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6. 새로운 목표

 

미륵이 잠에서 깨여났을 때는 여름날의 해가 중천에 있었다.

보패와 영산이는 점심을 짓고있었다. 아래마을에 내려간 안거금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동굴로 들어가보니 리운이는 정신없이 잠을 자고있었다.

《너의 형이 매우 피곤한 모양이로구나.》

동굴밖으로 나온 미륵은 보패와 같이 점심을 짓고있는 영산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그런것 같아요.》

영산이는 자기의 형님을 구원하여준 이들에 대하여 무슨 말로 감사를 드려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사실 어린 영산이도 지금 미륵이가 아버지일때문에 무척 속을 썩이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던것이다.

참으로 지금 이 시각도 미륵의 마음은 괴로왔다. 리운이는 구원하였지만 평양의 옥에 갇혀있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괴롭기 그지없었다. 아버지는 지금 얼마나 고생을 하고있을가 하고 생각을 하니 눈앞이 흐려졌다. 자칫하면 눈물을 보일것 같아서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소나무밑의 풀밭에 누워 가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때 안거금이 돌아왔다. 그는 베자루며 함지며 뚝배기, 사발 그리고 약간의 량식과 소금을 가지고 왔다.

《집에 기별을 하라고 하였으니 곧 올걸세. 그때까지는 어제밤에 가져온것과 이 량식으로 살아야겠네.》

방금까지 아버지생각으로 모대기던 미륵이였지만 땀을 흘리며 다가오는 안거금을 보자 몹시 미안스런 생각이 겹쳐들었다.

자기들때문에 고생을 하는 안거금을 보기가 무척 딱해졌던것이다.

그래서 미륵은 미안스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가 우리들때문에 괜히 고생을 하는것 같애요.》

《그런 소리를 하지 말라구.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에 있지 않나?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영산의 형도 빼내오지 않았나? 그러니 너무 그런 일에 옴하지 말구 이젠 래일일이나 생각해보자구. 래일은 성안에 있는 손형을 만나기로 한 날이지? 그 사람을 만나서 자네의 아버지를 빼내올 방도를 의논해보자구.》

미륵은 안거금의 말에서 그의 뜨거운 인정과 도량에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밥이 되였다고 보패가 소리를 쳐서야 두 사람은 이야기를 그치고 밥짓는 곳으로 내려갔다.

《영산아, 너의 형을 깨워라. 점심이나 먹고 또 자라고 하여라.》

영산이는 동굴로 들어가 리운을 부축하고 나왔다. 리운이의 눈은 부석부석하였고 한쪽다리는 여전히 절고있었다.

《아직 잠이 모자라지. 점심밥을 먹고 또 자라구. 이렇게 사나흘 푹 쉬면 몸이 추설거네.》

리운이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그저 안거금과 미륵에 대한 고마움이 넘칠뿐이였다. 점심은 말그대로 소박한것이였다. 수수밥과 소금종지가 다였다. 다만 안거금이 가져온 건뎅이젓이 조금 있어 밥이 참 달았다. 점심이 끝나자 안거금은 래일 손효숭을 만나러 갈 의논을 하였다. 미륵은 자기가 혼자서 가겠다고 하였다. 가루개고개로 손효숭이 온다고 하였으니 이곳은 미륵도 잘 알고있는 곳이다.

안거금은 머리를 흔들었다.

《래일은 나와 함께 가야 하네. 왜냐면 나는 아직 손형을 잘 알지 못하네. 그날 밤에 얼핏 만나기는 하였으나 어두워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지 않았나? 그러니 얼굴도 잘 모르지, 또 내가 가야 앞으로 할일에 대하여 의논을 할수가 있지 않겠나.》

《앞으로의 일이라니요?》

안거금은 손을 가볍게 내저으며 말없이 웃기만 하였다.

두 사람은 다음날 일찌기 조반을 먹고 가루개를 향하여 떠났다. 대성산에서 큰길로 나갈 때까지는 안거금이 길잡이를 하였다. 그다음부터는 미륵이 앞장을 섰다. 그들은 될수록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일부러 숲속의 오솔길을 택하군 하였다.

예견하였던대로 이들이 가루개근처에 이르렀을 때는 한낮이 가까왔다. 큰길을 따라왔으면 이렇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것이나 숲속길을 헤치고 오느라 지체하게 되였던것이다.

손효숭은 벌써 큰길쪽에 나와서 그들을 기다리고있었는데 숲속에서 조심스레 다가오는 안거금과 미륵을 보고는 반갑게 달려왔다. 안거금은 이때에야 손효숭을 자세히 볼수 있었다. 넙적한 얼굴에 웃는 모습이 단번에 어질다는 감을 주었다. 그런데 예리하게 빛나는 두눈은 그가 결코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말하여주었다.

《오시느라 고생을 하였겠소.》

안거금은 손효숭이 미륵과 인사말을 끝낸 다음에 앞으로 나서며 한마디 하였다. 손효숭이 벌씬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생각난듯이 안거금에게 서둘러 물었다.

《강계아이는 잘 있소?》

《잘 있지요. 이제는 제 형과 같이 있으니 마음을 놓으시오.》

안거금의 말에 손효숭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럼 거기서 림원역말을 쳤소?》

《치다니요? 그저 술에 취한 사령들 모르게 빼냈을뿐인데…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한것은 없수다.》

안거금의 대수롭지 않은 말에 손효숭은 심각한 표정으로 가볍게 한숨까지 쉬였다.

《왜 그러시우?》

안거금이 이상하여 묻자 손효숭이 조용히 말하였다.

《앞으로의 일이 난감하게 되여서 그러우.》

이렇게 말하면서 손효숭은 두 사람을 데리고 가루개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가루개는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서 오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것 같아서였다.

《앞으로의 일이 난감하다는게 무슨 소리요?》

숲속에 들어와서도 손효숭의 말이 잘 리해되지 않아서 안거금이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손효숭은 작은 바위에 앉으면서 말하였다.

《지금 감영에서 무슨 소동이 벌어지고있는지 아시우? 감사는 림원역말을 들이친 화적들이 언제 평양성안으로 들어올지 모르니 특별히 단속을 잘하라는 령을 내렸소. 그래서 평양옥의 파수를 몇곱절 더 늘이고 평양으로 들어오는 길목들에 기찰들을 늘였소. 그래서 평양을 나드는 사람들이 괜스레 기찰들에게 잡혀 한참씩이나 곤역을 당하고야 풀려나군 하는 형편이지요.…》

안거금은 손효숭의 말을 들으면서 얼굴이 시뻘개지며 두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자기들때문에 백성들이 량반놈들의 더욱 혹심한 행패속에 허덕이고있다니 가슴속에서 피가 꺼꾸로 흐르는듯싶었던것이다.

미륵도 마찬가지였다. 미륵이 얼마나 격분했는지 그가 톺아올리는 거친 숨소리를 행길에서도 듣지 않을가 걱정될 지경이였다.

그러는 미륵이를 곁눈질하며 손효숭이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구 미륵의 부친의 신상이 지금 말이 아니요. 그놈들은 매일 미륵의 부친을 달아매구 매질을 하면서 아들이 간 곳을 대라고 하고있소.》

미륵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얼굴은 하얗게 질리다 못해 죽은 사람처럼 꺼멓게 되여버렸다.

미륵은 실성한 사람처럼 안거금과 손효숭을 번갈아보았다.

그러는 미륵을 마주대하기가 난처해난 안거금이 손효숭을 끌고 몇걸음 떨어져나왔다.

《그래 무슨 수가 없겠소? 미륵의 부친을 구해낼 신통한 수가 말이요.…》

손효숭은 몇걸음 떨어져있는 미륵이를 힐끗 바라보고는 알릴듯말듯 머리를 저었다.

《이대로 있으면 미륵의 부친이 얼마 가지 못할것 같소. 그래서 나는 옥에서 어떻게 해서나 빼내여오자고 하였는데 림원역말에서 일이 나는 바람에 감영이 들끓으니 참 어렵게 되였소.》

손효숭의 말을 듣고서야 안거금은 자기의 실책을 깨달았다.

《내가 미처 그 생각을 하지 못했구만. 차라리 그 령감님을 먼저 빼내오고 영산의 형을 구원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겠는걸…》

안거금은 이 한마디의 말을 하고는 더 잇지 못하였다.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던것이다. 그러자 손효숭이 말을 계속하였다.

《이젠 기회를 노리는 길밖에는 딴도리가 없수다. 내가 그곳을 잘 살피다가 기회가 생기면 제꺽 알려주겠으니 그때 슬쩍해버립시다.》

손효숭의 말에 안거금은 난색을 지으며 머리를 흔들었다.

《미륵이가 견디여내지 못할거요. 무슨 자그마한 구멍수라도 있으면 우리가 오늘이라도 평양옥을 들부시고 구해내겠소.…》

안거금이 결단성있게 말하였다. 그러자 손효숭은 머리를 흔들며 가벼운 한숨을 내쉬였다.

《일이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소. 평양의 옥은 림원역말옆의 주막집과는 다릅니다. 여러명의 군사들이 파수를 서니 서뿔리 달려들었다가는 큰 랑패를 보지요.》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가만히 있을수도 없지 않소.》

안거금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손효숭은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하여튼 당분간 기다려봅시다. 그러다가 내가 다시 손을 써보겠소. 그런데 조심할것은 대성산의 동굴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것이외다. 자칫하면 큰일이 생길수 있소. 그리고 성안의 소식을 거기서 알아야 하겠으니 어떻게 하겠소? 내가 매일 여기로 올수는 없으니 성안으로 누가 들어오면 좋을듯 한데 어떻게 한다.…》

손효숭은 한동안 무엇을 생각하는듯 하더니 좋은 묘안이 생긴듯 말했다.

《영산이를 가끔 보내시우. 그 애는 나밖에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일없을거요. 우리 집도 알고있으니 나를 찾아올수가 있을게구.》

《그게 좋겠소.》

안거금도 찬동하였다.

이어 그들은 급히 헤여질 차비를 하였다.

손효숭이 미륵의 어깨를 두드리며 너무 걱정말라는 위안을 한 다음 안거금에게 얼굴을 돌렸다.

《저기에 좁쌀 둬말을 가져다놓았소. 그리고 소금이며 찬감도 조금 가지고 왔으니 가져가우.》

안거금은 손효숭이 의리가 매우 깊은 사람이라는것을 느꼈다. 그가 비록 형방주사라고는 하나 살림은 넉넉치 못하였다. 그러니 저만한 량식을 마련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썼겠는지 가늠이 갔다.

《그런데 우리가 늘 이렇게 신세만 지면서야 어떻게 살겠소. 이제는 대성산에도 식구가 늘어났으니… 그래서 나는 지금 살아나갈 다른 방도를 찾고있는데…》

안거금은 말을 잇지 못하였다.

《다른 방도라니 그것은 무슨 소리요?》

손효숭도 안거금의 말이 잘 리해되지 않아 이렇게 물었다. 안거금은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말을 계속하였다.

《나도 그렇고 미륵이 저 사람도 그렇지요. 또 리운의 형제도 그렇지 않소. 모두가 이제는 세상에 나가서 떳떳하게 살아갈수 없는 처지가 아니요. 그렇다고 뿔뿔이 헤여져서도 안되지요. 그러면 더욱 살아가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 량반들, 돈많은 부자들의 재물을 빼앗아 살아갈 생각을 하였는데 어떻소?》

지금까지 말이 없던 미륵이 뜻밖이라는듯 안거금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진짜 화적이 된단 말이요?》

《예로부터 화적이라는 말은 량반놈들만 하는 소릴세. 량반놈들을 치고 백성들을 위하는것은 화적이 아니라 의적이란 말일세.…》

안거금의 말에 미륵이는 물론이고 손효숭도 할말을 찾지 못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미륵이 이내 머리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듣고보니 그렇기두 하우다. 하긴 량반놈들에게 늘 이렇게 짓밟혀 살겠소. 그놈들을 족쳐 백성들의 쌓인 한을 풀어주는것두 사나이가 할일인가 하우다. 아저씨, 이왕 싸울바에는 우리 사람들을 모아 량반놈들을 본때있게 족쳐보자구요.》

손효숭이도 이 말에 응수를 했다.

《나도 그 일을 힘껏 돕겠수다.》

안거금은 미륵과 손효숭을 힘껏 끌어안았다.

잠시후 그들은 헤여졌다.

헤여지면서 손효숭은 안거금에게 신신당부를 하였다.

《하여튼 모든 일은 잘 생각해보시우. 그리고 모레쯤 영산이를 나에게 보내시우. 그 애가 혼자서 강계에서 평양성안까지 아무 탈이 없이 왔으니 눈치도 있고 세상물정도 아는것 같은데 일을 잘할것 같소.》

손효숭은 이 말을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갔다. 안거금과 미륵은 손효숭이 떠난 다음에도 한동안 말없이 그자리에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두 사람은 손효숭이 가지고 온 짐을 나누어지고 돌아왔다. 동굴로 돌아온 다음 안거금은 영산을 불러 이제부터 손효숭에게 다녀야 할 일들에 대하여 세세히 말해주었다.

안거금의 말을 들으며 영산은 사기가 올라 말이 아니였다.

그러는 영산을 보며 리운이가 걱정스러운 말을 하였다.

《저 애가 아직 철이 없어서 혹시 일을 그르치지나 않겠는지 걱정이우다.》

그 말에 안거금은 느슨한 웃음을 지으며 리운을 안심시켰다.

《영산이를 너무 어린애로만 보지 말라구. 강계에서 평양까지 혼자서 나온것만 해도 대단하지 않나? 자네도 이번에 릉지처참을 면하고 이렇게 살아있는게 동생덕이 아닌가. 당장은 성안에 마음놓고 들어갈 사람은 그 애밖에 없네. 영산이가 큰일을 하는셈이지.》

리운이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리운이는 이날밤부터 떠나는 날 아침까지 여러가지로 영산에게 주의할 점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였다. 영산이가 떠나는 날 안거금은 그를 데리고 평양으로 통하는 큰길이 보이는 곳까지 나갔다.

《돌아올 때는 늦지 않도록 해라. 저기 큰 나무가 있는 곳까지 오렴. 내가 마중을 해줄테니.》

안거금은 이렇게 당부를 하였다.

영산이를 바래주고난 안거금이 동굴로 돌아오니 처 강씨가 약간의 식량과 그릇붙이를 가지고 와있었다.

저녁무렵에야 돌아온 영산이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전하였다. 미륵의 아버지가 어제 옥에서 돌아가셨다는것이다. 손효숭이 영산에게 보내온 전후사연에 의하면 어제 이른아침부터 아들의 행처를 대라며 사령들이 달려들어 매질을 시작하였는데 며칠째 밥 한술 입에 대지 않은 로인은 너무도 기력이 쇠약하여 비명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그만 숨을 거두고말았다는것이다. 미륵이가 땅을 치며 울었다. 보패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끊길줄 몰랐다. 그들을 보며 안거금이며 리운이도 눈물이 그렁하여 먼 하늘쪽만을 바라보며 위안 한마디 하지 못했다. 강씨는 이런 정상을 보고 그냥 떠나갈수가 없었다. 그는 저녁무렵에 마을로 돌아갈 생각을 하였는데 모두 울고불고하니 자칫하면 동굴사람들이 밥도 먹지 못하고 굶을수 있다는 우려가 생겼던것이다.

강씨는 이날 동굴에서 묵기로 하고 자기가 저녁을 지었다. 이튿날 미륵과 안거금은 전날 손효숭과 만났던 가루개로 나갔다. 오늘 손효숭이 미륵의 아버지 상여를 그곳까지 가지고 오겠다는것이였다. 리운이도 간다고 따라나서려고 하였으나 아직 몸이 불편하여 그냥 남고 다만 영산이만이 따라갔다. 이튿날 이른아침 쓸쓸한 상여 한채가 평양성의 북문으로 나오고있었다. 옥에서 죽은 사람인 경우에는 대체로 가족들이 와서 시신을 거두는것이 상례였지만 미륵의 아버지시신은 누가 거두는 사람이 없었다. 손효숭은 마을사람들을 휘동하여 미륵의 아버지시신을 거두게 하였다. 손효숭이 특별히 주문하여 관도 마련하였다.

손효숭은 매사에 조심성이 많은 사람이였다. 그는 오늘 상여가 나가면 마중을 나올 안거금이며 또 상주인 미륵을 상여군들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데 왼심을 썼다. 그래서 손효숭은 대성산에서 미륵이며 안거금이 나오기 전의 시간을 타산하여 아침일찍 상여가 나가도록 했다. 상여군들을 시켜 매장할 땅을 파게 하고 자기자신이 준비한 약간의 제물을 함께 온 사람들이 들게 한 다음 먼저 보냈다. 어떤 사람은 술까지 마시고는 얼근하여 자기들이 봉분까지 하겠다고 자진하여 나섰으나 손효숭은 죄수의 무덤이니 그리 요란하게 봉분을 하지 않아도 일없다고 하면서 모두 돌려보냈다. 상여군들이 돌아간 다음 미륵과 안거금, 영산이가 당도하였다. 미륵은 관을 보자 밀려가 엎드려서 꺼이꺼이 소리를 내여 울기 시작하였다.

《아버님, 불효막심한 이 아들을 용서하소서.》

미륵의 울음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드는듯 하였다.

미륵의 곁에서 무릎을 꿇고 앉은 안거금은 한번도 미륵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는 못하였으나 자식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제를 지냈다. 영산이도 몹시 울었다.

잠시후 손효숭이 그들을 제지하며 간곡하게 말하였다.

《자, 이젠 그만들 하우다. 지금 감영에서 미륵이를 잡겠다고 눈을 밝히고있으니 여기서 오래 머무를수는 없소.》

안거금과 미륵은 손효숭의 말을 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오래 끌수 없소. 빨리 매장을 해야 하우.》

손효숭이 재촉을 했지만 미륵은 이내 움직이지 않았다.

한동안 눈물을 흘리던 미륵이 갈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아버님을 한번 봐야겠수.》

손효숭이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그만두는게 어떤가? 예로부터 우리 사람들은 한번 입관한 시신은 다시 꺼내보지 않는다 했네.》

손효숭은 이렇게 말하였으나 사실은 그의 아버지의 시체가 너무도 참혹하였기때문이였다. 이것을 눈치챈 안거금이 나서서 한동안 설복을 하여 미륵을 겨우 진정시켰다. 영산이까지 네 사람이 관을 묻고 봉분을 하고나니 벌써 한나절이 지났다. 손효숭은 조금 남겼던 음식으로 제물을 마련하여 무덤앞에 놓고 제를 지내도록 하였다. 여기에는 제관이 있는것도 아니였고 어떤 격식도 없었다. 미륵은 제를 지내면서 다시 소리내여 울기 시작하였다.

《우리의 풍습에는 이렇게 제를 지내면 꼭 음복을 하고 가는 법이요. 자, 이제는 조금씩 들자구.》

손효숭은 계속 곡성을 하는 미륵을 달래며 이렇게 말하였다. 미륵은 어제저녁부터 너무 울어서 아닌게 아니라 이제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어제저녁도 거의 먹지 않아서 기운도 없었다.

《자, 술을 한잔 들라구.》

미륵은 술을 마실줄 몰랐다. 아니, 술을 아직 마셔본 일이 없었다. 어려운 살림을 하면서 그는 술을 마실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미륵은 자주 사람들이 답답할 때면 술을 마신다는 말을 들어본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찌다 술이 생기면 자기도 술을 한번 마셔볼 생각을 하지 않은것은 아니였으나 아버지를 위해 모든것을 바치는 그의 정성이 남달라 술이 생기면 늘 아버지의 밥상에 올려놓군 하였던것이다,

하지만 이젠 효도를 할 아버지가 땅에 묻힌것이다.

미륵은 또다시 왈칵 눈물을 쏟으며 안거금이 권하는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미륵은 단꺼번에 두번째 잔까지 비워버렸다.

술기운이 온몸으로 퍼졌다. 잠시후에 마음이 좀 안정된듯싶은 미륵은 벌겋게 상기된 눈으로 손효숭을 바라보았다.

《아저씨, 우리 아버님을 돌봐주어 정말 고마와요. 그런데 어느놈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어요?》

미륵의 눈은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러는 미륵을 한동안 바라보던 손효숭은 사실여부를 똑똑히 말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잘못이기도 하네. 내가 잠간 자리를 비웠을 때 호수만이라는 놈이 와서 자기는 감사의 분부를 받았다고 하면서 제멋대로 옥에 들어가 란장을 쳐서 자네의 부친이 돌아가셨네.》

《끝내 그놈의 깔따귀가…》

미륵은 주먹을 부르쥐였다.

《내 기어이 그놈을 료정내고야말테요.》

미륵의 상기된 얼굴은 무섭게 이그러졌다.

그러는 미륵을 눅잦히며 안거금이 심중한 기색으로 말했다.

《료정을 낼 놈이야 어디 그놈뿐인가? 이 세상이 얼마나 야박한가? 우리같은 사람들은 허리를 펴고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세상이야.》

안거금의 말을 듣고 손효숭도 술을 한잔 마시고 머리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긍정하더니 중요한 소식을 전하였다.

《참으로 세상은 어지러운 세상이요. 량반놈들에게 등껍질을 벗기운 백성들이 이제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에는 싸우다 죽겠다며 들고일어나고있소. 어제도 강계에서 파발이 왔는데 그곳에 민란이 일어났다는거요.》

강계라는 말에 한옆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영산이가 예리한 눈길로 손효숭을 바라보았다.

《무슨 민란이요?》

《자세한것은 모르겠지만 그곳으로 성을 쌓으러 갔던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는거요. 그들은 행패를 부리던 아전이며 강계부에서 나온 관리들을 모조리 까눕히고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는거요.》

《고향이 어디라던가?》

안거금이 묻자 손효숭이 아리숭하게 대답하였다.

《영유라고 하던데 자세히는 알수 없소. 하여튼 평양근방인것만은 사실이요. 감사는 오늘아침 군사들을 그곳으로 보냈다고 하더군.》

《영유라고 하면 반드시 룡철아저씨가 있을거예요.》

한옆에서 이야기를 듣고있던 영산이가 끼여들었다. 그러자 손효숭은 놀라서 물었다.

《네가 그를 아느냐? 이번 주모자가 바로 룡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사람이니라.》

손효숭은 영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산이는 자기네가 바로 영유의 그 아저씨와 함께 개고개를 넘었다고 하던 형의 말이 생각나서 그대로 옮기였다.

《그러니 이 민란이 영산이네와도 관련이 있구만.》

안거금이 혼자소리로 말하는데 손효숭은 걱정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사람들이 영유에 들어가면 모두 잡히겠는데…》

이렇게 손효숭이 말하자 앉아있던 사람들이 걱정에 잠기였는데 미륵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이 잡히라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하우? 손을 씁시다.》

미륵의 눈은 비장하게 빛났다.

《그런데 무슨 묘한 수가 있소?》

안거금이 미륵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안거금을 똑바로 쳐다보며 미륵이 말했다.

《영산의 형은 뭐 무슨 타산이 있어 구원을 했어요. 죽는 목숨을 살리자는 생각만 하면 되는거우다.》

안거금은 지금 미륵이가 아버지의 일로 매우 흥분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물론 미륵의 말이 틀린것은 아니다. 죽게 된 사람들을 꼭 구원해야 한다는 결심을 가지구 접어들면 무슨 수가 나지기마련일것이다. 하지만 그런 타산은 일을 그르치기가 십상이다. 면밀하고 정확한 타산을 먼저 하고 접어드는것이 중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고말것이다.

《미륵이 자네의 말이 옳네. 그런데 좀 타산을 해보자구. 그 사람들이 강계에서 언제쯤이면 여기에 당도할지 모르겠소?》

안거금은 미륵을 눅잦히고나서 손효숭에게 물었다. 그러나 손효숭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있었다. 그는 오늘아침 이 말을 기생방에서 들었을뿐이였다.

감사는 감영의 기생 소향이에게 푹 빠져있었는데 소향은 전보다도 통 말이 없고 자기를 대하는 태도도 더 쌀쌀하여졌다.

감사는 너무도 답답하여 소향을 얼리느라고 장속에 넣어두었던 비단천쪼박도 주었고 밤이면 마치 부부간이 된것처럼 속에 감추어둔 말까지 하군 하였다. 그러나 소향은 이런 말을 그저 듣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어제 소향은 손효숭을 만나 이 말을 하였던것이다. 손효숭과 소향은 남다른 관계가 있었다. 손효숭은 소향과 오누이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 말을 입밖에 내지 않았다. 그러나 남들이 보지 않을 때는 오라비, 동생하면서 속에 있는 말을 많이 하였다.

손효숭과 소향이 가까와진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손효숭은 기생들과 치정관계를 맺은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손효숭은 소향이가 의지할데가 없이 홀로 자기의 방에서 앓고있는것을 보았다. 그래서 손효숭은 성안에 홀로 사는 늙은 로파를 양어머니로 삼도록 도움을 주었다. 소향은 이 로파를 자기의 양어머니로 모시였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주 찾아가군 하였다.

이런 일이 있어 손효숭과 소향은 남모르게 가까운 사이가 되였던것이다. 소향은 손효숭을 만나면 감영안의 일을 자기가 아는대로 모두 이야기를 하였다. 이러저러한 말을 하던 과정에 그는 전번날 한성의 형조판서의 아들 성무에게 준 보물의 령수증이야기도 하였다. 그러자 손효숭은 그 령수증을 달라고 해서 자기가 간수하였다. 물론 손효숭은 그 령수증을 어떤 필요가 있어서 달라고 한것은 아니였다. 다만 그는 감영안의 일을 잘 알아야 할 필요를 느꼈기때문이였다.

손효숭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것은 그의 지난날 생활과도 관련이 있었다.

손효숭이 평양에 온것은 그가 열살가량 났을 때였다. 손효숭은 원래 한성에서 출생하였다. 한성에서의 그의 생활은 매우 가난하였다.

손효숭의 아버지는 참으로 불행한 일을 당하였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전이 되는 해였다. 이 해에 한성에서는 력사에 널리 이야기하는 한성의 방화폭동이 있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이날의 방화폭동으로 하여 200여호의 부자집들이 불탔다고 하였다. 물론 손효숭은 아버지가 이 일에 어떻게 참여하였고 무슨 일을 하였는지 지금도 다 모른다. 다만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만을 들었을뿐이였다.

손효숭은 가벼운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하였다.

《안형, 너무 걱정을 마시우. 우리는 서로 생사를 같이할 사람들이 아니우.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면 림원으로 전갈을 하는게 어떻겠소?》

안거금은 영팔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은 영팔이에게 하는 전갈은 특수한 경우에만 하기로 하였다. 한편 안거금은 영팔이와 련계를 맺는 방도도 생각을 해보기로 하였다. 손효숭과 헤여진 다음 미륵과 안거금은 대성산동굴로 돌아와 리운이를 불러놓고 룡철의 소식을 전하였다. 룡철에 대한 말을 들은 리운이는 흥분하여 말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 아저씨를 구원하여야 합니다. 이 일에는 내가 나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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