그의 기사는 진실성과 신빙성을 평가받고있었다.

그의 특기는 글보다 취재대상들과 현장들을 제손으로 촬영한 사진들을 가지고 독자들을 납득시키는것이였다.

이런 그가 조선을 방문하고 련재기사를 발표한것이 흥미있었다.

기사제목밑에는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라는 단어가 큼직하게 두드러져있었다. 야영소의 자태를 배경으로 세계 각국에서 모여온 여러 인종의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들이 실려있었다. 웃음집이란데서, 해수욕장에서, 실내체육관과 립체률동영화관, 야외활쏘기장과 료리실습장 등 야영소의 요소마다에서 즐거워 어쩔바를 모르는 아이들이다.

역시 필자는 사진들을 위주로 하여 편집하였는데 이번만은 례외인듯 근 10여페지에 달하는 기사의 마지막부분에 극히 짧은 몇토막의 글을 첨부하고있었다.

그 토막들은 보매 외국에서 온 야영생들의 소감이였다.

《적지 않게 이름난 세계의 야영소들을 다녀보았지만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처럼 최상의 수준에서 아이들의 심리와 소망에 맞게 꾸려진 곳은 아직 본적이 없다. 지금의 나이로 계속 여기서 생활하고싶다.》(까브릴라, 녀자, 로씨야)

《내 손으로 우리 수리아의 민족료리를 직접 만들어보았다. 백사장에서는 언어와 피부색이 서로 다른 여러 나라 애들이 아동들의 왕국인 이 나라에 드리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조선의 성산 백두산을 백사로 쌓고 거기에 물까지 부어 천지까지 만들었다. 그러고도 자기들의 격정을 누를수 없어 <조선 만세!>,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 만세!>를 목청껏 불렀다.》

(무와파끄, 남자, 수리아)

리성원은 북받쳐오르는 격정을 억제할수 없었다.

필자는 이런 주정토로로 기사를 끝맺었다.

《세계의 자식가진 부모들이여! 자식들을 조선으로 보내시라! 그러면 그애들은 지구에서 가장 크고 시원한 오아시스를 보게 될것이다!

여기, 조선의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와보라! 세계의 미래를 여기서 볼수 있을것이다! 아니, 보게 된다!…》

리성원은 그가 쓴 기사가 옳긴 옳은가싶어 필자의 사진을 다시 보았다.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짧게 깎고 전운의 흔적인듯 얼굴이 흠집투성이인 백인남성이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보고있었다.

아마도 자기가 쓴 기사에 대한 그 어떤 의심이나 불신도 허용하지 않으려는듯 한 인상이였다.

리성원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물었다.

아, 당신은 정녕 그 무엇이 눈물과 슬픔이라는 그대의 영원한 주제까지도 이 땅에 와서는 웃음과 기쁨, 행복이라는 전혀 상반되는 새 주제로 바꾸지 않을수 없게 하였더냐. 나에게 대답을 다오. 혹시 그 대답속에 나의 머리속에 남아있는 이 땅에 대한 인식의 명처방이 들어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는 마침내 자기를 스스로 괴롭히던 심중의 동아줄에서 벗어나 한결 자유로워지는감을 느꼈다. 그 동아줄은 누가 넘겨주었는가를 따지기 전에 그자신이 자청하여 걸머진것이였다. 이런걸 두고 자승자박이라고 하는지. 기쁜것은 그것을 벗어던진 순간부터 마음이 안정되고 온갖 속박감에서 해방되여버린것이였다. 그것은 진정 엄청난 심경의 변화라고 하지 않을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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