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청춘의 길

(한 남조선대학생의 고백)

                                                                                     김 병 훈

(제 3 회)

3

 

한시가 거의되여서 우리는 성안역에 내렸소. 종착역이여서 백명안팎의 려객들이 일시에 내려 밀리는 바람에 출입구는 혼잡을 이루었소.

그러나 우리와 함께 온 대위는 별로 서둘지 않고 마지막에 천천히 내려서 출입구쪽으로 서서히 걸어가는것이였소. 증명서를 조사하느라고 꽥꽥거리고 돌아가던 경찰 한명과 헌병 한명이 대위를 발견하자 차렷자세를 취하고 경례를 올려붙이였소. 대위가 점잖게 고개를 끄덕여주자 그들은 붐비는 군중을 밀어젖히더니 출입구문을 활짝 열고 대위를 내보냈소. 출입구 바로 코앞에 엉덩이를 들이대고있던 찦차에 대위가 올라타자 차는 부릉 하고 경쾌한 동음을 지르며 정거장 앞길로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달려갔소.

물끄러미 서서 바라보던 영근이가 나를 돌아보며 속삭였소.

《<국군> 장교치군 꽤 지성이 있는치야.》

《자넨 저자에게 지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네.》

《저자는 속물일따름이야.》

《속물이라니?》

우리는 무엇인가 더 론쟁할 생각이 있었으나 출입구가까이 밀려든 사람들이 붐비는 바람에 그만두었소. 출입구를 뚫고 역전으로 나오자 우리는 지게군들의 포위속에 들고말았소. 서울역전에 장사진을 이룬 지게군, 손수레군을 볼 때마다 늘 저 숱한 짐군들이 질만 한 짐이 있을가 하는 걱정, 그렇다면 저들은 어떻게 살아나가는것인가 하는 가슴답답한 생각에 잠기군 했지만 이 성안역전의 지게군은 거짓말이 아니라 내린 손님의 수보다도 훨씬 더 많았소. 사방에서 내가 짊어진 등산용배낭을 잡아당긴다, 영근이의 려행용가방을 끌어간다 정신을 차릴수가 없을 지경이요. 국수 한그릇 값이면 된다지만 우리들의 여유없는 려비에서 어디 거들거리고 짐까지 지우겠소.

우리는 짐을 움켜쥐고 간신히 지게군들의 숲을 헤치고 한끝으로 나왔소. 숨을 후유 내쉬며 걸어가다가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소. 나이 칠순이 넘었음직한 허리가 굽은 누런 수염이 더부룩한 령감과 작게 만들었는데도 지게다리가 거의 땅에 닿을듯싶은 열한두살가량 나보이는 소년지게군이 감히 복새통속에 뛰여들어 다투지 못하고 원망어린 표정을 하고 서있었소.

작시미를 짚고 선 로인의 퍼런 피줄이 두드러진 손이 후들후들 떨고 기력없는 멍청한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소. 또 소년은 얼굴이 볕에 그슬려 새까만데 살가죽은 늙은이같이 조골조골 밀리고 울대뼈가 두드러져 앙상한 목을 빼들고 서있었소.

우리는 차라리 못 본듯이 낯을 돌리고 벅적거리는 소동을 뒤에 두고 길을 떠났소. 그러나 고개를 돌린들 무슨 소용이겠소.

숨이 턱턱 막히누나, 이 땅아! 서울의 거리가 숨막히여 시골로 오니 벌판은 넓어도 가슴은 더욱 답답해지기만 하니 어찌된 일이냐! 어디를 가면 숨을 쉬여볼가?… 이 캄캄한 땅우를 비쳐줄 한줄기의 빛도 없단 말인가! 룡트림하며 범람하는 이 탁류속에는 단 한줄기의 맑은 샘도 흐르지 않는단 말인가!…

황량한 벌판에는 매운 바람이 휘몰아쳤소. 우리가 가는 읍까지는 60리길이라 부지런히 걸으면 해질무렵까지 가닿을수 있을것이였소.

바람은 우리 두사람의 머리카락과 옷자락을 잡아 흩날리고 앙상한 가로수에 붙어있는 몇잎의 나무잎마저 깡그리 훑어다가 길우에 휘뿌렸소.

문득 뒤쪽에서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만성이가 뒤따라 달려오고있었소. 어째선가 나는 이 어수선한 타향길에서 다시 만난 그가 구면지기처럼 반가와 《어-》 하고 목청껏 화답하며 손을 흔들었소. 만성이는 한사코 영근이의 려행용가방을 빼앗아들고 우리와 함께 걸었소.

그는 아까 강태웅이라는 그 작자가 자기네 지주 강주사네 맏아들이며 자기는 그 집에서 열다섯살부터 8년동안 머슴을 살다가 역시 그 집에서 종살이를 하던 지금의 처와 가정을 이루고 따로 나와서 강주사네 땅을 부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하였소. 그리고 군대에 끌려가기 전 비록 짧은 3년간의 세월은 째지게 가난한 살림살이였으나 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아들 둘을 낳아 무릎에 앉히고 살아가던 이야기를 지칠줄 모르고 하는것이였소. 그런데 자기는 남달리 아들보다 딸을 더 바라댔는데 입대한 뒤에 안해가 딸을 낳았다는것이며 여섯살이 잡히도록 여적 그 딸을 보지 못했으니 사실 자기의 눈은 군대에서 못 먹어서 들어간것도 있겠지만 딸을 보고싶어서 더 뒤통수쪽으로 쑥 들어갔다는것이였소. 그러면서 주머니에서 딱지종이만 한 종이쪽지 접은것을 꺼내더니 여러겹으로 싼 겉종이를 풀어내고 안에서 손톱만 한 사진 한장을 꺼내는것이였소.

《하두 보고싶다니까 이걸 겨우 장에 나가서 한장 찍어 보내주지 않았겠나요. 이걸 들여다보고 살자니 어디 더 답답하기만 하구 견딜수 있어야죠…》

그는 어줍게 웃으면서 우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는것이였소. 작기도 하거니와 증명사진의 희미한 화면이라 주인공의 얼굴은 동그란 륜곽밖에는 더 알아볼수가 없었소.

《이걸 한장 찍어 보내주기는 했지만 제편은 그 비용때문에 아마 며칠은 굶었을거웨다. 괜히 내가 참을성없이 굴어서…》

만성이의 안해와 자식들에 대한 그 극진한 사랑의 정은 나의 가슴에까지 찡하도록 안겨왔으며 가난하더라도 그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소.

한 십리남짓 갔을 때 우리는 점심을 먹기로 작정하였소. 그런데 만성이가 옆으로 비슬비슬 나서면서 자기는 먼저 갈테니 점심 자시고 천천히 오라는것이였소. 그가 고집하는것을 억지로 잡아끌고 길가에 무져놓은 짚동가리뒤에 가서 둘러앉았소. 그러자 만성이도 한켠옆으로 나앉으면서 자기의 멜가방에서 신문지에 싼 주먹만 한것을 풀어헤치는것이였소. 서로 붙어서 넙적하게 된, 겨깝대기가 듬성듬성한 보리밥 두덩이가 나왔소. 우리는 한사코 만류하여 그것을 도로 싸넣게 하고 영근의 모친이 정성들여 싸준 밀가루와 강냉이가루로 만든 빵을 펼치고 권하였소. 자꾸 사양하기 때문에 영근이가 손에 쥐여주어서야 그는 우리와 함께 먹는것이였소. 몇갠가 달게 먹고나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였소.

《부끄러운 말이지만 군대살이 7년만에 집에 가지고 가는 선물이라는게 이 보리밥꽁댕이가 다랍니다. 그것두 취사당번 나간 친구가 몰래 쥐여다 준것이우다. 하지만 그런거라도 먹는지 굶는지 모를 제 자식들을 생각하문…》

그 말을 듣자 우리는 가슴이 뭉클하여 뭐라 그를 위로할 말을 찾을수가 없었소. 우리는 남은 몇개의 빵이나마 꽁꽁 싸서 펄펄 뛰며 마다하는 그의 가방속에 꿍져넣어주고 다시 길을 떠났소.

해가 뉘엿뉘엿 질무렵에 일행은 읍에서 한 오리가량 떨어진 갈림길에 다달아 만성이와 헤여졌소. 우리는 이튿날 그 마을을 찾아가기로 약속하였소. 우리가 읍이라기보다는 좀 큰 마을이나 됨직한 서상읍에 들어섰을때 해는 마을뒤에 높이 솟은 산너머로 떨어졌고 그앞으로 펼쳐진 벌판에는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하였소.

우리는 갑자기 몸과 마음에 한꺼번에 실려드는 피곤을 느껴 마을어귀의 아무 집이든 숙소를 정하고싶었으나 한편 래일 아침부터 일을 시작하자면 아예 면사무소에 들려서 왔다는 통고도 하고 량해도 얻어두어야 할것 같아서 그길로 면사무소를 찾아갔소.

면사무소는 산기슭의 좀 언덕진 곳에 2층으로 지은 큼직한 집이였소. 2층의 면장방 대기실에 들어가니 급사아이가 금방 간부들의 협의회가 진행중이라고 하여 우리는 긴걸상에 앉아 좋이 30분을 기다렸소.

갑자기 면장방 문안에서 껄껄거리고 호탕한 웃음소리가 나더니 문이 덜렁 열리고 먼저 키가 작달막하고 검은 신사복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머리에 기름을 반질반질하게 발라넘긴 사나이가 조심스러운 걸음걸이로 재빨리 걸어나와 문가에 서고 뒤따라 키가 후리후리한 장교복차림의 사람이 나왔소. 그는 뜻밖에도 아까 차칸에서 만났던 그 강태웅이라는 대위였소.

《아니, 이거 우리 면에들 오는걸 그랬군그래. 그런줄 알았더면 진작 같이 왔을걸.》

그는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소.

《우리는 면장을 찾아뵈러 왔는데요.》

나는 무뚝뚝하게 머리에 기름을 발라넘긴 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했소.

《아, 그런가. 내가 바로 면장이요.》

강태웅이가 성큼 다가왔소.

《자, 들어들 가오. 참, 제군들! 소개하오. 이 두 학생은 서울에서 온 의대학생들인데 이번 우리 면에 위생보건계몽운동을 하러 온 훌륭한 용사들이요. 자, 인사들 하라구.》하고 우리를 주위에 둘러선 사람들에게 소개하는것이였소.

《자, 그럼 모두 빈틈없이 일들을 처리해주게. 말이 새거나 어디 틈이 생겨서 일이 드티여지는 날에는 이것으로 (그는 목을 자르는 시늉을 했소.) 값을 치를것이며 일이 성취되면 그때는 알 도리가 있을것이요. 만사는 군사적규률이요. 알겠소?》

그는 무엇인지 이렇게 간곡히 강조하여 사람들을 보내고나서 우리를 면장실로 데리고 들어갔소. 벌판쪽으로 커다란 전망창이 달린 훤칠하게 넓은 방이였소. 정면의 담벽에는 《태극기》가 걸리고 그밑으로 주먹같은 붓글씨로 《혁명공약》이라는걸 써붙여놓았소. 그앞에 량수책상 하나와 접객용 긴 탁자와 걸상 몇개, 전망창이 달린 담벽쪽에 긴 쏘파 한개… 비교적 간소하게 꾸린 방이였소.

우리는 학교와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낮에는 주로 치료조사사업을 진행하고 밤에는 보건위생계몽사업에 힘쓸 계획이라는것을 쭉 설명해주었소.

《좋소, 학생들의 이 훌륭한 미거에 극력 협력하겠소. 걱정마오. 내 이제 관계되는 기관에 명령을 하달해둘테니 맘놓고 계획대로 활동하오!》

《고맙습니다.》

영근이는 이렇게 인사하면서 나를 힐끗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소. 나도 우리의 숙망을 실현하는 이 어려운 첫걸음을 도와주겠다는 그에게 얼마간의 선입감이 있었다 할지라도 고맙지 않을수가 없었소.

문득 전화통이 자지러지게 울어댔소.

《아- 아- 나요, 뭐? 래일 아침이라구?! 왜 그렇게 갑자기… 엊저녁에 맞대구 의논하구선?… 아- 그래, 그럼 좋아.》

수화기를 든 대위의 만면에는 걷잡을수 없는 행복에 도취된 사람에게서만 볼수 있는 웃음이 넘치였소. 얼굴은 더욱 불그레하게 상기되였소.

《음, 음! 그래 좋-아. 그럼 자넨 거기서 새벽차를 기다리게. 내 오늘 저녁으로 차를 내보낼테니 그럼 두 차, 음! 좋-아, 수고하게.》

대위는 수화기를 놓고서는 다시 신호기를 다급히 둘러대더니 어딘가 부대이름을 불러내고 무슨 참모장인가 한 사람과 이야기했소. 대위는 그에게 오늘 저녁으로 승용차 두대를 일주일 기한으로 내보내달라는것이였소.

《여보게, 왜 이러나? 먼저 승급을 했다구서 좀 으시대보자는건가. 하하하… 옛정을 생각하게. 내가 임잘 서운하게 하겠나… 음음. 아, 그렇구 말구, 요구대루… 하하하, 원! 내가 배지맨각하를 잊다니, 물론 오켈세, 워커힐에 일생이라도 묻혀계실만큼 낸다구 하게. 음음, 그래, 자 그럼…》

전화를 걸고나서 대위는 벙글거리더니 더는 흥분을 못 참겠다는듯이 성큼 자리에서 일어서서 방안을 몇번이나 왔다갔다하면서 손을 마주 비비는것이였소. 그러다가 문득 우리를 보더니 《참!》하고 곁에 와앉는것이였소.

《참, 수고들 하게 됐어. 한데 무지몽매하고 라태한 농민들이 임자들의 성스러운 뜻을 리해하겠는지 그게 의문이요.》

그는 자못 미간을 찌프리며 우려를 표시하는것이였소.

《나두 이 혁명에 목숨을 걸고나선 사나이로서 저 뜻을 받들어 (그는 <혁명공약>을 가리켰소.) 분골쇄신의 각오로 일하고있으나 그것이 영 통하지 않소. 그러나 선각자는 언제나 수난자요, 모든것을 재건해야 하오. 난 우리 면의 이 몽매와 락후를 털어버리자고 결심하였소. 이 일때문에 이렇게 동분서주로 몸이 부서질듯이 바쁘오. 계획이 다 서고 실천단계에 들어섰소. 깝대기를 활짝 벗겨버리고말 작정이요. 이 계획의 실행을 위해서 내가 억지로 반가운 손님들을 초청하였소. 달가운 놈들은 아니지만 어쩌겠소. 리용해먹어야지.》

우리는 그의 열정적인 말을 들으면서 그래도 어딘가 영 썩어버리지는 않은 인간을 만난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무엇인가 한가닥의 희망을 얻었고, 그 희망은 하루길에서 지쳤던 우리의 신심을 부추겨주었소.

《어떤 계획입니까?》하고 내가 조용히 묻자 그는 싱글거리면서 《인제 알게 되오. 앞으로 임자들 도움도 바라겠소. 무지한 농민들이 잘 들어먹어야지. 자, 그럼 오늘은 숙소나 정하구 푹 쉬라구. 우리 집에서 같이 지냈으면 좋겠는데 손님이 래일 아침 오게 되여서…》라고 말끝을 맺지 못했소.

《괜찮습니다. 아무데고 우리가 잡지요.》

영근이가 사양하였소. 그는 급사아이를 부르더니 우리들을 려인숙에 안내해드리고 숙박비는 일체 면에서 부담할테니 잘 대접하란다고 전하라는것이였소. 우리는 정말 이 뜻하지 않은 환대에 정신이 막 얼떨떨해질 지경이였소.

앞채는 술막이고 뒤채는 려인숙을 겸한 집이였소. 삼십이 넘었음직한 살집좋은 주인녀자가 나이와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면서 우리를 뒤채의 자그마한 구석진 방에 안내해주었소.

《면장님이 특별히 지정해 보내주신 손님들만 들이는 방이예요. 자, 어서 들어가셔요. 저녁상을 드릴테니…》

저녁을 먹고나니 우리는 몸에 피곤이 일시에 실려와 자리에 누웠소. 그러나 어째선가 잠은 잘 오지 않았소.

《어때 진석이, 그 면장대위가 지성이 있는 축이 아니고 뭐야.》

영근이가 나에게로 돌아누우면서 아까 낮에 하던 말을 되풀이하였소.

《글쎄, 좀 그런것 같애.》

《그런데 그 정력적으로 말하던 깝대기를 활짝 벗겨버리는 계획이라는게 뭘가?》

《글쎄…》

《자넨 거저 글쎄로군. 아무것도 안 믿는다니까! 내 생각에는 무슨 국토개발과 같은 그런 계획인것 같아. …아무튼 그 대위는 만성이가 말하던 기합술이나 발명하는 그런따위 속물과는 좀 류다른 사람같애.》

《그럴지도 모르지.》

《앞으로 우리 일에도 상당한 도움을 받을수 있을것 같애. 가령 의약품 같은거 말이야.》

《그렇게 됐으면 작히나 좋겠나.》

《랠 한번 이야기를 비쳐보세.》

그러다가 영근이는 이내 잠들어버렸소.

그러나 나는 어째선가 문득 낮에 본 그 녀인의 시체며 아우성치는 지게군의 무리, 꾀죄죄한 로인의 얼굴, 목대뼈가 앙상한 소년, 제대병 만성이와 손톱만 한 사진… 그러다가는 문득 장교의 쾌활한 얼굴이 떠오르고 이런것들이 환영처럼 눈앞에서 어른거려 잠들수가 없었소.

그러나 나는 다시한번 (도탄에 빠진 겨레여, 나는 그대를 위하여 무엇이든지 아낌없이 바쳐 일하리라!)하고 꽁꽁 속다짐을 하다가 잠이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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