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25. 소산에서

 

안거금은 대성산을 떠나갈 때까지 사람들에게 미륵이며 영팔이가 잡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떠나면 관헌들의 의심을 받을것 같아서 몇사람씩 짝을 무어 떠나야 한다는 말만을 하였다.

안거금은 마지막에 무춘이와 함께 떠나갔다. 그는 우선 무춘의 부상이 걱정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봐도 보통환자의 후송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왼심을 썼다. 어떤 때는 부축하기도 하였고 어떤 때는 들것에 눕혀 가기도 하였다.

무춘이는 대성산을 떠날 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초가에서 하루밤을 자고난 뒤에 자기를 부축하고 가는 안거금에게 조용히 물었다.

《미륵은 어떻게 되였소?》

안거금은 아직도 미륵과 영팔이 관군에게 체포되였다는것을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너무도 가슴아픈 일이였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무춘에게까지 말을 하지 않을수는 없었다.

《지금 그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맥을 놓을것 같아서 하지 않았네만 사실 영팔과 미륵은 관군들에게 잡혔네. 그리고 영팔은 부상이 심하여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네.》 안거금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내버리고 오면 어떻게 하우?》

《그러면 어쩌겠나?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관군과 맞설만 한 힘이 없네. 이제 소산으로 가서 다시 의논을 해보세나.》

무춘이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일행은 날이 저물어서야 소산에 도착하였다. 먼저 온 사람들이 안거금일행을 반겨맞았다. 안거금은 젊은 사람들이 걱정을 할가봐 조용히 무춘이와 아까 하던 의논을 계속했다.

《아무래도 내가 래일 평양성안에 들어가봐야 할것 같네.》

안거금이 이렇게 말하자 무춘이가 완강히 반대하였다.

《그건 안되우다. 지금 이 란리통에 성안으로 들어가면 어쩐단 말이요? 황해도와 순천쪽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돌아온 다음에 봅시다.》

《그럼 어쩌겠나? 내가 들어가야 손효숭과 만나 그곳 사정를 알수 있지 않겠나.》

안거금이 이렇게 말하자 무춘이는 한동안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아이들을 들여보냅시다.》

《아이들이라니?》

《영산이와 금춘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 애들은 손효숭을 잘 알고있으니 일없을거우다.》

안거금은 이 말을 듣고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아이들을 보내려면 셋을 함께 보내자구. 은산이까지 말이네.》

《셋은 너무 많지 않겠소?》

《그렇지도 않지. 지금 우리의 일이란게 목숨을 내건거나 같지 않는가? 그동안 영산이가 자주 성안에 다녔는데 어쩐지 그놈들이 눈치를 챈것 같아. 내가 지금 걱정을 하는것은 호수만이라는 놈이 그를 혹시 알아볼것 같아서 그러지. 아이들을 셋이나 보내는건 서로 바쁜 때는 좋은 생각이 떠오를수도 있겠고 또 누가 하나 잘못되여도 나머지 아이들은 돌아올수도 있을것 같아서 그러네.》

이튿날 아침 안거금은 금춘과 은산이 그리고 영산이를 불러서 평양성안에 들어가서 할일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였다. 그러면서 몇번이나 호수만놈을 조심하라고 말하였다.

영산이는 지금 자기의 형소식을 몰라 매우 걱정이였는데 평양성안에 들어가 손효숭아저씨를 만나면 소식을 알것 같아서 기뻐하였다.

영산이는 길을 가면서 금춘이와 은산이에게 자기가 평양성안에서 손효숭을 알게 된 이야기를 하였고 호수만이라는 놈이 자기를 매우 이상하게 감시를 한다는것도 말하였다. 금춘이와 은산이는 영산의 말을 듣기만 하였다. 이들은 아직 평양성안에 들어가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영산이는 자기가 그들을 책임져야 한다고 속으로 생각을 하였다.

셋은 보통벌에 저녁무렵에야 당도하였다. 영산이는 여러번 북문을 드나들었기때문에 어쩐지 그곳의 파수들이 눈을 밝힐것 같아서 일부러 보통문으로 해서 서문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것이다.

아이들일행은 보통문을 지나 평양성안에 들어갔다. 영산이는 평양에 처음 와보는 은산이와 금춘에게 평양거리구경을 시켜주고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금춘이와 은산이를 데리고 사창장마당에 갔다. 영산이는 사창장마당에 가기 전에 종로에 들려 보기 드문 평양종을 구경도 시켰고 대동문의 높은 루각을 보게도 하였다. 그다음에 사창장마당에 들렸다. 아직 한낮이 안되였으나 장마당에는 사람들로 붐비였다.

영산은 두 아이를 데리고 장마당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구경을 시켰다.

장사군들은 서로 자기의 물건을 사라고 잡아당겼다. 그때마다 영산은 머리를 내젓군 하였다. 영산의 일행은 팥죽장사가 있는 집앞에 이르렀다. 팥죽장사는 장마당에 작은 집을 지어놓고 방안에 길다란 음식상을 놓았다.

음식상앞에는 서너명이 앉아서 벌써 죽을 먹고있었다.

영산이는 남이 먹는것을 보자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다. 그래서 점심을 먹을 생각을 하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러다가 영산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베감투를 쓰고 죽을 먹는 중년의 사나이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어쩐지 호수만과 같았던것이다. 호수만이 베감투를 쓰고 이런데서 팥죽을 먹을리가 없는것이다. 다시 사나이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순간적으로 눈길이 마주쳤다. 왼쪽 눈우에 사마귀가 있는 게뚜더기의 사나이, 세모난 매눈, 틀림없는 호수만이였다.

영산은 자기도 모르게 돌아서서 데리고 온 아이들을 두손으로 밀치며 가자고 하였다. 은산이와 금춘이는 갑자기 돌아서는 영산의 속심을 알수가 없어 멍하니 서있기만 하였다.

《총각들, 어서 들어오라구.》 안에서 나이지숙한 주인이 불렀다.

그러나 무작정 영산이는 금춘의 손을 잡고 빠른 걸음으로 장마당을 벗어났다.

《왜 그러니?》

금춘이는 종로가까이에 이르러서야 몹시도 덤비는 영산에게 물었다. 그러나 영산이는 말하지 않고 그저 빨리 가자고만 하였다. 그들은 한동안 잰걸음으로 걸어서 남산의 숲속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영산이는 가벼운 숨을 쉬며 작은 바위우에 앉았다. 은산이는 다 먹게 된 팥죽을 먹지 못하고 온게 아쉬운지 입만 다시였다.

《어찌된 일이냐?》금춘이가 심중해있는 영산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영산이가 말했다.

《거기에 그놈이 있었어.》

《호수만? 그안에는 더그레를 입은 사람이 없었는데.》

금춘이는 호수만이 평양의 감영에 있으니 반드시 더그레를 입고 손에는 륙모방망이를 들었으리라고 생각을 하였던것이다.

《더그레를 입은게 아니라 베감투를 썼어.》

영산의 눈에는 긴장한 빛이 어려있었다.

《그놈이 사령이라는데 왜 베감투를 썼겠니?》

금춘이는 모를 소리라는듯 여전히 머리를 기웃거렸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어.》

《잘못 보지 않았니?》 이번에는 은산이가 공연히 노루 제방귀에 놀라지 않았는지 해서 물었다.

그러나 영산이는 확신성있게 말하였다.

《잘못 본게 아니야. 왼쪽눈에 있는 게뚜더기의 모습을 내가 어찌 잊을수가 있겠니?》

《그런데 왜 베감투를 쓰고 팥죽을 먹을가?》

금춘이는 이상하여 머리를 기웃거리기만 하였다. 이때 은산이가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그놈이 관청의 밀정이 되여서 그러는게 아니야?》

은산의 추측은 틀리는게 아니였다. 호수만은 지금 감영의 기찰이 되여 대성산의 폭도들을 찾고있는중이였다.

감영에서는 며칠전 대성산습격전투가 성공은 하였으나 한편으로는 실패한것으로 간주하였다. 적지 않은 폭도들이 죽거나 잡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었다. 그들이 또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수 없는 일이였다. 감사는 불안하기도 하였고 화가 나기도 하였다. 어떻게 해서든지 나머지사람들을 잡아야 한성에 《승전》의 장계를 올리겠는데 그러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오승선은 이 일을 호수만에게 맡겼다.

《이놈, 이번 일이 안되면 너는 살인죄를 면할수 없어.》

호수만은 자기가 어떻게 해서나 나머지폭도들을 잡는데 공을 세워 살인죄를 면하고싶었다. 이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였다.

처음에는 한성으로 도망칠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 감사와 함께 내려온 책방의 말을 들으니 전번의 형조판서는 파직되여 자기의 고향으로 가버렸다는것이다. 그러니 한성에 갈 생각은 애당초 하지도 말아야 하였다.

호수만은 그러다가 장마당에 나가앉는것이 제격이라는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가 장마당에 나갈 생각을 한것은 전번 림원 영팔의 집에서 본 비단천생각이 났던것이다. 그것은 의주목사가 올려보내는 진상품으로서 보통물건과는 달랐다. 호수만은 그런 물건들이 아직도 폭도들의 손에 남아있을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한두사람도 아닌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아간단 말인가? 그는 대성산의 패당이 반드시 그 물건들을 팔러 장마당에 나타날것이라고 단정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형방의 사령이 아니라 베감투를 쓴 평범한 농군으로 변장을 하고 거리며 장마당을 돌아다녔다.

호수만은 이날 팥죽장사의 집에 들려 죽을 사먹다가 영산이를 본것이다. 물론 호수만은 영산이를 무턱대고 잡을 근거는 없었다. 그러나 전부터 손효숭의 집에 드나드는 영산에 대하여 이상한 감촉을 받았다.

호수만은 죽을 먹으면서도 항상 주위를 감시하였다. 이것은 그의 직업적인 습성이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처한 그로서 더욱 각성을 높이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는 총각아이 셋이 죽을 먹으러 들어오려다가 자기가 있는것을 보고 달아나는것을 매우 심상치 않게 생각하였다. 그는 신발을 꿰기 바쁘게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생각을 굴리던 호수만은 영산이가 반드시 손효숭의 집에 나타날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외성근방에서 기다리기로 작정하였다. 그러다가 호수만은 생각을 달리하였다. 그는 아직 점심때가 되려면 시간이 있는지라 형방에다 련락을 하여 몇명의 동료들을 데려올 생각을 하고 부랴부랴 감영으로 달려갔다.

영산의 일행은 호수만의 이런 흉계를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영산은 이미 여러번 죽을 고비를 겪어본 일이 있어 방심하지는 않았다.

《은산의 말이 맞을수도 있어. 그놈이 기찰노릇을 하느라고 그렇게 일부러 차려입을수도 있어.》

영산이가 이렇게 말을 하자 금춘이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렇게 생각된다면 그만두고 돌아가자꾸나.》

허지만 영산이는 그렇게 할수가 없였다. 오늘 손효숭을 만나야만 형님의 소식을 알수도 있고 또 이곳에 잡혀있는 사람들의 처지를 소산에 전할수도 있는것이다.

《지금 소산에서는 우리의 소식을 목마르게 기다리고있겠는데 어떻게 그냥 갈수가 있니.》

영산이가 이렇게 말하자 은산이는 걱정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내놓았다.

《그럼 어떻게 하겠니? 자칫하면 우리가 잡히지 않겠니?》

이 말에 영산이는 한동안 생각을 하다가 다시 자기의 주견을 내놓았다.

《이렇게 하자. 너희들은 밖에서 망을 봐라. 내가 혼자서 손효숭아저씨를 만나러 들어가겠다. 만약 아까 팥죽을 먹던 게뚜더기가 나타나면 너희들은 달아나거라.》

《그럼 너는 어떻게 하겠니?》 은산이가 여전히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때는 내가 적당히 하지.》

《어떻게?》 그는 사실 무슨 묘한 생각이 있은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영산이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건 없다. 너는 아까 그 게뚜더기를 보면 알수 있겠니?》

영산이는 금춘에게 물었다. 금춘이는 게뚜더기의 얼굴을 기억하고있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쩐지 영산의 앞에서 모른다는 말을 하는것이 거북하여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너희들은 밖에서 망을 봐라. 만약 그놈이 나타나면 즉시 나한테 알려라. 그러면 내가 빠져나갈수도 있지 않니. 그놈이 우리를 봤는지 못 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노루 제방귀에 놀란것처럼 겁을 낼게 없지 않니.》

이렇게 말한 영산은 은산이와 금춘이를 데리고 외성의 손효숭의 집근처에 있는 버드나무밑에서 기다리면서 망을 보게 하였다.

영산은 혼자서 손효숭의 집으로 들어갔다. 손효숭은 마침 점심을 먹으러 금방 집으로 돌아온 참이라 아직 점심상도 받지 않고있었다.

영산은 손효숭에게 자기들이 온 사유를 말하였고 장마당에서 호수만을 만난 이야기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손효숭은 머리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지금 그 애들이 어디에 있니?》

《버드나무밑에 있어요.》

손효숭은 지게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 다음 감영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였다.

《지금 시간이 바쁘다.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전하여라.》

영산은 손효숭이 하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리속에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말을 마치자 손효숭은 다시 지게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러다가 다급한 소리로 영산에게 말하였다.

《애들이 없어졌다. 어서 너는 뒤문으로 달아나거라. 여기 일은 걱정을 말고.》

영산은 영문을 알수 없었다. 그러나 손효숭의 다음의 말은 그를 화닥닥 놀라게 하였다.

《애들이 잡힌게 분명하다. 너는 빨리 가야 한다. 꼭 이 말을 전해라.》

손효숭은 애들이 없어진것은 분명 호수만의 작간이라는것을 간파한것이다. 영산은 손효숭의 말대로 뒤문으로 빠져 달아났다. 이 고장의 지리에 밝은 그는 골목을 누비며 달렸는데 어느 사이에 남산밑에 이르렀다. 그제야 영산은 은산이와 금춘의 일이 걱정되였다. 그는 다시 손효숭의 집근처로 가볼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 손효숭이 마지막으로 하던 말이 생각났다. 영산은 여기에는 손효숭이 있으니 별일이 없을것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영산이는 달리고달려서 다음날 새벽녘에 소산에 당도하였다.

안거금은 잠을 자지 못하고있다가 영산을 맞았다.

영산이가 가지고온 소식은 매우 긴급한것이였다.

《지금 평양성의 감옥에는 거의 백명이나 되는 대성산사람들이 갇혀있대요. 그런데 그 사람들을 래일모레면 모두 한성으로 압송을 한다고 하나이다.》 영산이는 이외에도 여러가지 손효숭의 말을 전하였으나 그의 귀에는 다른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한성으로 압송되여가는 사람들을 구원할것인가 하는 한가지 생각만이 머리속을 맴돌고있을뿐이였다. 안거금은 무춘에게 말하였다.

《나는 래일로 떠나야겠소.》

《어디로 말입니까?》

《몇사람을 데리고 평양에서 한성으로 통하는 길목을 지켜야겠소. 가만 내버려두면 필경 그들은 한성의 새남터에서 망나니칼의 신세를 면치 못할것이요. 그러니 어떻게 해서나 구원해야 하오. 여기 일은 무춘이 자네가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오.》

《내가 다치지만 않았다면 형님을 보내지 않을것인데.》

무춘이는 자기의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는 무춘이를 보며 안거금은 조용히 말하였다.

《너무 그러지 말라구. 여기에도 어차피 누가 남아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니 몸치료도 할겸 여기에 남아있으라구.》

안거금은 자기가 데리고갈 사람들을 스무명가량 선택한 다음 그들에게 래일아침까지 차비할 물건들을 하나하나 일렀다. 안거금은 처음에는 황해도와 순천으로 나간 사람들을 모두 모아들여 평양감옥을 들부실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무모한짓이라는 손효숭의 전갈이 있어 남으로 나갈 생각을 하였다.

일행은 다음날 아침일찍 떠났으나 중화까지밖에는 가지 못하고 거기서 묵기로 하였다. 중화에서 알아보니 평양에서 죄수를 압송하는 행렬이 아직 지나가지 않았다는것이다.

안거금은 다음날 아침 중화를 떠나갈 때 두 사람을 이곳의 려인숙에 남겨두었다. 그것은 평양에서 죄인을 호송하는 행렬이 나타나면 즉시에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안거금은 앞서 가면서 기습하기 좋은 자리를 선택하느라고 지형을 살피군 하였다.

그런데 좋은 지형이 나타나지 않았다. 안거금은 평양에서 압송하는 관군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것이 제일 답답하였다. 감영에서는 이미 자기들한테 여러번 죄수를 빼앗긴 일이 있어 절대로 적은 인원을 보내지 않을것이라는것은 명백하였다.

다음날 안거금은 평산에서 묵으면서 지대를 살펴보았으나 역시 신통치 않았다. 안거금은 같이 온 사람들을 농가에서 쉬게 한 다음 자기는 길가의 주막에 나와서 술을 한잔 사서 마신 다음 웃목에서 목침을 베고 누워 자는척 하면서 중화에서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과 주막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였기때문이다. 그런데 이날 점심참이 되여서 털벙거지에 더그레를 입은 두명의 군교들이 주막에 들렸다.

《여보, 따끈한걸로 두그릇만 주오.》

이렇게 말하는것은 구레나릇이 더부룩한 나이든 군교였다. 말씨가 투박한 평안도의 억양인것을 보아 평안도의 감영에서 오는게 분명하였다. 안거금은 여전히 웃목에 누워 자는척 하면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였다.

《거 머사니 감영에는 모두 돌대가리만이 앉아있는것 같아. 하루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멍텅구리들만이 모여있어. 그러니 다 잡은 대성산의 도적도 못 잡고 공연한 이 고생을 하는게 아니야.》

이 말을 들은 안거금은 자는척 하였으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것 같았다. 그들이 대성산의 사람들을 호송하는것과 관련이 있는 군교들이라는것이 명백하였다.

《입을 조심하라구.》

덥석부리가 말을 하자 좀 젊어보이는 사람이 대답을 한다.

《조심하기는… 대성산의 도적이 여기까지 따라오겠소?》

《그래도…》

이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엇을 드시려우?》

《여기야 만두국을 잘한다는데 그게 제격이지. 술도 좀 주우.》

잠시후에 음식이 들어왔다. 안거금이 돌아눕는척 하면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보니 둘은 김이 문문 나는 만두국을 앞에 놓고 술을 한잔씩 하고있었다.

《여기서 송도가 얼마나 되우?》 털보가 묻는 말이였다.

《이백리가 실히 된다고 합디다.》

《이백리가 넘는다. 그러니 래일 늦게야 들이대겠군.》 젊은이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저녁에 송도관리영에 사람이 있겠는지 모르겠군.》하면서 털보가 걱정을 하였다.

《번을 서는 당직이라도 있겠지요.》

젊은이가 잔을 비우고 말했다. 안거금은 이때야 잠이 깬듯 일어나앉아 기지개를 켰다.

《벌써 해가 이렇게 되였나?》

안거금을 본 두 사람은 자기들의 말을 그치고 예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마 그들은 웃목에 사람이 누워있는것을 보지 못한것 같았다. 후날 안거금은 그때 자기가 여기서 실책을 범하였다는것을 알았다. 안거금은 다만 그들이 왜 송도관리영에 가려고 하는지 알고싶었던것이다. 그는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말하였다.

《이제야 술이 깬 모양이로구만.》

《공복에 한잔 하였더니 취하는구만.》

《공복이여서가 아니라 우리 집 술이 좀 독하지요.》

주인은 은근히 자기 집의 술자랑을 하였다.

《고맙소. 저녁에 또 오겠소.》

이렇게 말하고 안거금은 가버렸다.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털보가 물었다.

《저 사람은 누구요?》

《어제부터 앞마을에 묵고있는 굴비장사군이지요.》

주인의 말을 듣고 털보는 무엇인가 한동안 생각하였다. 굴비장사치고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던것이다. 장사군이 대낮에 술을 먹고 낮잠을 잘리가 없는것이다. 털보가 그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생각을 하는데는 까닭이 있었다. 지금 그의 품속에는 송도관리영에 보내는 편지가 들어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성산의 사건이 매우 중하여 그들을 한성까지 무사히 도착시키라는 상감의 어지가 송도의 관리영으로 내려갔던것이다. 평안감사는 이 어지를 알고있었기에 송도관리영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것이다.

평양감영에서는 잘 무장한 쉰명의 무장인원을 편성하여 한성까지 압송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미 전번감사들이 빈번히 실패한 경험이 있어 평안감사 오승선은 도중에서 그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전날의 경험으로 보아 평양에서 한성까지 가는데는 쉰명의 잘 무장한 군사들만 따른다면 특별히 문제될 곳은 없었다. 다만 념려되는 곳이 청석골이였다. 그래서 오승선은 한성에 미리 말하여 청석골을 통과할 때까지는 송도관리영이 잘 보장을 하도록 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한성에 보고하였다.

감사는 이 편지를 송도관리영에 보낼 때 누구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것을 알고 믿을만 한 군교 두명을 선발하였다.

《그런데 왜 그러시우? 굴비라도 사려고 그러시우? 내가 흥정을 해드리지요.》

주막주인은 자기도 한몫 보려고 은근히 끼여들 자세였다. 그러자 털보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럴 사이가 없소. 빨리 떠나야 하우.》

털보는 굴비장사의 뒤를 캐여보고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다. 그러나 래일저녁까지 송도에 가야 하겠기에 일어나고말았다.

한편 자기네 사람들이 묵고있는 농가에 돌아오자 안거금은 주막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들도 떠나는것이 어떤가고 하였다. 그러자 중화의 소식도 모르고 떠나면 어쩌는가고 사람들이 말하여 하루밤을 더 묵어가기로 하였다.

이튿날 이른아침에 중화에서 사람들이 당도하였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쉰명의 군노사령들이 대성산사람들을 호송하고있다는것이다.

《미륵도 있던가?》

안거금은 무엇보다도 미륵의 일이 걱정되여 물었다.

《있지요. 그리고 순호며 영팔형님도 있습디다. 영팔형님은 잘 걷지 못하여 사람들이 부축을 하고있구요. 영팔형님만이 아니지요. 모두가 매를 맞아서 그런지 다리를 절고있었고 팔죽지를 뒤로 결박당하여 운신하기를 매우 어려워합디다.》

이 말을 들은 안거금의 눈에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올랐다. 모든것이 자기의 잘못이였다. 안거금은 너무도 안타까와 주먹으로 벽을 쳤다. 이것을 본 사람들도 한동안 말을 못하였다.

《형님, 잘못은 우리들에게 있나이다. 우리가 형님의 뜻을 잘 받들지 못하였지요.》

《꼭 그 사람들을 구원합시다.》

잠시후에 사람들이 옆에서 안거금을 고무하였다.

《고맙네. 힘을 합쳐 해보자구.》

안거금은 주먹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 과연 호송하는 군노사령들과 싸워 이길수가 있을가?》

안거금은 잠시후에 방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신통한 생각이 없었던것이다. 이럴 때 김룡철 그 사람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으랴. 그는 말그대로 호랑이 같은 사람이였다.

안거금은 사람들과 의논을 하였다. 그들은 자라목과 같은 협곡에서 공격을 하는게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모두 이곳의 지형이 생소하여 어디에 그렇게 좋은 자리가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안거금은 다시 주막에 나와 주인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며 넌지시 물었다.

《우리는 래일 남쪽으로 떠나가려는데 험한 자루목이 어디에 있소?》

《그건 왜 물으시우?》

주인은 얼근하여 물었다. 그러자 안거금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는 의례히 도적이 있기마련인데 걱정스러워 그러우.》

《원, 걱정두 팔자우다. 장정들한테 누가 달려들겠소? 혼자도 아닌데. 청석골과 같은데라면 몰라두.》

《청석골이 도대체 어디에 있소? 말은 많이 들었는데.》

안거금은 청석골의 지형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았다.

안거금일행은 다음날 아침 이른새벽에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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