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8

 

만수대예술극장 현관앞마당에는 인민군지휘성원들과 함께 인민군협주단 창작지도일군들이 김정일동지를 영접하기 위해 서있었다.

인민군지휘성원들의 인사에 답례하시며 몇걸음 옮기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유진수앞에서 멈춰서시였다.

《주선률과 대위선률이 잘 조화되지 못한다지?》

얼굴이며 어깨가 둥실둥실한 유진수가 고개를 수굿하며 예술지상주의적인 작품을 보고드려 면목이 없다고 꺼져드는 소리로 반성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공훈합창단이 모든 노래를 독점하라는거야 군대노래만 주물지 말고 만수대에서 나왔건 보천보에서 나왔건 구애되지 말고 다 형상하라는건데 창작가가 너무 크게 넘겨짚은것 같구만. 하지만 보다 내용이 중요한거요. 다시말해서 형식의 대작이 아니라 내용의 대작이 되여야 하오. 창작가가 예술지상주의자라는 말을 들었으니 심장이 콩알만 해졌겠소.》

유진수가 광채어린 눈길로 그이를 우러렀다.

《부단장, 마음을 합쳐야 좋은 노래를 만들수 있소.》

《제가 똑바른 주견이 없이 일했습니다. 작품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없이 결론을 받는데만 급급하다보니…》

유진수의 곁에 서있던 전상근단장이 자책어린 소리로 말씀드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시였다.

《단장동무의 어깨에 큰 짐이 지워져있다는걸 명심하오. 공훈합창단 배우들은 겉만 군대가 되지 말고 속까지 다 군대가 되여야 하오.

최고사령부합창단답게 위풍에서나 전투력에서 일당백기상이 번쩍거려야 돼. 진짜 화약냄새가 나는 군가집단으로 만드는게 단장동무의 임무요.》

그이의 음성이 밤공기를 헤가르며 쩌렁 울렸다.

《알았습니다.》

전상근이 어깨를 쭈욱 펴며 화선출신의 지휘관답게 박력있는 목소리로 대답올렸다.

김정일동지께서는 어서 공연을 보자고 재촉하시며 극장홀로 걸음을 옮기시였다. 그이께서 관람석에 들어서시자 온 장내가 만세소리로 가득찼다.

그이께서는 곡목안내서를 펼치시며 조명록에게 오늘 공연을 엄정하게 평가해야겠다고 웃음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다부진 몸에 얼굴이 퉁투무레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젊은 남배우가 무대가운데에 나서며 조선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 전체 성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그이께 축원의 인사를 드리였다. 녀성배우를 소개자로 내세웠을 때보다 무대가 퍽 무게있어보였다. 확실히 합창단의 체모에는 남성배우를 소개자로 내세우는것이 어울렸다.

성악배우들이 훈련의 나날을 거쳐 다져온 합창곡목들을 련이어 울렸다. 몇달사이에 기량이 부쩍 올라간것이 눈에 띄게 알렸다.

연주가들도 신심에 넘쳐 관현악을 연주했다. 곡목이 바뀔 때마다 그이께서는 아낌없이 박수갈채를 보내주시였다.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의 관현악서주가 울렸다. 결전에 부르는 당의 목소리에 병사들은 일당백으로 준비되였다고 화답하는 뢰성같은 노래소리가 쩌렁 울렸다. 합창울림이 얼마나 드세찬지 온 지구가 통채로 흔들리는듯 했다.

김정일동지께서는 가슴이 후련해지시였다. 인민군공훈합창단의 호호탕탕한 기개가 노래를 통해 남김없이 시위되는것이 기쁘시였다.

가요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는 그이께서 공훈합창단의 지정곡으로 정해주신 합창곡목중의 하나였다. 조선인민군협주단창립 50돐을 기념하는 공훈합창단의 경축공연을 보시고 공훈합창단이 남성합창 《동지애의 노래》, 《장군님따라 싸우는 길에》,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 《수령님을 따라 천만리 당을 따라 천만리》,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와 함께 《전사의 념원》을 최상의 수준에서 형상하도록 가르치시였던것이다.

사실 김정일동지께서는 그날 공연을 보시면서 언제면 《동지애의 노래》나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의 노래가 나오겠는가를 몹시 기다리시였다. 그런데 그이께서 바라시는 노래들은 예비곡목에도 준비되여있지 않았다. 몹시 서운하시였다.

그래서 공연이 끝난 뒤에 공훈합창단이 수령님과 당의 령도밑에 조선혁명이 걸어온 자랑찬 력사를 직접적으로 형상한 노래를 완전히 독점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며 6곡의 합창곡목을 선정해주시였다.

그때부터 공훈합창단은 당에서 지정한 합창곡목을 완전히 독점하는 동시에 그 어느 노래이든지 그이께서 요청하시면 최상의 수준에서 형상할수 있도록 200곡돌파전투를 벌렸다.

사실 지휘자와 관현악단 그리고 합창가수들이 하나가 되여 임의의 노래를 완전무결하게 형상한다는것은 말처럼 수월한 일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들은 노래곡목마다에 번호를 새기며 번호에 따르는 지휘와 반주, 합창을 일치시키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였고 끝내 결실을 거두었다. 그것이 공훈합창단의 창조본때였고 투쟁기풍이였다. …

은은하면서도 서정적인 노래선률이 흐르기 시작했다. 과학탐구의 길에 청춘도 사랑도 고스란히 바쳐가는 주인공의 정신세계를 숭고한 인생관으로 승화시킨 예술영화 《열네번째 겨울》의 주제가였다.

몇달전에 철령을 넘으면서 일군들에게 왜 자신께서 이처럼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하시였는데 합창단에서 어느새 자신의 심중을 합창으로 형상한것이다. 녀성적인 노래였으나 남성합창으로 형상하니 장중한 울림에 받들려 노래가 새로운 의미로 안겨왔다.

 

    …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 길을 가고가리라

    …

 

김정일동지께서는 눈덮인 길을 홀로 걷고있는 녀주인공의 형상을 눈앞에 그려보시며 입속으로 나직이 노래를 따라 부르시였다.

어둠을 안고 태질하는 넓은 밀림과 눈덮인 밀림의 바다를 헤쳐가는 자신의 모습이 선률에 실려왔다. 멀리, 저 멀리 눈보라이는 광야너머에 미명의 하늘이 비껴있었다. 무겁게 드리운 어둠을 밀어내며 뜨거운 불덩이가 솟구치고있었다. 눈부신 빛줄기가 눈보라세찬 밀림의 바다에 닿고있었다. 겨울추위를 밀어내며 대지를 감싸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희망이였다. 오늘은 비록 기아에 허기지고 이루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아픔으로 남모르는 피눈물을 삼켜야 하지만 반드시 이 하늘아래, 이 땅우에 번영의 아침이 밝아오고야말것이라는 확신이고 열망이였다.

찬바람 몰아쳐도 가야 한다. 그 누가 몰라줘도 자신께서만은 가야 한다. 물러설 곳도 없고 구원을 청할데도 없다. 고난의 길이 세기를 넘어 계속될수 있고 천길막바지에 이를수도 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희망을 신념으로 간직한다면 기필코 새 아침을 맞이할것이다.

 

    …

    찬서리 눈속에 묻혀도 묻힌다 해도

    봄을 먼저 알리는 꽃이 되리라

    …

 

그이께서는 문득 심중으로 흐르는 또 하나의 선률을 의식하시였다. 조선혁명의 명맥이 영영 끊어지는가 아니면 다시 이어지는가 하는 생사기로에서 수령님께서 부르시였던 《반일전가》의 비장한 노래소리였다.

수령님께서 북만원정의 길에서 몸소 지으시고 부르신 《반일전가》의 선률에 엇섞여 천교령을 휩쓸던 눈보라의 포효성이 귀전에 간간이 미쳐온다. 조선혁명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안고 결연히 일어서시여 광란하는 눈보라길을 헤쳐오신 수령님이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지으신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노래구절도 언뜻 뇌리에 갈마드신다. 그러고보면 노래를 부르며 고난을 이겨내고 미래를 확신해온것이 만경대일가분들의 천품인듯 했다. 자신의 대에 나라를 찾지 못하면 아들대에 가서라도, 아들대에 못하면 손자대에 이르러서라도 꼭 뜻을 이루어야 한다는 김형직선생님의 강의한 애국의지와 지원의 높은 뜻이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노래구절에 심어져있다면 수령님께서 부르신 《반일전가》나 《적기가》에는 결사의 의지와 승리에 대한 신념이 차넘쳐있다. 한편의 가요가 천만자루의 총검을 대신한다는 진리를 만경대일가분들은 머나먼 혁명의 길에서 일찌기 체험했고 노래와 함께 어렵고 고난에 찬 길을 헤쳐오시였다.

뜻밖에도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뒤에 운명처럼 닥쳐들던 준엄한 난국이, 그 난국을 헤쳐나갈 방도를 찾아 몇십밤을 새던 나날들이 목메이게 생각히우신다.

왜 굳이 군가집단을 전렬에 내세웠던가? 무엇때문에 다름아닌 군대가 부르는 노래를 기치로 들게 되시였던가?…

생각해보면 자신께서는 세상만사를 다 음악으로 감수하고 음악으로 리해하신듯싶다.

추억은 멀리로 날아간다.

따스한 봄빛어린 해방산기슭에서 정찬 미소를 지으시며 빨찌산의 노래를 불러주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눈앞에 안겨오신다. 김정일동지께 발풍금소리를 들려주시며 음악에 대한 첫사랑을 가슴속깊이에 심어주신 어머님이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어머님과 함께 처음으로 설맞이모임을 준비하던 때였을것이다.

그날 어머님께서는 하나둘 모아두었던 갖가지의 장식물들을 여러가지 색갈로 물감을 들인 다음 그것을 실줄에 꿰이시였는데 어머님의 일손을 도우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그 모양이 하도 신통하여 가만히 만져보시였다.

《못쓰게 될라. 이제 장군님께서 들어오시면 씩씩하게 노래를 불러드리자꾸나. 어서 노래련습이나 하렴.》

어머님께서 먼저 혁명가요를 부르시였다. 만강의 연예공연무대에서 부르시였다는 《토벌가》였다.

《참으로 할일이 많구나. 우리 인민이 바라는 장군님에 대한 노래도 있어야지 또 인민에 대한 노래도 지어야지.… 이제 머지않아 보안간부훈련대대부에 협주단이 나오는데 그때엔 좋은 노래들이 많이 쏟아질게다. 흥하는 나라엔 노래도 많아야 한단다.》

1947년 2월 조선인민군협주단의 전신인 보안간부훈련대대부 협주단이 조직되자 누구보다 이 사업에 관심하신분도 어머님이시였다.

음악은 자신께 무엇이였던가?…

어머님을 잃으신 뒤에 그이께서는 더 자주 풍금을 마주하시였다. 어머님과 함께 부르던 노래들을 연주하시며 사무치는 그리움을 달래이시였다.

풍금소리는 어머님과 나누시는 그이의 마음속 대화였다. 어머님께서 배워주신 노래를 풍금으로 타시며 수령님을 더 잘 받들어 모셔야 할 자신의 숭고한 사명감을 자각하시였고 그래서 《만가지 소원을 헤아려보시며 조선이 고운 꿈 꽃피워주셨네》라는 노래도 지으시였다.

초고급중학교를 다니실 때에는 물론 김일성종합대학시절이나 그후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을 하실 때에도 그이께서는 음악을 친근한 길동무로 삼고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업을 보좌해드리시였다.

그이의 심혼에서 울린 선률은 혁명의 년대기들마다에 꺼지지 않는 력사의 메아리로 남았다.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에 백두에서 개척된 우리 혁명위업을 추호의 흔들림없이 수호하실 그이의 의지가 반영되였다면 룡남산언덕에서 읊으신 《조선아 너를 빛내리》의 시구는 주체위업의 승리에 대한 그이의 확신이였고 이를 위해 자신을 깡그리 바치실 맹세의 분출이였다.

음악은 전진하는 우리 대오에 있어서 정신이였고 힘이였다.

그런 음악이, 우리 혁명의 승리적전진과 뗄래야 뗄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음악이 오늘날에는 힘찬 군가로 인민의 심장에 불을 달고있는것이다.…

이윽고 공연이 끝났다.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청껏 환호를 올리는 배우들을 향해 손을 저으시다가 번쩍 쳐드시였다.

《대단합니다. 정신이 번쩍 듭니다. 말그대로 방사포일제사격이요!》

전상근과 유진수를 향해 눈길을 주시며 엄지손가락을 펴보이시였다.

《좋은 공연을 보여주어 감사하오. 사실 무대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나올가봐 걱정했는데 성량도 풍부하고 안삼불도 잘 맞추었소. 공훈합창단의 노래는 곧 당의 사상이고 신념이며 그 모든것을 대변하는 혁명교향곡이요. 위용도 기개도 백두산을 닮았소.》

그이께서는 목청껏 환호를 올리는 배우들에게 거듭 답례하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공연무대에 오른 노래들을 한곡목씩 실례드시며 《결전의 길로》와 같은 전시가요들은 전화의 언덕에 오른 전사의 맹세를 상기시킨다면 《승리의 열병식》은 통일의 열병광장을 향해 어서 달려가자고 호소하는것 같다고 말씀하시였다. 《동지애의 노래》를 부른 김중영을 가리키시며 자신께서 공훈합창단에 보내준 가수인데 선창을 아주 잘했다고 평가하시였다.

《원래 동지애의 노래장군님따라 싸우는 길에, 수령이시여 명령만 내리시라, 수령님을 따라 천만리 당을 따라 천만리, 영윈히 한길을 기리라와 같은 노래는 주제사상이 심오하고 선률이 장중하기때문에 공훈합창단과 같은 관록있는 합창단이 아니고서는 노래상을 제대로 살릴수 없소. 이런 노래들의 상을 완전히 살리자면 남성합창으로 폭이 있고 웅장하게 형상하여야 하며 선률을 웅심깊게 뽑아주어야 하오. 오늘 공연을 잘했소.》

김정일동지께서는 앞으로 이런 판정검열을 많이 조직하겠다고 웃음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은 당에서 왜 오늘처럼 어렵고 힘든 때에 공훈합창단을 중시하는가를 잘 알아야 하오. 당에서 동무들의 자그마한 생활문제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관심하는건 그만큼 동무들이 하는 일이 중요하기때문이요. 지금 로씨야에서는 이전 쏘련의 자랑이였던 군대협주단이 심한 경영난과 인재부족으로 자기의 노래소리를 크게 높이지 못한다고 하오. 이름난 연주가들도 다른 나라 예술단체들에 팔려가고있소.

하지만 우리는 나라형편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공훈합창단을 혁명의 전렬에 내세우고 군가소리를 높이고있소. 동무들은 이에 대해 응당한 자부심을 가져야 하오.》

《최고사령관동지, 목숨을 다 바쳐 우리 당의 노래진지를 지키겠습니다.》

전상근이 결패있는 어조로 말씀올렸다.

그이께서는 합창조곡을 창작한 젊은 작곡가가 왔는가고 물으시였다.

《오지 못했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나설 면목이 없다고 스스로 반성하고있습니다.》

《젊은 창작가들을 잘 이끌어주어야 하오. 지휘관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지워져있소.》

유진수는 무엇인가 가책되는바가 있는지 눈길을 떨구었다. 그러나 이내 자기를 다잡으며 명쾌한 목소리로 최고사령관동지의 기대에 보답하겠다고 맹세다졌다.

《믿겠소. 참, 듣자니 음악가동맹 명예부위원장이 부단장동무의 사돈이라면서?》

유진수가 어줍은 미소를 그리며 그렇다고 말씀드렸다.

《음악리론에선 한다하는 권위자요. 유진수동무야 현대음악에 민요풍을 살려서 자기의 독특한 선률을 창조한 작곡가인데 그 동무와 음악언어가 통할게요.》

그이의 정에 겨운 말씀에 유진수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그리고 창작가들이 안온한 창작실에만 있지 말고 현실에 나가 시대적감정을 체험해야 하오. 전선에 나가 화선의 포연내와 병사들의 땀내를 맡으면 대작주의경향도 자연히 없어지리라 보오. 혁명의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니기때문에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눈이 내리면 외투를 입고 편안하게 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오. 군대음악가는 결함을 고치는데서도 군인다워야 하오.》

그이께서는 무엇인가 창작가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조언을 더 주고싶으시였다. 자신께서 느끼고 안고계시는 음악에 대한 리해를 함께 도모하고싶으시였다.

《나는 이전에 과학자들에게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사회주의조국이 있다고 말해준적이 있소. 오늘 동무들에게는 노래선률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 노래를 창작하는 작곡가들에게는 조국이 있다.라고 말하고싶구만. 다시말해서 작곡가는 자기 조국, 자기 민족을 끝없이 사랑하고 귀중히 여길줄 알아야 하며 그러한 심장으로 시대정신이 맥박치고 우리 인민의 감정과 정서에 맞는 훌륭한 민족적인 선률을 찾아야 하오.》

장군님, 알았습니다.》

유진수가 두주먹을 꼭 그러쥐며 힘차게 대답올렸다.

《배우들이 계속 만세만 부르는데 성대가 못쓰게 될가봐 걱정이요. 늘 말하지만 성악배우들에게 있어서 성대는 무기나 같소. 무리하지 않게 관심을 돌려야 하오. 자, 그만합시다. 앞으로의 성과를 바라오.》

김정일동지께서는 목청껏 환호를 올리는 배우들을 향해 다시한번 답례를 보내시며 활달한 걸음새로 관람석을 나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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