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4 장

 32

 

호텔에 돌아온 리성원은 자못 생각이 깊었다. 그는 한생 자기가 강자로 되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살아왔다는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챠일드의 주인이 된 이후에는 그와 같은 자부로 생을 누려왔다. 강자는 무엇이고 지배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리성원은 오늘 오전에 만났던 송미의 아버지 홍신철지배인의 모습이 머리속을 채우고있다는것을 부정할수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아무리 곱씹어 생각해보아도 리해가 갈듯 하면서도 리해할수 없는것이 이 땅의 정치구조였다. 북을 가리켜 미국이나 서방이 떠들어대는 말들은 명백히 속된 비방이며 망발인것만은 틀림이 없다. 여기 사람들의 표현을 빈다면 가장 두려워할뿐아니라 체질적인 거부감을 가지고있는 적대국이니 상투적인 중상에 이골이 난자들이 입이 근질거리는것을 참을리는 만무했다. 그렇다면 북을 움직이는 정치리념이나 동력은 무엇이란 말인가. 물질중심의 서방세계에서는 정치를 가리켜 경제의 길잡이라고 한다. 물론 외견상으로는 정치에 경제가 복종되는듯이 가리워도 백악관의 주인이 월가의 대재벌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것쯤은 세계가 다 아는 《비밀》이 아닌가. 아마 그래서 대통령은 망해도 대재벌은 남아있는다는 명담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정경분리를 떠들어도 종당에는 정경유착을 배제하지 못할만큼 뒤엉켜 돌아갈수밖에 없는것도 하나의 생리라고 해야 했다.

마치 리성원이 겉으로는 정치에 무관심하는척 해도 짬만 있으면 뒤에 돌아앉아 인터네트나 신문, 방송을 뒤져가며 세계정치의 풍향계를 주시하고있는것도 다 이런 리유에서였다. 그러나 그가 들여다보건대 이 땅의 경제관리는 력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자기의 독특한 리념을 바탕으로 하고있다는것은 의심할바가 없었다. 그 리념은 어찌 보면 추상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현실적이기도 하며 때로는 애매모호하게 안겨오다가도 불쑥 피부에 와닿으며 깜짝 놀래우거나 심장을 무한히 격동시키기도 했다. 아직 뭐라고 단언할수는 없으나 그 리념의 중심에는 늘 인민이라는 개념이 자리잡고있으며 그 리념의 체현자, 구현자들은 세상의 최강자들로 될것이라는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새로운 심오한 진실을 깨달을 때 두려움이 동반되는것은 무엇때문일가.

리성원은 무거운 사색의 소용돌이속에서 이젠 그만 벗어나고싶었다. 그는 책상에 다가가 서랍에서 《레 미제라블》을 꺼내들었다.

몇장 펼쳐넘기는데 문기척소리가 나더니 홍송미가 들어섰다. 그가 리성원의 모습을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다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기업가이신데 왜 그 <레 미제라블>을 가지고 다니십니까?》

리성원은 우들뜰 놀랐다.

《송미는 프랑스어를 아나?》

홍송미는 머리를 갸웃거리며 별걸 묻는다는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대학때 소설에 너무 심취되다보니 프랑스원문을 독파하면서 좀 배웠답니다.》

리성원은 반갑기도 하고 한편 놀랍기도 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선생님은 어딘가 마들레느로 변성명하고 벼락부자가 되였어도 자기가 번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나이많은 주인공 비슷해보여요.》

《송미의 그 말은 나에게 조금도 위안을 주지 못해. 난 아직 자신을 들여다보는중이고 속죄의 길에는 더구나 들어서지 못했거던. 만일 송미가 꼬제뜨라면 난 자기의 재산을 아낌없이 넘겨주는 주인공이 될 용기가 있지.》

리성원은 대화가 이어지면서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다.

《실례일지 모르지만 제가 정말로 꼬제뜨가 될수 있다면 전 그걸 사양하겠어요.》

《그건 어째서?》

리성원은 흥미를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전 주인공에게 그 재산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유롭고 행복한 세상을 찾아주는 일에 써달라고 부탁하고싶어요.》

《그건 작품을 쓴 작가인 빅또르 유고한테 해야 할 말 같은데…》

《그럴가요? 하지만 전 작가를 탓하기 전에 사실주의와 진보적랑만주의의 결합으로 당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폭로하고 최하층 근로인민들의 투쟁을 긍정적으로 형상한 그의 문학사적공적을 더 높이 평가하고싶어요.》

홍송미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기의 견해를 주장했다.

리성원은 무척 귀엽고 활달해보이던 그가 이처럼 지모와 언변이 뛰여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운명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했지. 이 처녀도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론리적이며 달변적인가. 품고있는 리념과 감정은 또 얼마나 아름답고 매혹적인가!

《선생님, 조선광명기술연구소에서 전화가 왔는데 일정대로 오후 3시에 3차면담을 진행하는데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합니다.》

홍송미가 억양이 달라진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리성원은 아쉬웠지만 면담준비에 머리를 쓰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금까지의 면담과정을 간추려본다면 조선광명기술연구소의 실력과 지불능력을 타진한것으로 특징지을수 있었다. 실력이라는 한가지 측면에서 볼 때 광명기술연구소가 목적하고있는 챠일드회사와의 호혜적이며 지속적인 교류는 충분히 타당하며 실현가능성도 풍부하다고 할수 있었다. 자본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수 있는 두뇌진의 지적잠재력이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는 사실만 놓고도 그것을 확신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리성원은 광명기술연구소측이 제기한 폭넓은 문제들을 료해하면서 그들이 최신설비납입보다 기술이전에 더 관심을 두는 리유를 파악할수 있었다. 미국주도의 유엔제재속에서 자금류통과 이중용도가 아닌 일반분야의 설비구입까지도 철저히 제한을 받고있는 북의 실정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해야 할것이였다. 그것은 가능한껏 기존설비납입을 시도하고있는 자기의 구상에도 어긋나는것이였다.

아마 오늘면담에서는 부득불 홍승혁소장이 자기들의 구체화된 요구조건을 제시하지 않고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시간이 더이상 기다려주지 않는다는것을 그들도 잘 알고있는것이였다.

홍승혁은 정확히 오후 3시를 5분정도 앞두고 면담실에 들어섰다. 그는 호방한 웃음을 짓고 리성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장선생의 기분이 좋으신걸 보니 무척 기쁩니다. 오늘면담도 그렇게 선생에게 기쁨을 주었으면 하는것이 우리의 심정입니다.》

《감사합니다. 홍소장선생은 언제나 저를 감동시키는군요. 전번에 귀 연구소를 방문한것은 저에게 큰 수확이였고 기쁨이였습니다.》

리성원은 진속을 터놓으며 답례를 표시했다.

면담이라고 하여 덮어놓고 상대를 떠보고 속이려드는것은 면담대방에 대한 모욕이다. 필요할 때에는 속을 먼저 터놓아 대방을 감동시키는것이 더 많은 양보를 받아낼수 있는 고단수의 면담술인것이다.

《이건 외교적으로 하는 말이 아닌데 사실 전 연구소의 기술개발팀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생력이 강하고 또 젊고, 게다가 남의 첨단설비나 기술이라도 자체실정에 맞게 끊임없이 혁신해가는 기풍은 정말 본받을만 한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사장선생의 과분한 칭찬을 받았으니 우리도 선생의 기분을 흡족시켜드려야 할가보군요.》

홍승혁은 면담탁우에 놓은 서류가방에서 무슨 문건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우리 광명기술연구소측에서는 사장선생이 제안한 <챠일드-6>설비의 구입가격을 충분히 토의하고 그에 동의를 주기로 하였습니다.》

리성원은 놀라움과 불안의 감정에 휘말려들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미안하지만 다시 말씀해주십시오.》

《방금 이야기한 그대로입니다. 사장선생의 가격조건에 동의한다고 말입니다.》

리성원은 기뻐해야 하겠으나 마음 한구석에 괴로움이 슬며시 배여드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실은 2차면담때 리성원이 제시한 가격은 미국이나 서방나라 회사들에 납입하는 가격보다 10%이상이나 높은것이였다. 그것은 엄연한 의미에서 흥정이 아니라 리성원이 배짱을 부려본데 지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큰 실책인가 하는것을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실감하고있었다. 자기의 개인신상자료까지 깊이 파악하고있는 이 사람들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거래가격을 모를리는 없는것이였다.

그렇다면 광명기술연구소측에서 이 가격조건을 접수하는것은 무엇때문인가. 혹시 아량이 아니라면 일종의 역투자로 리용하려는것인가?

《실례이지만 한가지 물어도 될가요?》

《어서 물어보십시오.》

리성원의 어정쩡해지는 물음에 홍승혁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귀소측에서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여 <챠일드-6>인쇄설비와 관련핵심기술을 기어이 획득하시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기업상의 비밀이라면 대답을 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건부는 붙였으나 리성원은 귀를 한껏 도사리고 대답을 기다렸다.

《뭐 비밀이라고 할것까지는 없습니다. 사장선생이 정 알고싶다면 말씀드리지요. 세계를 앞서나가는 과학기술이 없으면 휘황한 미래도 없기때문이지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우리 후대들을 위한 일인데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러니 당면한 확대재생산도 아닌 미래라는 막연하고 추상화된 개념을 위해 많은 자금을 지출한단 말입니까?!》

홍승혁은 리해가 간다는듯 여유있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장선생에게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앞날이 없는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수 없다고 말입니다. 만일 이것을 부정하려든다면 그건 위선이나 겉치레에 지나지 않지요. 신념은 미래를 본다는 말이 바로 이런 리유에서 나왔을겁니다.》

《?!》

너무도 큰 충격에 마음의 중심을 잃어버린 리성원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가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신세도 엎음갚음이라는데 귀소측의 부대조건이 있다면 어서 말씀해주십시오.》

《우리에겐 아무런 부대조건이 없습니다. 다만 설비와 그 조종과 관련한 핵심기술을 될수록 빨리 납입해주었으면 합니다.》

《그건 부대조건이라고 할수 없지요. 저에게 이런 생각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겠습니까? 가령 제가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납입가격을 10~15%정도 할인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리성원은 자기의 입에서 말이 끝나는 순간 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했다. 원래 그럴 생각은 없었으나 그만한 액수정도는 챠일드회사의 선심이나 호의격으로 대방에게 베풀어도 무방하다고 타산했던것이다.

그럼에도 홍승혁이 태연자약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야 사장선생이 결심해야 할 일이지요. 우리에겐 피차일반이랍니다.》

뭐, 피차일반이라?! 이건 대체 누가 누구를 감동시키는건지 모르겠군. 그러니까 누가 누구의 요구에 동의한다는건가.

오리무중에 빠져버린 리성원은 불쑥 긴숨이 나갔다. …

《가만, 미안하지만 사장선생의 얼굴색이 왜 그렇습니까? 어디가 불편하신게 아닙니까?》

면담이 시작된지 한시간정도 흘렀을 때 홍승혁이 던진 말이였다.

리성원은 오뇌에 빠져 허덕이고있었다. 재부와 명예도 량심의 상처는 가셔주지 못한다는 말의 뜻을 이처럼 비절하게 체험하게 될줄은 몰랐다. 여느때 같았으면 자기의 명민한 두뇌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련만 지금은 그것이 파놓은 함정에 제가 빠지는 꼴이 되고만것이였다. 덕에는 덕으로 대하는것이 인간본연의 순리일진대 악으로 갚으려 했으니 천벌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것 같았다.

《실례입니다만 홍소장선생, 오늘면담은 이만 휴회하고 래일 다시 마주앉는게 어떻겠습니까? 제 깊이 생각해보고 결심을 다시 내려야 할것 같습니다.》

리성원은 끝끝내 먼저 손을 들고말았다.

《좋습니다. 사장선생의 요구가 그러하시다면 우리도 반대가 없습니다. … 가만, 그렇다면 저도 한가지 의견을 제기하렵니다. 실은 우리 연구개발팀의 동무들이 머리쉼도 할겸 체육경기관람을 조직했답니다. 혹시 사장선생이 반대가 없으시다면 휴식삼아 우리 함께 가보지 않겠습니까?》

리성원은 쾌히 동의했다.

주차장에 나온 그들은 차에 올랐다. 얼마쯤후에 차는 청춘거리에 있는 권투경기관앞에 이르렀다.

《오늘 여기서는 오산덕상전국체육경기대회 권투결승경기가 진행된답니다.》

홍승혁의 말에 리성원은 머리를 끄덕였다. 오래간만에 관람하는 권투경기여서인지 호기심이 영 없지는 않았다.

초대석에 자리를 잡은 리성원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이상하게도 경기관에 들어서면서부터 홍승혁은 마치 자기가 출전하는 권투선수이기라도 한듯 진정되지 않고있었다. 면담때의 침착성과 정확성 같은것은 온데간데 없었다. 게다가 경기가 막상 시작되자 홍승혁의 앞뒤에 앉은 젊은이들이 키질하듯 계속 그에게 말을 걸었다.

《챠, 저런 곧추치기기술은 우리 소장동지한테서 배워야 하는데…》

《소장동지, 저런 선수라면 한번 붙어볼만 하지 않습니까?… 아하, 저런… 저 선수도 왼손치기로구나.》

그러자 홍승혁은 그에게 눈을 빨며 제지시킨다.

《홍소장선생은 아마 권투를 좋아하는가보지요?》

리성원이 1회전이 끝나고 짧은 휴식시간이 되자 슬그머니 물었다.

《취미가 좀 있을뿐이지요.》

그러자 앞좌석에 앉아있던 알밤이마청년이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취미정도가 뭡니까. 우리 소장동진 베를린류학때 벌써 오만무례하게 놀아대는 미국선수를 왼손곧추치기타격으로 완전넘어뜨려 화제거리가 되였댔는데요 뭐.》

옆에서 듣던 홍승혁이 객적은 소리를 말라는듯 왼손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아, 저 왼손주먹?!… 뭐, 베를린류학? 북조선선수? 왼손곧추치기타격?

순간 리성원의 머리속에서 연거퍼 번쩍이며 불꽃방전이 일었다. 뒤따라 련련히 흐르는 무엇이 있었다.

혹시 그 사람이 아닐가?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모색을 보면 그 친구와 어딘가 비슷하지 않는가. … 가만가만… 그렇다. 부모가 없는 혈혈단신의 젊은이, 그때 내가 어머니의 노래를 부르자 기타를 받아쥐고 북의 노래를 불렀던 친구. 그 노래가 참 유순하면서도 의미심장했어. 옳다! 틀림없는 그 친구이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그런데 나는 알아차렸다 한들 이 친구가 몰라보면 그것 또한 난사가 아닌가.

다음 순간 리성원은 가슴이 졸아드는듯 했다.

옛친구를 몰라본것도 인사불성일텐데 그의 등을 치고 간까지 빼먹으려 했으니… 아, 내가 어쩌다가 이 꼴이 되였는가. 허 참!

얼핏 홍승혁을 곁눈질해보았으나 그는 태연하게 앉아있을뿐이였다.

2회전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다른 사람들은 내남없이 목을 뽑아들었으나 도리여 리성원은 면구함으로 하여 자라목이 되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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