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24

제 2 장

11

 

까마득히 높은 천장가름대에 촉수낮은 전등이 하나 매달려있을뿐이였다.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있는 어둑시근한 천장은 방안을 더한층 우중충하게 한다. 한편에는 생산품이 있고 한편에는 자재가 쌓여있는 창고 어중간에 좌우가 울타리처럼 판자로 막혀진 복도처럼 된 긴 공간이 ㄷ방직공장 로무자들의 야학교실이다. 거기에 흑판을 마주하고 오륙십명의 로무자들이 가마니우에 앉아있었다.

상학인사가 끝나자 지혜는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잠시 말없이 그들을 둘러본다. 방안에는 어떤 침통한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아있는것 같았다. 배우려는 열망에서 여기 마음을 다잡고 앉아있기는 하지만 13시간의 과로에서 시달리고난 그들이였다. 하지만 그들 개개의 로무자들의 기분은 결코 우울한것은 아니였다. 과로와 학대와 빈궁밖에 모르는 이들에게 배운다는 그것만도 야학은 장마때 잠시 비쳐진 해빛처럼 순간적인것이기는 해도 밝은 기쁨이였다. 그렇지만 늘쌍 눌리우고 시달리우고있는 그들에게는 그들자신도 다 느끼지 못하는 울분이 생활의 밑바닥에 흐르고있어 기쁘게 웃고 떠들 때조차 무거운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것이다.

지혜는 교재의 일부를 흑판에 크고 명백한 글씨로 천천히 썼다. 야학생들이 그것을 공책에 베껴쓴다. 열두서너살 남짓한 소년도 처녀들도 아주머니들도 로인들도 연필에 침을 묻혀가며 무거운 쇠돌이라도 옮겨놓듯이 힘들여 쓰고있었다. 책상처럼 반반하지 못한 무릎은 책상우에서 쓰기만 할리가 없다. 이들에게는 애청학원에 있는 앉은뱅이책상조차 없는것이다.

언제나 맨앞에 앉군 하는 진국로인의 힘들어 끙끙거리는 소리는 지혜의 귀에까지 들렸다. 진국로인은 누구보다 더 침통해보였지만 기실 쾌활한 성미라고 할수 있었다. 방직기계의 대수리공이였는데 작업에 들어가서는 명수급이여서 애젊은 패들이 꿈쩍 못하고 그를 섬기였다. 그렇지만 그가 아주 호인이라는것을 젊은이들은 모르지 않는다. 그는 술을 마시기는 하지만 그가 즐기는것은 담배여서 그의 몸에서는 언제나 대진냄새가 났다. 일할 때도 짧은 대통을 항상 물고있어서 감독놈과 그것때문에 한두번만 옥신각신한것이 아니였지만 끝내 감독놈쪽에서 기진해져서 못 본체 하게 되였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담배를 먼저 내놓고 낯색을 살펴가며 이야기를 하군 한다.

《담배때문에 네깐녀석 롱간에 넘어갈줄 아냐!》 하고 큰소리는 치지만 결국 그들의 청을 들어주어 일을 거들어주든가 상담에 응하든가 하였다.

그렇지만 그도 봉급날만은 오만상을 찌프리고 어깨를 툭 떨군채 비칠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일쑤였다. 임금이 체불되지 않고 제대로 타는 경우에도 식구가 한달동안 연명할 승산이 없었던것이다.

그는 또 때때로 젊은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군 하였는데 내용은 대개 《내가 한창나이때는 고용주놈들과 곧잘 싸움을 했다. 네녀석들은 뼈대 없는 시라소니만도 못해!》 하는것이였다.

그 진국로인이 지혜의 지명에 의해 그답지 않은 수집은 웃음을 그리고 일어서서 교재의 첫줄을 읽기 시작하였다.

《아…아 앉아서, …구…제길…받침도 까다롭군… 굶… 옳지. 굶지 말고 일…어서서 싸우자!》

받침글자는 아주 서툴게 읽어서 지혜는 다시한번 읽으라고 했다. 그에게서는 이미 웃음이 가시였다. 그는 천천히 그러나 이번에는 더듬거리지 않고 읽었다.

《앉아서 굶지 말고 일어서서 싸우자!… 젊은이들 알았나?》

그는 마지막말을 덧붙이면서 젊은이들을 빙 돌아보았다. 롱담이나 객기가 아니였다. 그의 눈에는 불길이 번쩍하였다. 그가 받침들을 정확하게 읽는가 안 읽는가에만 주의를 돌리고있던 지혜는 문뜩 정신을 차렸다. 진국로인은 글을 글자의 발음으로가 아니라 그 내용을 온 마음으로 읽고있었다. 교재는 그렇게 편찬되여있었다.

그 교재들은 야학이 시작되기 며칠전에 기태에게서 받았었다. 집에 돌아와 그 교재들을 본 지혜는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피줄이 찡하고 울려옴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지혜의 야학방은 조선어의 초보는 알고있는 중등반이였는데 교재 첫 부분에는 주로 받침을 익히기 위한 단어들이 렬거되여있었다.

《가렴잡세》, 《무권리》, 《굶주림》, 《기아임금》, 《생지옥》…

그 단어들은 살아 움직이는것처럼 힘을 가지고 지혜에게 다가왔었다. 그 단어들은 자기의 주장을 가지고 무엇인가 웨치고있는것 같았다. 교사는 교재의 단어들에 대해서 읽을수 있게 할뿐아니라 뜻을 가르쳐야 하고 그 뜻을 체득하였는가 학생들의 대답을 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혜는 글자의 뜻을 설명한다.

《생지옥이란 죽어서 당하는 지옥이 아니라 살아서 당하는 지옥이란 뜻입니다. 알겠습니까? 그럼 살아서 당하는 지옥이란 어떤것일가요?》

지혜는 북받쳐오르는 마음으로 묻는다. 어째선지 잠시 유난히 숨답답한 시간이 흐를뿐 아무도 얼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지혜는 그래도 말없이 기다렸다. 한 청년이 불쑥 일어선다. 뼈대가 굵고 키가 크고 성미가 우락부락해서 례사롭게 말할 때도 성이 나서 싸움을 걸듯 하는 덕대라는 청년이였다. 지금도 그는 그렇게 큰소리로 웨쳤다.

《왜 모르겠소? 우리들이 바로 생지옥에서 살고있단 말이요!》

지혜의 가슴은 천천히 오르내리였다. 그 말이 옳다고 결론을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낮은 소리로 다시 묻는다.

《어째서 우리가 살고있는 곳이 생지옥입니까?》

방안을 둘러보던 지혜의 눈길은 진국로인의 뒤에 앉아있는 두 처녀에게로 향했다. 은실이와 그와 가장 가까운 같은 나이또래의 처녀다. 처녀는 선생의 눈길이 잠든 은실이에게로 향해지자 당황하여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은실이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 잠들어있었던것이다. 긴 살눈섭을 가지런히 하고 어린애처럼 편히 자고있다. 항상 수면부족에 시달려있는 동무의 단잠을 깨우지 말아달라고 처녀의 시선은 말하고있었다. 13시간 로동 그리고 집에 가면 여섯식구의 주부, 지혜는 딴데로 시선을 돌렸다. 안심한 처녀는 은실이가 더 편히 잘수 있도록 등을 엇비스듬히 돌려주기까지 한다.

《순옥아주머니, 말씀해보세요.》

순옥은 40이 다된 청소부였다. 그는 성미가 격하지만 인정이 있어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돕는다. 일어설 때는 태연해서 일어섰지만 말이 얼른 나오지 않는듯 성난 얼굴로 한참 서있다가 갑자기 말하였다.

《굶고 배고프고 아이들은 울고 쌀독은 비고 그렇게 사니까 생지옥이지.》

낮으나 사나와 듣는 사람의 가슴을 섬찍하게 하는 목소리였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은실이도 눈을 떴다. 그리고 무엇인가 긴박한 사람들의 표정을 알아보고 눈이 휘둥그래지였다. 은실에게서 놓여난 처녀가 지명도 하지 않았는데 일어섰다. 일어설 때는 얼굴이 빨개졌었는데 일어서자 반대로 점점 창백해지더니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감독놈의 몽둥이가 무서워요. 일이 너무 고돼요. …그래서 정신이 아찔해지면 죽고싶어요!》

애절한 목소리다. 그러자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우리는 꿈에서까지 벌벌 떨면서 살아야 하오. 매를 맞을가봐 무섭고 일자리를 떼울가봐 무섭고 류치장이나 감옥에 들어갈가싶어 무섭고 항상 머리에 굵은 노끈으로 결박을 지고 사는것 같소. 언제면 마음편히 살겠소? 선생님! 미칠것 같소!》

이미 그들의 말은 선생의 질문에 대한 단순한 대답이 아니였다. 가슴속에 뭉쳐있는 부당한것에 대한 항거였다. 지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쌓여서 몸부림치지만 괴롭게 응고되고있는 분노와 모멸감을 쏟지 않고는 견딜수 없는 마음의 폭발로 웨치고있었다. 한사람이 끝나면 또 한사람이, 나중에는 두세사람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시골 살던 나는 강제철거당하여 서울로 왔소. 미국놈의 땅크가 우리 집과 논밭을 마구 짓이기고 거기다 미군놈들의 천막을 지었소. 사람을 죽이는 무슨 빛발처럼 번쩍이던 엠피놈의 철갑모와 총창이 지금도 눈에 선하오. 우리 옆집 로인은 문기둥을 붙잡고 <나를 죽이기 전에는 이 집을 허물지 못한다!> 하고 소리치다가 땅크밑에 깔렸소. 큰소리라고는 평생 내본 일 없던 양순한 로인이였소. 이런 광경이 생지옥이 아니고 뭐겠소!》

《여러분들은 고문실을 보았소? 형사놈들이 취조를 하오. 감방에서 내 곁에 있던 키가 작은 한 청년은 밤새껏 고문을 당한 끝에 손톱이 모두 없어졌소. 그래도 그는 놈들의 손에 죽지 않고 담벽에 머리를 짓쪼아 죽었소. 놈들이 잡으러 다니는 누군가를 숨겨주었다는 죄요. 한 사내는 3시간 고문당한 끝에 이가 전부 없어졌소. 목이 붓고 얼굴이 부어서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다가 죽었소. 그 사람은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말끝에 우리가 잘살기 위해서는 이 땅에 민중이 주인이 된 새세상을 세워야 한다고 했었소. 그속에 한놈의 특무가 있다는것을 그는 몰랐었소. 나는 소매치기를 하다가 붙잡혔소만 그후로 나는 그것을 그만두었소. 무서워서 그런줄 아오? 아니요. 부끄러웠소. 피를 토하고 죽으면서도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는 사람들앞에서 부끄러웠소. 선생님, 이보다 더한 생지옥이 이 세상 또 어디에 있겠소?》

이상하다고 할수 있었다. 참담하고 혹독한 생활에 대한 이야기이건만 그들의 말은 결코 신음소리가 아니였다. 분노의 웨침이였으며 당당한 호소였다. 그리고 반항의 힘이였다.

지혜는 이렇게 많은 로무자들과 안면을 익히기는 처음이였는데 로무자에 대해서 아는것이 너무도 적었다는것을 비로소 깨닫는다. 그들에 대해 지혜가 생각하고있던것은 지나친 과로와 굶주림때문에 정신도 육체도 지쳐버린 인간의 군상이였다.

상상에서 만들어졌던 개념이 뒤흔들리면서 어떤 격동을 느끼게 한다.

(철쇄를 끊는 힘!)

지혜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번개처럼 지나간다.

지혜는 자기가 그들에게 글을 가르치고있다는것을 잊고 허줄하게밖에 입지 못한 이들이였으나 로동에 단련된 완강한 심장에서 뿜어나오는듯싶은 강력한 빛발앞에서 오래동안 우두커니 서있었다. 오직 가슴만이 천천히 그러나 높이 오르내린다. 애청학원에서도 그렇고 이 야학에서도 그렇고 자기가 학생들을 가르치고있다기보다는 그들에게서 더 많은것, 더 귀중한것들을 배우고있다고 생각한다.

《버림받은 천사들!》

강우가 쓴 애청학원에 대한 기사의 표제다. 기사 한복판에는 그 표제를 실물로 증명하듯 떨어진 교사담벽에 찢어진 책보자기를 끼고 서글픈 미소를 그리고 서있는 한 학생의 사진이 있었다. 그 학생은 또렷한 눈정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과 서있는 자세에서 풍기는 애수로 해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러잡는다.

기사에는 가슴을 치는 비애가 있었고 동정과 련민을 불러일으키는 절절한 호소가 있었다.

《잘 썼소!》

교장은 눈물이 고인 눈시울을 손수건으로 훔치면서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고 교원들도 이지러진 학원의 이모저모를 새삼스럽게 살피면서 자신들의 가련한 처지에 부지중 눈물을 지었다.

영철선생도 그중 한사람이였지만 기사의 사진을 침울한 얼굴로 오래동안 살피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그 기자에게 좀더 큰것을 기대했습니다. 학원이 이 꼴로 되지 않을수 없는 종처를 도려내줄것을 바랐습니다.》

지혜는 서먹한 마음으로 신문지면을 언제까지나 들여다보면서 잠자코 있었다. 기사는 지혜에게도 영철선생의 의견과는 다른 뜻에서 실망을 주었던것이다. 전반에 흐르는 값눅은 감상은 마음을 언짢게까지 한다. 그러나 나이든 한 교원이 필자를 대신해서 이렇게 변명해준다.

《그 기자에게도 무엇인가 고충이 있었을지 모르지…》

《고충이 왜 없기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 기자에게 그런 장애들을 물리칠만 한 정의감과 힘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영철은 어딘가 성난 어조로 말한다. 지혜는 자기가 비판을 받는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였다. 강우를 위해 분하게도 생각되였다.

《하긴 그렇소.》

또 한 교원이 말하였다.

《이 기사를 보면 눈물이 나기는 하지만 어쩐지 멸시를 당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거던… 말하자면 너희들은 선생이나 학생이 아니라 불쌍하기 이를데없는 거러지다. 세상사람들이여, 그러니 이 학원에 적선하시라. 이렇게 말하고있는것 같애 기분은 좋지 않아.》

《거러지나 뭐 다를게 있나?》

나이든 교원이 언짢은 목소리로 말한다.

《선생님.》 하고 영철의 목소리는 격했다.

《잊으셨습니까? 우리 학생들이 4월의 그날 얼마나 용감했었는가를 말입니다. 학생이면서도 구두닦이인 우리 학생들은 그때 돌을 실어나른 서울장안의 모든 구두닦이들의 조직자였습니다. …》

《나는 그걸 말하지 않아. 오돌찬 아이들이기야 하지.》

《오돌찬것만이 아닙니다. 가난하지만 주눅이 들지 않고 언제나 파들파들 살아있습니다.》

지혜는 공감을 가지고 영철을 보았다. 강우는 종시 학생들의 슬픔만을 보았던것이다. 련민과 동정만을 느꼈던것이다. 슬픔에 꺾이지 않는 학생들의 줄기찬 생명력을 감득하지 못하였다. 강우가 학생들을 리해해주지 못하는것이 지혜에게는 마치 지혜자신을 리해해주지 않는것처럼 생각되면서 우울하였다. 또다시 강우와의 사이에 먼거리를 느끼며 북받치는 서글픔을 느낀다.

그러나 강우의 기사는 사회여론에 일정한 영향을 준듯싶다.

기사가 게재된지 며칠 안되는 어느날 명색이 《자선사업》을 한다는 유한마담의 한패인 《꽃씨녀인회》가 학원을 방문하였다. 그것은 학원의 운명을 좌우하는 하나의 재난이였다. 그렇지만 한치앞도 못 보는 보통사람에 지나지 않는 교장은 감동한 나머지 선생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행운이 우리 학원에도 찾아온가보오.》

점심시간이였다. 겨우내 석탄먼지를 뒤집어써서 시커매진 눈무지들이 녹아내려서 질펀해지고 얼룩이 진 더러운 운동장에 몇대의 고급승용차가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승용차의 으리으리한 빛갈에 그러지 않아도 무너져가는듯 하던 교사가 더욱 기를 못 펴고 한옆으로 기울어지는듯싶다. 교원실의 선생들도, 뜰에서 놀던 학생들도 놀라서 우뚝 서버린다.

털과 가죽과 보석으로 휘감긴 녀인들이 차에서 내렸다. 녀인들은 마당이 구질은데 우선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어느새 운동장까지 달려나와 어쩔줄을 몰라하는 교장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뭐라고 저들끼리 야단법석하면서 마른 땅을 골라짚는다. 그리고나서 비로소 교사의 전경을 훑어보고 소리들을 지른다.

《정말 가엾어요.》

그중에 섞인 미국인 하나가 손을 벌리고 입을 비죽이면서 슬픈 얼굴을 한다. 《꽃씨녀인회》의 좌상격인 그년은 맥드낼드의 녀편네였다. 조선녀자들보다 모가지 하나가 컸는데 얼굴도 몸집도 생김새도 메마르고 칼칼하였다. 그의 옆에 섰던 제일 젊고 호들갑스러운 녀자가 재미스러워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꼭 돼지우리지 뭐예요.》

그 목소리에 교원실에 있던 지혜가 흠칠 놀라면서 창문을 내다본다. 뾰족한 코에 대리석처럼 반들반들한 피부가 틀림없는 백신재였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요염한 매력을 나타내느라고 돈과 시간을 들인 몸치장이다.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정말이지 황송합니다.》

부자집녀인들의 이를데없이 사치한 차림새와 자기의 초라한 모습간의 엄청난 차이가 주는 어떤 굴욕적인 처지와 신재의 모욕적인 말을 참으면서 교장은 힘들게 말한다.

그들이 현관에 들어서자 향수내가 퇴락한 교사안을 더욱 어수선하게 하였다. 손목에도 귀에도 손가락에도 보석투성이인 뚱뚱한 중년녀인이 손가방에서 쵸콜레트 한통을 꺼냈다. 학생들이 멀찌감치에서 호기심인지 적의인지 알수 없는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뚱뚱보는 학생들에게서 10메터나 떨어진 자리에 선채 손가락을 까불거려 오라는 시늉을 하고 쵸콜레트를 내보였다. 허기진 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 녀자의 손에 쏠렸다. 교장이 슬픈 표정으로 학생들을 둘러본다.

아무도 얼른 다가오지 않았다.

쵸콜레트를 내든 그는 손수건으로 코를 막더니 상냥한 표정이지만 고개를 돌리면서 한 어린 학생을 향해 두세걸음 다가갔다. 소년은 그의 우묵 들어간 노랑눈을 어떤 공포에 차서 바라보다가 어째선지 손등으로 코밑을 훔친다. 교장의 얼굴에 말할수 없이 고통스런 빛이 지나갔다. 잠시후 소년은 비로소 눈을 내리깔더니 명백한 어조로 말하였다.

《저는 먹구싶지 않아요!》

뚱뚱보는 뒤틀리는 속내를 보이지 않으려고 잔뜩 찡그렸던 낯짝에 일부러 쓰거운 웃음을 그리며 쵸콜레트를 학생들에게로 던지고는 째진 목소리로 말했다.

《별난 애들, 별난 애들!》

그때 상학종이 났다. 학생들은 쵸콜레트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여느때 없이 와- 하고 비웃듯 소리치면서 교실로 흩어졌다. 선생들도 제각기 교실로 가려고 교원실을 나섰다.

《지혜 안야?》

신재의 쏘는듯 한 목소리를 등뒤에서 들은 지혜는 조용히 멈춰서더니 돌아서며 말없이 신재를 바라본다. 교장은 신재의 표정에 담긴 조롱의 빛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난한 아이들 교육에 헌신하는 우리 학교의 보배입니다.》

《오… 녀선생의 아버지도 이 학교에 있었습니까?》

맥드낼드의 녀편네는 인중을 길게 잡아당겨 입술을 오무리며 감동을 표시하였다.

《그렇습니다.》

교장은 방금 쵸콜레트때문에 있었던 불쾌한 기억을 지워버리려고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러자 그 녀편네가 지혜를 쳐다보았다.

《정말 기특한 일이군요. 교장선생님, 그런 갸륵한 선생들의 처지에 대해서는 더 깊은 관심을 돌려야 합니다. 기사에도 선생들의 대우에 대해서 동정을 표시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신재가 맵시있는 두다리를 어긋맞게 짚으며 멸시가 담긴 상냥하게 웃는 시선으로 지혜쪽을 보았다.

《맥부인님, 지혜선생 같은 갸륵한 녀선생의 대우는 더 후하게 해드려야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교장을 향해 말하였다.

《예산이 없으면 아버님께 말씀드려 도와드리도록 하겠어요.》

《백사장님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교장은 내키지 않는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신재의 《선심》에 모욕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지혜는 잠시 서서 생각하였다. 이 녀자와 싱갱이를 할 필요가 있겠는가? 무시해버리면 되는것이다. 지혜는 신재쪽은 보지도 않고 힘들게 발걸음을 떼였다.

《지혜, 고맙단 인사말이라도 하고 가야 하잖아?》

신재는 비웃음이 담긴 곁눈으로 지혜의 거동을 살핀다. 지혜는 다시 멈춰서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고마와. 그렇지만 나는 더 많은 월급이 필요없어.》

신재는 여전히 멸시에 찬 시선으로 지혜를 쏘아보았다.

《지혜, 나는 너를 볼 때마다 정말 불쌍해서 못 견디겠구나. 어머니가 삯빨래를 하고있다는데 그 값눅은 자존심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지혜는 천천히 돌아섰다.

《내가 거절한것은 자존심때문에가 아니지. 부정축재한 너의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조금도 없는거야.》

《뭐? 부정축재라고? 네가 감히…》

신재는 너무도 성이 나서 말도 잘 못한다. 지혜는 돌아섰다. 뒤에서 숨이 넘어갈듯 한 목소리로 교장을 질책하고있다.

《교장, 이 무슨 판이예요. 녀선생이 이럴수 있어요?》

《…》

교장은 사색이 되였다. 그러나 지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태연한 표정으로 힘없이 교실을 향해 걸어갔다. 교장은 지혜를 불러세우지 않았지만 그대신 자신이 머리를 숙여 매여달리듯 사과하는것이였다.

《손님들의 왕림은 우리 학원에 더없는 영광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귀하신 손님들의 자비심은 보잘것없는 한 녀교원의 철없는 행동을 용서하고도 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신재는 발을 동동 굴렀고 보석투성이 녀인들은 마치 자기 집 하인들을 추궁할 때처럼 서슬이 푸르러 교장에게 갖은 악담을 퍼붓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사과하던 교장도 나중에는 기운이 진해 얼굴빛이 시커매져서 잠자코 말았다.

《그 녀교원이 지혜라고 했지요?》

맥드낼드의 녀편네가 물었다.

《그는 나도 얼마간 알고있습니다. 나의 선량한 맥드낼드의 호의 역시 원쑤를 갚듯이 거절했습니다.》

지쳐서 서있던 교장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지혜선생은 그런 선생이 아닙니다.》

《교장의 두던이였구만요. 지혜의 안하무인이…》

《아니올시다. 신재양, 마음을 가라앉히십시오. …백사장께서는 우리 학원을 창립해주시였을뿐아니라 현재도 리사장으로 계시면서 음으로양으로 도웁고계시는데… 이거 우리 학원을 위해서 일부러 찾아오신 여러분들을 서운하게 해드려서야 도리가 아니올시다. 지혜선생에게는 제가…》

그리고나서도 그들은 한참동안 야단을 부리다가야 겨우 직성이 풀린듯 학교를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교장은 강우를 안내하던 그때처럼 이지러진 교사의 안팎을 슬픈 표정으로 안내한다.

《오, 정말 가엾습니다. 우리 <한국>에 이런 학교는 더는 없을것입니다.》

그들은 무슨 구경거리를 본것처럼 감탄사를 련발한다. 그런데 맥부인이 또 이런 말을 하는것이였다.

《신문기사 그대로입니다. <버림받은 천사들!>, 제목도 좋습니다. 필자가 강우라고 했지요?》

지혜는 복도에서 들리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수 없었다. 마침 학생들은 필기를 하고있었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재능있는 기자입니다. 학원의 모습을 정말 방불하게 소개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나니 눈물이 납니다.》

《우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든지 자선금을 타내야겠다고 생각하는 교장은 기뻐 그렇게 대꾸하였다.

《<일일신문> 기자로는 아깝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다른 기사들도 보았습니다. 날카로운 필봉을 가진 유능한 기자입니다. 남편도 여간 감탄해마지 않지요.》

지혜도 강우의 기사를 거의 빼놓지 않고 읽는다. 그렇지만 맥드낼드나 그의 녀편네가 기뻐할 그런 기사들일수가 없었다. 강우의 기사는 유능한 외과의의 수술칼처럼 날카로왔다. 물론 일부 표현들을 에둘러서 쓰지 않을수 없었고 비유로 대치하기도 하였지만 독자들에게는 충분히 필자의 비판이 파악되는 그런 기사들이였다. 그런 기사들에 대한 맥부인의 뜻밖의 평가는 오히려 지혜의 마음을 섬찍하게 한다.

《그 기자는 반드시 명성을 떨칠것입니다. 그의 재능 하나만 가지고도 신재양의 아버지보다 더 명망을 가진 그런 지위를 차지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재능을 돈과 권세에 비기겠습니까. 나와 맥드낼드는 정말 그 사람의 기사에 반했습니다. 듣자하니 외모도 아주 끌끌한 호남아라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인품이 있는분이더군요.》

교장도 맞장구를 친다.

《우리 집에도 한번 왔었어요. 아버님이 그러시는데 담이 있고 괜찮게 명석한 청년이라고 칭찬하셔요.》

신재의 목소리다. 맥부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공연한 장단이였다. 지혜는 주고받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떤 불길한 생각에 가슴이 뒤설레였다.

교사안을 돌아보고난 《자선부인》들은 10립방의 흙이라도 파고난 사람들처럼 녹초가 되여 교장이 그렇게도 보이고싶어하는 실습실에는 들리지도 않고 손을 휘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그리하여 번쩍거리는 승용차들은 떠나가버리고 초라하고 무너져가는 교사는 아무 일도 없었던듯이 그대로 서있었다.

교장은 너무도 모진 신경을 쓰고난 뒤라 교원실에 돌아오자 자기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가눈다. 무엇인가 화가 치미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일이 모두 공허하게만 생각되였다. 한것은 공연히 그를 난처하게 한 지혜에게가 아니라 다루기 힘들었던 유한부인들에 대해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지만 하학종이 울리고 선생들이 교원실에 들어서자 교장은 별안간 새 힘이 솟아오른듯 큰소리를 쳤다.

《리선생! 리선생은 학원을 생각하시오? 안하시오?》

《생각합니다.》

지혜는 조금도 서슴없이 자기의 심정을 말하였다. 생각하고있다. 온넋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렇게 참을성이 없소? 학원이 추서는가 못 추서는가 하는 중요한 고비에서 그렇게 행동해야 직성이 풀리오? 선생은 젊은 한때에 경험해보는 학원생활이지만서두 이 교장에게는 목숨을 건 일생의 직업이요! 여덟이나 되는 일가식솔이 나 하나에 매달려있소. 이 늙은것은 젊은이들처럼 수틀리면 그만둘 각오를 하고 덤비지는 못하오.》

교장은 말을 하는 동안도 점점 더 성이 올라 나중에는 목소리가 갈렸다.

《이 늙은이에게 자존심이 없어서 참는줄 아시오? 저보다 30년이나 아래인 그에게 허리를 굽히는것이 마음이 편해서 그랬는줄 아시오? 학원을 위해서, 불쌍한 학생들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참았소. 숙어지지 않는 머리를 숙였소! 한푼이라도 학원이나 학생들에게 리롭게 된다면 이 교장이나 리선생의 자존심이 뭐겠소?》

지혜는 놀란 얼굴로 교장을 보았다. 참을성에 대한 그의 마지막말은 더구나 가슴을 친다. 그는 교장을 처음 보기나 하는것처럼 시선을 뗄수 없었다. 반백이 넘은 머리칼, 푹 꺼진 두볼, 세파에 이그러지고 고통에 찬 표정… 그러나 그 깊이에는 학생들에 대한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절절한 사랑의 감정과 헌신이 깃들어있었던것이다. 그가 지금처럼 훌륭해보인 때는 더는 없을것 같다.

지혜는 구원을 청하듯 상애를 보았다. 상애뿐아니라 다른 교원들도 영철이까지 침통한 빛으로 고개를 숙인다. 발끝에서부터 뜨거운것이 걷잡을수 없이 끓어오른다. 종시 지혜는 교장앞으로 달려가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교장선생님, 멸시의 대가로 베풀어지는 자선은 받지 마셔요! 학생들은 배를 곯고있으면서도 쵸콜레트를 받지 않았어요. 굶어도 당당하고 값있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학생들을 가르치고있는 우리가 아니겠어요?》

교장은 놀라는 눈길로 지혜를 응시한다. 세월의 비바람속에서 빛을 잃었던 열정과 자랑이 고통스럽게 뒤채기고있다. 잊어버렸던 격동과 분노가 그의 마음을 허비여놓은것이다. 교장은 목갈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젊었을 때가 생각나오. …하지만 너무도 괴로운 세월이 흘렀소. 내게 남은건 참을성뿐이요. 학생들에게 줄수 있는것도 참을성뿐이요.》

교장은 고개를 푹 떨군다. 눈길은 지혜를 향해 있었으나 먼 어딘가를 바라보듯 초점이 명확치 않았다.

《이 교장이 욕을 당해도 좋고 멸시를 당해도 좋으니 우리 학생들의 처지가 조금이라도 나아졌으면 하는것뿐이였소. …실습실만이라도 겨울에 불을 때주고 방바닥에 마루라도 깔아 여름에 벼룩성화를 받지 않게 했으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당하는 모욕이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견딜수가 있었소.》

교장은 목이 콱 막혀 더 말할수가 없는 모양이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문 안돼요!… 제가 참을성이 없어서 그랬던것이 아니예요.》

지혜는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별안간 10년이나 더 늙어버린듯이 축 처져있는 교장의 모습이 가슴을 쳤던것이다. 선량한 늙은이의 넋을 괴롭혔다는 생각이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혜는 낮은 소리로 계속하였다.

《용서하세요. 교장선생님의 마음을 괴롭힌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천대하는 사람들이 자비심을 가지면 얼마나 가지겠어요.》

짓밟는 사람들! 지혜의 머리속에 그놈들의 얼굴이 똑똑히 떠오른다. 백창락, 백신재, 맥드낼드와 그의 녀편네, 총을 겨누던 경관들, 사찰계주임, 림억규들의 얼굴이 생각의 격류속에서 솟아오른다. 검은 도포의 맥드낼드가 그 누구보다도 크게 그리고 험상궂게 높이 솟아오른다. 그 검은 도포밑에서 돈과 권세와 사치와 허영이 날뛰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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