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2 장

19

 

강치명에게는 류다른 추억이 있었다. 그것은 사단지휘부에서 생활하다싶이 한 그의 군사복무경력이 아니라면 가질수 없었던것이라고 오늘도 생각한다.

참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 추억을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사단장무전수로서 그가 수신한 전보문에는 많은 경우 《극비, 사단장에게 한함》이라는 요구가 담겨있군 하였으며 비밀엄수를 준칙으로 삼았던것이다.

1952년 봄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 사단장이 갱도침실로 가도 무전수만은 자리를 뜨지 못하는 경우가 드문하였다. 그밤은 이상할만큼 고요했다. 감시소출구가 닳도록 드나들던 지휘관들이 거의나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적정에 대한 정찰보고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지 사단장은 물주리에 담배를 쉬임없이 갈아대며 감시소안을 불안하게 오갔다.

강치명은 레씨버를 낀채 앉아서 지휘관의 전에 없는 거동을 묵묵히 주시하고있었다. 감시소안에는 두사람만 있었다. 오늘은 련락병도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지나치게 계속되는 긴장으로 지친 그가 눈을 감고 절반은 졸고있는데 출구쪽에서 고지의 밤바람이 밀려들어왔다. 사단장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강치명도 눈을 떴다. 싸움마당에서는 별일이 다 있을수 있다는것을 잘 아는 그였지만 아직까지 보지 못한 광경앞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단 정찰중대장이 비도 오지 않는데 군용비옷을 뒤집어씌운 사람을 앞세우고 들어선것이다. 첫눈에 《혀》가 아니라는것이 알렸다. 방수비옷의 고깔속에 얼굴을 감춘 사람의 입에서 녀성의 목소리가 울리자 강치명은 더욱 놀랐다.

《미안하지만 지금 이 시각부터 나를 이 장소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지 말아주십시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무전문을 발송해주기를 바랍니다. 칠보산 앞. 항로미실로 불시입항함. 흰돛!, 이상입니다.》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억양이 우리 말 같지 않은 녀자의 무례한 일방적인 요구앞에서 강치명은 모가 선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무전수, 칠보산을 찾소. 송신내용을 들었지?》

사단장은 얼굴조차 내보이지 않는 녀자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지시했다. 강치명은 즉시 명령한 주파수를 찾아 송신하였다. 시간은 10분정도 걸렸다.

군용비옷을 입은 녀자는 통나무의자에 앉아있었다. 정찰중대장이 감시소입구에 보초병처럼 서있다가 사단장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것 보오, 동무. 여긴 감시소요. 전투지휘를 하는 곳이란 말이요. 얼마나 분주한덴지 동문 모를거요. 내 침실을 내줄테니 거기 가서 차후지시를 기다리는게 좋지 않소?》

군용고깔이 머리를 흔들었다.

《무전수가 있는 곳에 장막을 쳐주면 됩니다. 여기에 있는 세사람외에 누구도 저를 알아서는 안되니까요.》

《허- 우리 정찰중대장이 그럴듯하게 분장을 해줄텐데.》

녀자의 손이 고깔에 가는것이 보였다. 잠시 멎어서 만지작거리더니 천천히 벗기였다. 곁에서 폭탄이 터져도 꿈쩍 안하는 사단장도 순간 놀라는듯 했다. 강치명도 입을 딱 벌렸다.

머리카락이 땀으로 헝클어진 속에 드러난 적군장교복을 입은 녀자의 얼굴은 아름답기보다 너무도 애티가 났기때문이였다. 스무살이나 겨우 넘겼을가?… 저 어린 처녀가 전선을 단신으로 돌파했단 말인가?

《저의 군사칭호는 대위입니다. 그저 그렇게 불러주십시오.》

이렇게 되여 처녀대위는 강치명과 함께 장막을 친 감시소구석에서 이틀을 함께 지냈다. 대신 강치명은 사단장의 무전수라는 체면에도 불구하고 처녀대위에게 식사까지 날라다주어야 했다.

사단장감시소에 거주한 불청객 처녀대위는 이튿날 강치명에게 물었다.

《내 타전체를 듣고 기억할수 있겠어요?》

사람을 은근히 깔보는것 같아 슬며시 화가 나서 한번 해보겠다고 대답해버리고말았다. 그러자 처녀대위가 왼손으로 타전을 시작하는데 속도가 놀랄 정도로 빨랐으나 특징이 없는 타전체였다.

자신없지요?

《한번만 반복해보십시오.》

처녀대위는 전건을 재빨리 두드리고나서 눈을 약간 치켜뜨며 바라는게 얕보는듯 한 기색이 알렸다.

《전보문가운데서 부호사이가 한번 짧아졌고 송신 끝할 때 전건에 힘을 주는게 알리는데요.》

《그래요? 놀랍군요. 두번째만에 내 타전체를 알아맞혔단 말이예요.》

그쯤이야 뭘, 하는 말을 하려다 강치명은 피식 웃었다. 이 일이 있은 후로 두사람은 가까와졌다. 비록 군인이지만 적후라는 환경은 상상도 못해본 강치명에게 처녀대위는 천진란만한 소녀처럼 그 어떤 이야기를 속삭였는데 어느 하나도 듣고서는 리해하기 어려운것이였다.

저녁노을이 전나무가지에 내려앉아 빨간 가시꽃을 피우고 어둠이 소리없이 다가들무렵이면 아득히 먼곳에서 울려오던 종소리, 복음의 구절을 마음속으로 외우며 움직이는 신자들의 모습, 그리스도가 최후에 남긴 피방울인듯 초불은 눈물을 흘리고 무릎을 꿇고 앉은 처녀의 머리우엔 거룩한 손길이 보살피고있었다.

사랑하는 나의 딸아, 네가 갈길은 네가 알거니 부디 방황하지 말거라. 이 땅은 사탄의 무리들이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는 곳으로 되였으니 나의 어린 양아, 너는 길을 잃지 말고 에덴으로 가거라…

《어때요? 내가 보이지요?》

무선대에 두손을 포개고 그우에 턱을 고인 처녀가 물었다.

《보이기는커녕 난 가려듣지도 못하겠습니다.》

《하긴 그래요. 난 말이예요. 놀라겠지만 굉장한 부자집 자손이였어요. 아버지는 독실한 교인이였구요. 그런데 내가 지금 어데 와있는가요? 이렇게 거기와 함께 교회당의 풍금소리가 아니라 전파의 노래를 듣고있어요. 재미있지요?》

강치명은 들을수록 놀라움만 자아내는 처녀에게서 이상야릇한 감정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수 없었다.

《만일 부득이한 정황에서 동무를 호출하면 나를 알아보겠지요?》

《하지만 규률위반이지요.》

《그래서 긴급정황이라고 한거예요.》

《사단장동지는 알고있어야 합니다.》

《좋아요. 내가 제기하겠어요. 난 동무를 믿고싶군요. 하긴 나 역시 믿음이면 다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은 필요없지요.》

처녀대위와 상면하기 위해 《칠보산》이라는 대호를 가진 사복차림의 일군이 나타났다. 2박3일간의 체류라고 해야 할 감시소에 대한 《방문》을 마친 처녀대위는 다음날 이른새벽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물론 작별인사도 나눌수 없었다. 그렇다고 사단장조차 례절이 없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강치명이야 말해서 뭘 하겠는가.

강치명은 그때부터 처녀대위가 송신해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다. 그 처녀가 말한 긴급정황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그의 타전체를 수신할 기회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기지 않는듯싶었다.

그러던 어느날 깊은 밤 생소한 주파수대역에서 호출신호가 다급히 울렸다. 송신자는 기다리고 기다린 처녀대위가 틀림없었다. 그의 타전체를 정확히 기억하고있었던것이다.

칠보산> 앞. 귀항중 좌초당함. 조난신호를 보내지 않겠다. 임무를 완료함. 흰돛>!…》

그것은 전승의 축포가 오르기 불과 한달전에 있은 일이다. 사단지휘부에 다시 나타난 《칠보산》은 강치명이 수신하게 된 사유를 듣고나서 침통한 얼굴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영원히 돌아올수 없는 적후전사, 그의 나이는 스물세살이였다. 그러나 공화국의 품에 안겨산것은 겨우 몇해밖에 안되였다. 그는 공화국이 창건된 직후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며 자기가 가려는 인생길을 찾아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들어왔던것이다. 그때의 나이가 18살이였다.

《칠보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처녀정찰군관에 대해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적후로 떠나갔소. 그러니 우리와 함께 지낸건 2년도 채 안되오. 하지만 영생이란 무엇인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주었소. 그에게 며칠전에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였소. 아마도 그는 자기가 조국을 위해 어떤 영웅적위훈을 세웠는지 다는 모를거요. 참되게 사는 사람들이란 그런거요.》

강치명은 전화의 나날 수없이 목격하고 체험한 많은 사실들중에서 잊을수 없는 추억이 자기의 마음속에서 돌이켜지는 리유를 알수 없었다. 잠재의식은 어떤 동질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사유는 정확히 동작을 하지 않는듯 했다. 너무도 짧았지만 영영 지울수 없는 인상을 남긴 처녀정찰군관의 모습만이 의식의 광야로 훨훨 날아예는것이다.

《믿음이면 다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은 필요없지요.》 하고 손저어주며 웨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강치명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사이에 가지게 되는 정신적의지가 아니겠는가. 우정도 믿음, 사랑도 믿음, 동지라는 부름도 믿음에서 시작되는 사람들의 뉴대가 아니란 말인가.

순간 그의 의식속으로 찾아드는 사람은 남계수였다. 어째서인지 강치명에게는 이것이 이상야릇하게 느껴졌다. 그제서야 그는 처녀정찰군관에 대한 자기의 잊을수 없는 추억이 남계수로 하여 찾아들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일요일이였다. 도서관에 갔다오던 동소옥은 길가에서 신유정을 만났다. 그동안 큰어머니집으로 걸음이 떠진것으로 하여 미안스러운 인사를 하며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눈기슭에 전보다는 주름이 많아진것이 마음을 이상할만큼 쓸쓸하게 했다. 마음고생이 사람을 늙게 만드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약속이나 한듯 말없이 공원의 소로길에 들어선 그들은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 숲의 향기는 청신하였다. 자연은 계절의 특징을 뚜렷이 알리였다. 우거진 신록속에서 숲의 가수들인 새들이 우짖고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그칠새없이 들려왔다. 키높이 자란 활엽수들이 한여름의 폭양을 막아주고 누기진 땅에서는 장미와 금은화가 덩굴을 이루고 꽃을 피웠다. 그속에서 나리꽃이 수집게 웃는 모양도 보인다.

공원에 꾸려놓은 유희장에서는 어린이들이 그네도 타고 회전대에 올라서서 구김없는 웃음발을 날리며 노래를 불렀다. 약동하는 인간들의 행복과 대자연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신유정은 소곳이 따라걷는 동소옥의 옆모습을 눈빗질하며 소리없이 한숨을 내그었다. 처녀의 얼굴이 한결 또렷하게 보이지만 굴곡을 이룬 선들은 수척해진것을 느끼게 하는것이였다. 시름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만 딸이나 다름없는 이 처녀가 안고있는 수심은 무심히 스쳐보낼수 없는 신유정이다.

《소옥아, 말 좀 하렴. 네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지도 오랜것처럼 생각되는구나.》

동소옥은 바늘에 찔린것처럼 놀라며 눈길을 쳐들다 피해버렸다. 자기를 두고 걱정하는 큰어머니의 심정이 마쳐오자 짜릿한 감정이 북받쳤던것이다. 무슨 말이든 해서 위로해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할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너 요즘 무슨 생각을 깊이하는것 같구나.》

《큰어머니도 참, 저한테 생각할거나 있나요. 그저 일하고 저녁이 오면 공장대학에 가는것밖에 없는걸요.》

《수심이 보이는데두?》

처녀는 자기 손에 들린 과학기술잡지 《금속》의 표지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내 얼굴에 그늘이라도 졌을가, 속이 상하는 사람은 큰어머니지 나같은 처녀한텐 근심이랄것도 없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는데 다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 누구를 사랑하지?》

《어마나!…》

소스라치듯 놀란 동소옥은 신유정의 눈길을 피하지 못한채 더듬거려댔다.

《그런것 같은데… 아니였어요.》

신유정이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두드려주자 동소옥은 고개를 수그렸다.

《원, 소옥이답지 않구나.》

진정으로 울리는 그 목소리를 외면하기 어려운듯 처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저… 사랑이란 뭔가를 알았을 때 그 사랑이 구름처럼 사라져버리는 경우도 있는가요?》

흘려놓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처구니없는 소리같아 당황해졌다. 뱉고나니 눈물이 솟아나는것을 겨우 참았다.

한숨섞인 웃음을 지으며 신유정은 처녀의 어깨를 꼭 껴안은채 걸음을 옮겼다.

사랑이란 청춘시절에 가지게 되는 아름다운 감성이다, 무지개같은 그 사랑에는 이룰수 없는것도 있다, 사랑은 리상이여야지 공상으로 되여서는 안된다고 말한 신유정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만나는 봤겠지?》

《그렇다고 봐야 하겠지요. … 매일…》

신유정은 유감어린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한공장에 있는 사람이구나.》

《예. …》

동소옥은 이상야릇한 웃음까지 지었다. 큰어머니한테 무엇을 숨기랴 하는 심정에 휩싸이자 용기가 생겼던것이다.

《헌데 구름같이 사라졌다는게 이상하지 않니?》

《큰어머니도 참, 그 사람은 갔어요. …장가를!》

동소옥은 이젠 어린애처럼 발까지 구르며 말하고나서 제 모양이 우스워 두손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았다.

신유정의 낯색은 한층 무거워났다. 외로운 사랑에 시달리는 처녀의 마음속을 보았던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동소옥이같은 성격에는 그런 사랑을 추구할수도 있다는것을 감수하며 낮으나 엄해진 소리로 못박듯 말했다.

《잊어야 해. 그래야 한다.》

《옳아요. … 잊어버렸는데도 계속 느끼게 되는건 왜 그럴가요?》

신유정은 동소옥의 손을 꼭 잡으며 나직이 말했다.

《너에겐 한가지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감성과 인식이 존재하는것 같구나. 공부를 하는데서는 좋지만 생활에서는 외곬으로 흐르기 쉬우니 자신을 다잡아야 해. 우린 다같이 녀자다. 녀자는 단 한번의 실수로 돌이킬수 없는 실패를 맞이할수 있다는걸 항상 명심해야 해. 제때에 단념할줄 아는것도 중요하다. 내 큰어머니로서 말하는데 지금 같은 땐 일에 묻혀서 사는것이 좋다는거다. 과학과 기술탐구에 열정과 심혼을 바치면 사생활에서의 번민 같은건 극복되기마련이다. 바로 이것이 정신적인 진정제라는것을 명심하거라.》

신유정은 같은 공장의 젊은이라는것을 알고도 누구인가는 묻지 않았다. 그는 딸이나 같은 처녀가 자기를 이겨내기 어려운 기로에 서있다는것을 알았으며 각별히 관심을 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걱정마세요. 명심할테니. 오히려 전 큰아버지일이 근심스러워요.》

신유정은 바다쪽을 바라보았다. 나이 오십고개를 넘긴 지금에 와서도 갈길을 찾아 고심하는 그들부부였다. 남편은 원체 배심이 든든한 사람이니 마음이 놓이지만 자기는 참으로 힘겨운 걸음을 옮기고있었던것이다.

교육부문에 대한 료해과정에 심중한 문제들이 론의되고있다. 그중에서도 교원대렬을 질적으로 잘 꾸리는것이 가장 중요하게 제기되고있다. 신유정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교단을 떠날 자기의 결심을 표명하였다.

시교육부의 일군은 매우 심중한 태도로 접수하면서 결론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므로 그동안 교수사업을 계속할것을 권고했다.

《소옥아, 목적의 유일성이라는 말을 들어봤니? 그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를 인식시켜주는것이라고 본다. 너도 명심하기를 바란다.》

동소옥은 가슴속에 새기며 자신에게 물었다. 너는 네 삶의 목적을 아는가.

 

제정된 아침일과의 첫 순서로 작업장들을 다 돌아본 강치명은 자기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는 탁상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는 의자등받이에 기대며 미간주름을 모았다. 머리속으로 찾아드는것은 의연히 남계수였다. 어제 저녁에 만나보려 했는데 몸이 불편하여 일찍 퇴근했다기에 만나지 못했다. 이것도 그에게서 아직 있어보지 못한 일이다. 만나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려 했지만 미루어온 강치명이였다. 남계수와는 준비를 잘 갖추고 만나야 했다. 그와 관련하여 제기된 문제들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들처럼 비판이나 주어서는 일이 쉽게 풀릴것 같지 않았다.

강치명은 제기된 자료들에 기초하여 그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경솔하게 평가하여서도 안되며 심중한 분석을 거쳐 그가 범하고있는 오유와 편향의 본질을 인식시켜주는것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견해가 일치된다면 강치명은 당일군으로서 책임지고 나설 결심이 돼있었다.

남계수는 출신성분이 자작농이지만 그의 사회생활경위를 보면 개인기업가라고 할수 있었다. 해방전에 공부도 일정하게 했고 총명한 두뇌와 완강한 기질을 가지고 마음먹은 일은 성공시켰으며 그 과정에 기업관리방법을 터득하고 많은 돈을 벌던 사람이였다. 개인기업가로서 남다른 측면이 있다면 진취성인데 객관적인 현실을 바로 보고 대담하게 자신을 적응시켜나간것이다. 그렇다. 랭정하게 분석을 하면 남계수는 민감하고 단호하게 행동할줄 아는 인간이다.

강치명은 이렇게 남계수라는 인간의 본질을 평가했던것이다. 여기에는 오유가 없는가. 그는 여러 각도에서 거듭 다시 살펴보았지만 다르게는 분석할수도, 결론할수도 없었다.

민감하고 진취적이며 단호하게 결심하고 대담하게 행동할줄 안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남계수이기에 오늘도 기업관리에서는 남다른 기질을 보여주고있으며 생산지휘에서 빈틈이 없고 요구성은 따를수 없을만큼 높은것이다.

이와 같은 상대적인 우점과 함께 남계수라는 인간에게는 간과할수 없는 결함도 있는것이다. 강치명은 일단 제기된 문제인것으로 하여 주숙진이라는 녀성을 찾기 위하여 무척 고심했다. 떠도는 풍문이 한사람의 인격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는만큼 진실을 밝혀내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소문이 매우 의심스러운데가 있었던것이다. 생활에서 흔히 듣고 보게 되는 치정관계라면 구체적인 산인간들이 빚어내는 비도덕적인 현상인데 남계수의 경우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 녀자와의 사연인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료해가 깊어질수록 강치명은 의혹을 지울수 없었으며 빚어진 결과의 배경에 그 무엇인가 불순한 목적이 있을수 있다는것을 간파하였다. 전쟁시기 동진항 성덕마을에서 산 토착민들을 찾아서 알아보았는데 주숙진은 적들의 대공습때 죽었을수 있다는것이 유일한 확인이였다. 하지만 시체를 본 사람은 누구도 없다. 어찌 보면 행방불명자라고 해야 할것이다. 보다 의문을 자아내는것은 소문이 그때로부터 10년도 넘는 오늘에 와서 실체가 없는 사람을 놓고 생겨났다는것이다. 아무리 험담을 하기 좋아한다고 한들 지금과 같은 여론을 퍼뜨리는것은 어떤 목적이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강치명은 관계부문 일군들과도 토론하였다. 해당 기관에서는 이 문제에 주목을 돌리고 당시 동진항일대에서 반동들의 준동이 우심했다는 사실에 류의하면서 군수공장을 노리고 감행된 파괴암해책동들과 적발분쇄된 사건들, 이미 취급처리된 적대사건들의 사건기록들을 재검토하고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일일것이다.

강치명은 무엇보다 여론의 피해를 입고있는 추문의 주인공이나 같은 남계수가 자기한테 찾아와 마음속의 고충을 터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러기는 고사하고 자그마한 반응도 보이지 않는것이 몹시 유감스러웠다. 한마디로 자기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주관과 오만, 소총명이 도수를 넘어 최근에 와서 새로운 문제를 파생시키고있었다.

그러나 남계수라는 사람은 그런것쯤은 하찮은 일로 여기는것이 분명했다.

강치명은 남계수와의 담화를 더는 미룰수 없는 일로 여기게 됐으며 결국 오늘은 만나기로 마음먹은것이다.

출입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대답하니 남계수가 쑥 들어섰다.

강치명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몸이 불편하다더니 좀 어떻습니까?》

남계수는 편수책상앞의 의자를 당기여 앉으며 되물었다.

《불렀소?》

강치명은 지금처럼 남계수를 자기 방에 부른 례가 없었다. 언제나 자기가 찾아가군 했다. 오늘만은 이전과 다른 조건이여서 부득불 찾지 않을수 없었다.

《예, 할 얘기가 있어서…》

강치명은 남계수와 마주하고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현장을 돌아본 소리를 꺼내면서 공장의 생산설비들을 발전하는 현실에 맞게 개건하는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되는데 자기로서도 긍정하게 된다고 말하며 어떤 반응을 기대했지만 남계수는 오늘 대화의 성격을 미리 예견하고있었는지 아무 소리없이 본론을 기다리는 기색이였다.

《몇가지 제기된 자료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자고 불렀습니다.》

《…》

남계수의 침묵이 강치명에게는 무슨 말이든 하구려 하는것으로 들리였다. 강치명은 오늘의 이 자리가 불쾌한 결과를 가져오리라는 예감을 느끼며 물었다.

《혹시 해방전에 기업을 같이한 사람들중에 해외에 나가 사는 사람은 없습니까?》

남계수는 여전히 한자세로 앉아서 별로 놀라지 않으며 대답했다.

《있소.》

《누군가요?》

《구일파라구 왜정때 재경쪽에서 정미업을 함께 했소. 그 사람은 해방되자 남으로 나갔는데 후엔 유럽으로 옮겨가서 살고있다는거요.》

강치명은 남계수의 마음속을 알수 없었다. 만사를 자기식으로 별치않게 여기는것인가. 이쯤 화제가 번지면 놀라는 기색이라도 보이겠는데 꿈만하게 여기는것 같다. 마음이 곧은데야 그림자가 구부러진다고 놀라랴 하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서로 안부를 주고받습니까?》

강치명은 서신거래라는 말을 다듬어 표현했다.

《얼마전에 인편으로 그 사람이 편지를 보내왔는데 조건이 허락되지 않아 내 소식은 알리지 못했소. 일두 바쁘구 해서 그런데 머리를 돌릴 경황이 없었소.》

강치명은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사람이 해당 기관에 일단 신소를 한것만큼 필요한 말을 해줄 결심을 했다.

《지배인동무, 좀 섭섭하군요. 이런 일 같은거야 매일 코 맞대고 사는 나한테 한마디 해줄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강치명은 될수록이면 자극적인 말을 피하려고 애썼다.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신중해야 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나야 비당원이 아니요.》

《지배인동무의 불만을 리해할수 없는데요. 유감입니다.》

《나도 동감이요.》

《말씀하십시오. 난 오늘 우리 두사람이 진심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남계수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표정도 찾아볼수 없었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내뱉는 대답이 놀랍기만 했다.

《나라는 사람은 감추고 살줄 모르오.》

강치명의 메마른 성미가 고개를 쳐들었다. 화가 나기까지 했다. 자기앞에 앉은 사람이 남계수가 아니라면 철면피하다는 소리가 터져나왔을것이다. 제기된 자료들은 다 이 사람의 가슴속에 숨어있는것이 아닌가. 감추고 살면서도 자기를 솔직한 인간이라고 여긴다면 얼마나 모순된 성격의 소유자인가. 고질적인 생활습관이 지금처럼 만들어놓았다고밖에 달리는 볼수 없다.

《편지이야긴 그만둡시다. 난 지배인동무에게 인간적으로 의견이 있습니다.》

그루를 치며 강치명이 말하지만 남계수는 꿈쩍도 안했다. 어서 말하구려 하는 태도같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묵묵히 듣기만 할뿐이다.

《이건 성격이 다른 문제입니다. 지배인동무도 들어서 아는 소문이고 귀찮은 일인것만은 틀림없는 한 녀자와의 관계도 이러이러한 사연인데 하고 저한테 한마디 해주면 안되는가요? 우리야 같은 남자들이고 또 공장을 책임진 일군들이 아닙니까?》

《…》

남계수의 검은 눈섭이 꿈틀거렸다. 그의 가슴은 모진 채찍에 맞은 때처럼 아팠다. 자기가 이미 전쟁시기 폭격에 잘못되여 세상에 없는것이 확실한 순결한 녀자를 욕되게 하고있다는 죄책으로 마음은 형언할수 없이 괴로웠다. 하지만 강치명의 요구 역시 당위원장인 그의 직분으로서는 응당할지 모르나 한 인간의 마음속 고충을 위로해주고 완전히 가셔주고저 하는 진정으로는 안겨오지 않았다. 그로 하여 강치명의 진심이라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미 결심을 내린지라 누구의 충고도 들을 마음의 여지조차 없었다.

《주숙진이라는 녀성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아는 지배인동무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항간에서 떠도는 말이 혹시 잘못된 여론이라면 바로잡기 위해서도 진실을 말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남계수는 틀어쥔 주먹으로 이마를 꾹 누른채 깊은숨을 들이쉬였다. 그것이 단 한번 변한 자세였다.

《당위원장동문 나의 개인문건을 보아서 알고있을거요. 나라는 사람을 말이요.》

《?…》

남계수는 침착하나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파계승의 후손이라는거야 알고있는게 아니요.》

무엇을 말하자는것인가. 파계승과 자기가 범한 결함사이에 어떤 련관이라도 있다는 말을 하려는것인가. 그러니 아버지가 불문을 떠난 파계승이니 그 피를 물려받아 자기도 도덕적으로 저렬할수도 있다는것을 표현하자는것인가. 이런 말로 자기를 변명할수 있단 말인가.

강치명은 그만 감성을 견제하지 못하고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니 지금 떠도는 추잡한 풍설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여보, 이미 빚어진 일을 그럼 어떻게 하라는가 말이요. 남자가 세상을 살다가 겪은 일인데 이미 엎지른 물을 퍼담을수야 없지 않소.》

《어떤 실수이건 또 오해이건 지배인동무로서는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 일이나 그건 다 내 잘못이요 하면 된다고 여기니 그게 무슨 책임지는 립장이고 자세란 말입니까. … 지배인동무는 어떻게 생각하고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에겐 오래전부터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데 그건 우리 두사람사이에 왜 의사소통을 하기가 이리도 어려운가 하는겁니다.》

《…》

여지없이 불만을 터치는 강치명의 말투가 달라졌지만 남계수의 모습은 석상처럼 굳어진 자세였다. 한차례의 흥분이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가자 방안에는 침묵의 정적이 깃들었다. 거친 숨소리가 서로 다른 박자로 흐르기만 했다.

그 침묵을 밀어낸 사람은 남계수였다.

《우리 더이상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게 어떻소?》

《그건…》

《서로 힘들어할 필요가 없다는거요.》

남계수의 언어는 언제나 직선적이였다. 간단명료하고 표현이 정확하여 듣는 사람이 의문을 표시할수 없게 했다. 그런데 오늘은 얼마나 까다롭게 말하는가.

강치명의 마음속에서는 어떤 해결방도를 찾아보려던 생각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형언할수 없는 불만이 서리여돌았다. 인간적으로 상대할 인물이 못된다는 판단을 하게 되니 심리는 한층 날카로와졌다.

《지배인동문 나와 일하기 힘들다는거지요?》

《그와는 반대일수 있다는걸 난 알고있소.》

강치명은 남계수가 이렇게 나올줄은 몰랐다. 앞에 앉은 사람이 안하무인이 체질화된 비도덕적이고 파렴치한 인간으로까지 보였다.

어디서 이런 교만이 생겨났는가. 자기를 돌아보는 눈은 도저히 가질수 없는 인간이다. 다분하게 남아있는 부르죠아인생관의 성곽속에 들어앉아 순수 제 기분으로 사는 사람이라고밖에 달리 볼수 없다.

그는 더이상 다른 말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좋습니다. 난 이렇게 만나지 않을수도 있었습니다.》

노여움이 풍기는 말속에는 류다른 의미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남계수는 별로 새겨듣지 않는듯 자리에서 일어나 말없이 나가버렸다.

강치명은 바늘끝처럼 날카로와진 신경을 자제하며 사무책상우의 자료들을 추려서 한옆에 밀어놓았다. 남계수라는 인간에게 품었던 좋은 감정이 한순간에 날아나버리는것을 어찌할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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