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16

 

유승철이 대대지휘부마당에 들어서니 네모진 턱에 얼굴색이 남달리 거무슥한 김호삼려단장이 마당 한가운데에 버티고서서 대대참모장을 한창 닥달질해대고있었다. 대대안에 전투적인 규률과 질서가 서있지 않다는 청굵은 목소리가 승철의 귀벽을 때렸다.

어깨에 지고있던 악기묶음을 급히 보초소곁에 내려놓은 유승철은 려단장을 향해 뛰여갔다. 그가 보고하기도 전에 려단장의 목소리가 튕겨왔다.

《잘하오, 대대장부터 그게 무슨 모양이요?》

쓰거운 웃음이 그의 입귀에 몰렸다.

《한켠에선 발전소건설을 다그치자고 목터지게 소리치는데 돌아앉아 이런 장난이요? 대대장, 예술소조공연을 준비한다면서 굴뚫기에 동원된 중대를 교대시켰다는게 사실이요?… 발전소건설이 실무적인 사업인가? 다 싸움준비완성에 필요한것이라구 몇번이나 말했소?》

물길굴공사에 동원되였던 전투력이 강한 5중대를 교대시킨데 대한 려단장의 추궁이였다.

《전번 훈련때에도 2대대때문에 얼마나 골탕을 먹었소? 행군길에 손풍금을 메고 다니다가 마사놓질 않나, 3대대와의 협동동작때에는 오락회를 벌렸다가 한코 떼우고… 비판토론은 잘하더군. 헌데 뒤끝이 있소?》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려단장은 일단 성이 나면 고삐를 끊어버린 상사말처럼 흥분을 걷잡지 못한다. 한마디라도 변명하는 날엔 추궁이 더욱 날카로와진다.

병사들에게만은 그답지 않을 정도로 사분사분하고 친절했는데 그래서 려단장이 한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중대에 내려오면 좋겠다는 의견이 군인들속에서 제기되고있다. 하기는 구분대에 들어서자바람으로 식당부터 들리고 군인들이 식사하는것을 보고서야 참모부에 들릴 재미가 있다고 하는 지휘관을 어느 병사인들 싫어하겠는가.

고개를 수굿한 유승철은 잘못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김호삼려단장의 남다른 관심을 받는 지휘관이였다. 무엇때문인지 김호삼은 그와 이야기나누기를 즐겨했고 려단적인 관심거리가 생기면 유승철의 대대부터 생각했다. 대대별 훈련판정이나 대항경기가 제기되여도 은근히 유승철의 편에서 응원했다.

김호삼의 중대장시절에 유승철이 그 중대의 사관이였고 대대장으로 사업할 때에는 관하중대의 1소대장으로 복무했다는것을 모르지 않는 다른 대대의 지휘관들은 려단장의 전직관념때문에 자기들만 손해를 본다고 투덜거렸다.

그러나 김호삼은 또 그대로 할말이 있었다.

《내가 2대대장을 두고 편애한다는데 그럼 말해보기요. 2대대장에게 어떤 임무든지 주게 되면 언제나 맵시나게 해제끼오. 그리고 그 동무와 장기경기를 해서 이긴 사람이 이 호삼이 말고 또 누구요? 전투지휘를 해도 그래,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다루어도 그래, 터놓고 말해서 내가 좀 욕하긴 해두 문화적소양이 높으면 대화나눌 멋이 있단 말이요.》

했으나 그것이 어떤 에누리로 표현된적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지휘관들에 비해 요구성이 몇배로 높았다.

김호삼은 인민군협주단의 이름난 작곡가의 아들이 자기의 부하라는것이 더없이 자랑스러웠다. 누구든지 부대에 오면 유승철에 대해 설명하며 《아버지로 말하면 우리 군인들이 누구나 즐겨부르는 노래를 만든 유명한 음악가인데…》 하며 그를 내세우군 했다.

한때는 유승철이 아버지처럼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며 평양음악무용대학(당시)추천을 적극 주선한적도 있었다. 그러나 병사시절의 유승철은 자기대신에 부분대장인 조혁을 제기했다. 그때에야 호삼은 기타반주로 오락회의 흥취를 돋구던 조혁에게 눈길을 돌렸고 그를 내세운 유승철분대장의 진정을 다시 읽을수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김호삼은 외계에 드러나지 않은 유승철의 속내에 감심하며 인간으로서, 동지로서의 따뜻한 호의를 품게 되였다. 녀자에게서 얼굴이나 머리태가 미라면 병사에게는 성실성과 정직성, 자기희생성이 미덕이라는것이 호삼의 견해였다. 유승철은 바로 그런 훌륭한 품성으로 김호삼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

김호삼의 추궁은 계속되였다.

《그 놀음에서 정 발목을 빼지 못하겠소? 그래 온 대대를 협주단배우로 만들 작정인가?》

참모장이 킥 하고 소리내여 웃었다. 유승철이도 히죽이 웃었다.

《헌데 아까 메고온 그 물건들은 어데서 난거요?》

《선전대장동지가…》

《성악지도원이 구해주었겠지. 내가 괜히 동무네를 붙여주느라 뛰여다닌것 같애.》

아닌게아니라 그들을 결합시키려고 려단장도 어지간히 속을 썼었다. 예술선전대장이 한때 그와 손을 맞잡고 일한적이 있는 옛 정치지도원이여서 호흡이 잘 맞았다. 한선률성악지도원을 만나기만 하면 유승철에 대한 자랑을 한바탕 늘어놓았고 때로는 승철에게 적당한 임무를 주어 선전대에 보내기도 했었다. 그래서 호삼은 가끔 자기는 그들 신랑신부의 큰절을 받을 자격이 당당하다고 흰소리치군 했다.

《하지만 대대장이 위신없이 짐을 지고다니면 되오? 이건 참모장동무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거요.》

《려단장동지, 사실 우린 이번 기회에 중대들의 예술소조공연수준을 한계단 높여 인민군군무자예술축전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공사장에 나가있던 5중대를 교대시켰습니다.》

유승철이 주눅이 들지 않은 소리로 대답했다.

이미 한김 빠진 김호삼이 눈살을 찌프린채 맹랑한 기색으로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이제껏 목청을 돋군것이 헛공사가 되였다는것을 알았는지 그는 맥없이 손을 내저었다.

《듣기 싫소. 군무자예술축전에 참가할 대상은 이미 군단적으로 점찍어져있소. 온 련합부대가 화력을 집중하는데 경쟁을 해? 꿈을 깨오. 대낮에 꿈을 꾸다간 시궁창에 코를 박아.》

호삼은 곧 대대전체를 훈련장에 모이게 했다. 대대훈련장은 지휘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 관목숲이 우거진 산경사면에 전개되였는데 뒤에 아찔한 칼벼랑이 솟아있고 전방에는 소택지도 있어 야외훈련장으로는 안성맞춤했다.

김호삼은 각이한 전투정황을 제기하며 지휘관, 참모부의 지휘능력을 판정했다.

대대는 지휘관의 전술적의도에 맞게 제때에 《전투》를 진행하였고 《적》의 맹폭격으로 인한 통신두절상태에서도 병사들의 창안품인 신호기재를 리용하여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였다. 구분대간 교차화력과 협동동작도 나무랄데 없었다.

무더운 날씨였다. 뜨거운 볕을 피해 귀청따갑게 울어예던 풀벌레들이 시진한 울음소리를 흘리며 그늘을 찾아들었다.

훈련이 끝나자 휴식구령이 내렸다. 다기찬 구령소리들이 잇달리는 속에 대오가 중대, 소대, 분대단위로 흩어졌다. 관목숲의 여기저기서 노래소리며 박수소리, 웃음소리가 흘렀다.

지친듯 한 표정을 짓고 산기슭을 둘러보던 호삼은 허허 웃고말았다. 병사들이 사기충천하여 노래를 부르고 오락회를 한다는것이 마음에 들었다. 욕은 했지만 젊음이 툭툭 뛰는 전투적분위기는 흥타령과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훈련결과가 좋은것이 흡족했다.

《저기 가서 좀 앉기요.》

김호삼은 곁에 서서 북소리에 맞춰 발장단을 치는 유승철의 어깨를 툭 건드리며 나무가지가 양산처럼 퍼진 키낮은 상수리나무쪽을 턱짓했다.

두사람은 서로 사이를 둔채 나무가 던진 그늘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내 종종 생각해보는데 동문 정말 아까운 사람이야. 그때 대학에 갔더라면 지금쯤 텔레비에서 동무가 지은 노래들이 꽝꽝 나올텐데… 그러면 이 호삼이한테 욕먹을 일도 없을게고 또 호삼이는 호삼이대로 동무를 자랑할게고. 하긴 다 지나간 일이지. 그래 조혁동무한테선 소식이 있나?》

《요샌

유승철이 신통치 못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동무의 아버지가 조혁이를 도와준다는 소릴 들었소. 그래서 조혁이 좋은 노래를 내놓을수 있었겠지. 어쨌든 그 동문 난인물이 되였어.》

김호삼은 아지랑이 아물거리는 건너편에 웃음실린 시선을 던졌다.

《그때 동무의 등을 떠밀어 대학에 보냈어야 하는건데…》

《전 군인의 본분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가정적환경을 빗댄 재능이야 무슨 재능이겠습니까.》

《제딴의 생활철학인지는 모르겠지만 듣기는 좋소.》

귀맛을 돋구는 구성진 노래소리가 울렸다. 《내가 지켜선 조국》의 노래였다. 삽시에 골안이 조용해지더니 병사의 오늘과 래일을 더듬게 하는 사색적인 음향이 공간에 가득찼다.

《5중대의 김옥철분대장입니다. 저 동문 꼭 훌륭한 성악배우가 될겁니다.》

《동무 눈엔 그런 군인들만 보이는게지? 하긴 나도 그렇게 생각되오만… 손풍금강습소에서 돌아오던 옥철동무가 최고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게 두해전이지? 빠르구만. 행운아야.… 헌데 말이요.》

왜서인지 그는 말꼭지를 떼여놓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우리 지휘관들로서 얘기를 나눠보자구. 물론 다 리해되지만 난 가끔 동무가 감상적인 면에 너무 치중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군 하오.》

《그게 아니라…》

《마저 듣소. 명백히 말하면 지금의 동무는 음악가가 아니라 싸움을 눈앞에 둔 지휘관이요.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투마당에서 수백의 생명이 바로 동무에게 달려있단 말이요.》

유승철은 발치의 길짱구잎을 뜯어 쪼각쪼각 찢었다. 진득한것이 손가락끝에 게발리며 비릿한 내를 풍겼다.

《나도 소대장을 할 때까진 예술소조활동에 많이 끼여들었소. 그러나 직무가 높아지고 별이 많아지면서 스스로를 자제했지. 또 그럴 겨를도 없었고… 물론 예술소조활동도 해야지. 하지만 너무 나서는게 아니야.》

《…》

《사실 병사시절엔 나도 한다하는 북잡이명수였소.》

《알고있습니다.》

승철의 응대에 호삼은 코웃음을 쳤다.

《소문이나 들었겠지. …》 하며 호삼은 비웃는 눈길로 그를 흘겨보았다.

《그게 아마 15차 군무자예술축전때였을게요. 난 하사로 축전에 참가했댔소. 해군이 좀 흰소리칠 때였는데 우린 어떻게 하나 그들을 누르자고 모지름을 썼소. 그래서 궁리해낸것이 북재주였지. 그게 바루 나에게 맡겨졌거던. 한번 보겠소?》

호삼은 금시 마음이 동한듯 앉은자세를 바로했다. 주위를 슬쩍 휘둘러보며 한손으로 북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북채를 휘두르는 흉내를 냈다. 손동작이 얼마나 빠르고 잽싼지 승철은 입을 하 벌리고 눈을 팔았다.

《북이라는게 말이요, 덩 하는 소리가 나지 말고 더-엉 하는 울림이 나야 북채를 제대로 쓰는거요. 이렇게, 자세히 보오. 이렇게… 북채 끝에 엿같이 걸쭉한게 묻어올라오게 해서는 재치있게 휘둘러서 쿡 박아야 한단 말이요.》

승철은 정말이지 눈이 휘둥그래졌다.

《허, 내 이거 너무 생색내는것 같다. 그러다간 이 호삼이도 대대장의 써클바람에 말려들었다고 뒤소리를 듣겠소. 하긴 이런 때에야 그런 말을 들은들 뭐라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공연을 보시고 북잡이가 정말 신통하다고 치하하시였소. 그통에 이 호삼이두 재간둥이로 둥둥 떠받들렸댔소.》

《그런데 왜 예술소조활동을 방해합니까?》

호삼이 이마살을 찌프렸다.

《말 조심하오. 누가 방해를 하오? 이 호삼이가?… 자중해서 깃을 바로 펴라고 요구하는걸 방해로 보는게구만.》

승철은 말이 궁해져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이보오 대대장, 동문 군관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병사들과 다르단말이요. 내가 소대장으로 임명되였을 때인데 총참모부훈련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소. 우리 소대는 지적된 시간내에 목적지에 도착해야 했는데 장갑차안에서 오락회가 벌어졌댔소. 물론 이 호삼이가 주동이 되였지. 군인들의 용기를 북돋아주자고 말이요. 하모니카를 불고 노래를 부르는데 운전수까지 들썩거렸소.

끝내 일이 터졌소. 장갑차운전수가 오락회소리에 귀를 기울이다나니 정황처리를 제대로 못했던거요. 어떻게 되였겠소? 기재는 경사받이로 굴러떨어지고 대부분의 병사들은 전투에 진입하지도 못한채 군의소에 실려갔소. 그때부터 난 내 위치가 병사들과 다르다는걸 자각했소. 인차 군사대학에랑 가겠는데 미리미리 마음의 준비를 갖추오.》

유승철은 잘근잘근 씹던 풀잎사귀를 뱉아버렸다. 풀물이 올라 퍼릿해진 입술을 손바닥으로 뻑 문댔다.

가마차쪽에서 환성이 터졌다. 취사복을 입은 군인들이 길녘으로 달음박쳐가고있었다. 언덕받이의 석비레길을 따라 손에손에 꾸레미를 든 녀인들이 오고있었다. 녀인들의 들뜬 웃음소리가 가까와졌다.

《대대군인가족들이요?》

《예, 한주일에 한두번씩 군인들을 지원합니다.》

《괜찮아. 참, 대대정치지도원동무네 집사람이 우량종 돼지종자를 가지러 평성에 갔다는 소릴 들었는데…》

《어제 돌아왔습니다. 돼지가 얼마나 충실한지 모릅니다.》

《이악한 녀성이요. 우리 집사람두 영악을 부리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 잘 도와주오.》

《예.》

유승철은 문득 갈림길어구에서 헤여지던 선률의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짙은 음영이 동자에 어린 얼굴모습이였다. 분명 무슨 일이 있은듯싶은데 선률은 입을 봉하였다.

《그건 그렇고 대대장, 오늘 당장 5중대를 공사장에 진입시켜야겠소. 발전소건설에서는 굴뚫기공사가 주타격이요. 노래련습을 하겠으면 공사장에서나 해보던지…》

엉치를 툭툭 털고 일어서던 김호삼이 뒤따라 오금을 펴는 유승철에게 불만스러운 눈길을 던졌다.

《하지만 낮꿈이 해롭다는걸 명심하오.》

찰나에 머리우에서 도토리알이 툴렁 떨어지며 그의 모자채양을 때렸다. 눈이 마롱마롱한 청서 한마리가 상수리나무가지에 불안한 자세로 매달려 아래쪽을 내려다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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