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가해자측이 내댄 《주패장》

3

 

단정한 옷차림으로 문서용트렁크와 작은 손가방을 든 아사꼬가 법률사무소 마당에 나서자 승용차가 소리없이 와 멎어섰다.

승용차 뒤좌석에 자리잡은 아사꼬는 곱슬머리 젊은 운전사에게 말하였다.

《곧장 련합사무실로!》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청사로 가자는 말이였다.

아사꼬가 탄 승용차는 오가는 차들로 혼잡을 이룬 도꾜시내를 가까스로 누비며 거부기걸음을 했다.

가방에서 손거울이 달린 화장도구를 꺼내여 분첩으로 눈언저리를 몇번 가볍게 다독이던 아사꼬는 목을 움츠리며 차창밖을 내다보았다. 갑자기 하늘에서 비꼬치가 뚝뚝 떨어져 반쯤 내리운 차창안으로 날아들었던것이다.

차창을 올린 아사꼬는 무릎우에 놓은 문서용트렁크에서 문건들을 꺼냈다. 갈피를 펼치니 그 짬에서 2장의 사진도 나왔다. 그 문건이 바로 얼마전 전홍이 입수한 그 사진을 아사꼬가 평양에 있는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에 전송하면서 오빠가 《와까하루》라고 확언한 그 조선인《위안부》의 생사여부를 조사하여 알려달라고 요청한데 대한 조선측의 답전문이였다.

아사꼬는 답전문에 시선을 박았다.

《일본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 공동대표 도모이 아사꼬선생 앞

선생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각방의 노력으로 입수하여 평양에 전송해준 사진속에 있는 <와까하루>는 전 일본군복무자 오따니 히로미로인이 증언한바와 같이 조선인이며 일본군성노예로 중국 남경과 송산, 먄마전역으로 끌려다니던 박순정녀성이라는것이 객관적인 조사로써는 확인되였습니다. 박순정녀성이 현재 생존하고있지만 매우 병약한 형편에 처해있음으로 하여 귀측에서 전송해준 사진에 대한 본인의 확인은 아직 미결로 남아있습니다. 차차 일을 진척시켜 그에 대해 확인한 결과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대신 몇년전 박순정녀성이 일본군성노예로 중국과 먄마전역으로 끌려다닐 때 자기의 일본식이름이 <와까하루>였다고 한 증언자료와 그때 우리가 수집한 해방직후에 찍은 그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도 함께 전송하니 전 일본군복무자 오따니 히로미로인에게 재확인시켜줄것을 요청합니다. …》

아사꼬는 답전문갈피에 끼웠던 2장의 사진도 펼쳐들었다.

한장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련합군이 설치했던 중국 중경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온 박순정이 고향에 돌아와 1946년 가을 부모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였다. 사진에 비낀 박순정의 얼굴모습은 히로미오빠가 《와까하루》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던 처참한 모습의 그 《위안부》녀성의 얼굴과 꼭같았다.

다른 한장은 팔순을 눈앞에 둔 박순정녀성의 모습을 찍은것이였다.

얼굴이 온통 밭고랑같은 주름살로 뒤덮인 박순정의 모습을 마주한 아사꼬는 내심 흥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니 내가 지난해에 만나본 조선의 그 박순정로인이 《와까하루》였단 말인가? 정말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사실이 그랬다.

지난해 봄 아사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있는 일본군《위안부》생존자들을 만나보러 평양려행을 하였는데 그때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 일군들의 안내를 받으며 남포시교외에 있는 박순정로인네 집에도 잠간 들린적이 있었던것이다.

아사꼬가 그때 평양으로 간것은 일본군《위안부》제도의 내막을 파헤치자는데 목적이 있은것은 결코 아니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반도의 북과 남 그리고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를 비롯한 아시아의 각국에서 과거 일제가 식민지나라 녀성들에게 감행한 일본군성노예행위는 왜왕과 일본정부의 직접적인 승인 또는 묵인하에 군수뇌가 고안하고 현지파견부대들의 조직적인 명령지시에 의하여 감행된 20세기의 전무후무한 특대형성노예범죄라는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엽부터는 그 목소리가 더욱 확대되면서 일본정부는 군성노예행위에 대하여 심각하게 반성하고 똑똑히 사죄하며 철저히 배상을 해야 한다는데로 굽이쳐갔다.

그러한 시기에 훼손되고 저락되는 야마도민족의 《존엄》을 두고 속을 앓던 아사꼬는 일본군에 의한 성폭행피해자들을 만나 속시원히 사실여부를 확인해보는겸 일부 일본군복무자들이 《…그건 민간업자들의 중개로 벌어진 녀성들의 상적행위였던것 같다.》고 변명한것을 증명해볼수도 있지 않을가 하는 심산에서 평양으로 간것이였다.

그런데 그가 조선에 가서 만나본 7명의 일본군성노예생존자들중 6명은 자기들이 갇히워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던 《위안소》는 철저히 군소속이였으며 군복을 입은 일본사람들이 《위안소》를 관리하였다고 증언하였다. 나머지 1명은 사민인 일본인부부가 일본군대 병참장교와 함께 《위안소》를 관리운영하였다고 증언하였다.

아사꼬가 박순정을 더 생생히 기억하는것은 바로 그가 《…난 중국 남경 <킨수이로>(중국어표기로 금수루)라는 <위안소>에 끌려갔댔는데 주인은 일본인사복쟁이부부였수다.》라고 자기가 바라던 대답을 한 《위안부》생존자였기때문이였다.

아사꼬의 눈앞에는 평양에서 온 답전문과 박순정의 사진을 가지고 지난밤 히로미오빠에게로 갔을 때 일이 환영처럼 펼쳐졌다.

…아사꼬로부터 전후사연을 다 들은 히로미는 턱을 떨기 시작하였다.

박순정이 1946년 가을에 찍은 젊은 시절의 사진과 거의 80고령에 이른 현재의 모습이 비낀 사진을 부들부들 떠는 두손에 갈라들고 《틀림없어, <와까하루>!》 하며 몸둘바를 몰라하던 그는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어허허…》 하고 고개를 외로 꺾었다.

《오빠, 이젠 그만 진정하세요.》

아사꼬가 오빠의 마음을 달래보려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와까하루>, 아니, 박순정! 맞아, 박순정!》

최대로 흥분하면 입에서 물나간다 불나간다 하는 히로미였으나 그 이상 더 다른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

아사꼬가 탄 승용차는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청사앞에 멈춰섰다. 그때에야 아사꼬는 생각의 사슬에서 풀려났다.

사무실에 들어서니 상무성원들과 3명의 공동대표들이 아사꼬를 기다리고있었다.

《아사꼬상, 이번에 우리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의 존재를 과시하는 큰일을 한데 대해 축하를 보냅니다.》

이마가 쭉 벗어진 련합의 우익계공동대표가 앞으로 모아잡은 두손을 가볍게 마주치며 갑삭 머리를 조아렸다. 다른 공동대표들과 상무성원들도 박수로 아사꼬를 축하해주었다.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에서 보내온 답전문과 2장의 박순정의 사진은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을 통하여 아사꼬에게 전달되였으므로 그간 아사꼬가 진행한 사업이 이제는 비밀이 아니였던것이다.

자리에 앉은 아사꼬는 공동대표들의 례찬이 계속되자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아, 사실 이번 일이야 전적으로 요꼬하마에 살고있는 재일중국인자유촬영가 전홍상의 공로이고 다른 측면으로는 일본군복무자 오따니 히로미로인의 정확한 기억력과 솔직한 증언의 덕분이지요.》라고 겸양을 표시하였다.

잠시후 련합의 공동대표들과 상무성원들이 참가한 원탁회의에서는 지금껏 아퀴를 짓지 못하였던 조선, 중국, 일본 3개국합동조사단에 대한 문제가 다시 토의되였다.

조선일본군성노예 및 강제련행피해자문제대책위원회에서는 이미전에 3개국합동조사단을 무어 일본군성노예제도의 진상을 파헤치는 현지조사사업을 진행하자는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중국 남경대학살연구쎈터가 여기에 쌍수를 들면서 일본의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이 이 사업에 참여해줄것을 요청해왔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련합안에 존재하는 중간 및 진보계와 우익계사이의 치렬한 갑론을박속에서 공회전만 계속할뿐 락착을 짓지 못하고있었다.

중간 및 진보계인물들은 3개국합동조사단에 일본측을 대표하여 련합성원을 파견하는것이 옳은 처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른바 《국민정신》을 정면에 내세우는 우익계의 인물들은 일본의 녀성인권옹호시민련합은 응당 일본녀성들의 인권옹호에 주되는 노력을 돌려야지 괜히 과거에 일본군에 의하여 산생된 식민지나라 녀성들의 인권문제에까지 끼여들어 야마도민족의 《존엄》을 훼손시키는노릇을 할 필요는 없다고 고집해나섰던것이다.

나이가 지숙한 상무성원이 먼저 말꼭지를 뗐다.

《전번에 조선측에서 제기해온것처럼 지금 중국의 남경대학살연구쎈터에서도 3개국합동조사단을 조직하여 중국대륙의 일부 지역들에 대한 현지조사를 올해안으로 성사시킬것을 요망하고있습니다.

이번에 조선측은 일본군<위안부>생존자 박순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보내온 답전문에서도 우리 련합이 3개국합동조사단을 구성하는 사업에 발벗고 나서리라는 기대를 표명하면서 합동조사단의 규모와 현지조사로정은 조, 중, 일 3개국합동조사단 책임자들이 확스로 련계를 가지고 합의하자는 의견을 제기해왔습니다. 그러니 오늘은 공동대표선생들과 상무성원들이 가능한껏 견해상차이를 줄여 이 문제를 빨리 결속했으면 합니다.》

번대머리인 우익계공동대표가 느슨한 웃음을 지으면서 느릿느릿한 어조로 의견을 내비쳤다.

《어제까지도 저는 3개국합동조사단을 구성하자는 의견에 반대표를 던졌는데 오늘의 형편을 보니 아무래도 조선측과 중국측의 의견을 따르는것이 우리 련합에 더 리득되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탁에 둘러앉았던 공동대표들과 상무성원들이 술렁거리였다. 전번 모임에서는 그렇게도 열을 올리면서 우리 련합은 국가가 제일 아파하는데를 건드리자는 조직이 아니다. 만약 우리 련합이 3개국합동조사단에 일본측을 대표하여 사람을 파견한다면 자기는 이 련합에서 탈퇴하겠다고 으르렁대던 그가 이렇게 돌변할줄은 누구도 몰랐던것이다.

누구보다 더 놀란것은 아사꼬였다. 사람들앞에서 혀가 닳도록 《국민옹호정신》을 떠들면서 3개국합동조사단구성에 대해 제일 반기를 들던 저 번대머리가?…

분개한 아사꼬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난 도대체 당신의 태도를 리해할수가 없군요. 더 긴말은 하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 일본국가가 입은 깊은 상처에 재를 쥐여뿌리는짓을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나는 3개국합동조사단에 우리 련합의 성원들을 파견하는데 대해서는 여전히 반대입니다.》

번대머리공동대표가 짐짓 자제력을 발휘하면서 다시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아사꼬상, 나는 당신의 남다른 국민옹호정신앞에서는 머리를 숙이게 되지만 외곬으로 생각하는데 대해서는… 지금 우리 정부가 바로 우리 련합에서 국민정신이 가장 강한 사람들을 3개국합동조사단에 파견할것을 바라고있단 말입니다. 내 말뜻이 리해가 됩니까? 아사꼬상!》

아사꼬는 번대머리에게 시선을 던진채 핀잔조로 응대했다.

《난 당신의 말뜻을 전혀 모르겠어요. 3개국합동조사단에 망라된다는것은 조선측이나 중국측에서 바라는것처럼 일본군<위안부>문제의 책임이 일본정부에 있다는것을 인정하고 그 조사사업에 발을 들여놓는다는것인데 여태 일본군이 과거에 식민지나라 녀성들에게 저지른 성범죄행위는 추업을 조장하고 장려한 민간업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념불처럼 외우던 당신이 어쩌면…》

번대머리는 자기의 의도를 아사꼬에게 납득시키려고 무진 애를 썼다.

《아사꼬상, 다시한번 당부하지만 지금은 무턱대고 <그건 아니다, 우리는 그런 조사단에 인원을 파견할수 없다.> 하는 식으로 뻗대기만 해서는 승자가 될수 없다는것을 리해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도리여 내가 당신에게 한마디 해야 하겠어요. 당신도 일본국민의 한 성원이라는것을 잊지 않는 동시에 이 늙은 녀성도 이곳 련합의 공동대표라는것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아아, 아사꼬상! 내가 당신의 인격을 모욕하는것으로 느꼈다면 실례했습니다. 난 그저…》

참새 얼려 굴레씌운다는 번대머리였으나 록록치 않은 아사꼬앞에서는 더 어쩌지 못하였다.

아사꼬와 번대머리의 말씨름으로 이날 회의에서도 3개국합동조사단에 대한 문제는 락착을 보지 못하였다.

번대머리뿐아니라 회의에 참가한 모든 대표들이 합동조사단에 일본측을 대표하여 련합성원을 파견하는것이 옳은 처사가 아닌가고 아사꼬에게 권고했으나 그에게는 마이동풍이였다.

이날 원탁회의장에서 3개국합동조사단문제와 관련한 치렬한 론쟁이 진행될 때 회의장 아래층의 어느 한 밀실에서는 일본 문부성(당시)의 과장 오가와 이찌로와 2명의 정체모를 인물들이 전광판을 마주하고 원탁회의과정을 주의깊게 시청하고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단 한명 번대머리공동대표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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