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10

 

종시 바람이 또다시 불기 시작하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의 신록들이 자주 세차게 설레인다. 현관광실에 걸린 벽시계가 3시를 알렸다. 아버지의 침대머리에 있던 지혜는 불쑥 고개를 쳐든다. ㅅ대학교에서 교수단들이 시위재개의 성토대회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정림이가 재빨리 소리 안 나게 들어왔다.

《지혜는 아버지곁에 있어야 하지 않겠어?》

《네?》

지혜는 무슨 뜻인지 몰라 반문하였다.

《어째서요?》

지혜는 대답을 듣지 않고 아버지침대곁에 놓인 의자에 주저앉았다. 말뜻을 몰라서가 아니였다. 또다시 지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수가 없는것이였다. 밤새 수십번도 더 생각하였었다. 시위에 나가야 옳겠는가, 아버지곁에 있어야 옳겠는가. 병원이라고 할 일이 없는것은 아니다. 정림은 처음부터 나가지 않기로 병원에서도 , 자기스스로도 결정을 지었었다. 그렇지만 지혜의 경우는 그것과 구별된다. 실습려행에 응하여 첫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던 과오를 다시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그 수치감과 자책의 고통속에 또다시 빠져드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지혜는 아버지의 단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다. 아버지는 이렇듯 모대기고있는 딸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고있다.

방금전에 지혜는 권범에게 물었었다.

《정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아요?》

권범은 측은해하는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런 일에는 누구도 권고나 명령할 권한이 없소. 지혜자신이 택해야 하오.》

지혜는 원망스러운 표정을 하였다. 권범은 반드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확한 판단을 주리라 믿었던 그다. 권범은 아버지침대곁에서 망설이고있는 지혜를 바라보며 또 이야기하였다.

《지혜, 하지만 내가 지혜립장에 서있었다면 나갔을거요. 아버님은 어머님께서 돌보아주실테니까. 복희도 그렇게 했을거요. … 지혜, 언제나 결심은 스스로가 내려야 하오!》

대학교수단들의 성토대회가 시작되는것과 함께 학생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 시위를 시작할 각기 집합장소들로 서서히 모이고있을것이였다.

《아버지!》

지혜는 막혔던 물줄기를 터뜨리듯 그렇게 웨쳤다. 아버지의 손을 으스러지도록 힘껏 잡은 지혜의 두손이 떨린다. 결심이 내려진것이다. 날카로운 쇠붙이로 가슴을 찢는것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아버지앞에 자식으로서 잘못을 저지르는것 같은 괴로움에 마음을 지탱하지 못해하면서도 결심을 내리였다. 스스로 내리였다. 고통에서 오는 눈물이 아버지손등에 수없이 떨어진다. 정림은 모든것을 알아차리고 들어올 때처럼 소리없이 나갔다.

《지혜야, 아버지가…》

어머니의 가벼운 웨침소리였다.

《네?》

지혜는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가 물끄러미 지혜를 바라보고있었다.

《아버지, 저를 아시겠어요?》

뜻밖의 기쁨과 기대에 지혜의 목은 메였다.

그런 그들은 아래층 현관에서 들려오는 그 기막힌 웨침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소음은 심상한것이 아니였다. 온몸에 팽팽한 긴장을 가져다주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러나 지혜는 아버지에게만 정신을 쏟고있다.

아버지의 눈동자에는 점점 빛이 가해졌다. 마치 내부에 가느다란 한점의 불이 당기면서 점점 빛을 가하는것처럼 밝아졌다.

《여보, 지혜를…》

간신히 들리는 힘없는 목소리였지만 지혜는 아버지가 자기를 찾고있다는것을 알아들었다.

《아버지, 저예요. 지혜예요. 지혜가 돌아왔어요!》

그러나 아버지의 눈은 이미 감겨져있었다. 순간적이나마 소생하였던 의식은 딸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시 깊은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지혜는 이불깃을 부여잡고 애타게 흐느끼는것이였으나 아버지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의 웨침소리가 아래층에서 2층으로 옮겨왔다.

《또다시 시위가 시작되였소!》

2층복도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마음껏 웨치는 소리였다. 인제는 지혜도 어머니도 들었다. 지혜는 몸을 세차게 떨며 흐느낌을 삼키려고 몸부림친다.

《시위가 시작되였소!》

《시위요!》

《또다시 항쟁!》

병실안의 부상자들이 일제히 그렇게 낮은 소리로 웨쳤다. 두다리가 성한 사람은 창문가로 뛰여갔다. 그렇지 않으면 침대우에서라도 상반신을 일으켰다. 그들은 결코 큰소리를 치지 않는다. 어쩔줄 몰라 방안을 뛰기도 하고 침대에서 뒤채기도 하지만 목소리는 내부에서 폭발하는 투지가 삼켜버리는것이다.

《왜 아직 함성이 들리지 않소?》

《먼곳에서 시작된가보오.》

《조용히, 복도에서 또 뭐라고 하는것 같소.》

문섭은 반쯤 입을 벌리고 아까보다 더 숨쉬기 힘들어한다. 생명은 반나마 그의 육체를 벗어나고있었다. 그런 아버지를 지키고있는 지혜는 주위가 흥분에 뛰고있었으나 지금 당장 나갈수 없다고 또다시 생각한다. 그 생각은 끓어오르는 피를 한순간씩 멈추군 하는것 같아 숨이 막혀오군 하였다.

복도에서는 흥분된 웅성거림이 더욱 커진다. 문이 벌컥 열렸다. 어린 간호원이 뛰여들어왔다. 처녀는 숨을 씨근거리느라고 잠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부상자들의 초조한 시선이 처녀에게 집중된다.

《ㅅ대학교 강당에서 대학교수단이 성토대회를 하고있대요. 시위에 떨쳐나올 기세래요. 벌써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고있어요. 또다시 사람들이 싸움의 광장으로 나가요!》

다리 하나를 절단당한 부상자가 목갈린 소리로 말하였다.

《쌍지팽이 하나를 가져다주오!》

벌어진 사태가 주는 벅차오르는 기대와 아버지앞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모순된 감정속에서 지혜는 우직스럽도록 거칠게 숨을 쉰다.

그때 문이 반쯤 열리더니 정림간호장의 딱딱한 목소리가 들리였다.

《환자들을 보호해야 해요. 병실밖으로 내보내서는 안돼요!》

《간호장!》

한 부상자가 꽥 소리를 쳤다. 정림은 그것을 무시하면서 어린 간호원에게 다짐을 놓는다.

《알았어요?》

《네!》

처녀는 부상자들우로 시선을 갈팡거리며 대답하였다.

돌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군중의 웨침소리, 발구름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학교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중상자가 창문가에 있는 경상자에게 물었다.

《여기서도 소리만이지 보이지 않소.》

지혜는 괴롭게 숨을 쉬고있는 아버지의 얼굴만 들여다보고있다.

나는 이 아버지를 두고 거리에 나가야 한다. 이와 같은 죽음에서 한사람의 부상자라도 구원하기 위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림종이 지혜의 발목을 잡아당기고있다.

《지혜야, 너 왜 그러구 서있니?》

어머니가 겁나하는 얼굴로 쳐다본다. 지혜는 낮은 소리로 말하였다.

《어머니, 어쨌으면 좋겠어요?… 저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버지의 병세가…》

어머니는 슬픔에 찬 얼굴로 깊은 한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저고리앞자락안으로 손을 넣더니 한장의 편지를 꺼냈다.

《이걸 보아라. 아버지의 편지다. 네가 고양에 가있을 때 쓰신거다. 네가 돌아왔기에 내가 그대로 가지고있었다. …》

편지를 건네주는 어머니의 두눈에서 별안간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지혜는 어머니의 뜻밖의 눈물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편지를 받았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는다. 지혜는 설레는 마음으로 겉봉을 뜯었다.

 

지혜야! 내 사랑하는 딸아!

나는 ㅅ대 문리대 강당에서 잠 못 이루는 불안과 북받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래일의 싸움을 앞두고 잠들어있는 나의 어린 제자들곁에서 이 글을 쓴다. 피의 폭동이 온 서울장안을 휩쓸은 오늘, 래일 역시 계속될 그런 순간을 기다리면서 수천의 너의 씩씩한 학우들속에서 이 글을 쓴다. 싸움의 광장을 등지고 간 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이글을 쓴다.

정녕 네가 어디에 있느냐? 민족과 조국과 민주주의라는 커다란 뜻을 품고 너의 학우들과 젊은 겨레들이 얼마나 용감하고 슬기로웠는지 너는 보지 못하였다. 피흘리며 넘어진 아들딸의 부모가 당하는 비통함보다 털끝 하나, 옷자락 하나 찢기지 않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있는 딸을 가진 이 애비의 괴로움이 더 크다는것을 너는 아느냐?

지혜야, 사랑하는 내 딸아, 너 어디에 있느냐? 하긴 네가 자기의 전공하는 학문에 온넋을 기울이면서 실습려행을 다니고있다는것을 내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내 딸아, 정의라는 두 글자앞에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수가 없다. 솔직해야 한다. 학문에 대한 너의 성의의 그 밑바닥 한구석에 성스러운 항쟁을 외면하려는 마음의 티가 없었단 말이냐?

그렇다만 지금 나는 너를 책망하려고 이 글을 쓰고있는것은 아니다. 너는 나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고있는 나의 자식이다. 언젠가는 나처럼 《량심》을 가진 인간이 되겠다고 말하기까지 한 나의 딸이다. 너는 나를 비치고있는 거울이다.

나는 《청렴한 량심》을 가졌다고 자부하고있었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모질게 대하지 않았으며 남을 속여본 일이 없고 재물을 탐내지 않았으며 진심으로 학생들을 사랑하였고 그애들에게 인간의 도리를 가르치기 위해 나의 온넋을 기울이였다. 너 역시 부드럽고 총명하고 깨끗한 마음씨를 가진 남부럽지 않은 내 딸로 자라났다. 그런 너를 보는것은 나의 행복이였고 자랑이였단다.

그런 내가 이 세상앞에 그리고 너의 학우들앞에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고말았다.

너는 실습려행을 떠났더란다. 놈들이 너희들의 하나로 뭉쳐진 대렬을 사처로 찢어놓기 위해 조직된 그 려행을 학문에 성실하련다고 생각하면서 이 애비를 만나지도 않고 떠났더란다.

하지만 나는 너를 탓하지 않으리라. 내가 너를 그렇게 키웠고 네가 나처럼 《량심》을 가지고 살려 했다거늘 어찌 너만을 탓할수 있겠니? 너의 행동이 나의 지나온 생활의 거울이거늘 어찌 너만을 탓할수 있겠느냐?

나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아픔을 가지고 오직 나만을 질책하련다. 나는 학생들을 사랑했고 그애들의 빈궁에 울고 그애들의 설음에 목이 메여 했었다. 그렇다만 나는 슬퍼하고 울고 참기는 했어도 이 썩은 사회를 뒤엎지 않고서는 나의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도의도 행복도 찾아들지 않으리라는것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나는 너의 재능과 성실성을 높은 값으로 평가하면서 그것에만 너의 온넋을 기울이도록 가르쳤던것이다. 정의를 위해 목숨바쳐야 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어리석고 교만하고 비굴하기까지 한 생각이였음을 온 겨레가 떨쳐나선 피의 폭풍속에서 이 아버지는 뼈를 깎는 마음으로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투쟁하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않았다. 의학을 전공하던 학생도, 바이올린을 켜던 학생도, 가정에 붙배겨 살림만 하던 아낙네도, 구두닦이소년도 모두 탄우를 헤쳐 싸움의 광장에 나오지 않았냐! 투쟁은 그렇게 만사람의 항쟁에 의해서만 반드시 이루어진다는것을 나의 어린 학생들이 만세를 웨치며 전진하고 쓰러지고 또 전진하는 광경을 눈물로 바라보면서 사무치게 깨달아야 했단다.

각자에게는 사회앞에 자기스스로 선택한 사명이 있다는것을 부인하지 않으련다. 나는 가난한 집 아이들을 가르치는것을 나의 사명으로 선택하였으며 너는 사람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의학을 너의 사명으로 선택하였다. 그렇지만 내 딸아! 이 선택의 자유를 가질 권한을 박탈당한 사람이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으냐? 내 학생들이 학업의 여가에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해야 하는 구두닦이나 물장수가 그애들이 선택한것은 아니다. 지하막장에서 소나 말처럼 학대받으며 탄을 캐는 운명이 탄부들이 스스로 선택한 사명이겠느냐? 망망한 대해, 노호하는 파도속에 떠가는 쪽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나가야 하는 어부들의 사명이 스스로 선택한것이겠느냐? 이 부당한것을 못 본체 하는것이 과연 량심이겠느냐?

이 애비는 참는것과 싸우는것, 무자비한것과 선량한것, 눈물과 항거의 계선을 깨닫지 못하였다.

지혜야, 사랑하는 내 딸아, 만사람에게는 사회가 그 누구에게나 빠짐없이 주는 공통된 지상명령이 있느니라. 그것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것, 투쟁을 위해 모든 각오를 다지는 그것이다. 빨리 피끓는 젊은 대렬속에 네가 서야 할 자리에 서서 너의 목숨도, 너의 부모의 설음도 돌보지 말고 겨레와 민주주의를 위해 모든것을 아낌없이 바쳐라!

적은 야수였다. 그놈들과는 사납고 과격하고 무자비하게 싸워야 한다. 무자비하고 또 무자비하게 싸우는 길만이 우리가 나가야 할 량심의 길이란다. 지혜야, 내 사랑하는 딸아.

 

편지를 다 읽고난 지혜는 입술을 사려물고 울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전 생활을 흔드는 강렬한 힘앞에 숙연히 서있는 마음이였다. 거칠고 수척해진 아버지의 얼굴, 무자비한것과 선량한것, 참는것과 싸우는것, 눈물과 항거의 계선을 깨닫지 못했다고 쓴 아버지, 원쑤놈에게는 항상 사납고 무자비해야 한다고 한 선량하나 모질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지막부르짖음… 그러나 아버지는 지혜가 돌아왔다는것을 알지 못한다. 지혜는 가슴의 아픔을 누르고 흥분에서가 아니라 엄숙한 마음으로 맹세를 하였다.

《아버지, 다녀오겠어요!》

돌연 총성이 울렸다. 방안의 사람들은 부르르 떨었다. 총성은 연방 들린다. 지혜는 재빨리 약가방을 메였다.

《어머니, 아버지를 부탁해요!》

지혜는 바람을 맞받아가듯 머리를 젖히고 병실을 나선다. 그때 남수가 굴듯이 지혜를 밀어젖히고 병실로 달려들어간다. 그의 팔에는 삼각끈이 없었다.

《선생님!》

남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선생의 손을 잡고 숨이 차하면서 말하였다.

《선생님, 저는 시위에 나가야 해요. 선생님을 두고 나가야 해요!》

흥분한 그는 문섭이가 듣기나 하는듯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선생님, 제가 나가서 리승만을 내쫓고나면 우리 학원도 멋지게 될거예요. 전 다 생각하고있어요. …》

선생이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은듯 남수는 갑자기 세찬 표정에 성난 목소리로 말하였다.

《내가 돌아올 때는 꼭 정신을 차리셔야 해요. 선생님!》 하고는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더니 뛰여나갔다.

지혜가 막 밖으로 나오려는데 누군가의 작은 손이 지혜의 팔소매를 당기며 곁에 와서 붙어선다.

《남수…》

《같이 나가요. 지혜누나!》 하고 말하는 남수의 역정스러운 두눈은 누가 붙잡아도 기어이 나가고야말리라는 고집스런 빛발로 차있었다.

《지혜!》 하고 부른것은 정림간호장이였다. 그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지혈제 세갑을 지혜의 약가방에 더 넣어주었다.

《남수, 너도 가냐?》

남수는 처음에 지혜뒤에 숨듯이 서있다가 정림이가 자기를 보자 뺑소니치려고 하였는데 무슨 생각에선지 홱 돌아서서 정림간호장쪽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간호장님은 나를 못 나가게 하려고 그러시지요? 하지만 그렇게 못할거예요.》

남수는 성이 나서 또 아래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정림간호장은 잠시 그러는 남수를 응시한채 잠자코 서있다가 문뜩 쌀쌀한 어조로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다친데가 아프지 않단 말이지?》

남수는 얼마간 고개를 숙이고 눈동자만 치켜 정림을 쳐다보다가 대답하였다.

《흥, 땅크라도 까부셔요. 나는 인식이몫까지 하거든요.》

《땅크?》

정림은 코웃음을 치며 얼굴을 찡기더니 퍼그나 오래동안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어느덧 그의 얼굴표정이 점점 변했다. 복희네들을 대할 때의 그 뜨거운 표정이다. 그러나 말만은 여전히 딱딱하게 한다.

《너를 붙잡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잘 싸우라고 당부하려고 했다.》

남수는 그러는 정림의 얼굴을 구멍이라도 뚫을듯이 바라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이그러뜨렸다.

《간호장님은 거짓말을 하고계셔요. 자기도 나가고싶은걸 참느라고 얼굴을 찡기고계셔요.》

그 말에 정림은 종시 신경질을 내였다.

《나는 내 할 일을 알고있어! 조그만게 뭘 안다고! 네가 만약 인식이 몫까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너 같은것 다시는 보지도 않겠다!》

지혜는 정림이가 그 사지판으로 자기와 남수들을 바래여야 하는것에 가슴이 아파 그런다는것을 알고있었다. 남수는 더 대꾸를 하지 않더니 문뜩 천천히 정림이앞으로 다가왔다.

《간호장님,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어째선지 남수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말해봐.》

《우리 누나가 오거든 말예요.》

《그래서?》

《이렇게 말씀해주셔요. … 제가… 제가 누나생각을 많이 하면서 나갔다고 말이예요.》

《그런 말이야 네가 만났을 때 직접 하면 될게 아니냐?》

면박을 주듯 그렇게 말하는 정림의 표정은 언짢아졌다. 남수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가볍게 롱담처럼 대꾸하였다.

《혹시 내가 안 돌아오면 말예요! 그럴수도 있거든요.》

정림은 대답없이 그저 외면을 하였다.

《지혜누나, 나가요!》

그들은 이미 앞서 나간 동무들을 따라잡느라고 걸음을 다우쳤다. 수십배로 강화된 바리케드와 기관포가 그들을 겨누고있는 항쟁의 거리로!

 

련재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8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