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4 장

 31

 

새들이 우짖고있었다. 곧 마가을에 접어들 때이지만 날씨는 화창하고 온후했다.

호텔정원을 거닐던 리성원은 정문쪽에서 인적을 느끼자 목을 빼들었다. 그는 지금 체류기일을 연장하는것과 관련한 수속때문에 간 홍송미를 기다리고있었다.

어제 오후에 있은 면담후에 그는 자기의 체류기일을 며칠간 늦추어줄것을 제기했다.

조선광명기술연구소와의 협의가 채 락착되지 못한것도 물론이거니와 겸사해서 허용만 된다면 하루라도 더 묵으면서 북에 대해 깊이 리해하고싶어진 그였다.

오늘 오전에 만나본 한 대학생을 보아도 그랬다. 그 학생으로 말하면 리성원이 평양에 도착한 직후 홍송미를 통해 한번 만나볼것을 요청했던, 이태전에 있은 청소년유괴미수사건의 피해자들중의 한사람이였다.

당시는 15살이였던 소년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였다는 사실에 그는 믿음이 가지 않아 상대방의 얼굴을 오래동안 바라보기만 했다.

대학생이 가지고 온 그때의 사진들을 펼쳐놓고 자기의 모습을 짚어주어서야 리성원은 비로소 생각을 바꾸게 되였다.

《우리 아홉명중에서 저를 비롯한 다섯명은 희망하는 대학엘 갔고 다른 동무들은 지금 조국보위초소에 서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는 다 터놓을수 없었던 끔찍한 내막들을 대학생이 조리있게 말할 때 리성원은 속이 떨려나는것을 참기 어려웠다.

《사실 그때 우리를 랍치하고 가두었던 장목사라는 놈은 미국 워싱톤에 있는 <북한자유련합> 대표라는 악마년의 지령을 받은자였습니다. 그놈은 우리를 <굶주림과 강추위에 견딜수가 없어 조국땅을 뛰쳐나온 탈북소년>으로 둔갑시켜 서울에 보내여 우리 공화국의 인권을 악랄하게 비방중상하는 모략소동에 리용해보려고 했던겁니다.》

분개한 대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리를 끄덕이던 리성원은 자꾸만 가슴이 서늘해왔다. 대학생의 얼굴에 난 유표한 흠집이 마치 가슴에 박힌 옹이처럼 느껴져서였다.

《선생님은 혹시 제 얼굴에 난 흠집때문에…》

총기가 빠른 대학생이 불쑥 건너짚는 바람에 그는 우뜰 놀랐다.

《아직 앞길이 구만리 같고 잘 생긴 젊은이한테 옥의 티같이 여겨져서 그러오.》

리성원은 가석한 마음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이 흠집은 그때 장목사놈이 제놈이 써준 우리 공화국의 인권을 비난하는 기자회견의 발언문을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고 저에게 우산대를 휘두르는통에 생긴것입니다. 우리가 조국의 품에 안겼을 때 의사선생님들이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격분해했는지 모릅니다. 조금만 빗나가 눈을 찔렀더라면 영원히 실명을 당할번 했다는겁니다. 그후 여러차례 정형수술을 받아 이 정도로 회복이 되였는데 의사선생님들의 말이 이제 한두번 더 수술을 하면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정말이요?!》

리성원은 반가운 나머지 대학생의 손을 잡아 흔들어주었다.

《나라에서는 조국에 돌아온 우리들을 더 굳게 품어안아 병치료도 해주고 건강회복도 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희망과 소질을 귀중히 여겨 대학에도 보내주었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있습니다.》

《학생은 복을 타고난것 같구만. 하긴 말을 들어보면 이북에선 복을 타고난 학생이 따로 없는것 같소. 허허허.》

대학생이 가지고 온 사진들속에는 그림들도 여러장이나 되였다.

《이건 제가 수치를 당하던 그때의 장면들을 영원히 잊을수가 없어 기억을 되살려 소묘로 형상한것들입니다.》

역시 미술을 전공해서인지 그림들이 생동하여 암담하고 숨막히는 지옥같은 풍경들이 살아 움직이는것처럼 느껴졌다.

한장, 또 한장 번져가며 감탄을 금치 못하던 리성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림속에 있는 한 인물화의 주인공이 너무도 낯이 익어서였다.

《이 사람은 누구요?!》

《예에- 이놈이 바로 우리를 속이고 학대하며 남쪽으로 끌어가려고 발악하던 장목사놈입니다. 아마 지금쯤 서울에서 네활개를 치며 돌아갈겁니다.》

세상에 이렇게도 신통히 꼭같은 사람이 있을수 있을가?

리성원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선생님!》

홀지에 홍송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만치 떨어진 호텔정문쪽에서 홍송미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것이 보였다.

리성원은 무등 반가와 천천히 마주 걸어갔다.

《오래 기다리셨지요?》

《왜 이렇게 늦었나?》

김춘조가 호텔을 다녀간 뒤로 그와 홍송미는 더욱 가까와져 단 둘이

있을 때에는 허물없이 말을 주고받는것이였다.

《실은 돌아오다가 그 꼬마화가에게 들렸댔지요 뭐. 많이 나아졌더군요. 과장선생님의 말이 이제 한주일정도 안정치료하면 퇴원할수 있을거라고 해요.》

《거참, 반가운 소식이군.》

리성원은 병원에 갔을 때 로파를 안심시키던 그 녀의사의 침착하고 리지적인 얼굴이 떠올라 눈을 슴벅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그리고 체류기일은 연기되였으니 마음놓으십시오.》

《그래?! 정말 수골 했소.》

《이제는 호실에 올라가 좀 쉬세요.》

송미가 귀엽게 웃으며 권했다.

《아니, 밤새 푹 잤는데 쉬긴… 차라리 송미가 바쁘지 않다면 날씨도 좋은데 함께 차를 타고 시내소풍을 좀 하자구. 어때?》

《선생님이 바라신다면야… 그럼 가시자요.》

두사람은 승용차에 올랐다.

차는 순식간에 양각도를 벗어나 시내의 중심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들이 어느 정도 눈에 익어서인지 리성원에게는 홍송미의 설명을 리해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평양국제비행장에 처음 발을 내딛던 그때 시내로 들어오는 차안에서 홍승혁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곤혹스러웠던 일은 까마득히 사라졌다. 이런걸 보고 귀문이 열렸다고 하던지.

그런데 홍송미가 홀연히 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아버지가?!》

리성원이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어느 학교교사 비슷한 건물앞에 서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였다.

《저 사람들속에 아버님이 계신다는건가?》

《예.》

《그럼 차를 좀 세우도록 하지. 내 송미 아버지를 만나 인사라도 나눠야 할것 같구만.》

《괜찮아요, 선생님!》

《소풍을 하다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그 이상 즐거운 소풍이 어디 있을라구.》

리성원이 너무 고집을 쓰는 바람에 운전사가 끝내 차를 세우고야말았다.

걸음을 되짚어 방금 지나온 건물앞에 이르니 《평양류성초급중학교》라는 대리석현판이 펀뜻 시야에 비껴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옆으로 지나가는 작업복차림의 한 중년사나이가 낯이 익은지 홍송미가 인사를 했다.

《직장장아저씨!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 우리 지배인동지의 따님이 어떻게 여길 다 오셨나?》

그는 반가와하며 홍송미의 손을 다정히 잡아준다.

《우리 아버진 어데 가셨어요? 방금까지 여기 계신걸 봤는데…》

《아마 저 2호교사쪽에 가신 모양이구나. 오늘 그쪽 작업량이 좀 긴장하니까.》

홍송미는 리성원쪽을 살짝 바라보고는 안타까운듯 저 혼자 어디론가 뛰여간다.

리성원은 제꺽 직장장을 붙들었다.

《바쁘시겠지만 한가지만 좀 물어봅시다. 저 송미 아버지가 무슨 일을 보신다구요?》

《예, 우리 자동화기구공장 지배인이랍니다.》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직장장은 헌헌하게 대답해주었다. 홍송미와 같이 온 늙은이이니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공장의 종업원이 대략 얼마나 되는가요?》

《이천명이 넘지요.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공이 반대로 넘어왔으나 리성원은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저쪽에서 홍송미가 손을 흔드는것이 보였다.

리성원은 다행이라 생각하며 직장장에게 사의를 표하고는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뒤에 서있는 교사 왼쪽면에 타일을 붙이는 작업이 한창이였다. 안전발판을 타고 오른 로동자들이 맵시나게 면을 따라가며 록색과 흰색의 반짝이는 타일들을 붙이는것이 보였다.

그밑에서 성수가 나서 혼합물을 이기고있는 열댓명의 로동자들속에서 흰색안전모를 쓴 한사람이 홍송미에게로 다가오고있었다.

리성원이 그들앞에 이르자 홍송미가 소개를 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입니다.》

수수한 진회색작업복을 입은 쉰정도의 사나이가 안전모를 벗으며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애 아버집니다. 홍신철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방금 얘한테서 들었습니다.》

리성원은 자기앞에 서있는 사람이 과연 지배인이 맞는가 하는 눈길을 감추지 못한채 입을 열었다.

《이렇게 말한다고 나무람말아주시오. 일전에 송미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했지만 이런 훌륭한 따님을 둔 부모님들을 한번 만나보고싶어 이런 실례되는 걸음을 했으니 량해를 해주시오.》

홍신철은 당황한듯 얼굴을 붉히며 혼합물작업장에서 좀 떨어진 천막쪽으로 그를 안내했다.

작업도중에 로동자들이 일시 휴식할수 있는 장소로 꾸린듯 한 천막안은 고요했다.

《자리가 시원치 않겠지만… 어서 좀 앉으십시오.》

홍신철이 자리를 권하자 리성원은 긴 나무걸상에 스스럼없이 앉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대의 얼굴을 주의깊게 살펴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훤칠한 이마, 부리부리한 눈매, 큼직한 키와 걸걸한 목소리를 봐서는 범접하기 수월치 않을것 같았다. 그런데 이 지배인이라는 사람이 로동자들과 작업현장에서 함께 일하면서 자기의 권위를 어떻게 세울가 하는 의문이 갈마들었다.

인간세상을 하나의 수직관계로 보는데 습관된 그였다.

지배와 복종, 이것은 수천년동안 인간이 만들어냈고 달리는 될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의 구조였다. 인간세상의 지배와 복종의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그렇다. 권위란 곧 체계이며 지배이다. 자그마한 수평이나 에누리도 허용되지 않는 철저한 수직관계에서만 정통화된 통치관념이 형성될수 있으며 이런 권위만이 절대성이 담보되는것이 아니겠는가.

리성원은 더 의문을 가질 필요를 부정하며 주저함이 없이 질문을 했다.

《바쁘시겠지만 허물없이 몇가지 묻는것을 리해해주시오. 종업원을 수천명이나 거느린 큰 기업체를 관리하는분이 이렇게 로동자들과 격식없이 어울리면 덕망은 높아질지 모르나 지도권을 행사하는데서는 무리가 생기리라고 생각하는데요. 겸해서 기업의 생산활성화나 투자확대와 같은 경영관리와는 전혀 인연이 없는 이런 교육분야에 소비나 다름없는 투자를 하는 리유도 알고싶습니다. 혹시 이것을 일종의 자선사업으로 생각해도 되겠는지요?》

홍신철은 눈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허허허. 선생님의 질문이 좀 예리한감은 있지만 해외에서 오신분이니 리해가 갑니다. 방금 저더러 큰 기업체를 관리한다, 지도권을 행사한다 하는 어마어마한 표현들을 쓰셨는데 우리는 자신을 근로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심부름군으로 여긴답니다. 우리의 존재사명이 바로 그것이니까요.》

《그렇다고 지배인을 로동자들과 같이 취급할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아마 한두마디의 말로 리해하기는 어려우실겁니다. 가령 이렇게 생각해보십시오. 저의 이 지배인이라는 자리가 내가 돈으로 산 어떤 특권이 아니라 인민대중이 자기들을 위해 복무해달라고 맡겨준 직책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지배인은 관리가 아니라 대중을 위해 복무하는 충복이 되여야 하겠지요?》

《그러면 지배인의 권위는 어떻게 보장합니까?》

리성원은 리해가 되지 않아 다급히 되물었다.

《그 권위라는것은 제가 아니라 우리 인민이 세워주는거랍니다.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고 인민을 위해 발바닥이 닳도록 뛰여다닐 때 그 인민들이 바로 <우리>라는 정겨운 호칭으로 불러주며 더 믿어주고 내세워준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높고 막강한 권위가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말문이 막힌 리성원은 눈심지를 돋우었다.

홍신철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낭떠러지우에서 떨어지는 폭포마냥 그의 심저를 쿵쿵 울리고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이 학교의 개건공사를 도와주는것은 자선사업이 아니라 후원단체로서 마땅한 의무를 수행하는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관, 기업소들이 학교나 유치원, 탁아소 등 교육단위나 아동보육단위들을 하나씩 맡아 적극 후원해주고있답니다. 최근에 전반적12년제의무교육이 실시되면서 많은 초급 및 고급중학교들이 새로 생겨나거나 확장되고 또 종합대학들이 늘어나면서 적지 않은 학부들이 대학들로 승격된데 맞게 교육부문을 더욱 추켜세우는데 필요한 물질적토대를 갖추어주는 사업들이 전국적범위에서 진행되고있지요. 그러니 우리가 학교를 도와주는것은 나라의 밝은 앞날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일로 되는거지요.》

《그렇다면 기업소의 자금사정이 아무리 긴장해도 당장 투자효과를 기대할수 없는 학교들에 서슴없이 투자를 한단 말입니까?!》

리성원은 저도 모르게 숨가쁜 소리를 내질렀다.

곁에서 홍송미가 기겁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홍신철은 더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우리가 지금 풍족하게 먹고 입으며 쓰고 남는것이 많아서 이렇게 후대들에게 아낌없이 자금을 쏟아붓는것은 아니지요. 선생님도 아시다싶이 사상최악의 군사적압박과 경제봉쇄로 우리 공화국을 기어이 압살해보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발악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으며 더욱 극도에 치닫고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풀죽으로 끼니를 에워야 하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면서도 막대한 자금을 들여 불패의 군력과 지식경제시대의 기틀을 억척같이 쌓아왔고 오늘은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로선을 높이 추켜들고 강력한 핵전쟁억제력으로 조선반도뿐아니라 지역의 안정과 세계평화를 수호하고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의 정의와 량심이 한결같이 인정하고있으며 격찬하고있습니다.》

리성원은 자기의 머리속에 아리숭해서 명확치 않던 사색의 편린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거나 옳바로 정리되여가고있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만일 우리가 이런 험난한 길을 뚫고나가지 않는다면 앞날은 어찌됩니까. 우리 세대에는 잘살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것을 다 바쳐서라도, 그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민족만대의 휘황하고 무궁한 미래를 억척같이 담보해나가려는것이 우리의 립장이고 의지랍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모든것을 바치지만 그것을 결코 투자나 희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보람이고 최대의 실리가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리성원은 전률에 가까운 감흥에 온몸을 맡기고말았다.

소박하면서도 진실하고 자기보다 남을 더 위해주며 자기 삶보다 미래를 더 귀중히 여기는 이 사람들은 절대로 쓰러지지도 않으며 나약할수도 없다. 이 세상에서 존재의 가치를 자기나 현재에서 찾는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찾는 이런 사람들이 또 어디에 있을가. 지구상에 강자가 있다면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리성원, 너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가. 너는 지금까지 고작해서 에덴동산이나 그려보며 자기 위안을 찾으려 하지 않았던가. 그래, 네앞에 펼쳐진 이 세상을 너는 과연 무엇이라고 부를수 있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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