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6 장

력사는 인멸되지 않는다(1)

13

 

박순정, 리창조, 호영란이 참가한 속에서 진행된 합동조사단의 자료확인 및 고증사업이 결속되던 마감날에 있은 일이다.

《박순정할머니와 리창조로인의 말을 들으면 호영란할머니는 그때 수무천에 빠져 영영 솟아나지 못한것으로 인식되는데…》

재일중국인자유촬영가 전홍이 호기심을 가지고 호영란에게 물었다.

호영란은 잠시 생각을 더듬더니 《그때 나는 또 바보노릇을 했소. 그저 수무천을 건너가야 목숨을 건지는줄로만 알고 겐지란 놈의 뒤를 따라갔으니 말이요.》 하며 말을 계속했다.

…수무천을 먼저 건너간 겐지는 뒤따라오는 화자를 보면서도 그냥 수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자기 목숨만 건지면 그만이였던것이다.

화자는 수무천을 건너가야만 살수 있다는 그 한가지 생각으로 젖먹던 힘까지 다 내며 죽기내기로 달리다가 겐지가 건너간 여울목근방에서 강물에 뛰여들었다. 몇발자국 옮겨보니 그리 깊은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강복판으로 들어섰는데 키를 넘었다.

살같이 급류하는 수무천은 화자를 단숨에 삼켜버렸다. 한참 물을 들이키고나니 처음에는 목구멍이 꽉 막히고 귀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나면서 코가 찡하더니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일순 온몸의 맥이 쑥 빠져나갔다. 눈앞에서는 별의별 환각이 다 떠올랐다. 처음에는 별찌들이 번쩍번쩍 튕겨나더니 곱게 단장한 아버지, 어머니가 먼곳에서 어서 오라고 부르는 모습이 얼핏얼핏 눈앞에 다가들었다가는 사라져버렸다.

아, 왜 이리도 편안할가. 정말 편안하구나. 내가 지금 룡궁으로 들어가는구나. 이게 바로 천당이라는 곳인가? 아버지, 어머니!- 화자가 왔어요!…

화자가 온갖 시름을 다 놓고 희한한 환각세계에 몸을 맡기고있는데 누군가가 커다란 갈구리로 그가 입은 옷의 목깃을 툭 걸어챘다. 다음 순간 온몸이 흔들하며 천천히 우로 날아오르는것 같았다. 얼굴에 시원한 공기가 와닿는것이 느껴졌다. 눈이 조금 떠졌다. 눈앞에는 온통 노란 하늘이 펼쳐졌다. 그런데 다시 몸이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그것도 인츰 사라져버렸다. 옷깃에 걸린 갈구리는 물우로 올라갔다내려갔다 하면서 화자의 얼굴을 한번은 물밖으로 끌어올리고 다음에는 물속에 잠그어놓군 하였다. 물밖으로 얼굴이 나갈 때마다 조금씩 코가 열리고 다음은 목구멍이 열리는것이 알렸다. 가슴이 점차 시원해났다. 잠시후에는 자기가 숨을 쉰다는것을 의식했다. 그래서 입과 코가 물속에 잠길 때에는 호흡을 딱 멈추고 물밖으로 나갈적에는 한껏 숨을 쉬였다. 리창조가 말한것처럼 화자는 건너편 강기슭에 나자빠진 아름드리나무의 길다란 가지끝에 걸린것이였다.

동안이 지나서 화자는 엉뎅이에 무엇이 와닿는것을 직감했다. 손을 대보니 매끌매끌한 바위돌들이 깔린 강바닥이였다. 그사이에 물이 줄었던것이다.

화자는 간신히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구사일생이였다.

그러나 아득바득하여 상체를 기슭에 밀어올렸지만 더는 몸을 움직일 힘이 없었다. 물속에서는 그런대로 놀려지던 손가락도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더우기는 왼쪽다리가 마비가 온것처럼 감각조차 없었다. 배가 너무 뺑뺑하고 속이 메슥메슥하여 몸을 비틀며 옆으로 돌아누우니 왈칵- 하고 입에서 분수가 터져나왔다. 한참 울컥거리며 물을 토하고나서야 눈앞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화자는 죽기내기로 기고 또 기여 넙적한 바위우에 어푸러졌다. 해빛에 달아오른 바위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자 살것 같았다. 오장륙부가 살아나는것이 알렸다. 바위우에 엎디여 또다시 한참 물을 토했다. 정신이 들었다. 속이 한결 편해졌다. 배속에 있는 노랑물까지 게우고나니 머리가 어질어질하면서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

따스한 바위우에 한동안 엎디여 눈을 감고있던 화자는 상반신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보았다. 자기가 죽을내기를 하며 건너온 강건너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자기가 앉아있은쪽도 마찬가지였다.

좀전까지도 감각이 없던 왼쪽무릎부위가 쿡- 쿡- 쏘는것을 느낀 화자는 치마를 걷어올리고 내려다보았다. 벌겋게 피멍이 든데다가 퉁퉁 부어오른 무릎부위에서는 화끈화끈 열이 났다. 손을 댈수조차 없었다. 물에 떠밀려내려가다가 바위에 세게 부딪쳐 뼈까지 상한것 같았다.

화자는 이를 악물고 강기슭에서 나무막대기 하나를 골라잡았다. 그리고는 거기에 몸을 의지하며 가까스로 일어섰다. 어떻게 하나 인가를 찾아가야 살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꽉 차있었다.

쿡- 쿡- 쏘는 왼쪽다리를 질질 끌면서 나무막대기에 몸을 의지한채 향방도 없이 여드레 팔십리걸음을 시작한 화자의 의식은 비몽사몽간을 헤맸다.

간난신고끝에 화자는 수무천쪽에서부터 뻗어나온 울퉁불퉁한 달구지길에 들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가까이에 인가가 있음직했다. 길 오른쪽에는 강냉이밭이 펼쳐져있었고 이따금 개짖는 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이제는 살았구나! 어떻게 하나 인가를 찾아가야 한다.)

이런 생각을 붙들고 개짖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가까스로 걸음을 옮기던 화자가 어느 한 산굽이를 돌아설 때였다.

왼켠 산탁의 숲덤불속에서 《하나꼬!-》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꿈인가 해서 그냥 걸음을 옮겼는데 또다시 그를 찾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아주 또렷한 소리였다.

《하나꼬!-》

꿈이 아니라는것을 느낀 화자는 길섶에 풀썩 주저앉았다.

《에그머니나…》

《〈하나꼬〉, 나야 나!》

분명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소리나는쪽을 쳐다보니 머리에 허연 붕대를 처맨 겐지가 수풀속에서 엉거주춤해서 자기한테로 오라고 손짓하는것이 아닌가!

화자는 눈을 비비고 다시 앞을 살펴보았다. 분명 자기보다 먼저 수무천을 건너 달아빼던 겐지였다.

겐지의 행색도 말이 아니였다. 수무천을 건늘 때 벗어던졌는지 군화는 한짝밖에 없었다. 왼쪽은 맨발이였다. 아래우에 걸친 군복은 찢기고 흙먼지가 올라 넝마쪼박을 걸친것 같았다. 어깨에 달린 견장도 한쪽뿐이였다. 맨발인 왼쪽엄지발가락은 바위돌을 걷어찼는지 뻘건 피가 랑자했다. 헝겊오래기로 대강 처맸지만 겉으로 피가 쭉 내배이였다. 한쪽신발도 없이 오솔길도 없는 산발을 타고 여기까지 왔는지 꼴이 말이 아니였다.

겐지와 화자는 달구지길에서 좀 떨어진 수풀속에 몸을 숨기고 잠시 숨을 돌렸다.

능청맞은 겐지는 화자를 추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용케 강을 건넜구만. 그런데 난… 난 〈하나꼬〉가 이렇게 용감하게 강을 건너오는것도 모르고… 정말 힘들었겠구만. …》

겐지가 이런 노죽을 부리는데는 자기딴의 속심이 있었다.

나무막대기를 짚고 선 화자를 만날 때부터 그가 신은 신발에 눈독을 들이던 겐지가 불쑥 말머리를 돌렸다.

《〈하나꼬〉, 그런데 여기가 어디라고 대낮에 길 한복판으로…》

《?》

《여긴 련합군들이 자주 싸다니는 곳이야. 나도 그렇지만 〈하나꼬〉도 그자들한테 덜미를 잡히면 끝장이야.》

그때에야 화자는 겐지가 왜 길옆의 수풀속을 헤치면서 거기까지 왔겠는가 하는것을 의식했다.

겐지는 실지 련합군군인들이나 중국사람들의 눈을 피해 숲속을 헤치면서 광주나 어디 바다를 낀쪽으로 달아빼자는 생각을 품고있었다.

그러나 화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머리속에는 가까운 곳에 있는 인가를 찾아가 중국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목숨을 건질수 있다는 그 하나의 생각만이 꿈틀대고있었다. 자기의 몸상태를 보아도 이제는 얼마 더 걷기도 힘들다는것이 명백했기때문이였다.

화자는 쿡- 쿡- 쏘는 왼쪽무릎을 부여안고 신음소리를 냈다.

겐지는 피멍이 들고 퉁퉁 부어오른 화자의 무릎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 다리를 가지고서는 안되겠소. 〈하나꼬〉, 넌 여기서 좀 기다리라. 내가 이제 인가에 내려가 마차 같은것을 빌려가지고 오겠으니 네가 신은 신발이나 벗어놓으라.》

화자는 겐지를 쏘아보았다. 지금도 《위안소》에 있을 때처럼 여기는 모양같았다.

그가 신고있는 신발은 《요꼬마따진지》에서 련합군의 폭격에 나딩굴던것을 주어신은 일본군의 헐어빠진 군화짝이였다. 그때 순정이가 발가락이 다 드러나도록 꿰진 신발을 끌고 다니는 화자의 모양이 보기 딱해하며 억지로 신겨주었던것이다. 제 말에 순응하지 않는 화자의 모습을 지켜보던 겐지는 잠시 입귀를 씰룩거리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실은 《하나꼬》를 부려먹으면서 살구멍을 찾아 도망치려고 했댔는데 그가 한쪽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병신이 된 조건에서 별수가 없었던것이다.

더 지체할수 없다고 생각한 겐지는 다짜고짜로 화자에게 달려들어 신발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자는 기운이 다 빠져버린 상태라 아무런 저항도 할수 없었다.

신발을 앗아신은 겐지의 기분은 몇백리라도 단숨에 달아뺄것 같았다. 히물거리던 겐지가 화자의 어깨를 툭 치며 《〈하나꼬〉, 나를 나무라지 말고 여기서 좀 기다리라. 아까 말한것처럼 내 이제 인가로 내려가 마차 같은것을 끌고 오지.》 하고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

화자는 온종일 그곳에 쓰러져있었다. 겐지가 마차를 얻어가지고 찾아올거라고 믿어서가 아니였다. 그 인간백정에게서 벗어난것만도 그에게는 큰 행운이였다. 다만 페인이 되여버린 몸이라 조금도 움직일수가 없었던것이다. 하루밤을 지새고나니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단말마적몸부림으로 죽기내기로 달구지길옆까지 기여나온 화자는 끝내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그날 점심때쯤 마차를 몰고 지나가던 근방에서 사는 한 중국인로인의 도움을 받아 화자는 간신히 생명을 건질수 있었다.

수무천을 건너오면서 무릎뼈를 상한데다가 야수같은 겐지에게 신발을 빼앗긴 화자는 사실 빈사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좋은 중국인로인내외의 지성어린 손길에 의해 한달정도 지나서 제발로 걸을수 있게 되였다. …

그때부터 피눈물을 흘리며 여러 농촌마을들을 방황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화자는 고향으로 돌아갈 한가닥의 희망마저 다 줴버렸다. 갈래야 갈수도 없었다. 려비도 없었을뿐아니라 당시 중국정세가 너무도 험악하여 그 어디에 가서 자기의 처지를 하소할 형편도 못되였던것이다. 게다가 일본군성노예생활을 하면서 얻은 병이 더해져서 죽벌이도 못하는 신세가 되고말았다.

불쌍한 백화자는 그후 5년세월을 류랑걸식하면서 이리저리 떠돌던 끝에 귀주성 안순이라는 곳에 발을 붙이였다. 그곳에서 경로동을 하다가 35살 잡히던 해에 고마운 사람들의 중매로 농촌마을에서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데리고 사는 자기보다 열댓살이나 우인 농사군홀아비의 후처로 들어갔다. 그때 백화자는 자기 이름을 호영란이라고 고쳤다. 그가 며칠전에 박순정과 리창조를 만나러 곤명으로 올 때 따라온 아들이 바로 남편이 남기고 간 둘째였다.

호영란의 피맺힌 과거사를 청취한 조사단성원들은 겐지의 야수성을 두고 이를 갈았다.

그때 전홍이 호영란에게 물었다.

《그후에는 겐지를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까?》

호영란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곁에 앉아 호영란의 발언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과진량이 입을 열었다.

《그 시기 수무천을 중심으로 량켠에 펼쳐진 수림속에 숨어있던 적지 않은 일본군패잔병들이 중미련합군군인들의 수색에 걸려 포로수용소에 끌려갔다고 합니다. 또 일부 패잔병들은 인가에 뛰여들어 로략질을 하다가 중국사람들의 손에 붙잡혀 맞아죽기도 하고… 아마 겐지란 놈도 그때 개죽음을 당했을것 같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그때 〈요꼬마따진지〉에서 살아서 도망친 놈이 백에 두세명정도밖에 안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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