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4 장

 39

 

4월의 평양이다. 평양은 완연한 봄계절이다. 이쪽을 보면 울긋불긋하고 저쪽을 보면 파릇파릇하며 온갖 초목들이 봄단장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것들은 이 계절의 특전을 지니려는듯 다투어 피여나며 향기를 뿜는다.

리성원의 일행이 탄 승용차행렬은 벌써 평양시내로 들어서고있었다.

방금전에 평양국제비행장에 내린 리성원부부와 서기는 홍승혁과 송미 등 마중나온 사람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다.

리성원의 소개로 송미를 만난 하의영은 황홀한듯 입을 벌렸다. 분홍색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송미는 마치 새벽이슬을 머금은 한떨기의 진달래를 보는것 같았다.

《정말 우리 혜림이를 보는것 같구나. 갈데 없는 우리 혜림이야.》하며 실성한듯이 곱씹어 외우며 두팔을 벌리고 송미를 꽉 껴안는 하의영의 눈가에 이슬이 고였다.

《이번에도 우리 송미가 자네일행의 안내를 맡았다더군.》

하의영과 인사를 나눈 홍승혁이 리성원에게 알려주었다.

《그것 참 잘됐군. 정말 기쁘네.》

리성원은 달리는 차창밖에서 차안으로 실려드는 봄의 훈향을 페장깊이 들이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러다 솟굴듯 흠칠했다.

《아니?!》

려명거리, 이전에 왔을 때 시작되던 거리건설이 완공된것이였다.

《아니, 그새 저렇게?!》

《그래, 1년도 안 걸렸네.》

놀라는 리성원에게 홍승혁이 말해주었다.

리성원은 크게 고개를 끄덕일뿐 말이 없었으나 벌려진 입만은 다물지 못했다.

《만리마가 옳군! 꼭 맞는 표현이야!》

리성원의 말은 시 같기도 했고 구호를 웨치는듯도 했다.

봄은 해마다 찾아오건만 평양에서 맞이하는 봄향기엔 왜 이리도 취하는것일가.

《다들 사진들을 찍는데 자넨 생각이 없나? 제수님도 기념이 되게 한장 남기는것이 어떤가요?》

홍승혁의 말에 리성원이 《반발》했다.

《허, 집사람이 어째서 제수가 되는가?》

그에 홍승혁이 즐겁게 웃다 퉁을 놓는다.

《허허, 잊었는가보군. 정확히 자네야 나보다 이십이일 생일이 늦지 않나. 달수로 보면 한달이고…》

홍승혁의 말에 모두가 흰 이를 드러낸다.

《그렇던가? 좋네, 난 절대찬성이요. 당신의 생각은?》

남편의 말에 하의영도 고개를 끄덕인다.

앞서 도착한 승용차들과 뻐스들때문에 주차할 자리가 비좁아 할수없이 그들의 차는 수십메터나 떨어진 록지곁에 정차할수밖에 없었다.

한발 먼저 내린 수십여명의 외국인들이 사진기와 손전화기들을 들고 자리를 차지하느라 야단법석이였다. 자세히 보니 비행기를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이였다.

《외국인들이 많이도 왔군요.》

하의영이 분주히 돌아가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태양절을 앞두고는 특별히 붐비군 한답니다. 외국의 축하대표단들이 많이 찾아오는데다가 김일성화축전과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는 인사들과 예술인들도 적지 않고 여기에 관광객들과 기자들까지 겹치니까요.》

송미가 친절하게 설명해주자 그는 머리를 끄덕거렸다.

《해외동포들도 많이 찾아오겠지?》

리성원이 넌지시 물었다.

《그러문요. 정말 많이들 조국을 찾아옵니다.》

리성원은 내심 놀라왔다. 지금 미국과 서방은 북을 고립질식시키기 위해 얼마나 악선전에 열을 올리고있는가. 살인적인 제재와 협박, 공갈은 또 얼마나 악착한가. 그런데도 세계는 평양을 끊임없이 찾아오고있는것이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데도 외국인들은 어디부터 먼저 찍으면 좋을지 몰라 허둥거릴뿐 선뜻 렌즈를 겨누지 못한다.

손채양을 하고 수십메터높이의 평지붕들과 로대며 사방으로 열린 무지개형대문을 주의깊게 바라보던 하의영이 누구에게라 없이 소리쳤다.

《이건 에뜨왈(빠리에 있는 개선문의 이름)보다 더 굉장하고 훌륭하군요. 정말 걸작이예요!》

《꽃속의 개선문이라… 꼭 한폭의 그림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리성원의 서기도 경탄을 쏟아내더니 손전화기를 꺼내들며 촬영에 뛰여든다.

주위에서 꽃바다를 보며 좋아라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애어린 동양처녀들이 인상깊게 안겨왔다.

송미가 그들에게 다가가 몇마디 주고받고는 돌아와 알려주었다.

《저 녀손님들은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참가하려고 윁남에서 온 가무단배우들이랍니다.》

리성원은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다가 곁의 하의영에게 속삭이듯이 말을 건넸다.

《저 녀배우들을 보니 혜림이 생각이 나는군. 그애도 평양을 찾아왔다면 얼마나 좋았겠소. 하기야 고상하고 문명한 조국인민들이 배꼽을 드러내고 엉치를 흔들어대는 그런 악단을 반겨줄리가 있겠소만…》

《아마 들여놓지조차 않을지도 모르지요.》

하의영은 아쉬움의 표시인듯 머리를 살레살레 흔들었다. 그러면서 남편의 팔을 살며시 꼈다.

《좋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송미가 사진기를 내리며 소리쳤다. 어느새 그들내외를 찍은것이였다.

리성원은 서글픈 인상을 담았을가봐 은근히 걱정스러웠으나 더 내색을 하지 않고 곁으로 다가오는 서기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도 나와 외국을 많이 다녀봤지. 그래, 평양의 첫인상이 어떤가?》

《평양녀성들이 마음에 듭니다. 미인들입니다.》

《으응?!… 허, 자넨 자기의 젊음을 그런 식으로 자랑하려는건가.》

《글쎄, 사장님 좋을대로 생각하십시오. 지금 아시아나 중동의 녀성들도 서양화, 유럽화되여가던데 이 나라의 녀성들은 자기 민족의상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것이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것은 아무리 민족옷이라지만 조선치마저고리가 이들에게 기막히게 잘 어울리는것입니다. 같은 민족이래도 서울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옷을 선호하고 이국풍의 누렇거나 빨간 머리를 흉내내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단 말입니다. 참 개탄할…》

《음- 그게 단가?》

《또 있습니다. 사람들의 밝은 모습입니다. 특히 아이들의 생기발랄하고 활달한 모습들은 쉽게 잊혀질것 같지 않습니다. 이걸 보아서는 도대체 고강도의 제재를 받는 나라가 맞는가 하는 의문이 들 지경입니다.》

《자넨 챠일드회사 사장의 서기다운 안목을 지니고있군그래. 괜찮아!》

리성원이 만족해하는것을 본 서기의 얼굴에 웃음발이 비꼈다.

호텔의 호실에 려장을 푼 리성원내외는 송미와 마주앉았다.

《혜림이한테서는 아직 소식이 없나요?》

송미가 먼저 물었다.

리성원과 하의영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대답을 고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너무 걱정말아. 이제 어디선가 나타나겠지. 그래도 너를 보니 그애를 만난것처럼 내 마음이 기쁘구나.》

하의영이 송미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답했다.

리성원이 분위기를 바꿀겸 송미의 팔을 끄당기며 안해가 들으란듯이 말했다.

《송미야, 이번 체류기간에 일정조직을 멋들어지게 해서 저 카나다할머니를 한 이십년쯤 젊어지게 하자꾸나. 가능할가?》

《으음- 카나다에 살지만 나도 조선녀성이예요.》

놀랍게도 하의영이 틀을 차리며 말했다.

《아하, 이거 안됐소. 옳소, 조선녀성!》하고 리성원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다음날 오후 김일성화축전장을 깊은 감명속에 돌아본 리성원과 하의영은 커다란 충격을 안고 호텔로 돌아왔다.

《세상에 이런 신비하고 매혹적인 꽃이 있다는것을 왜 몰랐을가요?》

하의영이 아쉬운듯이 혼자 뇌였다.

《그래서 희귀하고 출중한 꽃이라는게 아니요. 내 보기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는 세계원예계의 최우수꽃이라고 해도 틀림이 없을거요. 당신도 아까 보았지? 저 해수네 동포조직에서 키워서 보내온 꽃들도 있지 않았소. 정말 성의가 대단하더군.》

리성원은 갑자기 H시에 두고 온 서해수를 생각하자 미안한감이 들었다. 평양에 함께 가자고 철석같이 약속했던 그는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조국방문을 부득불 미루지 않을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호텔 1층홀에 들어서는데 기다리고있은듯 서기가 바삐 맞아주었다. 전에없이 밝은 모습이였다.

《사장님, 이제 열흘후면 <챠일드-6>이 평양에 도착하게 되여있습니다.》

리성원과 하의영의 얼굴이 대뜸 밝아졌다.

《그러면 그럴테지. 좋네, 아주 좋아!》

리성원이 흡족해하는데 서기가 아직 할 말이 더 있다는듯 입을 벌렸다.

《기쁜 소식이 더 있습니다. 왈터완구회사 사장님이 전화로 사장님께 알려드리라는 말입니다.》

《뭐, 해수한테서?!》

서기는 리성원의 목소리가 커지자 놀랐는지 긴 목을 한순간에 움츠렸다.

《저, 며느리… 며느리가 집에 돌아왔답니다.》

《며느리가… 그게 사실인가?》

리성원은 숨이 차오르는것을 의식하며 거듭 물었다.

《다시 천천히 말해봐요. 우리 며느리가 어쨌다구요?!》

하의영이 안타깝던 나머지 남편앞에 나서며 지청구를 했다.

《며느리가 사장님과 부인께 죄송하다고 하면서 그동안 집걱정은 마시고 부디 건강하여 조국방문을 잘하고 오시라고 하더랍니다.》

《그래, 그랬단 말이지!》

《적은이의 말이 사실일가요? 그애가 정말 집에 돌아왔을가요?》

하의영의 눈에서는 당장 눈물이 뿜어나올것만 같았다.

《당신두 참, 서해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질 않소. 그 사람이 늘 말하듯이 언제 거짓말을 한적이 있소?》

리성원은 건울음이 뒤섞인 목소리로 안해를 위로해주었다.

혜림아, 넌 지금 어디에 가있느냐. 꿈에서도 그리는 너다. 어서 집으로 돌아와주렴. 네 어머니도 돌아왔는데 너만은 어째서 돌아오지 못하는거냐.

잠시후 그들 량주가 좀 진정되기를 기다리던 송미가 알려주었다.

《선생님, 이제 한시간후에 인민문화궁전에서 진행되는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종합공연을 관람하게 됩니다.》

《그래? 거참 반가운 소식이군. 참, 너희 할아버지랑 할머니, 또 아버지, 어머니도 오시냐?》

《예, 공연장소에서 만나기로 다 약속이 되여있어요. 그리고 공연관람이 끝나면 우리 집으로 가시자요.》

송미가 볼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여보! 당신도 방금 송미가 한 말을 들었지? 오늘은 어쩌면 이리도 기쁜 일만 생길가!》

리성원이 안해를 바라보며 천진스레 웃어보였다.

《당신두 참, 이제야 알아가지고 뭘 그리 기뻐하세요. 난 엊저녁에 벌써 송미에게서 오늘일정을 다 들었는데요 뭐. 그래서 당신의 입에서 언제 또 에덴동산이라는 말이 나올가 하고 기다리던중인데요.》

하의영이 순진하다는듯 나무람조로 말을 받았다.

《아니 그럼, 이 대표단 단장도 모르게 일정토의까지 다했단 말이요? 그리고 아직 본적도 없고 또 볼수도 없는 에덴동산소린 왜 하는거요? 여긴 에덴동산이 아니라 천국이란 말이요, 천국!》

리성원의 별안간 높아진 목소리였다.

《송미야, 거 호텔 주방에 좀 알아봐라. 저 단장할아버지가 점심식사때 자신게 혹시 게사니고기가 아닌가고 말이다.》

하의영이 배포유하게 대꾸하자 송미가 허리를 부여잡고 웃었다.

오후 다섯시경에 리성원일행이 인민문화궁전앞에 도착하였을 때 이미 홍승혁의 가족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있었다.

감격적인 상봉들이 있은 후 하의영은 홍승혁과 김춘조에게 다시한번 깊은 사의를 표시했다.

《홍소장선생님이 우리가 평양에 도착한 이튿날에 저희들과 함께 성천에까지 내려가서 아버님의 유골함을 안치해드렸으니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런 말씀 마세요. 60여년만에 고향에 오신 아버님이나 혜림이 할머니의 심정이야 오죽하겠어요. 아마 아버님도 정말 오래간만에 따뜻한 고향의 정을 느끼며 편안히 잠드셨을거예요.》

김춘조가 위안의 말을 해주자 하의영은 눈물이 그렁하여 가슴을 내리쓸었다.

송미가 거듭 재촉을 해서야 그들은 모두 궁전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시간이 림박한듯 객석안은 관람온 사람들로 차있었다.

리성원은 조선치마저고리를 산뜻하게 차려입은 안내원녀성이 가져다준 공연소개표를 훑어보았다. 흥미를 가지고 차례로 공연종목을 따라 내려가던 그의 눈길이 문득 멈추어섰다. 《봄빛》악단이라는 출연단체의 이름이 눈에 띄웠던것이다.

거 악단의 이름이 참 좋군. 《봄빛》이라…

리성원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이마를 문지르다 곁에 앉은 안해를 바라보았다. 하의영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있는것 같았다.

잠시후 관람석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더니 무대막가운데로 녀성소개자가 나타나 따뜻한 인사말을 하고는 출연단위들을 소개했다.

드디여 무대막이 열리고 외국의 성악가수들이 조선노래를 부르는것으로 공연이 시작되였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등 세계의 5대륙에서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각국의 예술인들이 준비해온 공연종목들은 예상외로 수준이 높았고 감동을 자아냈다.

얼마쯤 있다가 관람석의 조명이 켜지고 15분정도 휴식한 후에 공연의 후편을 시작하게 된다고 소개자가 알려주었다.

휴계실에 나온 리성원이 안해에게 은근히 물었다.

《여보, 공연이 어떻소?》

《공연프로들이 다 괜찮군요. 이름만 요란한 국제콩클보다 특색도 있고 종합적이면서도 기량이나 형상수준도 대단해요.》

《음, 내 보기에도 그렇소.》

후편공연이 시작되자 말레이시아에서 온 프레스꼬하모니카중주단이 무대에 올랐다. 발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숭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공연이 끝나자 감동의 박수갈채가 극장을 진감했다.

중주단의 퇴장과 동시에 무대에 나온 소개자가 뜻밖에도 지금까지의 정숙한 자세를 허물고 새로운 방식으로 소개를 했다.

그의 말이 이제 출연하는 《봄빛》악단은 각이한 나라에서 온 음악가들로 조직된 악단이므로 국적을 소개할수 없지만 비록 몇명뿐이라도 세계일주공연까지 진행한바 있는 유명악단이라는것이였다.

객석에서 즐거운 웃음의 파도와 함께 열렬한 박수가 터져올랐다. 소개자가 무대에서 사라지자 흐름식무대를 타고 네명의 남성악사들이 제각기 악기들을 갖추고 등장했다.

전기기타를 멘 한 남성가수가 객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악사들과 호흡을 맞추는듯 손짓을 하는것이였다. 잇달아 발장단 비슷한 소리가 박력있게 울리는가싶더니 노래소리가 울려나왔다.

 

    우리는 희망했네 자유와 정을

    목놓아 불러보며 둘러를 봤네

    동방에서 깃들 곳 우리 찾았네

    우리의 갈망 봄 봄을 찾았네

 

영어로 부르는 노래였지만 량옆 전광판으로 번역가사가 흘러나왔다.

젊은 남성가수는 단절짜리 노래를 반복하여 부르고나서 손을 힘있게 쳐들었다. 객석에서 울린 박수소리가 채 잦아들기도 전에 조선치마저고리를 입은 녀배우가 마이크를 쥐고 나섰다.

리성원이 눈을 감고 가사의 뜻을 음미해보는데 하의영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소개자를 바꿨군요. 가만, 저 배우가 우리 혜림이 같지 않아요?》

《무슨 꿈같은 소리요?!…》

송미가 방그레 웃으며 한쪽눈을 끔벅해보이는 바람에 그들은 자중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거나말거나 무대에 나선 녀배우는 객석을 향해 다소곳이 허리굽혀 인사를 했다.

존경하는 평양시민 여러분, 우리는 이 아름다운 평양에 처음 왔습니다. 우리 <봄빛>악단의 이름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롱>이라는 이름으로, 다시말하면 <갈망>이라는 의미로 불리운 로크악단이였답니다. 저는 조선사람입니다. 리혜림이라고 합니다. …》

《여보!》

하의영이 다급히 찾았다.

리성원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며 안해의 손을 더듬어쥐였다. 그리고는 다른 한손으로 단우에 놓여있는 관람용망원경을 들고 눈에 가져갔다.

《우리는 세계 여러 대륙의 청년음악애호가들로 조직된 악단입니다. 앞서 부른 노래의 가사는 우리들의 심정을 그대로 담은것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돌고돌면서 피눈물도 흘려보았고 지어 죽음의 나락속에 빠져들면서도 노래로, 기악으로 우리들이 갈망해온 인간의 정과 사랑이 샘솟고 래일의 희망이 활짝 꽃펴나는 새세상을 애타게 찾았습니다. 나중에는 그런 세상이 과연 있기나 할가, 있다면 어디일가 하는 절망과 환상의 세계에서 오락가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보았습니다. 그리고 찾았습니다. 여기 평양에서 진정한 봄의 고향을, 화창한 미래의 봄을…》

녀배우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종내 머리를 숙였다. 누군가의 손벽치기로 시작된 박수소리가 세차게 울려퍼졌다.

그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녀배우가 다시 머리를 쳐들고 울먹이며 웨쳤다.

《우리는 우리들이 그처럼 애타게 바라마지 않던 봄의 고향을 찾은 끝없는 환희와 격정을 담아 여기 평양에 와서 갓 배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려고 합니다.》

또다시 요란한 박수소리가 울리는 속에 남성가수들이 유정한 선률을 타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울려라

    사람들 화목하게 사는 내 조국 한없이 좋네

    우리의 아버진 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혜림아.》

《얘야.》

리성원과 하의영은 저도 모르게 목메인 소리로 손녀를 불렀다.

곁에서 홍승혁도, 송미도 눈굽으로 손을 가져간다.

(끝내 왔구나. 너도 평양을 찾아왔구나. 내 손녀야, 용타!)

리성원은 당장 무대로 달음박질치고싶은 마음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동무들 다같이 노래를 부르자 손풍금소리 맞추어

    천리마 나래펴는 내 조국 백화가 만발하였네

    우리의 아버진 일성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노래중간쯤부터 박수로 화답하던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노래를 합창했다. 리성원은 따라일어나 박수를 치며 관람석을 둘러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눈가를 훔치면서 목청껏 부르고있다. 홍승혁내외며 아들, 며느리도 열정을 담아 목소리를 합친다.

배우들이 아닌 저들이 어쩌면 저리도 감정을 담아 부를수 있는가. 분명 이 노래는 사랑과 정의 신화를 담은 찬가임이 틀림없다. 복받은 이 땅이여, 이 땅우에서 삶을 꽃피워가는 그대들이여! 마음껏 노래를 부르시라! 그 아름다운 인간사랑의 찬가가 세상 끝까지 울려가게 하라!…

많은 관객들이 꽃다발들을 들고 무대로 오르고있었다.

홍승혁이 미소를 짓고 리성원에게 건넸다.

《어서 무대에 올라가 혜림이를 축하해줘야지.》

리성원은 눈물을 훔치고있는 안해의 잔등을 떠밀었다. 왜서인지 자기에게는 저 휘황한 무대에 오를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였던것이다.

그의 심정을 눈치챈듯 하의영도 머뭇거렸다. 하지만 리성원이 거듭 재촉하자 혼미한 의식속에서 헤매이는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무대를 향해 허둥지둥 걸어나갔다.

혜림이는 아직 할머니를 발견하지 못한듯 관객들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고있었다. 무한한 행복감에 젖은 웃음이였다.

손녀의 앞에 다가간 안해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혜림이가 와뜰 놀라며 뚝 굳어졌다.

리성원은 귀청을 찢는 관중들의 박수소리속에서 혜림이가 자기가 있는쪽을 향해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을 흔드는것을 보았다. 그러던 혜림이가 돌연 할머니의 품에 와락 안겨버린다.

리성원은 마음속으로 부르짖었다.

(혜림아, 네 가슴속에 품고있던 갈망은 우리 온 가족의 갈망이자 절절한 소원이였구나. 그것을 찾아 뿔뿔이 방황하던 우리 가정은 드디여 이 평양에 와서 다시 모여앉고 마음의 그늘도 완전히 가시게 되지 않았느냐.

아, 평양! 따사로운 봄빛이 한껏 넘쳐나는 나의 조국이여!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흉내낼수도, 지어낼수도 없는 봄의 고향이여!)

격동된 사람들은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오래도록 보냈다.

리성원의 두볼로 후더운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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