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9

 

음악가동맹은 시내중심에 현대식건물로 덩지 크게 들어앉은 윤이상음악당의 중간층에 자리잡고있었다. 맞은켠에는 김책공업종합대학이 듬직하게 앉아있었고 고층아빠트사이로는 평양역사의 큰 시계가 내다보였다.

이 나라의 유구한 력사를 음미하듯 무게있는 시계종소리가 번마다 한규일의 귀에 새롭게 들렸는데 그는 평양역사의 종소리에 맞추어 일과를 재촉하군 했다.

한규일은 책상을 거두고나서 어느 왕년엔가 유럽순회공연때에 사온 중절모를 쓰고 거울앞에 마주섰다. 제자인 국립교향악단 단장이 그가 요구하던 옛 수난기의 노래자료가 있다는 련락을 보내왔기에 일찍 퇴근하기로 했던것이다.

물론 노래자료도 반가왔지만 보다는 이번 기회에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를 감상하고싶었다. 김정일동지께서 쇼스따꼬비츠의 교향곡을 연주할데 대한 과업을 국립교향악단에 주시였다는 소식을 들은 뒤부터 그들을 몹시 부러워한 규일이였다. 바로 그자신이 한때 악단의 제1바이올린수로 활약했던 관계로 국립교향악단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관심할수가 없었다.

마침 그쪽으로 가는 뻐스편이 있어 규일은 쉬이 국립교향악단에 당도할수 있었다.

국립교향악단이 들어있는 모란봉극장은 건물부터가 교향악처럼 웅장하고 철학적인 음악성을 띠고있어 어딘가 위압감을 주었다. 주위를 둘러싼 갖가지 수종의 나무들과 그 숲속에 고인 무게있는 정숙은 교향악단건물과 잘 조화되였다.

조국이 해방된 이듬해에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어머님의 따뜻하고 세심한 보살피심속에 고고성을 울린 뒤로 세계적인 교향악단의 명성을 떨치며 이날 이때껏 발전해왔다는것이 교향악단 연주가들이 안고있는 긍지였다.

오래간만에 운치좋은 모란봉기슭에 자리잡은 극장에 들어선 한규일은 감회가 새로왔다. 단장이 마침 기다리고있어 인차 만날수 있었다.

단장에게서 자료를 넘겨받은 한규일은 방해되지 않는다면 교향악연주에 참가하고싶다고 청했다. 규일의 바이올린연주솜씨를 잘 알고있는 단장은 쾌히 응했다.

마침 훈련장에서는 관현악 《문경고개》의 연주가 한창이였다. 비록 고난의 행군을 겪지만 바로 자기들이 있어 주체교향악의 전통이 굳건하다고 생각하는 연주가들은 자신심에 넘쳐 관현악을 연주했다.

지휘자와 수인사를 나눈 규일은 팔순에 가까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민첩한 동작으로 바이올린을 잡았다. 활에 묻어나오는 소리는 그에게 황홀한 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역시 나이는 속일수가 없어 오래동안 연주를 하기 힘들었다.

저녁무렵이 되여서야 한규일은 악단성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극장을 떠났다. 즐거운 하루였다.

음악계의 로장파로 인정되는 그는 이즈음에 와서 력사에 묻힌 민족수난기의 음악을 종합하는것을 인생말년의 과제로 내세우고있었다. 그래서 이미 작고한 창작가들의 가족을 찾아다니기도 하고 옛 친지들의 도움도 받았는데 그만하면 소득이 괜찮았다. 게다가 오늘은 오랜만에 활을 잡고 마음껏 감미로운 음악세계에 잠겨보았다.

하면서도 그는 민족수난기의 음악문제를 사돈인 유진수와 토의하지 못한것이 저윽 불만스러웠다. 몇번이나 전화를 하려다가 무엇때문인지 자꾸 주저하게 되는것이다.

공훈합창단의 공연소식을 들을 때마다 과연 왜정시기의 노래를 들추는것이 옳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되고 사돈의 리해를 종시 바랄것 같지 못한 힘에 부친 생각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지난해 창립일을 맞는 인민군예술학원에 초청되였다가 어떤 심각한 문제로 하여 유진수와 부딪쳤던 그로서는 더구나 결심하기 어려웠다.

그날 한규일은 인민군예술학원 학생들앞에서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음악령도와 관련한 강의를 하였다.

김정일동지께서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15차전원회의가 있은 후 방송음악부문을 령도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업을 보좌해드린것을 내용으로 하는 강의였다.

그런데 이튿날 인민군협주단 유진수부단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군단예술선전대 성악지도원인 손녀와 유진수의 아들사이에 한창 혼사말이 오갈 때인지라 규일은 그의 전화를 반갑게 받았다.

《선생님, 제기된것이 있어서 전화합니다.》

목소리가 좀 시위적이여서 규일은 긴장해졌다.

《어제 인민군예술학원에 나가 초빙강의를 하셨더군요. 반영이 좋습니다. 헌데… 선생님의 강의에 의견이 좀 있습니다.》

한규일은 무엇때문인가고 조심스레 물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음악령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선생님도 기억하겠지만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는 강의에서 취급한 시기보다 썩 이전인 1956년에 위대한 장군님의 지도를 받아 창작완성된 노래입니다. 그러니 장군님의 음악부문에 대한 령도를 이 시기로 보는것이 정당하지 않겠습니까?》

한규일은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바로 그자신이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진행한 음악무용종합공연에서 《김일성원수께 드리는 노래》와 처음으로 접한 음악가였던것이다. 종파분자들이 아무리 횡설수설했어도 웅건한 선률에는 수령만을 믿고 수령의 노래를 부르며 승리를 떨쳐가는 전인민적인 감정이 격랑을 이루며 흘러넘쳤다.

한규일은 후날에야 그 노래가 당시 고급중학교에 다니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지도를 받아 명곡이 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원종서나 박한규의 창작품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군님의 음악부문에 대한 령도를 썩 이후시기로 보았으니 음악가로서 너무도 무성의한 태도였다. 깊은 연구가 없이 옛 서적의 글줄을 맹목적으로 따른 결과였다.

한규일은 그달음으로 유진수를 만나 사죄하였다. 그때 느낀것이 인민군대창작가들에 비한 자기의 렬세감이였고 뒤전에 섰다는 자격지심이였다.

(하지만 그 사람이라고 우리의 음악사에 공백이 생기는것을 바라겠는가. …)

로년에 이르면 추억이 많아진다고 한다. 아마 미래에 대한 공상과 흘러간 생활에 대한 추억으로 이어지는것이 인생일수도 있었다.

불현듯 아득히 흘러가버린 옛추억이 되살아나며 마음을 어둡게 했다. 구슬픈 음영을 눈밑에 드리운 얼굴빛이 해쓱한 소녀가 눈앞에서 얼른거렸다.

《궁중아악대란 말 들어봤어? 우리 할아버지랑 아버지랑은 대대로 경복궁에서 궁중악사로 있으면서 아악을 연주했대. 할아버진 세상을 떠나면서 아버지에게 향악보를 넘겨주었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민속음악에 대한 책이라는데 왜놈들은 아버지에게서 그 책을 뺏아갔어.》

소녀의 눈가에 자르르 맺히던 눈물방울, 애된 목소리

《첨엔 아버지에게 향악보를 내놓으라고 강다짐하다가 다음엔 일본에 가서 민속음악을 함께 연구하자고 꼬드겼다는거야. 그래도 내놓지 않으니깐 한번만 구경하자고 했대. 그래서 뒤울에 감추었던 책을 꺼냈는데 그날 밤 집에 도적이 들었지 뭐. 향악보를 훔쳐갔던거야. 왜놈들이 한짓이였어. 아버진 그 일때문에 울화병에 걸려 인차 세상을 떠났어.》

산전막을 들부시듯 세괃게 불어치던 만주의 눈보라, 애처롭게 울던 문풍지, 할끔해진 얼굴로 또그르르 구울러내리던 눈물방울…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이 규일이로 하여금 수난기의 노래를 수집정리하도록 든장질했다. 향악보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시기에 창작된 노래는 분명히 우리 민족의 음악유산이였다. 하지만 그 시기의 노래들이 점점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희미해지는것이 가슴아팠고 하여 규일은 그것을 정리하여 후세에 전하는것을 자기의 인생과제로 정하게 되였다.

극장앞의 높은 계단을 내리는데 마침 평양역방향으로 가는 무궤도전차정류소에 전차 한대가 멎어서는것이 보였다. 그러나 그가 미처 가닿기 전에 떠날것은 뻔했다.

평양에 올라온 손녀가 집에 올것 같으니 빨리 퇴근해달라던 로친의 당부가 생각났다. 뒤따르는 무궤도전차를 기다릴가 망설이다가 잠간 떠오른 옛추억을 벗삼아 내처 걷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집에 들린 손녀는 기다려줄것이고 로친은 몇마디 푸념을 하다가 그만두겠지만 감미로운 추억만은 소중히 여기고싶었다.

인파가 끓는 유보도를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전거리를 지나 평양학생소년궁전앞을 지나던 그는 어떤 충동을 안으며 화려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만수대예술극장쪽으로 걸음을 돌렸다. 가요 《눈이 내린다》의 사상정서를 무용수들의 형상으로 반영한 분수공원의 녀성조각군상앞에 멈춰섰다. 마치 구름속에서 춤을 추는듯 한 녀성무용수들의 우아한 률동은 다양한 형태의 분수들과 조화를 이루며 저물녘 공원의 풍치를 돋구었다.

1970년 새해경축공연무대에서 울렸던 《충성의 노래》의 선률이 귀전에 확 살아났다.

 

    장백의 험한 산발 눈보라 헤치시고

    혁명의 수만리길 걸어오셨네

    내 조국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

    인민들은 일편단심 충성을 맹세하네

    …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그 시기의 규일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직은 뵈온적이 없는 그러나 전설처럼 파다하게 퍼지여 이 나라 산골마을의 아이들도 환희에 넘쳐 우러르는 우리 혁명의 유일한 후계자분의 영상을 음악으로 먼저 감수한 사람이였다.

전문가적인 냄새가 나는 서유럽풍의 교향곡을 연주하여야만 인정받던 때묻은 음악분야의 사대를 말끔히 일소하고 인민을 위한 음악의 새 시대를 열어주신분에 대한 끝없는 흠모가 활화산처럼 심장을 태웠다.

김정일동지의 천재적인 지도를 받으며 첫 녀성기악중주단이 태여나 주체가 서고 민족성이 강한 남성중창조가 자기의 탄생을 세상에 소리높이 알리는것을 목격하면서 규일은 감동을 금치 못했다.

노래로 숨쉬는 인민을 키우신 장군님의 정치는 그대로 정서였고 선률이였다.

그무렵 만수대예술단 예술창조사업에 동원되였던 규일은 처음으로 젊음에 넘치신 그이의 지도를 받는 인생의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위대하다는 말 한마디로는 표현하기 힘들다. 론리정연하고 감성이 풍부하실뿐더러 헤아리는 마음은 바다보다 넓다. 음악의 신비로 가득찬 그이의 세계에 우리모두는 반했다.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흠모와 열정으로 가득찬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말씀을 들을 때면 음악가로 다시 태여나는 기분이다. …》

그 시절 한규일이 적은 일기의 한 토막이다. 가끔 들여다보며 추억하게 되는 어제날은 그에게 행복에 대한 상념을 날라온다.

녀성기악중주단과 관현악단의 형상창조를 지도하시던 김정일동지께서는 새벽녘이면 예술인들이 연주활동을 벌리던 훈련장에서 그대로 쪽잠에 드시는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연주가들과 배우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내여드리군 했다. 그이의 불같은 열정과 천재적예지를 따르지 못하는것이 속상하여 다른 방에 모여앉아 자기비판을 했다. 녀성연주가들은 울었다.

그날 새벽에도 예술인들은 김정일동지의 쪽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약속이나 한듯이 조심히 일어났다.

《가만,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서 깊이 잠드실수 있게 기악곡을 하나 연주해드리지 않겠소?》

규일은 뒤따르는 첼로연주가의 손목을 잡으며 귀속말로 속삭였다.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덧이가 인상적인 젊은 연주가는 자기도 같은 생각이지만 질정하기 어려워 도움을 바란다는 낯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곡을 연주해드릴가요?》

《슈만의 이 어떨지…》

연주가가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윽하여 연주가 시작되였다.

정서적인 선률속에 비껴드는 꿈의 세계는 동쪽하늘가에 그려지는 새날의 미소와 어울려 황홀하게 안겨왔다.

문득 의자소리가 났다.

《슈만의 도 좋지만 조선의 꿈에 대한 노래가 더 좋을것 같구만.》

김정일동지의 우렁우렁하신 음성이였다.

첼로소리가 뚝 끊기였다.

《이 새벽에도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행복의 요람에 재우시고 인민을 위한 헌신의 길을 떠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인민을 위해 밤을 새우실 때 우리 인민은 단잠을 자고있습니다. 이런 밤들이 모여 아름다운 미래를 약속하는 조선의 꿈이 이루어집니다. 수령님께서 지새우시는 밤을 노래합시다.》

수령님께서 지새우시는 밤, 조선의 꿈 그리고 김정일동지께서 지켜주시는 인민의 행복!… 규일은 신음에 가까운 탄성을 질렀다.

후날 규일은 《수령님 밤이 퍽 깊었습니다》의 명곡이 태여났을 때 그날에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상기하였다.

조선의 꿈을 위해 자신을 바치시는분이 김정일동지이시였다. 조선의 노래를 창조하고 그 선률처럼 아름답고 슬기로운 인민을 내세우시려는것이 그이의 꿈이였다.

(우리 민족이 남긴 음악유산을 후세에 전하고 떳떳이 자랑하는것도 우리 장군님께서 안고계시는 꿈이 아니겠는가.)

규일은 흥분했다. 마음을 다잡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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