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16

제 2 장

3

 

지혜는 공동묘지쪽으로 걷고있었다. 가파로운 등성이길을 쉬지도 않고 달려오른 지혜는 아버지의 무덤앞에 이르자 그대로 주저앉았다.

《아버지! 어쨌으면 좋아요?》

비석도 세우지 못한 쓸쓸한 무덤이다. 그앞에 엎드린 지혜는 몸부림치듯 마음껏 울었다. 동막이했던 물이 터져내리듯 설음은 뒤를 이어 언제까지나 솟구쳐올랐다. 메마른 잔디를 움켜잡고 정신없이 울었다. 슬픔과 절망감, 분노와 모대김 그리고 그것들을 견디여야 하는 고통때문에 울었다.

울어야 소용없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다시 가슴이 찢어지는듯 하였다. 지혜는 무덤앞에 놓인 한아름의 들꽃묶음을 한참이나 멍해서 바라보았다. 그가 울고있는 동안도 그 들꽃묶음은 그 자리에 놓여있었건만 지혜는 북받치는 설음때문에 마음을 두지 않았었다. 갓 꺾어다놓은듯 싱싱한 보라빛, 흰빛, 노란빛의 작은 꽃잎들이 바람에 가볍게 떨고있었다.

지혜는 사위를 살폈다. 짙어가는 저녁노을에 허다한 무덤들이 누워있었다. 적막하고 살벌한 풍경과 많은 죽음으로 해서 어딘가 엄숙하기도 한 묘지의 저녁이다. 문뜩 지혜는 저쪽 후미진 무덤앞에 서있는 네다섯의 소년들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우는 지혜를 지키고있었던것 같다.

《지혜누나!》

그 목소리에 놀란 지혜는 그애들쪽으로 다가갔다.

《남수!》

남수는 울어서 뻘개진 지혜의 눈을 응시하고있었다. 그는 여전히 누데기를 걸치고있다. 승리한 4월의 영웅은 꽃보라에 묻힐 대신 그때 그대로의 초라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두눈도 그때처럼 령롱하게 빛나고있다. 여전히 가난속에서 헤매고있으나 꺾이지 않는 굴함없는 표정이 도도히 흐르고있었다.

남수곁에 서있는 처녀애는 찢어진 고무신 앞코숭이를 오무락거리면서 지혜가 자기를 보기를 기다리고있다.

《연희가 아니냐?》

그때의 광경이 서서히 펼쳐진다.

아버지침대곁에서 울지도 못하고 서있던 연희 그리고 또 하나의 낯익은 얼굴인 언덕이마의 득찬이가 있다. 프랑카드를 들고 총탄도 두렵지 않다던 득찬은 지금도 그때처럼 언덕이마밑으로 눈만 치떠 지혜를 바라보고있다.

그애들이 서있는 작은 무덤앞에도 한아름의 들꽃묶음이 놓여있었다.

《꽃묶음! 고맙다.》

지혜와 아버지의 어린 제자들은 잠시 그대로 서있었다. 어쩐지 이대로 작별하기가 서운하였다.

《여기 좀 앉았다 가지들 않겠니?》

둘러앉은 그들은 풀덤불과 무덤뿐인 막막한 환경속에서도 서로의 가슴에 스며드는 따사로운 정을 느끼며 부끄러운듯이 미소를 그린다. 지혜는 그들이 들꽃묶음을 놓은 작은 무덤의 크지 않은 묘비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김인식의 묘》

지혜는 흘깃 남수를 보았다. 인식이몫까지 싸워야 한다던 남수, 묘비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길가는 나그네여! 여기 짓밟힌 민주주의를 되찾으려다 4월 19일 무참히도 떨어진 14세의 어린 꽃봉오리가 누워있음을 전해다오.

                                            애청학원 소년일동

 

지혜는 부지중 곁에 앉은 연희와 득찬의 어깨를 힘껏 껴안았다.

(슬기로운 미래!)

지혜는 마음속으로 그렇게 불렀다. 그 미래들이 먹기 위해 학교에 다니면서도 구두닦기와 물장사를 해야 한다.

《제 이름 동혁이예요.》

《동혁이?…》

키가 크고 선량해보이는 그 소년은 때때로 손으로 뒤덜미를 쓸며 점직해하였다.

저녁바람이 조용히 불기 시작하였다. 노을빛이 차츰 어스름하게 시들어갔다. 풀잎들이 가볍게 설레였다. 연희가 난데없이 이런 말을 한다.

《고구마가 벌써 알이 들었나봐요.》

《아직 안 들었어. 그렇지만 금년엔 아주 잘될거야… 그때 누나도 한몫 넣자. 문섭선생님대신 말야…》

득찬이가 심드렁해서 하던 말을 멈춘다.

《고구마?》

《문섭선생님이랑 심었던거 말예요.》

《흥, 그렇게 말해서 어떻게 알아들어?》

남수는 동무들을 탓하기는 했어도 자신은 설명을 하지 않는다. 득찬이가 말했다.

《학교 뒤뜰에 고구마밭이 있어요. 문섭선생님이랑 일군거지요. 첫해에는

잘되지 않았더랬어요. 그래도 우등불을 피우고 함께 구워서 먹었어요. 그때 귀뚜라미가 어찌도 울었던지… 지금도 들려요.》

《다음해에는 무척 많이 캤어요. 정말 신바람이 났어요. …》

동혁은 말을 채 맺지 못하고 혼자 입속에서 웃었다. 연희도 따라웃으며 말했다.

《고구마를 캐면서 선생님이 노래를 부르셨답니다. 선생님은 줄창 같은 노래를 부르시지요. <나가자 동무야 노래부르며, 기쁘게 기쁘게 기쁘게 꿈같은 세상>, 이런 노래 아셔요?》하는 연희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참는다.

《선생님이 부르시던 노래는 이상했죠. 가사를 듣지 않으문 무슨 노랜지 영 알아듣지 못하겠거든요.》

지혜도 따라웃었다. 아버지자신은 부르지 못해도 음악은 무척 좋아하였다.

소년들은 모두 문섭선생을 두고 기억에 있는 이야기들을 한마디씩은 죄다 하였다. 이야기는 끝이 없을것 같다. 더구나 무슨 말이든 《문섭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어.》, 《리선생님도 그렇게 하셨어.》 하는것이다. 이애들을 위해서 아버지는 살아계셔야 하였다. 아버지는 미래를 위해 자기의 모든 마음을 기울이셨다.

《새 담임선생이 오셨니?》

지혜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 온건 안예요. 그렇지만 도루 나갔어요. 좋은 자리만 있으면 달아나죠. 지금 없어요.》

《누나, 고구마 캘 때 오셔요. 올해도 모두 꼭같이 나누어먹겠어요. 문섭선생님은 늘쌍 그렇게 해주셨어요.》

《야, 장경성이 떴구나.》

손에 깍지끼고 풀덤불에 누워있던 득찬이가 그렇게 말해서 모두 하늘을 쳐다보았다.

《저기도 별이 있어.》

《음, 저기도 또 저기도… 볼수록 많아지지.》

소년들과 함께 하늘을 쳐다보며 천체에 대해서 말해주었을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른다. 무한대한 공간에 대해서, 그 신비한 공간을 탐구하여온 인간의 예지와 힘에 대해서 아버지는 온 마음을 쏟아 이야기하였을것이다. 아버지는 교육자가 되는것이 소원이였다. 온 일생을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바치시는데 보람을 느끼시였다.

《누나는 의대에 다니시지요?》

침착한 득찬이가 조용히 물었다. 지혜는 쾌활한 미소를 그리며 대답하였다.

《그만두었다. 학비도 없고…》

득찬이가 역시 언덕이마밑으로 눈만 치떠 잠시 지혜의 표정을 살피였다. 지혜의 가슴은 두근거리였다. 남수 역시 지혜를 응시한다. 지혜는 소년들이 무엇을 바래여 자기를 바라보고있는지 알았다. 하지만 바란다고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지혜는 물었다.

《왜?》

남수는 피식 웃으며 얼굴을 돌린다.

《아무것도 안예요.》

쑥스럽기라도 한듯이 싱글싱글 웃다가 벌떡 일어섰다.

《가! 어두워진다. 어두워지면 난 무섭다.》

지혜도 따라일어섰다. 애청학원 교장에게 한번 더 찾아가보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웃으면서 남수에게 말했다.

《땅크보다 무서워?》

《땅크도 무서웠어요. 다리가 떨려서 화만 났지 말이 나오지 않던걸요.》

그렇게 말한 남수는 나무가지 하나를 집어 풀덤불을 휙휙 갈기며 여전히 웃는 얼굴이다. 무엇인가 딴 생각을 하고있는것이 분명하였다.

《자식, 싱겁게…》

득찬이가 바지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뒤따라가며 말했다. 그러자 별안간 남수가 휙 돌아서더니 골려주는 어조로 이렇게 나무란다.

《이 바보야, 너는 정말 바보야. 북에 있으면 구두닦기도 안하고 배도 곯지 않고 멋진 옷 입고…》

득찬의 고향은 황해도였는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농민이던 그의 아버지는 미국놈들이 원자탄을 터친다는 거짓엄포에 속아 피난을 했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였다고 한다.

《자식! 나는 그때 세살이였어.》

《세살이라쳐도 말이다.》

남수는 정색해서 그 말을 하였다. 세살이였대도 그것만은 알아야 한다는것이다. 롱담이 아니라 정녕 분해하는 표정이다.

《응, 그래…》

득찬이도 심드렁해서 수긍하였다.

《한번 가보고싶다!》

그렇게 말한 남수는 회초리로 한번 더 풀덤불을 갈긴다. 지혜는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가 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도 거리낌이 없었다. 지혜는 북에 대해서 아는것이 적었다. 깨끗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소년들은 그 북이 그들의 생활에서 지척에 있는듯이 말하고있다.

《북의 이야기를 아버지가 해주셨니?》

지혜는 묻기가 어색하였으나 묻지 않을수 없었다.

《아니요.》

남수가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한다. 딴 아이들도 잠자코 있었다.

지혜는 한순간 아버지에 대한 소년들의 무언의 불만을 느끼였다. 지혜도 서먹한 기분으로 천천히 애들을 따라갔다.

그렇게 신작로길에 거의 왔을 때였다. 지혜의 손목을 잡고있던 연희가 혀끝으로 입술을 핥으면서 이런 말을 해서 서먹하던 기분은 곧 사라졌다.

《난 말이야, 새 담임선생이 녀자였으면 좋겠어.》

연희의 말뜻을 다 리해하지 못한 동혁이가 코방귀를 뀌였다.

《녀자가 뭐 좋아. 문섭선생님은 남자선생이였어.》

그러자 몇걸음 앞섰던 남수가 갑자기 휙 돌아서더니 연희와 지혜를 마주보며 뒤걸음으로 걸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에 걸채여 넘어졌는데 넘어진채로 디그르르 굴면서 마음껏 소리내여 웃는다. 동혁이가 그 남수우에 덮치자 두 소년은 씨름이나 하듯 엎치락뒤치락 디굴디굴 굴었다.

《멋있는 생각이란 말야!》

흙바닥에 일어나 앉은 남수는 흩어진 옷자락을 여미며 그렇게 말하고는 씨물씨물 웃었다.

《자식, 뭐가 멋있는 생각이야? 똑똑히 말하란 말이다.》

어딘가 어지고 얼뜬 동혁은 남수의 팔죽지를 잡아 일으켜세우며 따졌다.

《녀선생이면 좋겠다는것 말이다.》 하고 말하고나서는 두팔을 벌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으며 달려갔다.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동혁은 제나름의 즐거운 기분으로 문섭선생이 즐겨 불렀다는, 그래서 그들도 즐겨 부르는 노래인 《동무야 나가자》를 휘파람으로 불며 뒤따라간다. 생각에 잠긴채 공연히 점직한듯 한 득찬은 지혜쪽으로는 애써 시선을 두지 않으면서 무성한 풀대들을 발길로 툭툭 차며 걸어간다.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맑고 또렷한 두눈들이 지혜를 바라본다. 잘 먹지 못해 여윈 몸집도, 헐벗다싶이 한 옷주제도 그 빛을 흐리게 하지 못하는 두눈의 령롱한 빛발이 지혜를 지키고있다.

땅크앞에 나섰던 남수, 부상당한 기태를 내려다보던 연희, 프랑카드를 들고 총구앞에 태연히 섰던 득찬이, 희생당한 선생과 동무의 무덤에 잊지 않고 들꽃묶음을 꺾어다놓은 깨끗하고 아름답고 슬기로운 심혼들! 지혜의 온 마음은 걷잡을수 없이 그애들에게 쏠린다.

생활이 준 환멸도 피곤도 이애들과 함께라면 짓밟아버릴수 있으리라. 찌는듯 한 더위속에서 허덕이다가 만난 맑고 줄기찬 샘물처럼 그에게 원기와 생명력을 줄것이리라! 아이들과 갈라져야 할 갈림길에 왔다.

《또 만나요. 연희, 남수, 득찬이, 동혁이.》

그날 밤 지혜는 격한 생각의 소용돌이속에서 잠들수가 없었다.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일생을 바치려고 생각한 아버지의 뜻이 결코 작고 보잘것없는것이 아니라는것을 고동치는 심장으로 절절하게 느낀다. 생각하고 호소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시시각각으로 성장하고있는 아이들, 그것은 미래, 지혜는 백번을 찾아가서라도 기어이 교장의 마음을 움직여놓으리라 생각한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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