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5

 

땅크와 군대들이 서울거리를 뒤덮은 후부터 항쟁은 어느덧 하강선을 긋기 시작하더니 어제오늘은 작은 고을들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소충돌을 제외하고는 어떤 시위도 남조선 전 지역에서 자취를 감추어버린듯 하였다.

서울거리는 재빛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대낮인데도 으스름하였다. 득의해진 경찰놈들은 차들까지 총동원하여 《주모자》의 체포구금에 혈안이 되고있었다. 체포한 시위자들에게는 전례없는 포악한 고문을 들이댔다.

탈환은 했지만 공급로가 없는 병원에서는 약이 모자랐고 수혈할 피가 없었으며 부상자들을 먹일 식량이 떨어졌다. 부상자들에게 총탄을 퍼붓는 《정부》는 있어도 의약품과 먹을것을 마련해줄 의로운 《정부》는 없는것이다.

의대생들은 주머니를 털고 온종일 거리를 헤매다니며 약방마다 문을 두드렸으나 차고넘친 부상자들의 수요를 채울수 있는 의약품의 절반도 사들이지 못하였다. 그리고 사올 돈도 인제는 없다.

《지하실 약창고의것까지 다 써버렸는가요?》

누군가가 정림간호장에게 그렇게 묻자 당장 수술을 해야 하는 부상자를 놓고 약함을 뒤지고있던 정림은 망연하게 앉아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리였다.

《맥드낼드놈이 쇠를 넘겨주지 않아…》

맥드낼드는 ㅊ대학교 명예리사이며 의대병원 명예원장이였다. 그리고 그는 신부이며 신학교 교장이여서 언제나 검은 도포를 입고 다녔다. 원장이기는 하였지만 병원에 오는 일은 극히 드물었고 무슨 일이 있을 때면 부원장이 그에게로 찾아가서 상론하군 하였다. 그렇지만 직원들을 표창한다든가, 크리스마스연회에 초대한다든가 할 때에는 반드시 자기가 직접 병원에 왔다. 그렇게 언제나 좋은 일만 가지고 오는것이였으나 사람들은 그를 존경한다기보다 두려워하였다. 그가 병원에 나타나는 날이면 온 병원안이 숨을 죽인듯이 조용해진다. 도포를 휘감은 그의 커다란 체구가 복도를 거닐 때면 어린 간호원들은 공연히 마음을 조이군 한다.

그 맥드낼드는 18일 저녁 첫 시위가 일어났던 날 자기 족속의 의료일군들에게는 전부 휴가를 주고 지하실열쇠까지도 다 걷어들였던것이다.

《맥드낼드놈한테 찾아갑시다. 약창고는 꼭 열어야 해요.》

밑바닥이 드러나보이는 약함을 우울한 시선으로 지켜보고있던 간호원이 누구에게라 없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하였다.

《요즈음 그의 집에도 정문에 엠피가 지키고있어.》

정림의 대답이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때에는 의사들도 학생들도 맥드낼드의 그 횡포한 처사를 어떻게 할수 없는 운명적인것으로 감수하면서 이에 대해 항거를 할 생각을 하지 못하였었다.

그러나 의약품도 돈도 피도 모자랐다. 그럴 때 누가 먼저 말을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의대생들은 거리에 나가 모금운동을 하자고 하였다.

《우리에게 물을 떠다주고 주먹밥을 날라다주고 기와장을 건네주던 시민들을 믿는거야.》

부상자들의 운반과 치료를 위해 모두 흰 위생복을 입고 동원되여있던 의대생들은 《모금함》이라 쓴 흰 함 하나씩을 메고 거리에 나섰다. 거리는 폭풍이 지나가버린것 같은 시위의 흔적과 저벅저벅하는 군화소리, 경찰백차의 새된 경적소리뿐이였다. 흰 위생복의 그들은 그 텅 빈 거리 한모퉁이마다 두셋씩 서있었다.

많지 않은 행인들은 초조한 낯빛으로 묵묵히 걷는다. 멀지 않은 곳에 서있는 차량곁에서 몇놈의 순경놈이 지나는 행인들을 모조리 수색하고있다.

《네놈이 반공회관에 불을 질렀지?》

《네녀석이 파출소에서 수류탄을 꺼냈지?》

언뜻하면 살멱을 잡고 따귀를 때리고 차안에 마구 밀어넣는다. 순경놈에게서 놓여난 행인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모금함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모금함에 씌여있는 글발을 유심히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였을지도 모를 죽음을

    바로 우리가 흘렸어야 했을 피를

    대신해준 용사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아낙네들은 저자바구니밑에 남은 거스름돈을 몽땅 꺼낸다. 한 로파는 고름끝에 꽁꽁 싸매둔 돈을 풀어내려고 다 삭은 이발로 연신 매듭을 물어뜯는다.

멀끔한 중년남자들도 서슴없이 지전뭉치를 털어냈다. 4월은 정의감의 격앙으로 사람들의 마음이 승화되였던 나날들이기도 하였다.

구두닦이소년 하나가 도구통을 멘채 가까이 온다. 지혜는 소년의 키에 맞도록 모금함을 멘 허리를 굽혀주었다. 때묻은 소년의 손에 10환짜리 석장이 쥐여져있었다.

《한장만 넣어.》

지혜가 그의 작은 손을 가만히 밀어젖혔다.

《다 넣는거예요.》

소년은 아래입술을 깨물며 원망스러운듯이 지혜를 보았다.

《고마와!》 하는 지혜의 목소리는 떨렸다.

아까부터 멀찌감치에서 모금함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서있던 거지아이 하나가 문뜩 재빨리 다가왔다. 무엇인가 겁나하면서 그리고 흥분에 떨면서 꼭 쥐고있던 작은 주먹을 지혜앞에 펴보이며 물었다.

《이거 넣어도 되지요?》

얼마나 오래동안 벼르면서 쥐고있었던지 손바닥우의 지전 한장이 땀에 절어 꼬깃꼬깃 구겨져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움과 자랑과 구슬픔이 가득찬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는것이였다. 지혜는 얼른 말이 나오지 않아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고마와요!》

돈을 넣는 편에서 고맙다는것이다. 인간된 자랑을 가지게 해준것이다. 영애가 모금함의 멜빵을 두손으로 꽉 그러쥐고 지혜에게 부르짖었다.

《이런 아름다운 마음들이 짓밟히고있다는것은 정말이지 부당해!》

 

병원 현관광실에서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있었다. 여러놈의 형사녀석들이 정림간호장주위에 빙 둘러서있었다. 정문곁에 두놈, 기둥곁에 두놈, 마주선 놈까지 다섯놈인데 마주선 놈이 빳빳한 종이 몇장을 휘둘러대며 소리치고있었다.

《자, 볼테면 봐라! 구속령장이다!》

거리에서 방금 도착한 지혜와 그의 동무들은 한쪽구석에 모금함을 내려놓고 무엇인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해서 정림을 도우려고 그 자리에 서있었다.

《김기태가 틀림없이 여기 있을것이다. 그녀석은 수류탄으로 경찰들을 죽였단 말이다.》

《여기는 병원이예요. 그리고 저는 귀머거리가 아니예요. 조용히 말하세요.》

정림간호장은 습관된 낮은 소리로 우울하게 말하고있었다. 제도와 질서에 엄격한 간호장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몹시 랭혹하였다.

《야! 오래간만인걸!》

뒤에 섰던 형사놈이 정림이앞에 불쑥 나서면서 난데없이 알은체를 하였다.

한순간 놀람과 당황과 노기와 착잡한 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정림간호장의 표정을 스쳤다. 그러나 곧 침착해진 그의 얼굴에는 멸시에 찬 조소만이 남았다.

《따따부따말고 범인을 내놓으란 말야!》

그놈의 송곳으로 찌르는듯 한 목소리다. 어깨를 잔뜩 추켜올리고 목이 그 어중간에 움푹 패여들어간듯 한 음침한 사나이였다. 서로를 쏘아보는 두사람의 사나운 눈길은 어느쪽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정림간호장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침착하였다.

《당신같은 사람에게 리치를 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소만 여기는 병원이요. 바로 당신들이 쏘아눕힌 부상자들이 죽어가고있어요. 령장이 아니라 감옥을 떠온대도 당신들을 한발자국도 들여놓을수 없지요.》

《흥, 이년이 아직도 버릇을 못 고쳤구나!》

그 형사놈은 주둥이와 두볼을 실룩거리면서 호주머니에 질렀던 손을 천천히 빼들었는데 별안간 날듯이 달려들어 간호장의 두뺨을 번개치듯 후려갈기는것이였다. 피할길 없던 정림은 비칠거리면서 그 자리에 쓰러졌다.

지혜는 정신없이 달려가 간호장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짓이예요?!》

권력, 폭행, 남조선하늘밑에서 이런 광경은 결코 드물지 않다.

《어랍쇼, 이것들은 또 뭐야!》

한놈이 정림이우에 엎드린 지혜의 옆구리를 발길로 찼다. 한번의 타격이였지만 정신이 아찔하도록 아픔은 모질었다.

그때였다. 그러는 동안에 정림간호장은 두 형사놈에게 팔을 붙들리운채 소리를 친다.

《형사놈들이 왔어요! 사람들을 치고 때려요!》

병원이 떠나갈듯 한 큰소리였다. 규률에 그토록 엄격하던 간호장의 목소리였다.

두놈의 형사가 정림을 끄당겨 란장으로 두들겨팼다.

그러자 정림의 웨침소리를 들은 2층복도와 병실마다에서 적의에 찬 소음이 터졌다. 사람들은 경찰이란 말만 들어도 격분에 몸부림쳤다.

《잡아죽여야 해!》

사람들의 사나운 발자국소리가 벌써 계단을 뛰여내리고있다. 형사들의 표정이 이그러졌다.

《가!》

한놈이 현관문을 밀고 뛰여나가자 나머지 녀석들도 허둥지둥 뒤따랐다. 팔과 다리, 머리와 어깨를 붕대로 칭칭 동인 부상자들이 현관홀에 당도했을 때는 형사놈들을 실은 찦차가 방금 뺑소니친 뒤였다.

정림간호장은 부상자들에게 병실로 돌아가달라고 애원하였다. 부상자들은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자신도 모를 힘에 뛰여내려왔건만 지금은 서로 부축하면서 힘겨웁게 올라간다. 지혜와 정림도 그들을 부축하고 천천히 계단을 밟았다. 누군가가 노래를 부른다. 한사람두사람, 나중에는 모두가 조용히 소리를 합치면서 층계를 올랐다.

 

《죽은 나의 남편은 그녀석의 집에서 가정교사를 하였어.》

간호원수직실에서 지혜와 함께 빨아 말리운 붕대를 감고있던 정림은 문뜩 그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지혜의 손은 서툴게 움직였으나 정림의 두손은 기계처럼 쉴새없이 움직였다.

《중학교는 동창이였구 집에서는 그녀석이 풍족한 주인집 아들이고 나의 남편은 하인이나 다름이 없는 가정교사였지. 하지만 학교에서는 재능에서나 모든것에서 나의 남편은 그녀석과는 비할바도 못되는 수재였고 그녀석은 렬등생이였으며 망나니였지. 심술궂은 그녀석은 나와 남편과의 사이를 눈치채자 단지 남편에 대한 시기심때문에 우리 집에 청혼을 해왔어.》

지혜는 정림의 말에 아픔을 느끼였다. 정림은 요구성이 견디기 힘들도록 강하고 딱딱하며 직무에서는 지나치게 랭랭하여 간호원들은 그와 마주서기를 겁나하지만 그의 책임감과 능력, 강한 자존심과 자립성은 언제나 지혜의 마음을 끌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슬기롭고 도고한 정림에게 그 추악하고 너절한 형사녀석이 청혼을 할수 있단 말인가!

《살아오는 동안 별반 잘한 일이 없는 나지만 아버지와 오빠의 강요를 뿌리치고 청혼을 거절한것만은 정말 잘한 일이였어.》

생활은 슬기롭고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영광을, 추악하고 너절한자들에게 타격을 주어야 하는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뒤죽박죽이였다. 정의로운 사람들이 몸부림쳐야 하며 항거해야 하며 피를 흘려야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림이도, 권범이도, 남수도, 모금함에 돈을 넣던 거지아이도 정의로운것을 위해 신념과 힘, 모든것을 쏟아붓고있다. 지혜는 어제오늘 그들속에서 심장을 뒤흔드는듯 한 뜨거운 격동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지혜! 누가 왔어!》

뛰여들어온 학급동무가 이상하게 헤덤비며 알려주었다. 의아해서 수직실을 나서던 지혜는 하마트면 복도에 서있던 한 아낙네와 부딪칠번 하였다. 그 녀인은 덥석 지혜의 손목을 잡았다.

《이 일을 어쨌으면 좋으냐?…》

이웃집 녀인이였다. 녀인은 목메인 소리를 한다.

《놀라지 마…》

《말씀하셔요.》

《너의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어쨌어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지혜는 낮은 소리로 재빨리 물었다.

녀인은 머리를 외로 돌리면서 뒤말을 잇지 못한다. 초조해진 지혜는 다우쳐물었다.

《놀라지 않아요. 어서… 어서 말씀해주셔요.》

《순경놈이 총으로… 부상을 당했단다.》

지혜는 뒤머리가 싸늘해지는것 같았을뿐 마음은 의외에도 조용하였다.

그러나 발음만은 례사롭게 할수가 없어 귀속말처럼 낮은 소리로 물었다.

《병원에는 가셨는가요?》

《근처에 있는 병원에 갔다만 내과병원이라는구나.》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곧 앞장서 현관을 향해 걸어나가던 지혜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위생복을 벗어두고 와야겠어요.》 하고 몇걸음 되돌아간 지혜는 또다시 멈칫 섰다. 그리고는 뜻밖에 얼굴에 허구픈 미소를 그리면서 말하였다.

《하기야 모두 입고 다니는데 그대로 가요!》

시위가 시작되자부터 의대생들은 위생복을 벗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의 시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웃녀인은 지금 지혜가 위생복을 입고 안 입고를 생각하고있지 않다는것을 지혜의 초점없는 시선으로 알아차렸다. 녀인은 그것이 측은하여 옷고름으로 눈물을 닦는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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