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7. 김룡철

 

이무렵 룡철이는 영유를 비롯하여 평양근방에서 함께 떠나왔던 60여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개고개를 넘어서고있었다.

룡철이는 북으로 이주한 사람들속에서 인망이 매우 높았다. 훤칠하게 빠진 늘씬한 키에 시원한 이마를 한 그는 매사에 생각이 깊었다. 이제는 나이 40이 가까왔으나 그는 힘장사로 소문이 났다. 씨름에서는 그를 당하는 사람이 없었고 한편 수박희를 잘하였다. 김룡철이가 수박희를 잘한다는것이 소문난것은 그가 성쌓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타난 곰을 때려잡은 다음부터였다.

어느 가을날이였다. 이른아침 초막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던 한 젊은 사람이 곰을 먼저 보았다.

《곰이다.》

남쪽지대에서 자란 그는 어슬렁거리며 달려드는 황소만 한 곰을 보고 초풍을 만난 사람처럼 초막안으로 뛰여들어와 말도 미처 못하였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밖으로 나와보니 곰이 맨 웃쪽에 있는 초막을 당장 덮치려 하는중이였다. 이때 룡철이가 나왔다. 그는 미처 다른 생각을 할 사이도 없이 곰을 맞받아나가며 소리를 질렀다.

《모두 비켜라.》

이 소리를 듣기라도 한듯 초막으로 향하던 곰은 룡철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룡철의 손에는 목고채로 리용하던 참나무몽둥이가 쥐여져있을뿐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들은 곰이 무서워 피하기는 하였으나 멀리서 이제 일어날 일을 가슴을 조이며 바라보고있었다. 곰은 앞발을 높이 들고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룡철을 덮치려고 하였다. 바로 이 순간 룡철은 한길이나 높이 뛰여오르더니 발로 곰의 대가리를 찼다. 얼마나 세게 찼던지 곰은 뒤로 벌렁 넘어졌다. 또다시 한길 높이 올랐던 룡철은 몸이 아래로 내려오는 순간 두발로 곰의 배와 목을 힘껏 내리눌렀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환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들은 룡철의 발에 눌리워 마지막숨을 몰아쉬는 곰을 몽둥이로 사정없이 두들겨팼다. 이날 부역에 나가있던 사람들은 곰고기를 푸짐히 먹었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사람들은 룡철을 더 믿고 따랐다. 사람들이 김룡철을 따른것은 이것때문만이 아니였다.

한번은 성쌓기를 할 때 압록강을 건너서 녀진족 수십명이 쳐들어왔다. 사람들은 모두 어쩔바를 모르고 당황해하였다. 자칫하면 모두 잡혀가거나 죽을 판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도 훈련을 받아보지 못하였고 싸울줄도 몰랐다. 우리의 군사들은 거기서부터 멀리에 있었으므로 련락을 한다고 해도 오려면 한나절이 걸릴것이였다. 이런 위급한 순간에 룡철이가 목고채로 쓰던 참나무몽둥이를 들고 함성을 지르며 앞으로 나갔다. 놈들은 처음에는 얼떠름해있다가 달려드는게 보통 백성인데다가 아무런 병장기를 든것이 없으니 마음을 놓고 룡철에게 달려들었다. 놈들의 우두머리인듯 해보이는 앞에 선 놈은 호기있게 소리를 치며 작당들을 내몰았다. 룡철은 바로 그놈을 한길이나 높이 뛰여오르며 차넘기였다. 그놈은 찍소리도 못하고 쓰러지고말았다. 그다음 룡철은 다시 뒤에 섰던 두놈을 목고채로 후려쳐서 넘어뜨렸다. 룡철이 놈들속에 뛰여들어 좌충우돌하며 맹렬하게 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부역에 동원되였던 백성들이 모두가 손에 몽둥이들을 들고 싸움판에 뛰여들었다. 녀진족놈들은 무섭게 달려드는 백성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 황황히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지금껏 뒤전에서 바라보기만 하던 사람들까지 합세하여 그놈들을 따라가며 마지막 한놈까지 말끔히 소멸해버리고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이 고장의 군사들은 물론이고 관료들까지 룡철을 조심히 대하였다.

사람들이 룡철을 존경하게 된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의리가 있고 어려운 때 사람들을 도와주는 의협심이 있었기때문이다.

그의 이런 성품은 리운의 형제에 대한 태도에서도 나타났다. 룡철은 원래 리운의 아버지와 결의형제를 맺었었다. 그런데 개고개를 넘으면서 리운의 어머니가 돌아갔고 그후에는 그의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갔다. 이때 같이 온 사람들은 저마다 동정을 표시하면서도 어찌할바를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있었다.

그러나 룡철은 가만있지 않았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고 눈물만 흘려서야 되겠소? 여기까지 온 그의 아이들을 생각해야지. 예로부터 이웃 사촌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 조금씩 도와줍시다.》

모두가 어려운 처지이지만 자기들이 가지고있는 량식중에서 조금씩 떼여 리운의 형제를 도와주었다. 그후 룡철은 아직 뼈가 굳지 않은 리운이가 부역에 나온것을 보고는 그를 피신시키였다. 사람들은 이때 모두 룡철의 사람됨을 칭찬하였다. 이때로부터 2년의 세월이 지난 어느날 리운의 형제에게 불행이 닥친 소식을 듣고 제일 가슴아파한 사람이 룡철이였다. 룡철은 주먹을 부르쥐고 말하였다.

《우리가 이대로 순순히 살아간다면 모두가 저런 신세가 되고말것이요. 아, 원통하구나. 우리가 바람 사나운 이 고장으로 온것은 그래도 나라를 위하자는것이였는데 량반놈들은 우리에게 짐승보다도 못한 괄시를 하다니…》

사람들은 룡철의 말을 듣고 모두 피가 끓었다. 언제 자기들에게도 리운의 일가와 같은 신세가 차례질지 몰라 가슴이 아팠던것이다. 그런데 불행은 그들에게 빨리도 찾아왔다. 리운이가 평양으로 호송도중에 도망친 소식이 강계에 당도하자마자 이곳의 부사는 눈에서 불이 났다. 그는 감사로부터 호된 추궁을 받았다. 부사에게는 이제라도 성쌓기에 동원된 사람들을 내몰아 공을 세워 이번의 실책을 메꾸어보려는 생각이 떠올랐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가 부사로 있는 기간에 재부를 축적하여보려는것이 또 다른 하나의 타산이 있었다. 말그대로 강계는 손꼽히는 산골이니 여기서 다른 재물을 얻으려 한다는것은 시궁창에서 보석을 찾는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동이였다. 부사는 드디여 성쌓기를 한동안 중지시키고 사람들을 산으로 몰아 산삼을 캐거나 범은 물론 각종 짐승들의 털가죽을 마련할 생각을 하였다.

그것이면 자기의 재부도 축적하고 감사의 추궁도 무마시킬것 같았던것이다.

《성쌓기가 빨리 진척되지 못하는 원인이 부역나온 백성놈들이 건달을 부린데도 있지만 무엇보다 모자라는것은 거기에 드는 비용이다. 그러니 부역에 나온 사람들에게 모두 털가죽이나 산삼을 바치도록 해라.》

부사의 이런 령은 백성들을 모두 아연케 했다. 부사의 뻔한 속심을 모르지 않는 백성들은 누구도 이 령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라를 지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고 여기에 왔지 그런 일을 하려고 온게 아니요.》

부역에 나온 사람들은 관리들이 눈알을 부라렸건만 조금도 응하지 않았다. 부사는 노발대발하며 항거해나서는 몇놈을 잡아가두라고 하였다. 이렇게 되여 죄없는 사람들이 여러명 옥에 갇히우고말았다.

이때 김룡철이 사람들을 휘동하였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무슨 화를 또 당할지 모르오. 우리야 나라를 위해 성을 쌓으러 왔지 그런 일을 하러 왔소? 모두 들고 일어나 강계부사를 내쫓고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김룡철의 이 호소는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다음날 사람들은 강계의 거리로 달려들어가 부사를 들것에 담아 지경밖으로 내다버리고말았다. 일은 순식간에 끝난셈이다. 부사는 이것으로 파면된거나 같았다. 그러나 이 민란을 일으킨 주모자 몇사람은 옥고를 치르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에게 무슨 죄가 있소? 고향으로 갑시다.》

누구보다 앞장에 선 사람은 영유에서 온 허승선이였다. 그는 북방으로 떠나올 때 이런저런 핑게를 대며 가족들을 데리고오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고향에 대한 생각이 각별하였고 일을 할 때도 자기 안해에 대한 말을 많이 하였다. 사람들은 허승선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그것은 허승선이 성쌓는 일에도 몸을 내대지 않고 가끔 사람들의 등을 쳐먹으려는 나쁜 습관을 가지고있었기때문이였다. 부역에 나온 사람들은 모두 제대로 먹지 못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점심을 싸가지고 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밥을 한술씩 떠서 나누어먹군 하였다. 그날도 사람들이 모여앉아 밥을 나누어 먹는데 허승선이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혹시 그도 밥을 가져오지 못해 어디엔가 홀로 가있는가싶어 사방 돌아가며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찾아낸것이 어느 바위밑이였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 띄운 그의 모습이란 참 가관이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큼직한 노루다리를 구워 정신없이 뜯어먹고있는 모습을 보았던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가 격분했다.

허승선이 옹노질을 하는것을 본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그러니 그는 남의 옹노에 걸린 노루를 몰래 가져다 숨겨놓고 혼자 먹고있는것이였다. 산세가 험한 이 고장에는 산짐승이 많았는데 부역군들은 여기저기에 옹노를 놓고 짐승이 걸리면 그것을 같이 나누어먹군 하였다.

하지만 허승선은 남의 옹노에 걸린 노루를 제 혼자 차지하고 남몰래 먹는것이였다. 사람들은 너무도 격분하여 허승선의 목덜미를 틀어잡았다.

《노루 한마리를 혼자서 먹지는 못했겠는데 나머지것은 어떻게 했어?》

사람들이 다몰아대자 허승선은 이내 토설을 하고야말았다.

산에서 옹노에 걸린 노루를 끌어내려 이 바위밑에 감추어두고 먹고있다는것이였다. 사람들은 허승선이 베여먹다 남긴 그 노루를 찾아내여 성쌓는 곳으로 가지고갔다. 이것으로 하여 그는 사람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고 성미가 급한 무춘이라는 사람에게 주먹찜질까지 당했다.

허승선은 이번 소요때도 맨 뒤에서 슬금슬금 따라가다가 막상 강계부사를 들어낸 다음에는 자기가 큰 공을 세운것처럼 우쭐렁거려서 또 사람들의 비난을 받았다.

《네놈은 좀 가만있어라.》

무춘이가 허승선이 노는 꼴이 역겨워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일행이 어떻게 행동을 하여야 하겠는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론의하기 시작한것은 개고개를 넘어선 다음부터였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렇게 큰길로 버젓이 갈수는 없소. 이제부터는 산길을 타야 하겠소.》

룡철이가 이렇게 말하자 무춘이며 대석이와 같은 사람들이 옳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속으로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면 어쩌자우? 우리가 모두 옥살이를 하자우?》

김룡철이가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그러자 무춘이가 성이 난듯 말하였다.

《옥살이를 어떻게 한단 말이요. 하고싶은 사람이나 하소.》

무춘이는 성격이 과격하였다. 그의 검고 넓은 얼굴에는 항상 노기가 어린듯 보여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무서운 인상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지내보면 마음씨 곱고 인정도 많았다. 룡철이가 무춘이의 말을 듣고 무슨 소리를 더 하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대석이가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옥살이를 한다는거야 말이 안되지요. 그러니 우리모두가 합심하여 방책을 생각하여봅시다.》

대석이 역시 성미가 급한 사람이지만 무춘이에 비하면 깊이 생각을 해보고 말하군 하였다. 일행의 존경을 받는 룡철이나 무춘이, 대석이가 그렇게 하자고 하자 허승선이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입을 열지 못하였다. 이제부터는 산발을 타고가자고 하는 룡철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였다.

룡철은 가족들에게 남자들은 먼저 떠나가니 녀인들은 뒤를 따라 천천히 오라고 하였다.

《나도 그 생각이요.》 대석이가 옆에서 말하였다.

무춘이도 한마디 하였다.

《나도 그 생각을 하지 않은바가 아니우. 허지만 강계에서 평양으로 파발말이 떠나기 전에 녀인들이 떠났겠은즉 그곳에서야 무슨 탈이 없었을게고 용모파기가 나붙었다고 해도 우리 남정들의 모습을 내놓았겠지요.》

지금 여기저기로 떠돌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을듯 하였다.

하지만 룡철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자기들이 떠날 때 가족들을 데리고오지 못한것이 마음에 걸렸다.

룡철은 강계에서 민란을 일으킨 다음 본래는 가족들을 데리고올 작정을 하였으나 아무래도 가족들을 데리고오느라면 여러모로 지체할것 같았다. 그래서 룡철은 식구들과 따로따로 행동을 하려고 작정을 한것이다. 아무리 잔악한 봉건관료들이라고 해도 연약한 부녀자들이나 아이들에게야 무슨 피해를 가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것이다. 관청에 들어앉아있는 량반들은 자기들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는것을 직접 체험하지 못하고있었던데로부터 오는 룡철의 순진한 생각이였다. 그는 처음 가족들을 빨리 떠나 고향으로 가라고만 하고는 민란을 일으킨 장정들만 데리고 개고개에서부터 산발을 타기 시작하였다. 역시 산길은 어려운것이였다. 얼마 못가서 바지가랭이는 나무그루터기에 걸리여 모두 거들거렸고 옷들은 찢어졌다. 룡철이는 무춘이와 대석이를 불러 조용히 말하였다.

《우리가 공연히 노루 제방귀에 놀라서 그러는게 아닐가? 정말 용모파기가 나붙어서 우리를 잡으라고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럼 내가 한번 내려가보구 오겠소.》

대석이가 이렇게 말하고 그길로 마을에 내려갔다. 대석이는 한식경도 되지 못하여 다시 산으로 올라왔다.

《그래 형편이 어떻던가?》

룡철은 말도 못하고 앉아서 헐떡이는 대석이를 다몰아댔다. 대석이는 그냥 가쁜숨을 몰아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말도 마시오. 길에는 기찰들이 쫙 깔렸소. 우리가 큰길로 내려간다는것은 섶을 지고 불속으로 들어가는것과 같은 소리요.》

그러면서 대석이는 자기가 본 사실을 이야기하였다. 지금 중요한 길목들에는 자기들의 용모파기가 나붙어있을뿐아니라 군교들이나 사령들이 개싸다니듯 한다고 말하였다.

룡철은 이 말을 듣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 한동안 망설이였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을 불러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였다. 누구도 신통한 의견을 내놓지 못하였다.

그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무춘이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다들 봤지요. 우리가 룡철형님의 말대로 산길을 타기 잘했지 그러지 않았다간 우리는 벌써 감옥귀신이 되고말았을거요. 그러니 이러구저러구 할게 뭐가 있겠소. 우린 룡철형님이 하잔대루 해야 하우다.》

무춘이의 말에 여러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이며 수긍하였다.

하지만 모두가 의견을 같이하는것은 아니였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은 별로 지은 죄도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들은 대석이가 성이 나서 펄펄 뛰였다.

《여기 죄를 지은 사람은 누구란 말이요? 그래 우리들의 명줄을 끊으려는 못된 탐관오리를 내동댕이친것이 죄란 말이요? 죽어도 같이 죽자고 언약한 때가 언제인데 이제와선 그런 소리를 해? 가고싶은 사람은 가오. 강계로 돌아가든지 영유로 가든지 하우. 여보게 허승선이, 자네는 말끝마다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데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혼자서 살겠단 말인가? 가겠으면 조용히 사라질게지 무슨 허튼 나발을 계속 불어대는가 말이야.》

대석이의 한쪽뺨이 푸들거렸다. 화제가 자기에게로 쏠리자 허승선은 얼굴이 시뻘개지며 두손을 흔들었다.

《난 그래서 한 말이 아니우. 그저 계속 관가와 엇서다가는 좋지 않다는 말밖에는…》

《이자식이 아직두? 그게 사람들의 기를 꺾는 개소리라는걸 알게 해줘야 정신이 들겠어?》

무춘이가 주먹을 부르쥐고 나섰다.

허승선은 낯색이 하얗게 질려 뒤걸음을 쳤다.

금시 무춘이의 주먹이 허승선에게 날아들려는 찰나에 룡철이가 그를 제지시켰다.

《그러지들 말라구. 우리 함께 의논을 해보자구. 이제 우리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여러 말 할게 있소? 형님이 생각한게 있으면 하구려. 우린 그대루 따르겠수다.》

무춘이는 아까부터 하고싶었던 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룡철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재촉이 심하자 룡철은 입을 열었다.

《나는 대성산에 들어갔으면 하오.》

이 말은 사람들을 아연케 하였다. 영유에서 평양이 멀지 않을뿐아니라 대성산도 과히 멀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성산이 대체로 어떤 산인가 하는것은 알고있는지라 인적이 없는 대성산에 들어가서는 어쩌자는것인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좀 자세히 말하구려. 대성산에 들어가서 어떻게 하자는것인지.》

한동안 의아해하던 대석이가 물었다.

대석의 물음을 받은 룡철은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생각들을 해보라구. 지금 관가에서는 우리를 잡으려고 날뛰고있네. 그러니 우린 밝은 세상에서는 마음놓고 있을 곳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우린 관가가 발을 들이밀기 힘든 곳으로 가야 하네. 바로 이곳 가까이에 있는 그런 곳이란 대성산뿐일세. 대성산은 내가 수박희를 배운 곳이여서 골짜기와 바위에 이르기까지 손금보듯 잘 아는 곳일세.》

룡철이가 대성산에서 수박희를 배웠다는 말이 나오자 사람들은 정신을 집중하였다. 룡철은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곳에는 광법사라는 절간이 있는데 송암이라는 도사가 있었네. 지금도 살아계신지는 몰라도 나는 그 도사님에게서 수박희를 배웠어. 참, 인정이 있으면서도 엄한분이였지. 그리고 그 절의 사람들도 모두 인심이 좋았어.》

그제야 룡철이 어째서 대성산으로 들어가자고 했는가를 깨달은 사람들은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때까지도 한동안이나 무슨 생각에 잠겨있던 무춘이가 불쑥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 해도 이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가서 어떻게 붙어 살아갈수가 있겠수?》

룡철은 이미 그런 예견을 한듯이 어렵지 않게 대답을 하였다.

《우리가 그 절간에 가서 얻어먹자는게 아니요. 우리자체로 살아갈 방도를 찾아보아야지.》

룡철의 이 말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러나 허승선을 비롯한 일부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었다.

《여러 말을 할게 없수다. 대성산으로 갈 사람은 가고 집으로 갈 사람은 가우. 자, 우리와 함께 갈 사람은 나서시우.》

성급한 무춘이가 사람들에게 말을 하자 제일먼저 나서는 사람이 황해도에 산다는 서명원이였다.

《내가 가겠소.》

그는 지금 나이가 스물댓정도 되였는데 북으로 올 때는 자기의 식솔을 데리고오지 않았다. 고향에는 부모들과 처와 어린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부역에 나가서도 늘 고향생각을 많이 하던 사람중의 하나였다.

서명원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너도나도 나섰다.

이렇게 되여 허승선을 비롯한 몇을 내놓고 수십여명의 사람들이 김룡철을 따라 대성산의 광법사로 들어갔다.

광법사로 들어간 날 저녁에 룡철과 대석이, 무춘이를 비롯한 사람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장밤 의논한 끝에 백성들을 가혹하게 수탈하는 량반놈들을 치자고 합의를 보았다.

그리하여 그밤으로 김룡철을 두령으로 하는 지휘층이 선출되고 무춘과 대석이가 각각 거느린 두개의 작은 대오가 편성되였다.

그런데 허승선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헤여졌던 영유사람들이 다음날 저녁무렵에 광법사에 나타났다.

광법사 대문가에서 자기에게 배속된 사람들에게 훈시를 하던 대석이가 그들을 맞았다.

《고향으로 가겠다더니 어떻게 다시 여기로 왔소?》

대석이가 영문을 알수 없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대석의 눈에 영유사람들의 뒤에 서있는 낯선 중년의 사나이와 함께 나어린 아이가 보였다. 어린 아이는 몹시도 낯이 익었다.

그를 세세히 뜯어살피던 대석이가 한순간 흠칫 놀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너 영산이가 아니냐?》

영산이가 울먹이며 달려와 대석에게 와락 안겼다.

《대석형님!》

《영산아!》

대석의 목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광법사 운하당문이 벌컥 열리며 주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룡철이가 달려나왔다.

《누가 왔다구? 영산이라니?》

룡철의 눈길이 향방없이 사방을 허둥거렸다.

룡철을 본 영산이가 왈칵 울음을 터뜨리며 달려왔다.

《아저씨!》

영산이는 달려가 룡철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는 너무도 격하여 말도 못하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룡철이도 영산이를 달래느라고 말을 하지 못하다가 잠시후에 물었다.

《그래 형님은 어떻게 되였냐? 소식이라도 알아보았느냐?》

영산은 이 물음에 무엇이라고 말하려고 하였으나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때 그의 뒤에 서있던 중년의 사나이가 말하였다. 그는 다름아닌 안거금이였다.

《영산의 형은 지금 우리에게 와있소.》

그제야 룡철은 안거금을 바라보며 물었다.

《거기는 뉘신지요?》

《통성도 못하여 미안하게 되였소. 나는 상원사람 안거금이라고 하오. 사세부득하여 여기 대성산에 은신하고있는 처지라 이렇다할 명분은 없다고 할수 있지.》

룡철도 이 말에 가볍게 인사를 하였다.

《초면에 안되였소이다. 김룡철이라고 하우. 우리도 량반놈들때문에 세상을 등지게 된 사람들이니 같은 처지라 할수 있지요.》

《나도 말을 들어서 알고있소. 지금 영산의 형이 우리에게 와있는데 아직 몸이 추서지 못하여 여기에는 오지 못하였소. 우리는 거기서 영유로 돌아올것 같아서 며칠째 길목을 지키고있었소. 그러다가 영유로 가던 사람들을 만나서 이렇게 함께 왔소. 지금 영유에는 강계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잡겠다고 군교들이 한벌 깔렸소. 그래서 우리가 이 사람들을 데리고왔소.》

그제야 룡철은 대체로 경위를 알수가 있었다. 안거금은 룡철을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가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말하였다.

안거금의 말을 듣고난 룡철은 그가 영유사람들을 구원하여준것이 고마왔고 자기의 동생과도 같은 리운이를 살려준것이 고마와 몇번이고 그에게 사례를 하였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려고 하우?》

안거금이 잠시후에 물었다. 룡철은 이 물음에 자신심을 가지고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곳에 와보니 생각하던것과는 사정이 판이하였기때문이다. 그가 믿고있었던 송암대사는 몇해전에 세상을 떠났고 절에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다른 거점을 하나 마련해야겠는데 아직 어디에 정하지는 못하고있다는데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한동안 룡철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던 안거금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내가 거점을 하나 마련해주겠소.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은신할수 있는 넓은 공지가 있소. 사방이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막혀 사람들의 발길이 쉬이 닿지 못하는 곳이지.》

룡철은 너무 반가운 소리여서 안거금의 손을 덥석 잡기까지 하였다.

일단 거처지에 대하여 락착을 본 안거금과 룡철은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거처를 정한 다음의 일을 상세히 론의하였다.

집은 달라붙어 지으면 그만인것이고 이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것이 바로 식량을 해결하는것이였다.

그것이 제일 난문제이면서도 사람들의 생사와 관련되는 중요한 문제인것이다.

그 문제에 대하여 안거금이 자기의 제안을 내놓았다.

《다른 길은 없지요. 권세자들, 량반들이 우리의것을 빼앗고 못살게 구는데 우리는 그놈들의것을 빼앗아야지요.》

룡철은 선뜻 응해나섰다.

그리하여 이날로 룡철과 그의 동료들은 모두 대성산동굴과 광법사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골짜기로 들어오게 되였다.

안거금이 정해준 거점에 집들을 지어놓은 다음날에 룡철의 완강한 제의에 의하여 대오는 다시 정비되였다.

대오는 세개의 대오로 나누고 미륵과 무춘, 대석이들이 한개 대오씩 거느리며 안거금을 대장으로 하고 룡철은 부대장이 되였다.

이로 하여 대성산에 여러가지 사연을 안고 모여든 사람들이 일정한 체계를 갖춘 농민군으로 되였다.

대오를 다시 편성한 대성산농민군은 우선 량식과 의복을 마련하고 무기를 갖추기 위하여 근방의 량반부자들을 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되여 대성산농민군에 대한 소문은 아근은 물론이고 감영에까지 알려지게 되였으며 경내를 벗어나 널리 퍼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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