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회)

제 3 장

6

 

그들은 집합장소로 미아리고개에서도 제일 외따로 떨어진 허진국로인의 집을 택하였다. 그 집뒤에는 몇해전까지만 하여도 낭떠러지밑에 깊이 4~5메터쯤 되는 굴이 있었다. 언제 어떻게 생긴 굴인지는 몰라도 추위도 비바람도 막아주는 이 굴에서 해방후 20년동안 숱한 세대들이 살다가는 나가고 살다가는 나가고 하였다. 막다른 골목에 이른 피난민들이 차마 무덤으로 가지 못해 찾아드는 동굴이다.

진국로인은 한 칠팔년전 경상도 어느 산골에서 초근목피로 겨우 끼니를 이어가다가 더는 명을 부지할수가 없어 서울에 올라왔는데 그때 무던한 사람이 있어 이 동굴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다가 재작년에 어떻게 마련한 나무토막이며 찢어진 풍 같은것들을 얻어 동굴곁에 판자집 하나를 지었다. 밝은 해빛아래서 살게 되자 동굴은 보기도 역겹다고 하면서 그는 입구를 아주 메꾸어버렸다. 그런데 또 얼마전에는 동굴이 있던 앞에 허청간 하나를 지어서 마누라를 기쁘게 하였다.

그러나 그후부터 마누라는 50고개가 다되여서 로망스럽게 태여난 막냉이를 업고 늘쌍 그 허청간주위에서 망을 보아야 했다. 한번은 망을 보느라니 너무 춥고 밤도 깊어 한밤중에 누가 오랴싶어 집안에 들어가 어린것에게 젖을 먹이다가 그만 잠들어버렸었다. 나중에 그것을 안 남편이 어찌도 성을 내고 야단을 치는지 마누라는 그렇게 잘하던 말대꾸 한마디도 못했었다.

오늘도 마누라는 어린애를 업고 집주위를 서성거리고있다. 동굴안에서 네명의 성원이 모임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오늘은 지혜가 이 조직에 망라해서 네번째로 참가하는 모임이다.

지혜는 첫 모임에 참가했던 때의 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것이다. 기태는 그날을 위해 지혜를 꾸준하게 단련시켰었다.

학습을 위해 기태가 준 소책자들은 모두 모서리에 보풀이 일고 빨간줄이며 동그라미들이 가득 그어져있었다. 그 책자에 정신을 쏟았을 많은 사람들이 누군지 알수 없지만 그 모든 사람들과 련결된 뜨거운 정을 느끼면서 지혜는 마음을 가다듬어 읽고 또 읽고 머리에 새겨넣고 가슴에 쪼아박았다.

생각하면 감방에서 복희를 통해서 일성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조국통일에 관한 방략들을 전해들었을 때는 진수를 파악하기보다 감동이 더 앞섰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혜의 뼈와 살속에 스며 매 걸음에 확신과 힘을 주어 똑바로 걷게 한다.

그 가르치심들은 고무의 힘이였고 행동의 지침이였으며 난관을 뚫고나가는 용기였다. 그리하여 지혜는 거미줄처럼 뒤엉킨 복잡한 사태앞에 섰을 때에도, 과로가 온몸을 얽맬 때에도 다시 가슴속에서 되뇌이군 한다.

《전체 조선인민이 굳게 뭉쳐 미제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을 반대하는 투쟁에 일떠선다면 적들이 아무리 발악한다 하더라도 능히 그들을 때려부시고 영광스러운 승리를 쟁취할것입니다.》

승리! 그것은 채찍밑에서 과로와 배고픔에 허덕이고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이며 8시간로동제와 땅이다. 그것은 낮이면 버럭더미에서 석탄을 줏고 밤이면 추위에 떠는 아이들에게 베풀어지는 미래의 꽃봉오리가 가져야 할 모든 권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이들의 배고픔을 눈물로 달래며 깊은 밤 어두운 등잔불밑에서 봉투를 붙이고 누데기를 깁는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저들의 야속한 목숨을 한탄하면서 기침을 깇고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베풀어질 웃음과 삶의 기쁨이다. 그리하여 그것은 천리마의 기상이 나래치고있는 평양을 향하여 애끊는 심정으로 슬기로운 투지로 절절하게 뻗치고있는 남녘땅 수천만 인민의 메마른 손우에 안겨주는 빛과 생명인것이다.

그 승리의 신심을 안고 처음으로 동굴에 들어서던 날 지혜는 자기의 몸이 투쟁이라는 커다란것에 바쳐진다는 그것으로 해서 자기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으며 가치있게 느껴졌었다. 만사람의 힘과 련결된 고난속에서도 보람찬 자기를 느끼였었다.

어떤 커다란 새로운 운명에로 다가가고있는 기대와 각오에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

오늘의 모임에서는 지혜가 수행한 삐라배포에 대한 총화를 할것이다. 동굴속에는 하나의 석유등잔이 서로 얼굴을 겨우 가려볼 정도로 타고있었다. 네사람의 그림자는 크게 퍼져 물기로 질펀한 량쪽벽에서 시꺼멓게 느물거리고있었다. 불빛이 사람들의 얼굴을 아래로부터 우로 올리비쳐서 그런지 그들의 얼굴표정에는 모두 심각한 긴박감이 있었다. 자기가 수행한 과업에 대하여 말하고있던 지혜의 목소리가 갑자기 떨리였다.

《…저는 있을수 있는 모든 사태를 예상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욕을 당할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그것을 견딜 각오를 다지기는 했어도 옥채와 경옥이가 저대신 매를 맞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

《가만…》

기태가 도중에 지혜의 말을 막았다.

《한가지 묻겠소. 지혜는 왜 모임에서 결정한대로 한장의 삐라가 아니라 여러장을 만들었으며 그것도 음료수칸이 아니라 옷함에 넣었는지?》

지혜는 응당 그 말이 론의되리라 생각하였기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저는 한장이 아니라 열장을 붙이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작업장의 동무들을 믿었습니다. 그럴 때 주저나 용기의 부족으로 더 낼수 있는 효과를 내지 못하고만다면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다만 감독이 그렇게 일찍 출근하여 탈의실에까지 들어오리라고는…》

이렇게 말하는 지혜의 마음은 아팠다. 《삐라를 넣은것은 나다!》 하고 나설수 있었다면 얼마나 마음이 편하였겠는가.

《지혜는 더 대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기의 의견을 산놀이에서 돌아오는 날 사전에 나에게 말할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왜 말하지 않았지요?》 하고 또 물은것은 기태였다.

삐라를 다른 옷함으로 옮겨넣자고 동무들을 부추기던 옥채의 아름다운 얼굴이 기태의 신중한 표정과 합쳐진다. 지혜는 괴로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집에 돌아가 한장의 삐라를 쓰고났을 때 저는 흥분과 함께 생각해냈던것입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졌던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옥채와 경옥에게 고통을 주게 되리라는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제가 아픔을 당하는편이…》

《쓸데없는 생각이요!》

기태가 성이 나서 랭랭하게 소리쳤지만 권범의 무뚝뚝하나 뜨거운 목소리가 뒤따랐다.

《리해하오, 안심하고 말을 계속하시오.》

《저는 더 할 말이 없어요. … 점심시간이 되도록 옥채가 나오지 않았던들 저는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지혜의 눈앞에 왜 그런지 얼굴을 찌프리는 옥채의 모습이 떠오른다. 생각하면 자기의 이 고통은 값눅은것인지도 모른다. 투쟁의 도상에는 참아야 할 고통들이 있다. 자기 몸에 가해지는 아픔도, 자기의 과오로 해서 남이 당하는 고통도 그 모든것을 참아야 할 때가 있는것이다.

말을 끝냈지만 지혜는 얼른 앉을수가 없었다. 어두운 등잔불에 비쳐 깊은 음영을 지닌 권범이, 기태, 진국로인, 세사람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삭막하고 험난한 생활속에서 오직 옳은것을 위하여 일신을 돌보지 않으면서 온 마음, 온몸을 바치고있는 이들, 그들의 준엄하고 진지한 표정은 부지중 지혜의 가슴가득히 숭고한 감동을 주었다.

《앉으십시오.》 하는 권범의 목소리에 생각에 잠겼던 지혜는 놀라며 자리에 앉았다. 기태가 일어선다. 지혜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결정에는 삐라 한장을 작업장 음료수칸에 붙이라고 명백하게 밝혀있습니다. 지혜는 형사앞에서 옥채와 경옥이를 막아나서지 못한것에 가슴아파하기 전에 그것이 조직의 결정을 위반한 후과라는것을 똑똑히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들모두가 결정을 그렇게 무시한다면 무엇때문에 조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까. 우리들의 사업에서 이런 자유주의적행동은 당사자뿐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체포, 구금, 죽음을 가져올수 있으며 조직과 우리 사업을 파괴에로 이끌수도 있다는것에 대한 똑똑한 인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혜는 생각했다. 조직! 조직은 강철같은 규률을 지킬 엄격한 의무를 요구한다.

다음은 진국로인이 말하였다.

《기태 말이 옳긴 옳아. 지혜는 학교두 많이 다녔구 학습도 많이 하구 있구. 나만 해도 지혜에게 글을 배웠소. 그렇지만서두 나는 조직의 결정이라면 털끝만치도 어기지 않으려구 하오. 그런데 지혜는 자신의 생각을 더 믿지. 조직의 결정보다 자기 생각이 더 옳다고 생각했거던. 지혜, 항상 <나>보다 조직을 더 무겁게 생각해야 하오.》

등잔에서는 심지가 타들어가 부지직부지직 소리가 났다. 불빛이 가물거리는것과 함께 사람들의 얼굴에 비친 빛과 어두운 음영도 거물거렸다.

동굴안은 숨막힐듯이 답답하였고 습기찬 곰팡내가 끈적끈적한 모든것에 배여있었다.

물기와 불빛에 번들거리는 얼굴들, 지혜는 불현듯 그들 네사람사이에 흐르고있는 영원한 뜨거운 뉴대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그 뉴대로 해서 지혜는 값있는 생활을 알았다.

권범은 상반신을 불쑥 앞으로 내밀며 일어서더니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등잔불빛이 그의 두눈을 이글거리게 하였다. 한마디한마디에 책임을 지듯 힘을 주어 무겁게 말한다.

《지혜선생은 엄중한 과오를 범했소. 모임의 결정을 무시하였소. 조직의 결정은 반드시 지켜야 하오! 다른 사람들의 이 문제에 대한 비판은 옳았소. 지혜선생은 깊이 자신을 돌이켜보아야 하겠소.

그러나 우리는 이번 계기를 통해서 서로가 생각해야 할 적지 않은 문제들이 있소. 1직조 로무자들은 훌륭하게 행동하였소. 옥채와 경옥의 불상사가 로무자들을 겁먹게 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노에 끓게 하였소. 이것은 우리의 투쟁이 군중들의 각성정도에 뒤떨어지고있다는것을 말해주기도 하오.》

지혜는 권범의 침통한 얼굴빛을 보았다. 그는 복희를 생각하고있는것이다. 복희의 체포, 그래서 그를 딴 곳으로 보내야 했던 쓰라림이 그의 가슴에 없을수 없다. 복희가 그의 안해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는 사람들모두를 아꼈다. 귀중한 그들중 어느 한사람도 다시는 잃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모두가 교훈을 찾아야 하오. 동무들! 총검아래에서의 투쟁이 언제나 안전할수는 없소. 단련은 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오. 앞으로 우리는 더 적극적인 공세를 해야겠소.》

좌중을 둘러보는 권범의 표정은 엄숙하였다. 그는 믿음과 힘을 가지고 다음 말을 계속한다.

《군사깡패들은 더욱더 미쳐날뛰고있소. 계엄령은 계속되고있소. 생활은 점점 더 암담해지고있소. 놈들은 총칼을 가지고 온갖 민주주의를 짓밟고 사람들을 감옥에 집어넣고있소. 인민들의 분노는 크오. 그렇지만 분노는 공포속에서 타오르지 못하고 가슴마다에서 그슬면서 고통스럽게 뒤채기고있소. 새로운 참을성이 또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무맥하게 하여서는 안되오. 우리는 불씨요.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에로 불타오르게 하는 투쟁의 불씨요. 이 땅에서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끝장내는 투쟁에로 부르는 사나운 불씨가 되여야 하오.》

모임이 끝나자 그들은 언제나처럼 가까이 다가섰다. 권범이가 먼저 손을 내민다. 그 손우에 나머지 세사람의 손이 겹쳐졌다. 지혜의 작고 흰손이 거치르나 무쇠같은 손들에 감싸여졌다. 하나로 이어진 줄기찬 혈맥, 한덩어리로 뭉쳐진 우정, 지혜는 뜨거운 고무와 격려를 느낀다. 밑으로부터 비치는 등불이 네사람의 눈들에 광채를 돋구어주고있다.

진국로인이 동굴의 입구를 막은 키낮은 널쪽문을 두드렸다. 그의 안해가 문을 열어주었다. 먼저 진국로인이 나갔다. 동안을 두고 지혜가 일어섰다.

《혼자 갈만 하오?》 하고 권범이가 묻는다.

《혼자가 아니예요. 남수와 동혁이가 망을 보며 기다리고있을거예요.》

지혜는 통금시간이 가까와온 계엄령하의 텅 빈 거리에 나섰다. 초겨울의 싸늘한 바람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소총명…》

지혜는 혼자 중얼거리였다. 언젠가 지혜는 도리여 강우에게 그렇게 말하였지만 자신에게서는 찾아보지 않았다. 지나온 나날들에서 소총명과 관련되는 자기의 이런저런 거동들을 돌이켜본다. 마음속에서 상반되는 판단이 서로 싸운다. 용서없이 결함을 들추어내는 편과 몸부림치며 부인하는 편과의 싸움이다. 부인하는 편에도 주장이 있으며 론거가 있다. 그러나 들추어내는 편의 날카로운 정직성과 패기를 견디여내지 못한다. 조직, 그것은 무한히 단련시키는 뜨거운 채찍이며 그 채찍밑에서 사람들은 성장하고 전진한다. 자기반성은 지혜를 우울하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온몸에 힘을 주며 스스로 한번 더 다짐하였다.

《같은 과오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으리라. 매 걸음에 온넋을 기울여 생각하고 대담하게 행동하리라. 그리고 그 모든 생각은 나 혼자가 아니라 튼튼히 조직과 련결하리라!》

저기 가로등밑에 구두닦기통을 놓고 서있는 남수와 동혁이가 보였다.

그들은 먼발치에서 지혜를 보았지만 못 본체 하고 벌려놓았던 구두닦기도구들을 거두기 시작한다. 지혜가 가까이 갈 때까지도 그들은 얼굴을 들지 않고 자기 일들만 하였다. 지혜가 막 그들을 지나치려고 할 때 동혁이가 일어섰다.

《에이, 가자!》

그렇게 두덜거린 남수도 일어선다.

그리하여 그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국 나란히 걸었다. 통금시간직전의 서울거리는 음란하기 이를데없는 시각이다. 휙휙 지나가는 택시마다 취객과 매춘부들, 미군놈들과 양갈보들이 시시닥거린다. 줄지어 늘어선 식당과 카페앞에서 취객들의 싸움과 말다툼, 그사이에서 깔깔거리는 접대원들, 붉고푸른 네온등밑에서 자주 벌어지는 례사로운 광경이다.

그러나 그 추잡한 거리를 남수와 동혁이, 지혜의 깨끗한 심혼들이 걸어간다. 더러운 모든것을 쓸어버리고 신선한 아침을 앞당기기 위해서 그들은 꿋꿋이 걸어가고있다. 남수는 옥채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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