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4 장

 34

 

할아버지, 나는 지금 일본 혼슈섬 미야기현의 센다이에 와있답니다. 모국이 지척인 일본에 말이예요. 모국이라지만 할아버지의 눈물의 유년사를 돌이킬 때 보게 되지 않는 땅, 그 코앞에 당도했답니다. 하지만 감정은 류달라져요. 나에게도 모국이 되겠는지요.

조금전에 센다이비행장에 내려 짐을 풀었어요. 해안도시더군요.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조선의 력사를 생각하면 보이는 사람마다 밉살맞게 느껴지니 그들의 간지러운 사교도 역스럽게 보이더군요. 이 땅 또한 오고싶지 않았으나 동료들이 나를 부추겼지요. 나 역시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사는 땅이라 들었기에 응했답니다.

여기는 날씨도 찌뿌둥하고 염풍이 부는데다가 습한 공기는 탁하기 그지없어요.

우리 《롱》악단이 보고싶어하는 에덴동산같은 세계가 여기라고 펼쳐질리는 만무해요. 이러다가 정말로 우리의 길이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소득이 없는, 그저 방황으로 끝나는건 아닐가요. 진정 그런 세계가 있기나 한걸 찾아다닐가 우려도 없지는 않아요. 그래도 찾아보렵니다. 다 보아야 속이 풀릴것 같아요.

나는 여기서 조선노래를 특별히 많이 부르려고 해요. 일본놈들의 압박에 대한 항거의 표시로 우리 문인들이 왜정시기에 지었다는 노래들을 일본사람들앞에서, 동포들앞에서 보란듯이 목청껏 불러보려고 해요. 샤미센에 맞춘 《나니와 부시》노래를 조선노래로써 누르렵니다. …

할아버지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눈 혜림은 자기가 방금 든 려관방을 휘둘러보았다. 얇은 다다미를 깔고 사꾸라꽃을 그린 병풍을 친 전통적인 일본식방이였다. 그래서 려관비도 눅다고는 하는데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혜림이는 바닥에 앉으면서 쓰겁게 웃었다. 아까 손님접수를 하면서 려관직원들이 주고받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려관정문앞에 세운 차에서 동료들이 짐을 부릴 때 그는 접수를 하려고 먼저 1층홀에 들어왔었다.

자기보다 한발 앞서 접수를 한 중년남녀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쪽으로 향하고있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접수탁에 앉아있는 두 녀직원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아마 혜림을 일본녀자인줄로 안 모양이였다.

《저런것들은 돈을 아끼지 않으니 좋거던.》

《아는 사이인 모양이지?》

《남자는 자주 오니 풋낯이나 좀 알지. 도꾜에 사는 량반인데 여기로 한달에 둬번은 출장을 오는가봐. 재미있는건 매번 다른 녀자를 데리고 오는거야. 래일 아침에 한번 보란데. 눈확이 푹 꺼져들어가구 후줄근해서 나오는 꼴을. 호호호.》

《난 또… 그게 뭐 놀랍다구.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 려관을 가리켜 <비빔집>이라구 한다던데.》

《<비빔집>?!》

《서로가 비벼대려 찾아드는 장소래서 그렇게 부른다는거지. 히히히. 외국인이고 국내인이고 밤낮을 가림없이 전부 그럴 내기니까.》

《말도 마. 관리부의 엔도상이 하는 말을 못 들었어? 자긴 침대들의 나사를 조이러 다니느라 볼장을 다 못 본대. 그러느라면 대낮에도 삐거덕소리가 나는 방들이 많다는거야. … 어떤 땐 자기도 발정이 나서 막 참지 못하겠다는거야. 호호호.》

《돈많고 정력이 센 사내들이 왜 우리 같은건 거들떠보지도 않는지 모르겠네. 아마 우리에겐 달린것이 없는가 하는게지.》

이 세상에서 가장 문란하다는 일본의 성풍속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는 소리가 역스러워 혜림은 헛기침을 하며 그들에게로 다가가 접수를 요구했다. 하지만 얼굴이 모닥불을 쓴듯 달아올라 말도 잘 나가지 않았다.

두 녀직원이 저들끼리 마주 쳐다보더니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보세요?》

《혼자예요?》

《아니, 우린 다섯명이예요. 그러니 방 세개를 부탁해요.》

《모두 녀자예요?》

《남자가 네명이예요.》

《어마나?!》하고 한 녀직원이 탄성을 내질렀다.

《왜 그러는거예요?》

혜림은 자기 얼굴에 무엇이 묻었는가싶어 눈이 커졌다.

《아가씨보고 하는 말이 아니예요. 저 남자들이…》

그가 뒤돌아보니 짐트렁크들을 들고 회전문을 거쳐 홀에 들어서는 자기 동료들이 보였다.

《모두 끌끌한 미남들이다야. 기운들은 아마 황소같을거야. 녀자는 단 한명뿐이구. 스미에, 이건 하늘이 우리의 심정을 알고 내려보낸 사내들이 아닐가?》

한 녀직원이 황홀한 눈길로 바라보며 일본말로 총알을 쏘아대듯 중얼거렸다.

말을 알아들을수 없는 동료들은 서로 마주보다가 혜림이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시간이 없는데 어서 접수등록을 하구 호실열쇠들이나 빨리 줘요.》

얼굴이 달아올라 신경질적으로 열쇠들을 나꾸어채듯 받아든 혜림은 잰걸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동료들이 군말없이 짐들을 쥐더니 그의 뒤를 따랐다.

《야, 혼자서 넷을 다?!》

《이건 정말 우리 려관의 신기록일지도 몰라. 참 볼만 하겠네.》

쑥덕이던 두 녀직원이 한순간에 무엇에 찔린것처럼 움츠러들었다. 혜림이 돌아서서 무섭게 쏘아보고있었던것이다. …

혜림은 쓴웃음을 짓다말고 다다미바닥을 짚어보았다. 방에 들어와 신발을 벗는데 습관이 안된 동료들이 불편해할것이 미안스러웠다. 하지만 숙식비를 절약하자면 묵묵히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때 문두드리는 소리에 이어 미닫이가 스르르 열리더니 로베르또가 들어섰다.

《신발, 신발!》

혜림은 웃는 낯으로 로베르또의 발을 가리켰다.

《아차… 젠장, 이거야 어디 불편해서…》하며 로베르또가 문밖에 나가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그뒤로 동료들이 줄레줄레 들어와 앉았다. 이런 환경에 모두 습관이 붙지 않아 몸동작들이 어색해보였다.

《래일 공연프로는 어쩌자오? 장소는?》

로베르또가 물었다.

《에아이강을 따라서 와꾸야라는 곳이 있대요. 여기 수위가 그러더군요. 대낮에도 그렇고 야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이라면서…》하고 혜림이 자신없이 말했다.

《에아이강, 와꾸야라… 허 참, 일본말은 통 모르겠어. 마치 혀길이가 모자라는 사람이 말하는것 같지 않나? 혜림이가 쓴 조선문자와 대비해보면 일본문자는 받침을 모두 팔아먹었는지 온데간데 없더구만.》

하싼이 쏭알거렸다.

《글자는 좀 나을것 같애서? 일본사람들이 고약하고 린색하다고 하던데 그 꼬일대로 꼬인 속통처럼 미완성품이더군. 암만 봐도 만들다만 글자야.》

마리노도 뒤지지 않으려는듯 툴툴거렸다.

《제가 만든 말과 글이 아니라지 않아. 조선문자와 중국문자에서 막 따왔다는 말이 있더군. 들리는 말에는 조선사람들이 문화를 전파시켜주었다고도 해.》

와힘이 결론이나 하는것처럼 모를 박았다.

《만일 그렇다면 혜림, 일본사람들은 당신을 스승으로 모셔야겠군. 그런데 스승어른을 모시는 자세가 이렇게 불량해서야 되겠소.》

하싼이 진담인지 롱담인지 모를 소리로 까박을 붙였다.

혜림이가 말장난들은 그만하라는듯 흥심없이 말했다.

《그렇다고들 하더군요. 나도 조선사람이지만 력사는 잘 몰라요. 그건 그거구… 래일 센다이사람들의 얼이 빠지게 해보자요. 내가 조선노래를 두곡 부를가 해요. 서너번째 프로순서에 넣어줘요. 조선노래악보들중에서 <울며 헤진 부산항>하고 <집없는 천사>를 준비해줘요. 편곡을 특색있게 하면 인기를 올릴수 있을거예요. 그럼 부탁하겠어요.》

《알겠소이다. 공주님의 분부대로 합죠.》하고 로베르또가 동료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마지막엔 다같이 조선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을 합창하는게 어때?》

누군가가 제의했다.

《거 좋구만. 래일은 공주를 위해 바치세!》

혜림은 고마움에 젖은 눈길로 동료들을 둘러보았다.

《참, 저녁식사는 어떻게 하자우?》

로베르또가 배를 슬슬 문다지며 물었다.

《로베르또가 계획해요. 대체로 식당들은 비싸니 어디 수수한 곳에나 갔으면 해요.》

《알겠소. 그럼 거리구경도 할겸 산보삼아 우리 밖으로 나가보는게 어떨가?》

웃으며 동의했던 동료들이 신발을 신으며 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두시간후에 려관으로 돌아온 그들은 다시 혜림의 방으로 모여들었다. 주변의 자그마한 식당에 들려 눅거리식사로 한끼를 굼땐것이였다.

《거 녀자는 일본녀자를 데리고 살고 료리는 중국료리를 먹으라고 했다던데 그 말이 맞는것 같애. 써비스는 기가 막힌데 뭐 아무리 먹어야 배를 불릴수 있더라구?》

식성이 남다른 와힘이 풀풀거리자 기관총의 련발사격처럼 불평들이 터져나왔다.

《그게 일본사람들의 돈버는 기술이라는거야. 손님의 발바닥이라도 핥을것처럼 삽삽하게 굴어 끌어들인 다음에 야박스러울만큼 빈약한 식사를 문명식사라고 떠들면서 대접하는거지. 거기에다 대고 음식값이 비싸다고 했다간 망신을 당하는거야.》

《일본음식은 처음 먹어보는데 며칠만 먹으면 당뇨병에 걸리지 않겠는지 걱정이요.》

《그래도 다 비우는걸 보니 굉장히 출출했던 모양이지.》

《음식값이 좀 적던가.》

《혜림이 좋아하는 조선음식을 먹어봐서 그런지 그게 삼삼하더군. 푸짐하면서도 맛이 독특하더라니. 래일쯤엔 어디 조선음식점에 가보자구.》

《오케이!》하는 합창소리가 들렸다.

혜림은 그들을 바라보며 선웃음을 지었다. …

황혼이 가까운 와꾸야의 에아이강반이다. 강변을 따라 뻗어간 유보도중간쯤의 계단아래에서 《롱》이 공연준비를 서두르고있었다.

역시 어느 나라에서나 제일 민감하게 빨리 반응해나서는것은 아이들이였다. 그들의 동행자인듯 오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의아함과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몇분사이에 인파는 몇배로 늘어났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해요. 빨리 서둘러요.》

혜림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동료들을 재촉했다.

조금 있더니 로베르또가 엄지손가락을 쳐들고 혜림에게 신호했다. 공연을 시작해도 된다는 의미인 동시에 멋지게 잘해보자는 격려의 표시였다.

머리를 끄덕인 혜림이 마이크를 들고 악단앞에 나섰다. 일본말을 아는 그가 부득이 소개자로 나설수밖에 없었던것이다.

《센다이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세계 여러 나라들을 다니면서 자유를 부르고 희망을 갈망하는 우리 <롱>로크악단의 인사를 받아주십시오!》

혜림은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확성기의 음량이 높아서인지 사방에서 사람들이 계속 꾸역꾸역 모여들어 장사진을 칠 지경이 되였다. 주로는 청년들이 대부분이였다.

《우리는 일본에서의 첫 공연을 이 아름다운 항구도시에서 가지게 된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미흡하기 그지없는 저희들의 공연을 보아주시는데 대해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선률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흐름을 타고 혜림은 악단성원들을 한사람씩 소개했다. 동료들이 각이한 특기모양으로 관중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그럼 지금부터 공연을 시작하겠습니다. 첫 프로로 <롱>단가!-》

《딱, 딱, 딱, 딱!》 하며 울리는 드람채의 맞소리에 이어 폭발적인 경쾌한 기악이 터져올랐다. 전주가 끝나면서 노래가 울리기 시작했다.

 

    …

    우리는 무엇을 찾나 향락이 아니라네

    지구의 미래 인정의 세계를 갈망하네

    전쟁도 전횡도 슬픈 눈물도 없는 땅

    사랑찾아 꿈찾아 희망의 노 저어가네

 

관중들이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노래가 고조되자 청년들이 관중과 악단사이까지 뛰여들어 몸을 비틀어대고 엉치를 괴이하게 흔들어댔다. 혜림이와 동료들도 흥에 겨워 사기가 충천해졌다.

단가가 끝나는 동시에 《알로하 오에》의 선률이 련이어 울려퍼졌다.

로크음악의 양상에 맞게 충격적인 리듬과 강한 음량, 광란적인 특기를 살려 혜림이 편곡한것이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청년들뿐만이 아니라 로중년배들까지 춤판에 떨쳐나섰다. 젊은이들의 기세에 떠밀리워 위축되여있던 봉창이라도 하려는지 아니면 지나간 옛 시대를 풍미할수 있게 해주는 선률이 반가와서인지 로인들은 다감한 표정까지 그려보이며 보란듯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과거와 현대가 맞비비며, 미친듯이 들썩이며 돌아가는 춤판은 꼭 얼치기들의 란무장이였다. 옷차림에 춤가락도 온통 제멋대로이니 천태만상이 왔다가 울고 갈 지경이였다. 하지만 《롱》으로서는 그것을 성의로 고맙게 느껴야 할 처지였다.

이어 다음 곡이 은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곡조가 완만해져서인지 관중이 잠간 무춤해지는듯싶었다.

마이크를 든 혜림이가 길게 드리운 머리카락을 강바람에 흩날리며 애수에 젖은 목소리를 뽑았다.

 

    울며 헤진 부산항을 돌아다보니

    련락선 란간머리 흘러온 달빛

    …

 

혜림은 노래를 부르면서 관중들의 심리상태가 서서히 변화되는것을 느꼈다.

상쾌한 리듬과 률동이 서정적인 곡조로 바뀐것에 화를 내는것 같기도 했다. 일부 관객들이 저희끼리 얼굴을 마주보며 수군거리는것이 눈에 띄웠다. 리해할수 없는것은 몇몇 청년들의 눈길에 비낀 로골적인 적의였다. 비록 말은 하지 않지만 맹수처럼 눈을 희번득거리는것이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한 기운을 몰아왔다.

혜림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다는 예감이 들었으나 그렇다고 공연을 중지할수는 없었다.

로베르또를 비롯한 동료들도 서로 눈빛으로 교감하며 침착한 태도로 더욱 연주에 열중했다.

일부 청년들이 눈을 부라리고 뭐라고 씨벌이더니 사람들을 헤치며 사라졌대도 공연은 그럭저럭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속에 막을 내렸다. …

그날 저녁 그들은 일본에서의 첫날 공연성과를 자축하는겸 약속한대로 조선음식을 전문하는 식당에서 푸짐한 식사를 나누었다.

려관으로 돌아오는 일행은 너나없이 흥에 떠있었다. 오래간만에 포만감에 휩싸인 하싼이 선두에서 휘파람으로 《눈물젖은 두만강》의 곡조를 류창하게 불렀다.

그들이 그리 넓지 않은 어느 골목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어둠속에서 빈정대는 서투른 조선말소리가 들려왔다.

《아, 이제야 돌아들 오시는군. 노래는 조선노래에 식사도 조선음식이라?! 생긴 모상과는 전혀 딴판인걸.》

깜짝 놀란 혜림과 동료들이 당황해하는데 갑자기 어둠을 찢으며 비쳐오는 전지불빛이 눈을 부시게 했다.

형체나 가려볼 정도인데 키가 남달리 껑충한 사내가 그들에게로 팔자걸음을 하며 다가왔다.

《너희들이 아까 로크공연도중에 조선노래를 불렀지?! 감히 일본땅에서 일본사람들을 야료하는건가! 이런 모욕을 우리 일본사내들은 참아내지 못한다!》

혜림은 눈이 부신 속에서도 똑똑히 가려보았다. 열댓명의 건장한 놈팽이들이 살기띤 눈알들을 번쩍이며 그들을 앞뒤로 에워싸고있었다.

혜림은 하싼을 뒤로 잡아끌며 그앞에 나섰다.

《그래요. 조선노래를 불렀어요. 그것이 잘못되였는가요?》

《당신, 조선녀잔가?!》

키다리가 허리에 손얹고 미간을 세우며 따졌다.

동료들이 혜림의 주위로 약속이나 한듯 모여들었다.

말을 미처 알아듣지 못해 쩔쩔매던 로베르또가 혜림의 앞을 가로막아서며 《카나다, 카나다!》하고 소리쳤다.

《카나다? 카나다에 살아도 조선족이겠지?!》

로베르또가 말을 반복하려 하자 혜림이가 그를 젖히고 나섰다.

《그래요, 조선사람이예요!》

《이 쌍년! 일본땅 한가운데서 감히 센징노래를 질러?!》

키다리가 혜림이의 멱을 잡았다. 동료들이 그러는 키다리의 팔을 잡아뿌리치려 할 때였다.

《고노야로! 어이, 도쯔께끼!》하는 누군가의 비린청이 울리더니 놈팽이들이 앞뒤에서 와락 달려들었다.

《야! 이 센징년을 죽여라! 신성한 센다이에서 감히…》

꺽다리가 혜림의 머리채를 거머쥐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혜림의 동료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그를 구원하려 필사적으로 헤덤볐다.

《조선사람은 모조리 짓밟아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지난 세기에 말끔히 짓뭉개버리지 못했기에 이런 조선계집들이 아직도 날치는거야!》

《이런 년들은 홀딱 벗겨서 통채로 씹어삼켜도 비리지 않을걸. 이제 헌법이 개정되여 해외진출의 길이 열리면 우선 조선반도에 출병하여 조선계집들의 씨부터 말려버리자구. 와하하!》

한 녀석이 징그럽게 웃어대며 혜림의 웃옷을 와락 잡아당겼다. 어깨부위가 단번에 북- 찢어져 달아나 그의 흰 속옷이 드러났다.

《이 더러운 왜종자들!》

혜림이가 팔을 엇걸어 어깨를 싸쥔채 쓰러지면서 울부짖었다.

그것을 보자 눈들이 확 뒤집혀진 녀석들은 주먹을 휘두르다 못해 무슨 야구경기에 나선 타수마냥 어디서 주어왔는지 방망이까지 마구 휘둘러댔다. 미친 야수의 무리들이 말벌떼처럼 밀려들어 사정없이 짓밟고 두들겨패는 바람에 적수공권인 혜림이와 동료들은 끝내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혜림을 막아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혜림은 무서운 공포감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이 일본이라는 야만의 땅에서 자기의 목숨이 끝장날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길바닥에 쓰러져있느라니 자기 몸을 뒤덮은 동료들때문인지 아니면 사정없이 짓이기는 매타작에 아픔이라는 신경감각도 마비되여서인지 점차 정신이 또렷해졌고 두려움이 가셔졌다. 아마도 정처없는 방랑길에서 수없이 겪은 고초가 연약한 그에게 어떤 힘을 주는지도 몰랐다.

여기서 비록 한몸이 형체가 없는 피주검으로 변한대도 이 쪽발이야만들이 만족이 아니라 수치를 맛보게 하고싶었다. 혜림은 피흐르는 입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저주를 받을 이 현대의 야만들! 우리를 죽일테면 죽여라!》

《이 독한 조선계집! 더 질러라, 더!》

화가 치밀어오른 꺽다리가 이젠 끝장을 보려는듯 침방울을 튕기며 혜림의 목을 거머쥐더니 드세게 조이기 시작했다.

이때 살찬 무리들의 광란적인 뭇매질속에서 겨우 일어선 피투성이의 로베르또가 전신의 기운을 다해 팔굽으로 꺽다리의 가슴을 힘껏 조겼다.

《헉, 허억!-》

타격이 얼마나 강했던지 녀석은 소리도 크게 지르지 못하고 헐썩이다가 통나무 넘어가듯 뒤로 꽝 하고 너부러졌다.

《혜림! 혜림! 쓰러지면 안돼! 정신을 차리라, 혜림!》

누군가가 목터지게 웨쳤다.

우악스레 날뛰던 무리들은 두목인듯 한 키다리가 송장같이 너부러지는것을 보자 악청을 돋구며 로베르또에게 일시에 몰려들었다.

자기의 무릎우에 혜림의 머리를 올려놓은 로베르또는 웃몸으로 그를 감쌌다. 만신창이 되여버린 그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혜림의 얼굴우에 뚝뚝 떨어졌다.

혜림은 점점 정신이 희미해지는 속에서 별안간 눈을 버쩍 떴다. 로베르또가 젖먹은 힘까지 다해 영어로 소리를 내질렀던것이다.

《숱한 나라들에서도 마음껏 부른 조선노래다!-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이놈의 땅에서는 부르면 안된단 말이냐?! 이 야만백정들아!-》

이렇게 웨친 로베르또는 기운이 진해 혜림의 몸우에 푹 꼬꾸라졌다.

두사람은 완전히 정신을 잃고말았다.

그들을 위안하듯 노래소리가 울렸다. 마리노와 와힘, 하싼이 비칠거리는 몸으로 일어나 어깨를 겯고 부르는 노래였다.

 

    …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면 오려나

    …

 

그들은 일본의 북단 항구도시에서 이런 무참한 폭행을 당할줄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짐작할수 있는것은 단지 조선노래를 불렀기때문이라는것뿐이였다. 그런데 왜 이 땅에서는 그것이 매를 맞아야 할 리유가 되는가 하는것은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골목길은 삽시간에 혜림과 동료들의 선혈로 물들었다.

육체를 지탱해온 마지막기운까지 깡그리 들부어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난 세 젊은이는 애달픈 선률이 끝나는것과 동시에 혜림을 포옹하듯 통채로 무너져내리고말았다.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