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13

 

사람들의 눈길이 미칠가보아 식당의 한켠 구석에서 조용히 식사를 마친 조혁은 얼른 자리를 떴다. 생각 같아서는 합숙침실에 올라가 잠간이라도 눈을 붙이고싶지만 야전생활체험을 위한 준비를 서둘러야겠기에 내처 청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지나가던 배우들이 그를 돌아보며 귀속말로 수군거렸다. 알은체를 하며 반가운 웃음을 보내는 동무들도 있었다.

할수록 조혁은 얼굴이 뜨거웠다. 대작주의?… 어떻게 분석하든지간에 그것은 예술지상주의의 변종일수밖에 없었다.

작품에 대한 최고사령관동지의 말씀이 계신 날 밤 남먼저 조혁에게 희소식을 전한 사람은 설명순실장이였다. 처음엔 미처 입을 열지 못하고 그의 손을 꽉 잡기만 했었다. 하다가 고개를 푹 떨구며 무겁게 가로저었다.

《조혁이, 이젠 이 설명순이 낡았구만. 옳고 그른것도 제대로 가려볼줄 모르는 장님이 된가보오. 낡았어.》

무슨 소리인지 알수 없었다. 가슴만 후두둑 뛰였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세계에 도전하려는 창작가의 의도를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소. 동무가 내 전철을 밟을가봐 허겁지겁 붙잡았는데 그게 로파심이였던가보오.》

그만에야 조혁은 실장을 와락 껴안으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그 한순간이 지나자 자신을 랭정하게 돌이켜보게 되였다. 믿음을 지녔을망정 자신은 분명 구실 못하는 창작가였다. 밑천이 변변치 못한, 한갖 공명에 들떴던 음악가에 불과했다는것을 자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더 괴로왔다.

바싹 달아오른 아스팔트에서 뿜는 열기로 하여 몸이 녹작지근해졌다. 뜨거운 정오의 해볕에 잎새를 오무라뜨린 정원수가 시진한 표정을 지었고 울적한 기분에 포로된 그를 조롱하듯 매미들이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해빛이 재글재글 내려쬐는 청사 앞마당에서 선창자인 석지민과 진춘일지휘자가 즐거운 인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문득 조혁을 띄여본 석지민의 눈찌가 날카로와졌다. 조혁은 괜히 가슴이 긴장되였다.

노래에 대한 무한한 애착으로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노래를 부르는데서 행복의 전부를 찾는 석지민은 조혁이 존경하는 가수였다. 합창단의 기둥배우이지만 잠시도 탕개를 늦추지 않고 부지런히 기량을 련마해가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불덩어리 한가지라고 평가했다.

아버지인 석광희는 우리 나라 문학사에 자기의 뚜렷한 흔적을 남긴 군인작가였다. 전화의 나날에 《결전의 길로》와 같은 품위있는 가사를 창작하여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고 우리 군대와 인민을 승리에로 고무추동한 석광희는 그후에도 인민군협주단 작가로 활약하면서 우리 나라 가사문학의 보물고를 풍부히 하였다. 그렇다고 석지민은 아버지의 이름자를 방패삼아 안위나 찾는 속인은 아니였다. 아버지처럼 인민의 기억속에 남는 가수가 되고싶은것이 소원이였다.

석지민이 조혁의 팔뚝을 거머쥐더니 철울타리쪽으로 향했다.

《동무쪽에서 애인을 차버렸다는게 사실이요?》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조혁은 얼떠름해졌다. 아연한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누가… 그따위 허튼소리를 합니까?》

《동무가 명성을 얻게 되니 녀자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거요.》

《그러니 석지민동지두 절 그렇게 본다는겁니까?…》

억이 막혀 말조차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글쎄, 믿고싶진 않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말들이 떠돌고있소. 애인에게서 색다른 편지가 날아온게 다 원인이 있다는거요. 말하자면 동무한테서 어떤 미묘한 형태의 거부반응이 있었다는거지. 맞소?》

억측도 류만부동이였다. 어릴적 용드레우물가에 놓여있던 물드무를 깨뜨리고 당황하여 그 쪼각을 붙이려고 모지름을 쓰던 일이 생각히웠다. 자기들의 사랑도 과연 물드무처럼 깨여진것일가?…

《전혀 가당치 않은 소리입니다. 그래 석동진 사랑이란 어떤 타산이나 리기에 바탕을 둔다고 봅니까? 그건 사랑이 아니라 계약입니다.》

조혁은 자기가 전혀 동닿지 않은 말을 던졌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석지민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말이였던것이다.

조혁이 만나본 석지민의 안해는 국방체육단 활쏘기감독으로서 남편에 대한 정이 지극한 호방한 성격의 녀인이였다. 바로 그 녀인에게서 조혁은 그들 내외간의 련애담을 들을수 있었다.

활쏘기선수로 국제경기들에 출전하여 여러번 금메달을 받은 전적이 있는 처녀는 한창시절에 뜻밖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고 한다. 평양에서 멀지 않은 군단예술선전대의 한 성악배우가 신문에 난 처녀의 사진에 반하여 축하의 편지를 보내왔던것이다.

흥, 별 싱거운 사람 다 보겠네!… 처녀는 편지를 보다말고 던져버렸으나 총각배우가 보내는 편지는 련이어 활쏘기명수의 침실에 날아들었다. 일방적인 편지는 몇년간이나 계속되였다. 나중엔 인차 만나기를 바란다는 한절반 강요적인 내용에까지 이르렀다.

《저런, 용감한데?…》

《아니야, 철면피한 사람이야. 신문에서나 한번 본걸 가지고 접어들다니… 콱 욕해야 돼.》

《그런것만도 아니야. 편지내용이 진실하지 않니.》

이성의 비밀이란 있어본적이 없는 개방형의 처녀선수들은 오래동안의 말씨름끝에 《거절!》이라는 단마디내용으로 첫 회답편지를 보냈다.

그것으로 끝나는가 했는데 몇달이 지난 뒤에 접수에서 멋지게 생긴 웬 군인이 처녀선수를 찾아왔다고 알려왔다. 생김생김을 물어보니 편지의 임자가 분명했다.

《그런 열정적인 남자라면 한번 만나보는것도 옳지 않을가?》

완강하던 《처녀동맹》이 은근히 총각을 동정했다. 하지만 녀주인공만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후에 처녀들은 뜻밖에도 건군절을 맞으며 진행하는 음악무용종합공연관람에 초청받게 되였다. 바로 그 총각이 자기의 이름으로 처녀들을 공연관람에 초청했던것이다. 환성이 터졌다. 처녀들은 그 초청만은 마다할수 없다면서 녀주인공을 위시하여 극장으로 몰려갔다.

무대에 나선 독창가수의 이름을 들었을 때 처녀는 가슴이 두근거렸고 얼굴이 발갛게 물들었다.

공연이 끝나자 처녀들은 녀주인공의 등을 떠밀었다. 시샘에 가까운 부러운 눈길로 지켜보다가 곧 자리를 피해주었다.

처녀는 그날에야 총각배우가 신문에 난 한쪼각의 사진에 반하게 된 리유를 알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조국의 명예를 금메달로 떨친 처녀에 대한 부러움이 사랑의 동기로 되였던것이다.

《…그인 나한테 짝지지 않겠다고 피타게 노력했대요. 떳떳이 만날 자격을 얻기 위해 무섭게 련습했다는거예요. 그게 아마 절 감동시켰나봐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조혁은 선옥이를 상기했다. 자기가 그에게 반한것은 분명 처녀의 깨끗하고 참신한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석지민이 상념에 잠긴 조혁의 팔꿈치를 툭 건드렸다.

《얼빠진 사람처럼 뭘 생각하고있소?》

《그저 좀… 석동지의 련애사가 문득 떠오르길래…》

《싱겁게스리, 됐소, 그런 면에선 난 조혁동무를 믿겠소.》

석지민이 조혁의 군복자락에 묻은 실밥을 털어주었다. 점심식사를 하기 전에 목달개를 급히 달았는데 그때 실밥이 묻은것 같았다.

《조혁동무, 모두들 동무에 대한 기대가 큰데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겠소. 이번에 작품문제로 좀 말썽이 생기긴 했지만 우리에겐 자기를 돌이켜볼수 있는 좋은 기회였소. 당에서 어떤 작품을 바라는가, 창작가, 예술인들의 정신상태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거던. 인차 전선부대에 나간다지?》

《예.》

《꼭 공훈합창단의 무게를 더해주는 창작가가 되여달라구. 같은 병사출신으로 부탁하는거요. 진춘일동무도 이번에 조혁동무의 작품을 놓고 대단하다고 환성을 지른 지휘자였는데 많은걸 깨달았다고 하더군.》

조혁은 피씩 웃었다. 기실 진춘일은 예술위원회가 끝난 뒤에도 설명순실장을 만나 자기는 실장의 의견에 공감할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렸던것이다.

진춘일은 현관밖에서 서윤호와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정열가요. 배포유한 사람처럼 만족한 웃음을 짓고있지만 그뒤에는 용암처럼 끓어번지는 정열의 세계가 있지. 우리 가수들은 춘일동무의 지휘를 좋아하오.》

진춘일을 두고 사람들은 안팎으로 성공한 음악가라고 한다. 국립교향악단에서 바이올린수로 활약하는 안해가 남편과 쌍벽을 이루는 이름난 예술가인데다 대외무역기관에서 처장으로 일하는 처남이 춘일이네를 얼마간 도와주다나니 집살림도 남들보다 퍽 유했다. 하지만 그런것이 결코 사람들간의 뉴대에 그늘을 던진적은 없었다.

그에 비하면 춘일의 곁에 선 지팽이에 몸을 의지한 서윤호는 누렇게 황이 든 락엽처럼 보인다. 한때는 능력있는 가수로서 당당히 자기 지위를 차지하던 배우가 몇해전에 상처한 뒤로 자주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고있는것이다.

《참, 오늘 저녁에 서윤호동지를 집에 초청했는데 같이 오우.》

석지민의 권고에 조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이 날것 같지 않습니다.》

《어쨌든 난 초청했소. 후날 독신을 생각해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부리지 마오.》

석지민은 먼저 걸음을 내짚으며 다소 롱기어린 소리로 말했다.

 

×

 

석지민과 헤여져 현관에 들어서던 조혁은 유진수부단장과 부딪칠번 했다. 방금전에 석지민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상기하던 참이라 창황중에 인사도 변변히 못했다.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불린 색날은 군복차림의 김대연에게 끌려가다싶이 하던 유진수부단장이 조혁이더러 잠간 기다리라고 손짓했다.

김대연의 낯색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부대당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돼지목장건설을 책임지고 부업지에 나가있는 연주가인데 방금전에 부대로 돌아온것 같았다.

현관문의 유리창을 통해 김대연이 부단장의 눈앞에 대고 구겨진 종이장을 내흔드는것이 보였다. 악기공장, 건설, 목재 등의 말마디들이 여닫기는 출입문사이로 들려오는것으로 보아 그가 늘 주장하는 민족악기공장문제가 론의되는듯 했다.

유진수부단장보다 두살이상인 김대연은 인민군협주단의 《민족악기전문가》로 소문난 연주가였다.

1960년대에 민족악기를 개량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받들고 5음계로 고착되였던 피리를 12반음계로 개량하여 복고주의자들을 무색케 한 대연은 남조선의 민족음악가들은 물론이고 유럽의 음악가들에게도 널리 알려져있었다.

환갑나이에 이르렀지만 음악에 대한 그의 사랑과 정열은 젊은이들 못지 않았다.

화평군에 있는 악기공장에 갔다오다가 죽을번 한 일도 있었다. 자기자랑이란 전혀 모르는 사람이여서 부대에서는 화평악기공장 당위원회에서 보내온 편지를 받고서야 사연을 알게 되였다.

인민군협주단에 민족악기공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연은 그 사업을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 임무로 간주하였고 하여 여러가지 방안을 연구하여 부대당위원회에 제기하였다. 그래서 추운 겨울날이였지만 화평악기공장의 경험을 배우려고 부득부득 길을 떠났는데 화평을 가까이 한 고개길에서 차와 함께 절벽밑으로 굴러떨어질번 했던것이다. …

마침내 대화가 끝났는지 유진수부단장이 조혁에게로 다가왔다. 두릿두릿한 얼굴에 석연치 않은 짜증이 실려있었다. 조혁을 보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식사했소?》

《예, 지금 식당에서 오는 길입니다.》

유진수는 배우들의 인사에 답례하며 층계쪽으로 먼저 걸음을 뗐다.

《조혁동무,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기요. 사실 내 책임이 크오.》

《아닙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조혁은 고개를 짓숙이며 어눌한 소리로 응대했다. 아마 이번 계기가 아니였다면 아직까지도 그는 대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실장이나 다른 사람들을 원망했을것이다. 더구나 그런 미흡한 작품을 최고사령관동지께 보고드렸으니 창작가로서는 너무도 무책임하고 비량심적인 행동이였다.

《실장동지를 고깝게 생각지 마오. 그는 바른말을 했소. 나는 형식을 추구했지만 그는 내용을 바랐던거요. 당에서 의도하는것을 창작가의 량심으로 받아들였지.》

조혁은 유진수부단장의 어조에 실리는 부드러움을 느끼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듣자니 오성산일대에 나가겠다고 했다면서?… 차편이 있소?》

《도보행군을 할 계획입니다.》

《거기까지 걷기가 헐치 않을거요. 혹시 차가 있겠는지 내 주둔부대지휘관들과 련계해보지.》

유진수부단장의 어조에는 아버지다운 심정이 배여있었다. 대학입학시험을 치를 때 음악무용대학 정문에서 군복차림새의 자기를 맞아주던 그의 모습이 불쑥 상기되였다. 아들을 내껏 기다려온 아버지의 애바른 심정이 엿보이는 모습이였는데 그래서 조혁은 더욱 거북스러웠다. 마치 아들을 대신하여 대학시험을 치르러 온것 같은 죄의식이 들었던것이다. 그 감정은 대학졸업후 인민군협주단에 배치되여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미 결심했습니다.》

부단장의 두릿한 얼굴에 감심한 표정이 어렸다.

《그렇다면 좋소, 참, 자강도와는 어쩔 심산이요? 좋지 않은 소식이 날아왔다고 실장동지가 몹시 걱정하더구만.》

조혁은 대답하기 어려웠다.

《심사숙고하기 바라오. 처녀가 그런 선택을 할 때쯤이면 심리적고충이 여간 아니였으리라 보오. 오성산에서 돌아오면 다시 토론해보자구.》

《고맙습니다.》

유진수가 란간에 놓인 조혁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길을 택한 처녀를 더이상 괴롭히지 않는게 좋을것 같소. 솔직히 말해서 음악가로서 성공하자면 좋은 반려를 만나는것도 복이요.》

웃쪽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났다. 공훈합창단의 소개자인 리문혁이 눈을 감고 무엇인가를 외우며 내려오고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문득 멈춰서더니 부단장을 향해 황황히 경례했다.

《화술과에 련습자료를 얻으러 갔댔습니다.》

《전승절경축공연이 멀지 않았소. 소개문은 다 완성됐겠지?》

《예.》

《오후에 소개문을 보기요.》

리문혁을 지나보낸 유진수는 계단을 따라 다시 걸음을 내짚었다.

《깊이 생각해보라구. 그리고… 실장동무에게서 많이 배우오.》

유진수의 곡진한 어조였다. 일부 사람들이 랭정하다고 평가하는 그의 사업작풍이나 창작세계였지만 조혁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부단장의 아들이며 자기의 전우인 유승철과의 관계때문인지 아니면 부단장의 마음에 들만 한 재능때문인지는 그자신도 알수 없었다.

멀어져가는 유진수부단장의 뒤모습에 눈길을 보내던 조혁은 음악가의 반려에 대해 조언을 주던 부단장의 목소리를 상기하며 나직이 한숨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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