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6 회)

 제 4 장

 36

 

아침부터 실안개가 좀 서리는듯 하더니 이내 걷히면서 따스한 해빛이 강산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비온 뒤처럼 오존도가 높아지고 공기가 맑아지면서 기분이 상쾌해졌다.

리성원은 오늘로 평양방문일정을 마무리하게 된다. 래일은 평양을 떠나야 한다. 근 열흘이라는 이 나날에 올 때와는 달리 젊어지고 어깨가 쭉 펴진듯 한 희열까지 맛본 그였다.

그가 매일 아침과 저녁마다 호실 대형창유리로 바라보는 과학기술전당은 오늘따라 더욱 장쾌한 모습으로 안겨들었다.

직접 참관할 당시에는 완벽한 조형예술성을 갖춘 거대한 원자구조모양의 독특한 건축형식과 방대한 자금이 투자된 국가적인 첨단과학기술보급의 중심기지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였다고 할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에 대한 표상이 거대하게만 안겨드는것이 이상스러웠다.

그가 전당을 참관할 때 그곳의 일군은 나라에서 이곳은 광명한 미래에로 가는 렬차의 차표를 팔아주는 매표소나 같다고 말해주었었다.

범상하게 여겼던 그 말이 지금은 천근만근의 무게로 실려왔다.

그러고보면 자기가 아직 깊이 파악하지 못한 북의 정치철학에서 미래라는 개념은 매우 특수한 지위를 차지하고있는것이 틀림이 없었다.

이 나라에서는 모든것이 미래와 련관되여있다고 보는것이 정확할지도 몰랐다. 군사력은 두말할것 없고 정치와 경제, 문화도 그렇고 생활의 모든 구성요소들이 이를 위해 존재하거나 복종되고있는듯싶었다. 이들이 말하는 미래라는 개념에는 후대들만이 아니라 자기자신들의 세대도 포함되여있었다.

이 땅의 주인들이 자기의 세대가 이룩한 업적뿐아니라 그것을 침해하는 온갖 침략과 전횡을 추호도 용납하지 않을 정치군사적실력을 다음 세대들이 계승해야 할 유산으로 마련해나가고있는것이 그것을 실증하고있지 않는가.

미국과 서방이 파괴한 중동을 보자. 한때는 제노라고 하던 나라들도 미국의 압력과 유혹에 굴복하여 자체의 방위력을 포기한탓에 여지없이 짓밟히고 그들의 미래는 피난민들의 보따리짐에 얹혀있거나 서방의 사슬에 목매인 노예라는 운명으로 전락되여버리지 않았는가.

하지만 북은 어떠한가. 제힘으로 다져온 국방력을 미증유의 불가항력으로 더욱 억척같이 다져 오늘은 미국이 원하는 그 어떤 전쟁에도 준비되였다고 공공연히 선언하고있다.

이들이 가혹한 봉쇄와 제재속에서도 끄떡하지 않고 아름답게 가꾸어가고있는 미래는 결코 추상적이지도, 환상적이지도 않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배움의 글소리, 행복의 노래소리들은 어디서나 때없이 들을수 있고 수난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고아들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가장 힘있고 자랑스러운 부모를 가진 복동이들로 되였다. 그늘 한점 없는 그들의 얼굴처럼 이 땅은 눈부시게 밝고 걸음마다 경이적이며 보이는 모든것이 전부 아름답고 희망적이다.

보면 현실은 현실이로되 이 땅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꿈속에서도 믿지 않을 사실이며 진실인것이다.

이것을 두눈으로 확인한것만으로도 그의 평양방문은 성공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였다. 아쉬운것이 있다면 안해와 서해수가 이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것이였다.

창가에서 돌아선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은채 책상앞으로 다가가다가 우뜰 멈추어서고말았다.

그우에 놓인 한장의 외국신문이 집요하게 눈길을 틀어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리성원의 사색은 언제인가 보았던 미국잡지의 한 기사제목에로 육박했다.

《<한국>, 녀성<대통령>의 <침착성>의 결과물-<세월>호의 수장》이라는 이 기사를 쓴 필자는 유명잡지들에 자주 시사평론가로 등장하군 하는 미국인대학교수였다.

…《한국》인들이 현 《정권》에 항의하고있다. 《대통령》이 녀성이라서 그에게 가졌던 기대를 그들스스로가 저주하며 《당장 물러나라!》고 함성이다. 《세월》호에 부모들의 바램속에 환희에 들떠 올랐던 수백의 수학려행학생들이 그만에야 바다속에 수장되였다. 인차 손을 쓰면 얼마든지 살릴수 있는 애들이였다. 무정케도 해상경찰이 우의 지시가 없다며 내려앉는 《세월》호를 세월없이 소 닭보듯 흘러보낸 몇시간… 가슴이 한줌만 해 분분초초를 구조대책하기를 바라는 학부모심정엔 하품만 짜악! 《살려달라!》, 애들의 웨침이 아직도 들려오는데 아부재기말고 들어가라 물찬 선실에 들이밀고 문닫은 선장, 《대통령》이 곧 알아 조처할거라며 경찰은 학부모들 안심, 그 안심이 또 몇시간, 7시간이였다.

끝내 모두 수장되였다. 뉘탓인가. 뉘 죄인가. 아이적 기억은 없고 시집은 가본적 없으며 아이는 더구나 낳아 키워본적 없는 《대통령》의 《침착성》때문이리라.

들리는 말엔 《대통령》께서 시작한 미안을 채 끝내지 못했기에 《결론》을 못 주었다 한다. 이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

리성원은 그 숨막히는 고통의 순간을 이렇게 한가로이 돌이켜보는것만으로도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죄스러움을 금할수 없을것 같았다.

아! 정녕 땅은 한지맥으로 잇닿아있건만 북과 남의 현실은 어쩌면 이처럼 천양지차란 말인가.

리성원은 하도 답답하여 넥타이를 끄르고 샤쯔깃을 젖혀놓았다.

혜림이가 처녀가 아니라 어린 소녀가 되여 《세월》호에 갇힌 애들처럼 어디선가 살려달라고 부르짖고있는것처럼 느껴져서였다.

아, 혜림아. 지금은 어디에 가서나 헤매고있느냐.

초인종이 경쾌하게 울리며 홍송미가 들어와 면담시간이 다되였다고 알려주었다.

리성원은 곧 환한 미소를 지었다. 홍송미만 보면 울적했던 기분도 상쾌해지고 온몸이 날아갈듯이 거뜬해지는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우리 혜림이는 저런 웃음을 지은적이 과연 있었던가.

《그래, 마지막 면담인데 늦어서야 안되지.》 …

이날 면담에서는 리성원이 먼저 발언하였다. 그는 자기가 체류하는 전기간 성의를 다해준데 대하여 진심으로 사의를 표시하고 조선광명기술연구소측과의 협력 및 교류와 관련한 립장을 밝혔다.

《우선 제1단계로서 우리는 조선광명기술연구소측의 요구를 충분히 고려하여 <챠일드-6>의 설비납입, 기술이전과 관련한 실무사업에 착수할것이며 이를 위해 가까운 시일안에 조선광명기술연구소대표단이 카나다를 방문하여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토의를 진행하도록 건의하는바입니다.》

홍승혁과 광명기술연구소의 실무일군들은 서로 마주보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리성원은 대방측에서 자기를 주시하는것을 느끼자 마음이 더욱 안정되는듯 했다.

《나는 이번에 평양에 와서 조선광명기술연구소측의 기술적잠재력과 발전전망에 대하여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쌍방간의 합작이 우리 호상간에 매우 유익하며 또한 대단히 건설적이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하는바입니다. 우리 챠일드인쇄공업회사는 합작경영에 필수적인 여건들이라고 할수 있는 안정된 투자환경과 미래지향성이 담보된 하부구조를 갖추고있는 조선광명기술연구소측과의 합작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실을 내외에 선포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투자대방으로서의 책임성과 철저한 신용을 약속하는 의미에서 조선광명기술연구소측에 <챠일드-6>인쇄기 한대를 기증한다는것을 선언하는바입니다.》

리성원이 발언을 마치자 면담실안은 한동안 물을 뿌린듯 고요해졌다. 마치 텅 빈방처럼 정적만이 숨쉬고있는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이였다. 잠시후에 그의 말뜻을 리해한 홍승혁을 비롯한 광명기술연구소측 참가자들이 답례의 의미로 터뜨린 열렬한 박수소리가 면담실안을 뒤흔들었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홍승혁이 입을 열었다.

《리성원사장선생에게 한가지 묻겠습니다. 지금 미국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을 침해하는 각종 유엔제재만으로도 부족해 저들의 국내법까지 람용하면서 우리와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들까지도 일방적인 제재대상에 포함시키는 불법무도한 행위를 마구 일삼고있습니다. 우리는 챠일드인쇄공업회사의 합작의지와 성의를 귀중히 여기지만 이것때문에 회사가 미국의 파렴치한 제재대상이 되여 엄청난 피해를 입는것을 가만히 보고 앉아있을수가 없습니다. 나는 사장선생이 자기의 결심을 다시 고려해보았으면 합니다. 만일 사장선생이 결심을 바꾼다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섭섭하게 생각지 않을것입니다.》

리성원은 눈을 크게 떴다. 홍승혁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 이슬 같은것이 서서히 맺히는것이 알렸다.

그는 단호히 머리를 가로저으며 더 큰소리로 말했다.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제재의 칼을 빼든다고 해도 이 리성원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내 몸안에도 조선민족의 피가 흐르고있기때문입니다!》

또다시 방안이 떠나갈듯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자리에서 일어선 홍승혁과 리성원은 서로 손을 뜨겁게 잡았다.

면담을 마치면서 쌍방은 두사람이 서명한 합의서를 서로 교환하였다.

참가자들의 우렁찬 박수속에 홍승혁과 리성원은 서로 굳게 포옹하였다.

광명기술연구소측에서는 이날 점심시간에 면담성과를 축하하는겸 래일 평양을 떠나는 리성원을 환송하는 의미에서 동석식사를 마련했다.

축배의 잔을 찧은 리성원이 홍승혁에게 조용히 말했다.

《기쁜 하루는 짧다더니 옛 친우와의 뜻깊은 상봉이 이렇게 늦어지게 된것은 전적으로 자네의 책임일세.》

《허, 이 기쁜 순간에 내가 울라지보스또크전시회때부터 모르쇠를 한 <죄>를 따질셈인가.》

《어쨌든 책임에서 벗어날 생각은 그만두는게 좋겠네. 이젠 솔직히 말할가? 난 자네의 초청장을 받고 오면서 내가 평양에 가서 대체 뭘 얻을수 있을가 하고 생각했댔지.》

《호오, 그래서…》

홍승혁이 흥미있다는듯 대답을 재촉했다.

《그런데 머리속에 꿍져두었던 애초의 타산은 다 어디론지 날아가버리고 무상기증이라는 청천벽력같은 합의서를 떡 채택했거던.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것을 해냈단 말일세.》

《귀신도 찜쪄먹을 타산가인 자네답지 않은 처사지.》

홍승혁이 이죽거리자 리성원은 대번에 손을 내저었다.

그를 정겹게 바라보던 홍승혁이 입을 열었다.

《이런 말이 있지. <진정으로 아름다운것이야말로 가장 영원한 기쁨이다.> 어떤가?》

리성원의 얼굴에 어린애와도 같은 미소가 피여올랐다.

《거참 훌륭한 말이야. 그럼 이 땅과 이 땅우에서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하여 들자구.》

리성원은 즐겨하지 않는 술이지만 마음놓고 마셨다.

《고맙네. 자네와 자네 가정의 행복을 위해 들자구.》

홍승혁이 그의 빈 잔에 다시 술을 부으며 말했다.

《고맙네.》

이렇게 대답을 해놓았으나 리성원은 속으로 가슴이 알알해왔다.

이 친구는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맛보고있을가?

《가정의 행복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난 지금껏 사회제도가 어떠하든 그것은 가정의 행복과는 크게 무관하다고 보아왔지. 실지 보면 행복이라는게 뭐겠나. 소위 철학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작은것에 만족하는자가 행복한자라고 하지만 어쨌든 행복이란 물질적풍요에서 이루어지는것이 아니겠나. 한마디로 돈이 없으면 이루어질수 없는거지. 빈 손가락을 빨면서야 행복이라는 말이 나오지 못할테니까.》

리성원은 자기가 지금 친구에게 자기의 행복관을 설교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홍승혁은 그에는 개의치 않는듯 했다.

《그런데 평양에 와서 보니 가정의 행복과 사회제도가 불가분리성을 띠고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실은 행복이란 자기를 위한것인데 북에서는 그것을 남을 위한데서 찾는단 말일세. 내가 평양에 와서 만나본 사람들이 대개 다 그러하더군. 이걸 리해한다는것이 나로서는 참 난사란 말일세. 아까 면담때 자네도 제 걱정보다 내 처지를 더 생각해주는것 같더군. 분명 그것이 자신이나 광명기술연구소측에 어떤 경제적손실을 주겠는지 모르지 않을 자네가 말일세.》

리성원은 리해가 안된다는듯 머리를 저었다.

《그래서 사장선생께서 심한 모욕감을 느끼셨다는건가?》

홍승혁이 시물시물 웃으며 롱을 건넸다.

《만일 자네가 옛친구가 아니라면 나는 모욕이상으로 여겼을거네. 하지만 자네의 말에서는 제스츄어가 아니라 진정이 풍기더군. 그렇게 남들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니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주저없이 헌신하는거야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

리성원의 말에서는 간소한 호기심이 아니라 지꿎게 파고들어서라도 반드시 무엇인가를 찾아낼 의기까지 풍기고있었다.

《난 가정의 행복이라는 말을 잊고있지만 자넨 그것을 느끼고있는것 같단 말일세. 친구간에 이건 좀 불공평하다고 할수 있지 않을가?》

《저명한 챠일드회사의 사장선생이 친구의 행복을 시샘하다 못해 강짜까지 부리는군. 됐네. 생각 같아서는 단칼로 썩둑 잘라버리고싶지만 수십년만에 만난 옛친구의 사정을 고려해서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초청하려고 하니 그때 가서 가정의 행복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론쟁을 좀 해보자구.》

홍승혁이 분위기를 돌려세우려고 화제를 바꾸었다.

《그게 정말인가? 그렇다면 그 말부터 먼저 할것이지. 사실 난 자네가 뽀트를 타면서 그 말을 했을 때 외교적인 언사로만 생각했었지. 아무렴, 어딜 가도 손해보는 일이 없는 이 챠일드사장을 좀 기쁘게 해주면 못쓴다던가. 하물며 평양에 와서 멋진 합의를 이룬 이 순간에 말일세. 자넨 역시 어제나 오늘이나 내 친구지. 허허허!》

갑자기 마음이 홀가분해진 리성원은 기분이 몹시 만족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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