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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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12

 

《사연을 말하게! 머리만 끄덕이지 말고 말을 해야 알게 아닌가!》

구청교육감이 하도 어쩔줄 몰라 더듬거리고있는데 화가 난 백창락은 의자팔걸이에 얹고있던 손을 탁 치면서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애청학원페교에 대한 건의서가 기각되였습니다요.》

《뭐라고? 어느 놈이 기각을 해?!》

성이 났을 때면 항상 그렇듯이 관자노리의 피줄이 불끈불끈 일어섰다.

《조사불충분이랍니다. 공연한 시비지요. 지금까지 그만 못한것에도 승인을 했던 시청입니다.》

백창락은 탁상전화를 나꿔채 든다. 그것을 본 교육감은 더 당황하여 떨리는 소리로 간청하였다.

《사장님, 제 말을 들으시고 거십시오. 시장의 불찰이 아닙니다.》

《시장이 네 하내비라더냐? 전화도 못 걸게, 응?》

창락은 눈을 치째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아닙니다. 시장이 아닙니다. 저… 저 맥신부님…》

《맥신부?》

그제야 창락은 수화기를 놓았다.

《맥신부가 여기 무슨 상관인가? 맥신부가 어떤분이기에 애청학원따위 보잘것없는 학원페쇄에 마음을 쓰시겠는가? 임자들이 억지로 만든 수작 아니냐?》

《아닙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저희도 난감할뿐입니다. 저는 건의서가 기각되자 그달음으로 시청에 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어리벙벙해있지 않습니까? 그날 <꽃씨녀인회>에서 애청학원에 보내달라고 금일봉(돈이 얼마간 든 봉투)이 도착했다는것입니다.》

갑자기 창락은 소리내여 웃으며 려송연에 불을 붙여물었다.

《금일봉에 대해서는 나도 안다.》

그 금일봉으로 말하면 원래는 창락의 주머니에서 나온것이다. 언제부터인가 그는 ㄷ방직을 확장하고싶어 대지를 물색해왔는데 방직공장부근에는 이런저런 리유로 살만 한 땅이 없어 안달아있었다. 그러던중에 애청학원에 대한 강우의 기사를 보자 백창락의 머리에는 무엇인가 섬광이 번쩍하였다.

(페교되게 만들자. 서울거리에 그런 한심한 학교가 있어서 되겠는가고!)

이 교활한 벼락부자에게는 때때로 《천재적》인 령감이 번뜩이군 하였다. 그 무지한 섬광으로 해서 해방직후 불하받은 몇개의 공장건물과 기계를 뜯어팔아 수백명의 로무자들을 퇴직금도 없이 거리에 쫓아내고 자기는 천금을 획득하였고 그 미치광이같은 빛발로 해서 선거자금을 조달한후 자기는 그 몇배에 달하는 특혜를 얻어 딸라장사로 만금을 획득했다.

며칠전 그는 구청관리들에게 페교건의서를 내게 하였는데 공교롭게 맥부인이 무슨 로망으로 애청학원을 방문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언제나 그렇듯이 그에게 《자선》사업비를 지불해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막상 금일봉을 보내면서는 앞으로 페교때문에 무슨 말썽거리가 생긴다 해도 신재가 있는 《꽃씨녀인회》가 《자선금》을 보낸것으로 미루어 자기의 롱간이 아닌것으로 엄페될수도 있어 오히려 잘돼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관청의 이 바보들은 맥부인이 수리비까지 보내는것으로 보아 맥드낼드가 애청학원페교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고 지레짐작한 모양이라고 창락은 생각하였다. 그러나 교육감의 대답은 그렇게 단순한것이 아니였다.

《사장님께서 아실줄 저희들도 알고있습지요. 따님이 <꽃씨녀인회>에 계시다는것을 알고있으니까요.》

《그래서?》

창락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였다.

《맥부인께서 시장을 친히 부르셨답니다. 시장께서는 곧 찾아가셨지요. 그런데 부인께서 금일봉을 주시면서 <꽃씨녀인회>는 애청학원에 대해 큰 관심이 있으시다고 하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는것입니다. 백만장자인 백창락이가… 용서하십시오. 맥부인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말하자면 사장님께서 리사장으로 계시면서 학원을 그렇게 돼지우리처럼 해둘수 없다고 하시더랍니다. 사장님께서 돌보시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꽃씨녀인회>에서 돌보겠다고 하시더라지 않습니까.》

백창락은 얼굴빛이 꺼매졌다. 맥부인의 사람됨을 얼마간 알고있는 그는 그가 학원을 불쌍하게 생각해서 그럴리 없다고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무엇인가 흉책이 있다. 교육감은 게다가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한다.

《더구나 페교한다는것은 아주 불측한 생각이라고 하시더랍니다.》

그것은 청천벽력이라고 할만치 뜻밖의 일이였다. ㄷ방직을 확장하는데는 방직기계를 사들이는것, 원면을 더 불하받는것, 자금의 융통, 부지의 확장과 작업장의 건설 등 허다한 난점이 있었다. 그 난점들을 타개하기 위하여 맥드낼드의 절대적인 후원이 필요했는데 그중에서 공장부지의 확장만은 자기 힘으로도 쉽게 해결할수 있다고 생각하던 문제였다. 왜냐하면 얼마전에 애청학원 원소유자였던 과부가 죽었으니만치 페교만 된다면 이렇게저렇게 문서놀음을 해서 학원의 부지를 힘들이지 않고 제 손아귀에 거머쥘수 있다고 생각되기때문이였다. 그런데 하늘처럼 믿던 맥드낼드가 원면불하나 기계반입에 대한 후원은 고사하고 창락이 혼자 힘으로 될수 있는 애청학원의 페교에 대해서 방해까지 하고있다는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맥드낼드의 뒤받침이 없어진다면 ㄷ방직확장은 고사하고 그의 막대한 재산전체가 모래우에 세워진 루각에 지나지 않게 된다. ㄷ방직을 위한 원면불하도 어려워질것이며 ㄷ무역상사의 중요한 수입원천인 밀수입도 불가능해지며 미국상사들과의 련계도 힘들어질것이며 조합의 이름으로 소유하고있는 호남벌의 광대한 논밭을 위한 비료의 입수도 곤난해질것이다. 남조선의 모든 경제가 미제에게 예속돼있듯이 백창락의 기업들은 맥드낼드의 손에 쥐여져있었던것이다.

맥드낼드와 사귀게 된지가 벌써 근 십년이 되지만 창락은 맥신부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것이 적었다. 항상 신부옷을 입고 다니지만 단순한 신부가 아니라는것만은 짐작이 되였다. 왜냐하면 그의 소개신만 가져가면 모든 주《한》미경제기관들이 두말없이 창락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맥드낼드의 얼굴은 본국이나 일본에서도 널리 알려져있었다.

왜 맥신부의 태도가 돌변했을가? 창락은 그 원인으로 될 여러가지 경우를 생각해보았다. 뢰물의 량이 적었던가? 딴 경쟁자가 자기를 밀어젖히고 맥드낼드의 소매자락을 그러잡았단 말인가? 아니면 맥신부의 단순한 변덕일가? 모든 경우가 다 그래보이기도 하고 안 그래보이기도 하였다.

하기야 맥드낼드의 비위를 맞추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였다. 험상궂은 매부리코에 소름이 끼치는 투명한 두눈, 눈밑에 매여달린 콩알만 한 기미, 시커먼 도포에 싸인 커다란 몸집… 모든것이 사납고 까다롭고 포악한 독수리였다. 그렇건만 그 독수리의 깃속에는 벼락돈벌이구멍을 꿰뚫고있는듯 한 딸라냄새가 은연중에 풍기군 해서 창락은 온갖 천대를 받으면서도 그의 소매자락에 매여달리지 않을수 없었다.

《알려주어 고맙다.》

교육감에게 지전 몇장을 집어주어 보낸 후 창락은 서둘러 외출준비를 갖추고 운전사에게 시청을 향해 차를 몰라고 하였다. 더 자세한것을 알아야 한다. 시장이 만났을 때의 맥부인의 표정이며 어조며 그 말마디들을 자세히 들어야 어떻게 된 사연을 풀 실마리라도 잡히지 않겠는가.

갑자기 차가 시청앞 광장에 채 가기 전에 굽인돌이에서 멎었다.

《왜 멎어?》

백창락은 공연히 가슴이 철렁하였다.

《시위대입니다.》 하며 운전사는 난처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학생들의 시위입니다. 경관들이 더 합류하지 못하도록 막고있습니다.》

《딴 길로 돌아가봐라!》

차는 뒤로 돌면서 천천히 움직였다.

《호텔앞으로 빠지는 길도 막힌것 같군요. 통로마다 꽉 들어찼습니다. <국무총리>께서도 골치가 아프실겁니다. 시위가 없는 날이 없으니… 그것도 나날이 다르게 커진단 말입니다. 요즈음은 4. 19때처럼 온 거리가 끓고있으니 말입니다. 이러다가는 새 <총리>도 며칠 견디겠는지 모르겠습니다.》

《뭘 태평스레 지껄이고있어? 빨리 차나 몰란 말이다!》

그런데 차가 또 멎었다.

《사장님, 앞뒤로 막혔구만요.》

그들에게서 직각으로 보이는 교차점으로 학생들의 대렬이 새까맣게 지나가고있었다. 프랑카드며 구호판들을 들고 아직은 조용히 지나가고있었다. 발구름소리만이 끊임없이 울려왔다. 이렇게 많은 청년학생들이 미국의 원조를 받고있는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고있단 말인가? 가뜩이나 불안해서 앉아있던 창락은 속이 떨려왔다.

《하기야 4. 19보다 더 기승스러워졌다고 할수 있지요.》 하며 운전사는 신이 나서 말을 계속한다.

《요즈음은 어느 시위나 <양키 물러가라>, <왜놈 물러가라>고 쓴 프랑카드를 들고 나간단 말입니다.》

《듣기 싫다!》

어디선가 호각소리가 들리더니 한 순경이 달려와 차창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말했다.

《저기 좁은 길로 빠질수 있습니다. 그리로 가주십시오.》

돌연 멀지 않은 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교차점에 대기하고있던 순경들이 일제히 곤봉을 쳐들고 시위대속으로 뛰여든다. 군중의 분격의 웨침이 거리를 뒤흔들며 들려왔다. 백창락의 얼굴은 점점 더 컴컴하게 죽었다.

《집으로 가자.》

차는 다시 돌아섰다. 또 총성이 울려왔다. 그러자 교차점에서 시위군중이 이쪽으로 사태처럼 쓸어들어왔다.

《빨리 몰게!》

창락의 차는 군중의 물결에 밀리듯 달리였다. 창락은 뒤를 돌아보았다. 시위군중이 든 하나의 프랑카드가 바람에 펄럭이면서 씌여진 글자가 창락의 가슴을 전률케 하였다.

《악질재벌 몰아내자!》

끈질긴 창락은 집으로 돌아오자 떨리는 손으로 맥드낼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맥부인이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에도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 《꽃씨녀인회》가 애청학원에 충분한 《자선》을 하도록 돈을 보내준데 대해서 아주 감동했다고 말하면서 자기 집에 한번 초청하겠다고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페교에 대한 그의 물음에는 매번 딴전을 부려 창락은 아무것도 알아낼수가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며칠이 지나서 안상두교감은 학원운영리사회의 결정을 교원들에게 전달하였다. 그 결정에는 뜻밖에도 밤에까지 실습을 시킨것이 부당했다는것을 인정하였고 앞으로는 아무런 리유없이 밤일을 시키지 않을것이라는것, 단 일감이 없어 제정된 실습시간에 일을 하지 못했을 때만 다른 날에 그만큼의 시간을 첨가해야 하므로 부득이 밤일을 하게 될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항의를 한 교원들모두에게 어떤 형식의 제재도 가하지 않겠다고 했을뿐아니라 봄이 되면 교사와 실습실에 대한 대대적인 보수를 하겠다는것까지 약속하였다. 그렇지만 학교운영상 3시간의 실습시간은 너무 짧으니 4시간으로 연장하겠다는것을 선포하였다.

교감의 말이 끝나자 영철교원이 랭랭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실습시간을 3시간에서 4시간으로 연장하는데 반대입니다.》

《말타문 경마잡히고싶다고, 영철교원으로 말하면 제재를 받지 않은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하시오.》

교감이 악이 나서 쏘아붙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실습시간 3시간만 되면 학생들을 돌려보내겠습니다.》

《저희들도 일단 결정했던것이니만큼 영철선생처럼 하는수밖에 없군요.》

다른 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교감은 눈에 모를 세워 선생들을 둘러본다.

《상애선생도 한배속이요?》

그래도 녀선생이 만만할것으로 생각해서 상애에게 물었는지 모른다.

《네.》

상애는 서글픈 표정이였지만 명백하게 대답한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지혜는 묻지도 않는데 대답하였다.

《지혜선생이 한배속이라는것은 알고있소!》

교감은 딱 버티고 앉아서 언제까지나 교원들을 쏘아본다. 그러나 이튿날 그는 운영리사회가 실습시간을 4시간으로 연장하려던 안을 철회하였다고 다시 통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날 오후수업을 끝내고 숯불을 피운 화로두리에 모여선 선생들은 빛나는 시선들로 서로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겼소!》

《어쩐지 너무도 쉽게…》

어떤 불안이 선생들의 빛나는 시선을 떨게 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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