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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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동지께서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신채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의 어제와 오늘에 대해 생각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과 어머님의 남다른 관심속에 해방후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협주단으로 탄생하여 장장 수십년세월을 노래로 우리 혁명을 보위하고 시대를 선도한 군가집단이 바로 인민군협주단이였고 남성합창단이였다. 수령님께서 보안간부훈련대대부 일군들을 만나시여 군대안에 전문예술단체를 조직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것이 나라가 해방된 해의 11월이였고 당시 도당선전부장으로 사업하던 정률성을 료해하시고 그에게 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할데 대한 과업을 주신것이 이듬해의 1월이였다.

1947년 2월 22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첫 공연에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합창으로 불러 자기의 탄생을 세상에 알린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단은 그때부터 오늘까지 당과 수령의 령도밑에 자기의 발전을 이룩해왔다. 그 나날에 남성합창단은 그 위용찬 기개로 자기의 존재를 자랑하며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합창단으로 성장했고 그래서 1990년대초에는 《공훈합창단》이라는 값높은 칭호를 수여받았다.

조선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이 독자적인 군가집단으로서의 첫 뢰성을 터뜨린것이 이태전이였다.

하지만 그때로서는 누구도 인민군협주단 합창음악회가 가지는 거폭적인 의의에 대해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남성합창을 하는 성악배우들은 음악무용종합공연에서 배경막이나 다름없는 합창대에 서는것을 두고 긍지감을 느끼지 못했고 선창자로 떠받들릴 다른 예술단체에로 갈것을 희망했었다. 그들자신부터가 한목소리로 부르는 합창의 위력에 대해 모르고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전선시찰의 길에서 군인들이 펼치는 소박한 중대예술소조공연을 보시며 생명력을 잃지 않은 합창의 힘을 느끼시였고 그 우렁찬 합창으로 군대와 인민을 하나로 묶어세워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실 결심을 굳히게 되시였다.

그 나날 그이께서는 자주 수령님의 령전을 찾으시였다. 긴장한 집무를 보시다가도 언뜻 마음속에 파고드는 그리움을 달래기 힘드시여 수령님을 뵈오러 달려가군 하시였다.

수령님, 우리 공화국을 압살하려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책동이 극도에 달하고있습니다. 자연재해까지 겹쳐들며 우리를 위협합니다. 혁명의 길이 간고한줄은 알고있지만 이렇게 숱한 난관이 한꺼번에 밀려드니 참으로 견디기 어렵습니다.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된 이래 이제껏 큰 고생이란 모르고 살아오던 인민들이 한알의 쌀에 실리는 값비싼 무게를 깨달으며 식량사정이라는 말을 외우고있습니다.》

그때마다 수령님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을 듣게 되시였다.

《오늘도 장군이 현지시찰의 길에서 군인들의 예술소조공연을 지도했다는 소릴 들었소. 노래는 언제나 우리 혁명의 길에서 벗이였고 락관의 무기였지. 설사 총탄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라 해도 혁명의 노래만은 원쑤의 가슴을 뚫게 되오. 힘들 때마다 노래를 부르오. 나는 항일전의 나날에도 노래를 부르며 난국을 타개했고 전화의 나날에도 노래를 부르면서 승리를 락관했소.》

《알았습니다, 수령님!》

《내가 북만에서 활동하던 1935년 여름이였을게요. 오중흡이 왕청에서 반일전가의 노래를 배워가지고 처창즈에 갔는데 유격구에서 제일먼저 그 노래를 배운 사람이 장군의 어머니였소. 그는 내가 노래를 지었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감동돼서 그날 밤으로 온 유격구마을에 노래를 보급했소. 멀리 떨어진 마을에까지 다니면서 빠짐없이 노래를 배워주었지.》

김정일동지께서도 잘 알고계시는 이야기였다. 어머님께서 보급하신 노래는 순식간에 처창즈사람들의 마음을 휘여잡았고 그들의 사랑을 받았다. 우리 혁명이 생사기로에 놓여있던 엄혹한 시련의 시기에 투사들의 신념과 의지를 벼려준 그 노래가 있어 처창즈의 군민은 굶주림과 기아를 이겨낼수 있었고 일제의 《토벌》에서 유격구를 사수하고 혁명의 전취물을 지켜낼수 있었다.

《…해방후에도 정숙동문 그 노래를 자주 부르며 먼저 간 투사들을 추억했소. 장군, 천만군민의 심장을 불태우는 한편의 노래를 그 어떤 총검도 대신 못하오. 최고사령관이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으로 군대와 인민을 불러일으킬 결심을 하였는데 나는 적극 지지하오.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은 하나로 뭉친 우리 대오의 억센 힘의 분출이요.》

음악이 안고있는 힘에 대해, 군가의 위력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이시였다.

《그렇습니다, 수령님.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단이 터치는 뢰성으로 군대와 인민의 심장을 울리겠습니다. 그들을 혁명의 나팔수로 내세우겠습니다.》

그 시기 김정일동지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미치는 음악의 힘에 대하여 많이 생각하게 되시였다. 《음악은 신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음악은 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수단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신의 모습이 그속에 나타난것이다.》라고 한 바흐의 말도 다시 상기하시였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리해할수 없는 많은 불가사의한것을 신과 련결시켰고 신에 의탁하여 그 모든것을 설명해왔다. 오늘도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바흐의 말을 값비싸게 여기고있는것이 바로 음악의 그 신비적인 힘때문이였다.

김정일동지께 있어서 신은 인민이였다. 그래서 인민의 의지를 노래에 담으시였고 그 노래로 인민과 대화를 하시였다. 결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될수 없는 음악은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혁명에 대한 굳은 확신, 미래에 대한 락관의 소리표가 되여 그이의 심혼에 깃들어있었다.

그이께서는 인민군협주단에 새로운 형식의 공연방식인 합창음악회를 준비할데 대한 과업을 주시였다.

하지만 창작지도일군들은 그이의 의도를 헤아리지 못한채 공연방식문제를 두고 갑론을박했다. 군대음악계에서 제노라 하는 유진수도 관람자들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고 공연흐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독창이나 중창, 독병창 같은 종목들을 적절히 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잘한다는 노릇이 오히려 방해를 놓는 격이 되였다. 그러나 탓하지 않고 방법론을 가르쳐주시였다.

군인들속에 울려퍼지는 군가의 위력을 느낄수 있게 록화자료도 보내주시였다. 비내리는 길가에서 만났던 한 군인과의 약속을 지켜 그들의 중대예술소조공연을 록화해오도록 하시였는데 당중앙위원회와 정무원책임일군들에게도 보여주시고 12월 24일공연을 준비하는 인민군협주단 창작가, 예술인들에게도 보내주시였던것이다.

공연은 어떤 호소나 웨침보다 더욱 강렬하게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의 심장을 틀어잡았다. 계획조절이요, 식량문제요 하면서 한숨을 짓던 일군들이 주저앉아서는 안될 자기들을 자각하며 생산현장으로 달려갔고 창작가, 예술인들은 당에서 요구하는 음악의 선도자적인 힘에 대해 새로이 인식하게 되였다.

김정일동지께서는 20여개의 곡목을 하나하나 선정해주시고 형상방도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드디여 둘러리격으로 치부되던 합창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숨겨졌던 기량들이 쏟아져나왔다. 이제껏 볼수 없었던 놀라운 안삼불이 이루어지며 폭발적인 성량이 훈련장을 뒤흔들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지금도 1995년 12월 24일에 진행된 첫 합창음악회에 대해 즐겨 회억하군 하신다.

12월 24일의 첫 합창음악회! 순수 합창만으로 곡목이 편성된 음악회는 우리 나라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공연방식이였다. 이미전에 우리 혁명앞에 쌓은 혁혁한 공로로 《공훈》칭호를 받았지만 아직은 자기 고유의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단은 바로 그날에야 위엄있는 자기의 모습을 당당히 자랑할수 있었다.

장내에 차넘치던 열광적인 환호, 멀기치는 뜨거운 열파, 감격에 눈물짓던 성악배우들과 연주가들…

무대에서는 김정일동지의 지도밑에 창작완성된 시대의 명곡들이 련이어 울려퍼졌다. 《사향가》, 《친애하는 그이는 우리와 함께》, 《초소에 수령님 오셨네》, 《밀림이 설레인다》, 《경례를 받으시라》, 《조선인민군가》

사실 20곡목의 노래를 한무대에서 합창으로 련속 부른다는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였다. 성악능력으로 계산하면 한계를 훨씬 초월하는 초강도공연이였다. 그러나 가수들은 신심에 넘쳐 노래를 불렀다.

현실은 준엄하고 어려웠지만 가수들이 부르는 우렁찬 군가에는 신심과 락관이 넘쳐있었다. 폭풍이 불어쳐도 언제나 당을 따라 전진하려는 의지가 비껴있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속에 차넘치는 무한한 격동을 느끼시였다. 탁자우에 올려놓은 깍지낀 두손에 힘을 주시며 나직이 합창을 따라부르시였다. 자신의 선창에 따라 온 나라가 합창대에서 노래부른다고 생각하시였다.

《오늘 공연을 잘했소. 처음으로 하는 합창음악회인데 그만하면 대단하오. 당에서 바란게 바로 이것이요.》

공연이 끝났을 때 그이께서 하신 말씀이였다. 격정을 누르지 못하신채 무대가까이로 나가시며 인민군지휘성원들에게 한명한명의 가수들을 소개하시였다.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을 창조할 때 자신과 함께 밤을 밝히던 오랜 배우들의 이름을 불러주시며 약동하는 기운으로 무대를 지키고있는데 대해 높이 평가하시였다.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에 오랜 배우들이 많은것은 좋은 일입니다. 오랜 배우들이 훈장을 주런이 달고 무대에 나서면 합창단의 위풍도 돋굴수 있고 인민군협주단이 력사가 있는 예술단체라는것을 보여주는데도 좋습니다. 나는 텔레비죤화면에서 그들이 합창을 하는것을 볼 때가 제일 기쁩니다. 나는 지금도 혁명가극 당의 참된 딸을 창조하던 때의 일을 잊지 않고있습니다.》

로배우들은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하며 그때의 창조본때대로 합창대를 지키겠다고 맹세다졌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공연을 만족하게 보았습니다.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이 세계적으로 제일입니다.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을 따를 합창단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이런 세계적인 합창단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영예입니다. 나는 오늘 동무들이 공연을 잘한데 대해 높이 평가하며 모든 동무들에게 감사를 줍니다.》

지금도 가끔 느끼는 감정이지만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연을 보지 못하신 아쉬움이 그날엔 더욱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런 날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였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을 제일 좋아하시였소. 군대성격에 제격이라고 하시면서 대외공연에도 늘 동무들을 불러주시였지. 동무들은 수령님의 신임과 사랑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돼.》

그이께서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인민군협주단이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해방된 서울에 나가 현지공연을 크게 하였는데 공연에서 남성합창이 은을 냈다고 감회깊이 회억하시였다.

《…공연을 본 서울의 수많은 예술인들이 우리 군가에 감동되여 의용군에 입대했소. 전략적이며 일시적인 후퇴가 시작되였지만 그들은 우리 예술인들과 함께 추호의 동요도 없이 수령님의 품을 찾아왔소.

고산진에서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연을 진행했지. 배우들도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고 객석의 관중들도 함께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소.

수령님께서는 공연을 보시고 인민군협주단 배우들이 악기를 무기로 삼고 영웅적이며 희생적인 예술활동을 벌리고있다고 하시면서 조선의 예술은 살아있다는 참으로 뜻깊은 교시를 주시였소. 수령님의 말씀은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례찬이며 아름다움의 승리에 대한 확신이였다고 할수 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이 지금 매우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여기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발전시키지 않으면 시대의 요구에 뒤떨어지게 되며 예술단체로서의 가치마저 잃을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오늘 우리 혁명이 처한 환경은 대단히 어렵소. 그러나 나는 두려워하지 않소. 공연에서 본것처럼 우리에게는 당과 운명을 같이할 결사의 각오를 가진 군대가 있고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이 있소. 그리고 혁명의 노래를 높이 부르며 승리와 영광의 자욱을 새겨온 전통이 있소. 우리가 가는 길은 정의의 길이고 진리의 길이요.》

요란한 박수소리, 눈굽에서 번들거리던 뜨거운 눈물, 최고사령관을 따라 끝까지 혁명의 길을 걷겠다고 맹세다지던 일군들과 창작가, 예술인들…

《오늘 공연은 단순한 예술공연이 아니라 조선혁명가들의 신념과 의지의 결정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누구나 이 공연을 보면 수령님의 한생이 어려있는 혁명의 붉은기를 끝까지 지키며 일을 잘하여야겠다는 결의를 굳게 다지게 될것이요.

나는 앞으로 동무들과 함께 조국앞에 드리운 난국을 헤쳐나가려고 합니다. 오직 혁명군가만이 오늘의 모자라는 식량을 대신할수 있고 고난을 겪는 인민을 불러일으킬수 있습니다. 혁명적무장력이 부르는 군가는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필승의 신심을 안겨주고 미래를 확신하게 해줄것입니다.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은 우리 혁명무력의 나팔수입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이어 오늘 남성합창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과 《결전의 길로》를 반주할 때에 현악기대신 손풍금을 쓰고 남성합창 《경례를 받으시라》와 《밀림이 설레인다》를 반주할 때에는 어은금을 썼는데 이것은 대담한 시도라고 치하하시였다. 하시면서 바이올린이나 실로폰, 하프 같은 양악기가 없이도 얼마든지 현대적인 관현악을 창조할수 있다는 신심을 가지게 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인민군협주단 남성합창은 혁명발전의 매 시기, 매 단계마다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남성합창으로 당과 수령을 받들고 원쑤들에게 무서운 철추를 내렸으며 우리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을 영웅적위훈에로 힘있게 불러일으켰소. 시대와 격변하는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남성합창을 발전시키자면 무엇보다 합창단을 잘 꾸려야 하오.》

김정일동지께서는 합창인원이 120명이면 좀 적은감이 나는데 필요한 성원들을 선발하여 150명으로 늘일데 대해서와 지휘자들의 수준을 결정적으로 높일데 대한 문제, 명곡이 있어야 명합창이 나온다는것을 명심하고 혁명적이며 전투적인 노래들을 많이 창작할데 대한 문제, 혁명군대의 성격에 맞는 주체적인 관현악을 창조할데 대한 문제와 소개자와 공연시간, 무대복의 견장과 령장을 붉은색으로 통일시킬데 대한 세부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세심히 가르치시며 남성합창을 발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그날 그이께서는 금시계를 배우들의 손목에 채워주시며 금처럼 변하지 말고 당을 받들어 혁명의 진군가를 높이 부를데 대해 부탁하시였다. 모두가 울었다. 당을 받드는 길에서 금처럼 변치 않을 철석의 맹세를 다지며 그이의 품에 안겨 흐느껴울었다.

조명록총정치국장도 령도자와 전사들간의 혈연의 뉴대에 감동되여 눈물을 지었다. 그런 위대한 화폭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전무후무한것이라고 하면서 여느때없이 예술영화의 주제가인 《나는 영원히 그대의 아들》을 부르기까지 했었다.

최고사령관동지, 저도 그 품에 뛰는 피 한방울입니다. 마지막 피 한방울 다할 때까지 최고사령관동지를 받들겠습니다. 락엽이 되여 떨어진대도 뿌리를 덮어주는 한줌의 흙이 되겠습니다.》

조명록의 고백은 결코 일시적인 흥분이 아니였다. 공훈합창단 성원들이 부른 노래가 곧 그의 심장의 웨침이였고 맹세였다.

다음날 김정일동지께서는 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 전체 성원들이 올린 충정의 편지를 받으시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안겨주신 믿음을 영원히 심장깊이 새기고 사상전선의 제1선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이 어려있는 혁명의 붉은기를 더 높이 추켜들고 수령님의 노래, 당의 노래로 당중앙위원회를 결사옹위하는 위력한 총포성이 되겠다는 합창단성원들의 열화같은 마음이 편지의 구절구절에 맥동쳐 있었다.

그이께서는 한자한자에 천만근의 무게를 담아 몸소 친필서한을 쓰시였다.

《공훈합창단 전체 동지들에게!

우리 당에 무한히 충실한 혁명군대의 영원한 동행자, 힘있는 나팔수가 되라!

1996. 1. 5 김정일

그것은 공훈합창단에 대한 당의 기대였고 믿음이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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