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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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공기, 넘쳐나고있는 해빛, 그들은 커다란 바위우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발아래로 굽어보이는 깊은 골짜기에는 맑은 시내물이 암석에 부딪치면서 굴러가고있었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방울들에 해빛이 반사되여 그것은 튀여오르는 진주알들 같았다.

여기서는 착잡한 서울거리가 보이지도 않았고 그 소음이 들리지도 않았다. 강우는 지혜만을 바라보고있었다. 푸른 하늘의 무한대한 공간이 지혜의 머리뒤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있었다.

《여기 오기를 잘했소.》

《네.》

반장은 신원보증서를 해가지고 와야 한다면서 지혜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생각다 못해 강우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여기 북한산에서 만나자고 했었다.

《이런 시간을 우리에게 준 반장에게 한턱 내구싶군.》

강우에게서는 얼마간의 술내가 났다. 그리고 여전히 담배를 련속 피운다. 그러나 지혜는 술에 대해서는 잠자코 있었다. 술을 한잔도 안 마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아온 어머니가 강우를 위해서 술을 사다주군 했다는 심정을 생각해서 아무 말 안했다.

《류치장에 있었던것이 밝혀지지 않도록 신원보증서를 해주셔야 해요.》

《그 말 아까도 들었소. 지혜의 머리에는 공장만이 있군. … 지혜는 자기의 생활속에 내가 설자리를 생각한 때가 있소? 나는 나의 생활의 한걸음도 지혜를 떼여놓고는 생각해본적이 없소. 그런걸 느끼지 않소?》

그 말에 지혜는 마음속으로 놀랐다. 강우가 진실을 말하고있기때문이다. 지혜는 자기가 강우에게서 점점 멀어지고있다는것을 느낀다. 4월이후 공장에까지 이른 매 걸음이 그랬다. 왜 이렇게 되였을가? 왜 모든 깨달음을 강우와 함께 나눌수 없었을가? 강우를 움직이게 하기에는 지혜의 힘이 부쳤었는지도 모른다. 강우는 지혜보다 더 많은것을 알고 더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있으며 더 과감한 행동력을 가지고있다. 그렇지만 강우는 자기의 그 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땅에 발을 붙일 대신 언제나 허공을 날아다닌다. 날아다니며 모든것을 굽어본다. 하지만 진리는 허공에 있지 않았다. 진리는 지상에 압박받는 사람들과 함께 가시밭속에 있다.

강우와 지혜가 함께 있기 위해서는 그도 가시밭에 내려서야 하는것이다. 그때는 권범이와 복희처럼 서로 고통을 나누고 서로 고무하고 의지하면서 떨어져있어도 함께 있는것처럼 미덥게 살수 있을것이다. 그렇건만 지금은 이렇게 마주앉아있으면서도 천리의 거리를 느끼고있는 그들.

《함께 있고싶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요. …》

《내 눈에는 가시덤불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고있는 지혜의 뒤모습만이 보이오. 위태로운 지혜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나를 몹시 불안하게 하고있소.》

《저에 대한 불안은 제가 옳은것과 외면할 때만 느끼셔야 해요.》

지혜는 얼굴을 들어 강우를 쳐다보며 간청하듯 말하였다.

《옳은것? 옳은것에 대한 판단이 그렇게 단순하오?》

땅이 아니라 허공으로 강우를 뜨게 만든것이 무엇이였을가를 지혜는 생각한다. 그것은 남보다 우월한 그의 재능 그리고 만민을 굽어보려는 그의 야심, 그 야심으로 해서 그는 땅에 내려설수가 없는것이다.

《나는 지혜처럼 자기를 최대한으로 학대해야 반드시 옳을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소. 또 옳게만 살수도 없는 세상이요. 무엇인가 빛을 뿌리다가도 하루아침에 거미줄처럼 툭툭 끊어지는 불안의 시대, 한치만 머리를 쳐들어도 비오는듯 하는 탄우에 헛되이 쓰러져야 하는 공포의 시대, 이런 사회에서 옳고그른것을 판단할 리념을 가질수 있는 용기가 어떻게 생길수 있소? 이 썩은 늪우에 생신한 지혜가 존재한다는것이 이상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오.》

지혜는 서글픈 얼굴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강우씨, 쉬운 말로… 저는 알아들을수가 없어요.》

《지혜는 다 알아듣소.》

강우는 소리를 높였다. 취기가 그를 더 흥분시킨것 같다.

《나는 지혜가 공장에 간것이 옳은것과 정면하는것인지, 외면하는것인지조차 알수가 없소. 반드시 로동을 해야만 옳소?》

그런것은 아니다. 지혜의 경우 생활이 그것을 인도하였고 요구하였다.

애청학원에서의 1년은 지혜에게 억압당하는 사람들의 불행과 고통을 보게 하였으며 그들의 분노와 힘을 느끼게 하였다. 지혜는 그들과 헤여질수가 없었다. 그들과 함께 있을 때만이 줄기찬 생명력을 느끼면서 진정으로 살고있는것이다. 그리고 류치장에서의 한달은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을 뒤엎기 위해 억압당하고있는 수천만 사람의 힘과 련결하는 그 길만이 진리의 길이라는것에 신념을 가지게 하였다.

지혜가 처한 구체적인 생활이 그 힘과 련결하기 위해 ㄷ방직로무자가 되기를 요구하였을뿐이다. 지혜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안고 그 새 생활의 출발점에 있는것이다.

《저는 반드시 로동을 해야 옳은 길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다만 옳게 사는 길이 아무리 험난해도 피하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수천만사람들이 천대를 받고 굶주리며 죽어가고있어요. 강우씨도 이 땅에 공포와 불안만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어요?》

지혜는 자기가 말하려는 내용이 격해질수록 오히려 낮은 소리로 담담하게 말한다.

《저는 그런 사회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있어요. 그것을 위해 사는 길만이 옳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고있어요. 하지만 그 길에 놈들은 온통 험악한 가시밭을 만들어놓았어요. 그러니 옳게 살려면 결코 평탄하게 살수가 없어요.》

《그래서? 천대받는 사람들의 힘을 믿소? 하기야 그들에게 힘의 원천이 있을지도 모르지. 왜냐하면 그들이 바로 생산을 담당하고있으니까. 아무리 비옥한 땅이 있어도, 아무리 현대적인 기계가 있어도 로동자, 농민의 피땀이 아니라면 쌀도 옷도 대포도 나오지 않으니까.》 하는 그의 말에는 어떤 파괴적인 격정이 있었다.

《박정희가 아무리 <국가재건>의 원대한 구상을 떠벌여보았댔자 로동자, 농민이 생산해주지 않는다면 그만이니까. 칼자루를 쥐고있는것은 헌병이나 관료배들이 아니라 사실에 있어 로동자, 농민이지!》

강우는 자기의 울분이 지혜때문이기나 한것처럼 점점 더 성이 난 목소리로 말을 계속한다.

《하지만 로동자, 농민들은 너무도 선량하오. 그 천대와 굴욕속에서 견디여내는 참을성을 나는 존경할수가 없소. 차라리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불신의 시대, 불안과 불신은 젊음을 좀먹고 강자를 교활하게 만들고 약자를 절망에 빠뜨리고있소.》

지혜는 슬픈 얼굴로 강우의 그 말을 듣고있었다.

《왜 슬픈 표정을 하지? 하긴 슬픈 일이요. 얼마전까지 나는 사회의 악덕을 폭로하여 이 나라를 청신하게 만드는것이 신문인의 사명이라고 했고 그렇게 할 힘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였소. 생각하면 누구를 향해 악덕을 폭로하는것이였겠소. 누가 이 나라를 청신하게 만든다고 생각했겠소? 썩은 정객들의 <량심>을 자극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소? 백성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였소? 아니면 그저 나자신의 공명을 위해서였소? 정객들의 <량심>을 믿지 않는 내가, 백성들의 힘을 믿지 않는 내가, 그러니 공명이였는지 모르지. 공명! 지혜,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사회도 정치도 나자신도… 내가 믿는것은 지혜뿐인지도 모르오. 나의 생명의 마지막지탱점…》

지혜는 목이 메였다. 강우의 허무적인 기분은 날이 갈수록 더해져가고있는것이다. 지혜는 강우의 고통이나 슬픔에 대해서는 아무것으로도 위로하지 못했던 자신의 잘못을 가슴저리게 느낀다. 그들은 사랑하고있는것이다. 그의 생활은 강우의것과 련결되여있어야 한다. 그의 행동들에 불만을 느낄 때에도 마음은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하며 서로가 멀어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혜는 그렇게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강우를 서운하게 했을것이며 그의 절망적인 기분을 더 강하게 했을지 모른다. 지혜는 새로운 자책에 가슴이 미여지는것을 느끼며 고개를 떨어뜨리고 말하였다. 상대방의 가슴을 치는듯 하는 목소리였다.

《그러시문 안돼요. 리념을 잃으시면 안돼요.》

《리념? 리념이 없어 허덕이는 지식인이 나 하나뿐이겠소? 리념은 사회가 주어야 하오. 비겁조차 악덕이라고 할수 없는 이 스산한 나락속에서, 절벽을 무너뜨리려는 용기가 오히려 어리석어보이는 이 험난한 생활속에서, 겨우 한가닥의 량심만이 지식인의 목숨을 지탱하고있는 이런 페허속에서 어떤 리념을 가질수 있소?》

강우는 가슴이 답답한듯이 앞단추를 열어제끼고 거칠게 숨을 쉬더니 담배를 피워물었다. 지혜는 그의 무릎우에 두손을 얹으며 떨리는 소리로 말하였다.

《절망을 앞세운다면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아요. … 어제 한 직조공처녀가 과로와 허기증을 견디다 못해 기계우에 쓰러졌어요. 그 녀공은 결혼을 했고 임신을 했지만 해고될것이 두려워 속이고 다니고있었어요. 그 무더위와 습기와 먼지와 13시간의 로동은 건강한 저로서도 견디기 힘든 일이예요. 그러니 임신한 그 녀공이 어떻게 쓰러지지 않을수 있겠어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셔요? 생각하신다면 결혼했다고 해고하는 일이 없는 새 제도를, 산부들에게 안정을 주도록 하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시지 않아요?》

강우는 어떤 놀라는 표정으로 지혜를 보고있었다. 지혜는 더 낮은 소리로 이렇게 계속한다.

《강우씨는 로무자들의 참을성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저 역시 그렇게 참고있어요. 제가 할일없어 우두커니 서있다고 해서 감독놈이 저의 어깨를 마구 밀치더군요. 저는 피대에 감겨들가봐 겁이 났어요. 그 모욕을 저는 참아야 하지요. 앞으로 그보다 더한 모욕도 참을거예요.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하니까요. 싸우는 그날까지 힘을 기르기 위해 참아야 하니까요.》

강우는 눈을 커다랗게 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지혜를 주시한다.

《지혜가 그런 천대를 받고있단 말이요?》

지혜는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은 머리를 숙이는것이 아니예요. 하나의 천대에 대해 열개의 투지를 기르고있으니까요. 강우씨, 군사<정권>이 아무리 포악하다고 해도 절망한다는것은 너무도 참을성이 없어요. 억압이 있는 곳에는 항거가 있는 법이라고… 무지막지한 <군법>이 언제까지나 나라를 다스릴수는 없어요. 하지만 강우씨, 저도 강우씨에게 뭔가 잘못했어요. 가난과 과로와 경찰의 그 혹독한 고문을 견딘다는것이 저에게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였어요. 저는 강우씨에게 살뜰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제가 고문에 시달리고있을 때에도 강우씨는 저의 마음속에 살아있었어요.》

강우는 오래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벼운 바람과 함께 그들의 머리우에서 락엽이 떨어졌다. 깊은 골짜기밑을 굴듯이 떨어져내려가는 시내물은 바위에 부딪치면서 맑은 가을해빛을 받아 여전히 구슬처럼 빛을 뿌리고있었다. 그리고 시내물속은 끝없이 투명하고 푸른 하늘빛이 그대로 가라앉아 푸르게 빛나고있었다.

지혜와 갈라진 강우는 길가에서도 수없이 담배를 피우며 어두운 표정으로 신문사에 들어섰다. 심부름을 나가던 급사애가 강우를 보자 다정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어디 온종일 가계셨어요? 국장님이 련락도 없이 안 들어오신다고 좋지 않아하셨어요. 강선생님, 요즘 좀 이상하거든요.》

강우는 급사애의 짧은 머리칼을 한번 휘저어놓으며 말했다.

《요즈음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 있더냐? 거리를 좀 봐라. 저게 제정신들이냐?》

술취한 장교 하나가 담배장사아이의 담배통을 빼앗아 땅바닥에 던지더니 마구 짓이기면서 제편에서 고함을 치고있다.

《누가 양담배를 팔라고 했어!》

담배장사아이는 얼굴이 새파래서 애원한다.

《양담배는 두곽밖에 없어요. 그건 장교님께 드리겠어요. …》

강우는 급사애를 굽어보며 웃었다.

《그래도 저놈은 자기야말로 <국산품>을 장려하는 애국자라고 하겠지. 저렇게 빼앗은 담배를 저놈이 어떻게 처분하는지 아느냐? 자기가 피우든가, 뒤구멍으로 팔든가 한단 말이다. 누가 제정신인지 두고보자꾸나.》

《하지만 강우아저씨가 이상해진건 틀림없어요. 통 기사는 안 쓰시고 말로만 큰소리를 치신다니까요.》

《흥, 네 말 옳다!》

강우는 층계를 올라갔다. 낡은 책상 몇개와 의자들뿐이고 그밖의 가구는 아무것도 없는 휑하게 넓기만 한 방에 몇명의 기자들이 앉아 기사를 쓰고있었다. 쭈크리고 앉아 쓰는 사람, 다리를 책상우에 올려놓은채 무릎에 원고용지를 놓고 쓰는 사람, 창문턱에 서서 쓰는 사람, 책상에 팔굽 하나를 짚고 모로 앉아 쓰는 사람, 아무것도 안 쓰고 왔다갔다하며 남에게 방해만 놀고있는 사람, 그런 자유주의적인 분위기로 틀이 잡힌 방이다. 자욱한 연기속에 재털이마다 꽁초가 수북한데 그걸 또 뒤져 피우고 비벼껐다가는 또 피운다.

《오곡이 무르익은 청명한 가을날이다!》

한 기자가 읊조리는 투로 공연한 소리를 한마디 한다.

《추석이 지난 산소에는 락엽만이 우수수… 이런 날에는 술병차고 자연과 함께 마셔야 하네!》

다른 기자가 아무데나 대고 손가락끝으로 담배재를 털며 말했다.

《흥, 그랬으면 팔자 좋지. 하지만 주머니는 빈털터리요. 애새끼들은 배고프다 잉잉거리고…》

《녀편네라는것은 바가지만 긁고 앉았고 어디 가나 <구멍뚫린 인생>, 그래도 써내라는것은 뻔뻔스럽게도 장교나리들을 찬양하는 명랑한것이라야 한다니 쑥밭에서 벼가을하라는 격이지.》

《못 쓰겠다면 <군사재판>, 안 쓰면 미역국이거던…》

기자들은 한마디씩 내던지며 글줄들을 갈겨쓴다.

강우는 창밖을 향해 담배만 피우면서 아무것도 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이 피비린내나는 사회상을 두고 롱담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란폭하게 이그러지고있는 생활을 눈앞에 보면서도 폭로와 규탄의 예리한 무기를 가지고있는 그가 속수무책으로 멍하니 앉아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사회를 기형화하고있는 폭력을 찬양하는 글을 써야 한다. 그런 글은 정의감까지 동원하지 않더라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쓸수 없다. 인간의 존엄이 용서하지 않는다.

어디를 보아야 헤여나갈 구멍이 없다. 아버지는 종시 공장문을 닫고 기계를 뜯어 팔며 빚을 정리하고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막상 공장을 정리하게 되자 경영난에 허덕이던 큰 산같은 짐을 풀어놓게 된것에 홀가분함을 느끼시는지 이전보다 오히려 쾌활해지셨다.

《백창락녀석의 꼴을 보지 않게 된것만도 속시원하구나.》

공장생산품의 절반을 ㄷ방직에 팔아야 하던 강우의 아버지는 자기보다 몇천배나 큰 재벌과의 상거래에서 수모와 천대를 당하고 그놈의 모략에 휘감기군 하면서 참기 힘든것을 참아왔었다. 백창락의 아사히상사와의 결탁은 강우의 아버지뿐아니라 적지 않은 민족자본의 작은 공장들을 파산에 이르게 하였다.

그래도 아버지는 수공업은 계속하겠다고 기계 한대는 남겨두었다. 아무리 수공업이라쳐도 원료난, 판매난이 그나름으로 따르기마련이라는것을 아버지도 모르지 않을것이다. 어쨌든 공장문을 닫고나자 집안은 이상하게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사랑채를 작업장으로 꾸리느라고 두 늙은이는 이른아침부터 대패질, 톱질, 흙매질을 한다. 강우도 신문사에 나가지 않는 여가마다 열심히 도왔다. 이미 반백이 넘은 아버지가 다시 로동을 하게 된것에 아들된 마음은 편안치 않았지만 도리여 아버지는 아들걱정을 하신다.

《강우야, 비록 네 애비가 파산은 했다만 집살림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쓸 필요는 없어. 사람의 입에 거미줄 쓸겠니?》

강우는 그런 집안사정이야기를 다 지혜에게 하지 않았다. 비록 그의 집사정을 놓고 말하면 살림의 기둥이 무너진것이지만 지혜가 당하는 고초에 비기면 지나간 세대의 낡은 초라한 옛성터가 응당하게 자기 수명을 다하는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였다. 강우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안살림에서 자기가 기둥이 되여야겠다는 책임을 느끼고 각오를 한다. 그런것때문에 당황하거나 절망할 강우가 아닌것이다. 그를 울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것은 날카로운 그의 붓을 꺾어버린 사회에 대해서, 짓밟힌 민주주의에 대해서다.

그리고 그토록 귀중한 지혜가 인간쓰레기들인 한낱 감독과 수위놈들에게 그렇듯 천대를 받고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그런 천대와 아픔을 당하면서도 가시밭에서 물러서려 하지 않는 지혜에 대한 마음도 평탄하지 않았다.

《강군! 국장님의 호출이네.》

강우는 두손을 바지주머니에 지른채 천천히 방을 나섰다.

국장의 책상우에는 기자들이 써낸 원고들이 흐트러진채 수북이 쌓여있었지만 그것들이 국장의 비위에 맞지 않는 모양이다.

《부르셨습니까?》

《음, 어떻게 글 쓸 생각이 없나?》

국장은 한숨을 지으며 바라본다. 그는 강우가 글을 쓰지 않는 리유를 충분히 리해하는 그런 사람이였다. 그자신이 기자였대도 아무 글도 안 썼을것이였기때문이다. 그는 강우를 사랑하고있었다. 강우가 그렇듯 빨리 발전할수 있은것은 그의 재능이 묻혀버리지 않게 후원한 국장의 노력이 컸다. 강우도 그를 믿고 그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없습니다.》

《하지만 강군의 글이 나가지 않는것이 벌써 두달이야. 그런 기자를 중역회의에서 내버려둘줄 아나?! 오늘래일중으로 두세건 써내게. 3면기사라도 좋으니 말일세. 정치하고 아예 상관없이 쓸수 있는 그런걸 고르면 되지 않나?》

《그런게 있습니까?》

《웃어른을 그렇게 못살게 굴면 못쓰네. 강군 재간에 그걸 몰라서 묻나? 인정비극 같은 무슨 그런 세태적인것 있잖나? 이 국장의 체면도 좀 봐줘야 할걸?》

《할 일이 없다고 대포가지고 파리잡겠습니까?》

《혼자 옳은체 하지 말게. 그래도 이 국장이 아니였다면 임자의 모가지가 여적 신문사에 붙어있을줄 아는가?》

《차라리 모가지가 떨어졌다면 마음이야 편할테지요.》

《하긴 그렇군… 에잇, 맘대로 하게. 나 역시 집어던지고싶네.》

《항상 퇴각만 하겠습니까? 진공전할 때가 오면 제가 앞장에 서지요. 그때 저를 부르십시오. 그런 글밖에 쓸줄 모르는 저올시다.》

강우는 국장실을 나왔다. 그는 혼자 속으로 자문한다.

(그래서? 너 강우는 어떻게 하겠단 말이냐? 술이나 퍼마시면 그동안에 세상이 황무지로 돼도 상관없단 말이냐?)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뒤번지고있는 가슴속은 뚫고나갈 길이 없어 밀페된채 요동을 친다. 강우는 으스러지게 쥐고있던 두주먹으로 책상이 부서져라 하고 내리쳤다. 글을 쓰고있던 기자들이 깜짝 놀라 얼굴을 든다.

그렇다고 강우의 가슴이 트이는것은 아니였다. 강우는 난생처음으로 목놓아울고싶다고 생각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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