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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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은 화려했지만 행군은 헐치 않았다. 유진수는 가닿게 될 종착점이 눈앞에 보이는듯 하여 서둘러 환성을 지른것이 후회되였다. 반성이 없는 인생은 전진이 없고 그것으로 종막을 내릴수도 있다는것을 깨달으며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예술지도사업의 허점들이 석연해지며 장차 해야 할 일의 막중함이 가슴을 압박했다.

이튿날 유진수는 주간계획에 따르는 신인배우들에 대한 예술심사와 성악배우들의 기량발표회를 뒤로 미루고 문예사상연구모임을 진행할것을 당위원회에 제기하였다.

부서별로 그리고 단위별로 모임이 진행되였다.

유진수는 지휘자들의 모임에 참가하였다.

지휘실장의 뒤를 이어 연단에 나선 진춘일의 토론은 유진수나 다른 지휘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자만과 자가도취, 당의 요구에 비한 안온한 창조활동… 이러한 내용이였는데 분석이 날카롭고 맵짰다.

평양에서 나서자란 진춘일은 음악적감수성이 빨라 4살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한다. 일요일이면 어머니의 손목을 잡아끌며 극장에 가군 했는데 어느날엔가는 허재복이 지휘하는 만수대예술단 관현악단공연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설줄 몰랐다. 허재복의 기백있고 신비스런 지휘도식에 완전히 반해버렸던것이다.

그때부터 소년은 지휘자가 되기를 꿈꾸며 더욱 열성껏 극장에 출입했다. 하여 어느날엔가는 여위긴 해도 온몸이 음악의 신비로 가득찬 허재복을 만날수 있었는데 이름난 지휘자는 소년을 기특히 여겨 지휘의 묘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에게는 허재복의 수표가 있는 보풀이 일고 탈색된 오선지가 있다. 그때문인지 알수 없으나 나이는 젊지만 개성이 뚜렷하고 음악에 대한 사랑이 열렬한 진춘일은 유진수에게 남다른 친밀감을 주었다.

앞선 세대의 음악재사들과 은근히 키돋움하는것은 음악가라면 누구라없이 가지게 되는 경쟁심리였다. 유진수도 다를바 없었다. 부언컨대 결코 그들과 견줄수 있다고 생각지 않지만 그들을 따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것만은 사실이였다.

김원균이나 리면상과 함께 김옥성은 유진수가 존경하는 음악선배였다. 유럽이 자랑하는 모짜르트나 베토벤, 슈만이나 와그너와도 당당히 어깨를 겨룰수 있고 로씨야의 글린까나 챠이꼽스끼도 결코 그를 앞설수 없다고 우길만큼 김옥성에 대한 존경심이 컸다.

김옥성이 창작한 곡들은 폭과 깊이에 있어서 동방고유의 선률에 민족성을 담은것으로 하여 세계적인 명곡들로 당당히 손꼽힌다는것이 유진수의 주장이였다. 하여 음악가로서의 김옥성은 유진수의 창작행로에서 언제나 살아있는 선배였고 스승이였다.

음악재사를 직접 만나본 일은 없었다. 중좌령장을 단 김옥성이 인민군협주단에서 창작생활을 할 때 유진수는 그의 노래를 사랑하는 한 병사에 불과했다. 그처럼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를 바라며 음악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김옥성이 이미 음악가동맹 부위원장으로 소환된 뒤였다. 그를 만나보는것이 소원이였으나 음악의 거성앞에 나서기에는 자기라는 존재가 너무도 초라하여 끝내 결심을 내리지 못했다. 드디여 첫 노래를 만들어 그의 지도를 받자고 보니 불치의 병을 앓고있던 그는 이미 세상을 하직하였다.

그러나 노래는 남았다. 수령의 기억속에, 인민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선률로 남았다. 관현악 《결전의 길로》, 관현악과 합창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교성곡 《압록강》을 감상할 때마다 유진수는 아득한 높이에서 굽어보는 그의 존재를 의식했고 힘이 진토록 달려야 할 자신을 자각했다.

바로 그런 음악선배들앞에 부끄럼없이 인민군협주단의 예술창조사업을 이끌자고 했는데 서둘러 환상적인 기쁨에 도취되여 근래에는 자기를 잊어버린것이다.

모임이 끝나 복도에 나서는데 진춘일이 좀 만날 일이 있다면서 급히 그의 뒤를 따라섰다.

《이번에 장군님께서 지적하신 문제의 하나가 배합관현악이 아닙니까. 그래서 총보를 다시 연구했는데 확실히 민족악기가 약합니다.》

《민족악기가?…》

《예, 있어야 할 연주가들이 없는데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 대연동지를 부업지에서 소환했으면 합니다. 지휘실장동지도 같은 의견입니다.》

소환?… 쉬이 될수 있을가?… 옳은 제기였으나 민족악기생산문제를 적극 떠밀고있는 정치부장을 어떻게 납득시킬지 묘연했다.

사실 민족악기연주에서 핵심으로 활약하던 김대연이 부업지에 나간것부터가 비정상이였다. 역시 대중의 눈은 밝았다.

김대연은 자강도 랑림군의 심산유곡에 태를 묻은 산골태생이였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피리를 만들어 파는 삼촌에게서 우리 글 먼저 퉁소 부는 법을 배웠고 그때부터 피리와 인연을 맺게 되였다고 한다.

음감을 틔우기 위해 눈을 싸매고 길가에 나섰다가 맹인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그런 과정에 숨소리만 듣고서도 상대를 가려내는 재간을 터득했는데 그 비상한 노력의 대가로 도예술단 연주가로 소환되였고 그때부터 신비한 단소연주가로 이름났다. 하여 정규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으며 쉬이 인민군협주단 연주가로 임명될수 있었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5음계악기인 피리로 12음계의 현대음악을 연주한다는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였다. 그러나 그때 벌써 김대연은 자체로 개량하여 만든 12음계피리로 연주를 보장했다.

1960년대 초엽 음악분야에 틀고앉은 완고한 복고주의자들과 맞섰던 음악가가 20살도 채 안되는 홍안의 김대연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놀란다. 그러나 사실이였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소?》

《중졸입니다.》

《중졸인 주제에 동무가 뭘 안다고 전통적인 민족악기에 감히 손을대? 전통을 거부하자는건가?》

《말씀을 낮추십시오.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시였습니다. 수령님의 로작에 다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어디에 대고 감히…》

《당신들이 싫어해도 대중이 좋아합니다. 우린 언제까지나 퉁소를 불수 없습니다.》

복고주의자들은 김대연의 부인할수 없는 당당한 론거에 더는 고집을 부리지 못했고 홍안의 젊은이는 일약 민족악기분야의 혁신인물로 소문났다.

《내가 도예술단에 있을 때였소. 하루는 내가 녀가수의 노래를 피리로 반주하게 된 일이 있었지. 1절을 넘긴 다음 가수가 하는 말이 반주때문에 음정이 헝클어진다면서 반음을 낮춰달라는게 아니겠소? 난 5음계악기로는 반음을 낼수 없다고 반박했소.

가수는 군말없이 클라리네트연주가에게 반주를 부탁하더군. 모욕을 참을 길이 없었소. 하지만 내가 받은 모욕쯤이야 뭐라오? 우리 민족악기가 천대받았단 말이요. 피리를 집어던지고 단장한테 달려갔지. 난 못하겠다, 민족악기를 가지고 반음 높이라 낮추라 무리하게 요구하는거야 우리의것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고 입이 하자는대로 다 뱉았소.

사람좋은 단장할아버지가 한참 듣다가 말하더군.

대연이, 그래서 수령님께서 민족악기를 개량하라고 교시하신것이 아닌가. 그걸 누가 하겠소, 동무가 해야지. 바로 민족악기를 다루는 동무자신이 해야 한단 말이요. 가서 수령님의 교시를 연구해보라구.… 그때부터 난 이 문제를 바로 내가 해야 할 과제로 정하게 되였소.》

김대연은 분명한 민족악기전문가였다. 지금이야말로 연주가로서의 그의 존재가 필요한 때였다. 유진수는 김대연을 상기시킨 진춘일이 고마왔다.

진춘일과 헤여져 사무실로 돌아온 유진수는 사업수첩을 펼쳐 김대연의 이름을 크게 써놓고 물음표를 달아놓았다. 부업지에서 만났던 색날은 군복차림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남이야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열성껏 자기가 택한 길을 걷는 그를 어떻게든 설복시켜야 했다. 우선 전상근단장부터 만나는것이 필요했다. 며칠전 민족악기생산에 필요한 목재구입으로 자강도에 들어간 정치부장도 단장만 리해하면 얼마든지 양보할수 있을것 같았다.

전상근단장의 사무실에 들어서니 단장이 설명순실장과 한창 담화를 하고있었다.

유진수는 설명순의 앞에서 이야기를 꺼내기가 불편스러웠다. 전승절공연을 위해 이른새벽에 기동하던 때의 일이 뇌리에 되살아나며 불쾌감을 자아냈다.

그날의 행군에서 예상치 않았던 난관이 조성된것은 설명순실장의 고집때문이였다. 인원과 기재를 안전하게 호송하자면 뻐스가 한대 더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남아있는 차래야 기관상태가 시원치 않아 가끔 수리소신세를 지군 하는 중형뻐스밖엔 없었기에 유진수는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했으나 설명순은 부단장을 무시하고 단장한테 문제를 상정시켜 끝내 뻐스 한대를 더 보강하게 했다.

그 뻐스가 로상에서 말썽을 일으켰던것이다. 기관고장이여서 다른 차에 기재들을 옮겨싣지 않으면 안되였다. 예정된 도착시간을 지키지 못할가봐 모두가 사색이 되였다. 설명순은 얼굴이 새까맣게 죽어 아무 말도 못했다.

그때일을 생각하면 유진수는 지금도 등골로 땀줄기가 솟군 한다. 설명순실장에게 더는 지휘부일에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하고싶었다. 그러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이요? 기색이 좋지 않구만.》

전상근이 걸걸한 목소리로 자리를 권했다. 설명순이 유진수의 달갑지 않은 눈치를 느꼈는지 몸을 일으켰다.

《공연활동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가만, 공연문제라면 실장동무도 함께 들어보는게 좋겠소.》

유진수는 응대하지 않았다.

설명순이 그쪽을 일별하며 바쁜 일이 있어 먼저 나가보겠다고 했다.

《바쁘면 공연문제보다 더 바쁘겠소? 자, 앉소. 함께 들어봅시다. 구두쟁이 셋이 모이면 제갈량보다 낫다는 말도 있지 않소.》

전상근은 유진수의 속대사를 모르지 않겠지만 부러 외면하는듯 했다. 설명순이 이쪽을 건너다보며 옹송그레 앉았다.

해서야 유진수는 그게 좋겠다면서 의자를 끄당겼다.

《단장동지, 우린 지금 중요한것을 놓치고있습니다. 대렬을 보강하는 사업도 사실 공연활동을 더 잘하자는건데 핵심적인 동무들을 놓치고 그냥 사람타발만 하고있습니다.》

전상근이 숱진 눈섭을 치떴다. 무슨 뜻인가를 해석해달라는 의미로 설명순을 바라보았다.

《미안합니다. 대연동무때문에 찾아왔습니다.》

진수는 자기가 좀 흥분되였다는것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 동무를 소환해야 할것 같습니다.》

전상근이 사업수첩을 다독였다. 설명순은 깎아만든 나무조각처럼 무표정한 자세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 동무가 없다고 당장 연주를 못하는것도 아니겠는데… 왜 갑자기 그런 문제가 제기되였소?》

유진수로서는 딱히 설명하기 난감했다. 단장이 전문음악분야의 세부적인 요소까지 다 리해하지 못하는것이 안타까왔다. 설명순실장이 그 리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는 현지공연때의 일때문인지 침묵을 지켰다.

《민족악기를 연주하는데서는 대연동무를 대신할 사람이 없습니다. 연주활동에서 연주가 한사람이 차지하는 몫이 적지 않습니다. 지휘자들도 배합관현악반주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자면 대연동무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큰 소가 나가면 작은 소가 멍에를 지기마련인데 그러니 결국 우리에겐 작은 소도 없다는 소리가 아니요. 잘 리해되지 않는구만.》

유진수는 그것이 바로 전문가들과의 차이라고 말할번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것은 아니였다.

《공연활동을 위한 원칙적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유진수의 어조가 좀 위혁적으로 들렸던지 전상근은 허허 웃었다.

《사실 정치부장동무가 통나무를 싣고오면 시험공정을 위한 건물부터 짓자고 했는데… 실장동문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유진수는 긴장해졌다. 그에게서 어떤 말이 튀여나올지 은근히 걱정되였다.

설명순이 뜨직뜨직 입을 열었다.

《부단장동지의 제기가 옳은것 같습니다. 민족악기전문가인 대연동문 응당 공연활동에 참가해야 합니다. 지금 능력있는 연주가가 부업지에 나가있는데 적재적소가 아닌것 같습니다.》

유진수는 안도의 숨이 나가는 동시에 실장을 포옹하고싶은 격정을 느꼈다.

《하지만 또 대연동무만큼 민족악기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생산문제를 다를 사람이 없습니다. 악기생산을 내밀자면 대연동무가 힘들더라도 이쪽저쪽에 관심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물론 기지건설에는 다른 동무가 나가게 되겠지만 실무적인 문제는 꼭 대연동무와 토론해야 합니다.》

설명순의 말에 유진수는 손을 홱 내저었다. 역시 실장은 자기의 견해를 온곱게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조건부를 내걸고있었다. 너무했다. 왜 자꾸 그런 식으로 제동을 거는지 리해되지 않았다.

《실장동지, 우리는 지금 공연활동의 질적문제를 두고 론합니다. 우리는 예술단체이지 생산단위가 아닙니다. 단장동지가 시험공정이라고 간단히 언급했는데 그 시험공정이 기본공정으로 이어지고 그러느라면 생산계획과 인원문제에도 신경을 써야 하겠는데 이런 문제들이 공연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있습니까.》

설명순의 한일자로 다물린 입언저리에 가벼운 웃음이 스치는것처럼 느껴졌다.

《우리 군인들이 리용할 민족악기인데 왜 그 일을 남에게 떠밀겠습니까. 우리가 맡아야지요.》

《실장동지…》

유진수는 저도 모르게 의자에서 일어섰다.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바라시는 공연을 제대로 보장 못하고서야 우리가 무슨 존재명분이 있습니까. 솔직히 이제껏 인민군협주단의 공연활동이 제대로 되지 못한건 내자신의 립장이 투명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인간관계를 앞세우면서 원칙을 양보하다나니 당에서 요구하는 높이에서 공연활동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야 공훈합창단예술사업을 책임지고 보장해야 할 지도일군들이 아닙니까.》

설명순이 얼떠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부단장동지…》

무슨 말인가를 해야겠으나 질정하지 못한듯 마른침을 삼켰다.

《…다 건설적이고 좋은 의견들을 론의하는 마당인데 흥분을 앞세워서야 안되지요.》

높지 않은 목소리였으나 비수처럼 유진수의 속을 찔렀다. 역시 설명순실장은 몸은 체소해도 무게있는 창작가라는 생각이 은연중 속갈피에 갈마들었다.

전상근이 책상서랍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한대씩 피우면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담배곽에 손을 가져가는 사람이 없었다.

《부단장동무 말을 듣고보니 나도 채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오. 가만 보니 이 동네에서는 모른다고 물러서면 따돌림을 받기가 일쑤더군. 그래서 내 열성껏 배우는거요.》

전상근의 말에 팽배하던 분위기가 약간 풀어졌다.

《정치부장동무가 돌아오면 대연동무를 소환하는 문제를 토론합시다. 그러나 민족악기생산을 방임해선 안된다고 보오. 그건 나와 정치부장동무가 맡겠으니 부단장동무나 실장동문 창작창조문제에 전심하오.》

유진수는 자기가 괜히 열을 냈다고 생각했다. 민족악기생산문제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아무리 피타게 설명해도 계속 확산되는것이다. 갑자기 피로를 느끼며 허거프게 웃었다.

《참, 부단장동무, 전에 말하던 다른 예술단체들에서 인재를 받아들이는 문제는 진척되고있소?》

전상근이 기대감이 어린 어조로 물었다.

《생각은 뻔한데 시간이 나질 않아서…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듣자니 한규일선생이 베를린국제음악토론회에 간다는 소리가 있던데 빨리 만나보오.》

유진수는 단장이 관심해주는것이 고마왔다.

《저- 우리가 지내 욕심부리는게 아닐가요? 거기두 우리와 마찬가지로 예술사업이 주업인데 무턱대고 손을 내민다는게…》

또다시 설명순이 끼여들었다. 하지만 눈길은 단장에게로 향해있었다.

《실장동지, 전 실장동지가 왜 그렇게 좁게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진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책상우에 올린 두손을 꽉 맞잡았다. 줌안에 땀이 질벅했다.

《당에서 우리 공훈합창단대렬을 국가적인 조치로 꾸려준지가 이태가 지났습니다. 호기있게 노래부르던 배우들도 힘들게 따라서는데 요구성은 점점 높아집니다. 당의 의도에 맞게 공연활동을 보장하자면 빨리 력량을 보강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또 당에 손을 내밀겠습니까?》

유진수의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갈리였다.

《…사실 생각이 많습니다. 이전 쏘련의 알렉싼드로브명칭 군대협주단이 얼마나 요란했습니까. 쏘련사람들이 전쟁을 이긴 다섯가지 요인중의 하나로 꼽은것이 알렉싼드로브가 창작한 정의의 싸움이고 그 노래를 부르며 자기의 존재를 과시한 협주단인데 나라에서 돌봐주지 않으니 어떻게 되고있습니까. 지휘자였던 쎄르게이 쎄르게예위치 쥬보브낀을 알지요?》

설명순이 눈을 슴벅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싼드로브의 제자라고 하는 쥬보브낀은 이전 쏘련의 군대음악계의 중진으로 알려진 사람이였는데 여간 코대가 높지 않았다. 지휘도 하고 작곡도 하며 연주도 하는 이를테면 음악가로서 다방면적으로 준비되여있다는 그는 우리 나라를 방문한 기회에 인민군협주단 창작가들과 담화를 하면서 쏘련사람들은 군대협주단의 합창만으로도 세계를 점령할수 있다고 했었다.

《…그 사람도 지금 베를린필하모니악단에서 연주한다고 합니다. 돈을 위해 존엄과 재능을 다 팔았지요.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라형편이 어렵지만 최상의 창작조건과 생활조건을 보장받고있습니다.》

설명순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잔주름이 엉킨 눈가에 서글픈 미소가 어렸다.

《부단장동지, 옳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란 자식이 다 커서도 젖을 달라고 요구할수야 없잖습니까. 이젠 제발로 걸어나갈 때가 되였다고 봅니다.》

유진수는 실장과 자꾸 평행선을 긋게 되는것이 안타까왔다.

《자자, 그만합시다. 당위원회에서 토론해봅시다.》

전상근은 바라지 않던 일이 눈앞에서 벌어진것이 불만스러워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창문을 활짝 열어제끼자 풀잎냄새를 실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실장동무, 그 문제는 부단장동무에게 맡깁시다. 난 능력있는 인재들을 데려오는게 나쁘지 않다고 보오.》

설명순이 응대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만 실장동무, 그러니 래일 떠나겠다는거지요?》

전상근이 물었다.

《예, 강계로 가는 차편이 있습니다.》

그제서야 유진수는 설명순이 출장을 제기했다는것을 상기했다. 현실체험을 하는겸 강계에 있다는 조혁의 애인을 만나보겠다는것이다. 운명이 이미 정해진 녀자를 만나는것이 과연 옳은 처사이겠는지, 혹시 조혁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지는 않겠는지 걱정되였다.

《부단장동지, 내가 지나쳤나봅니다.》

설명순이 나직이 말했다.

《제가 되려 미안합니다. 나이도 있는데 건강에 주의하십시오.》

설명순을 눈으로 바래운 유진수는 단장에게로 돌아섰다.

《단장동지, 안됐습니다.》

《음악가들이란 원체 사고가 날카로운지 무슨 창작토론을 해도 목소리를 높이더구만. 참, 부단장동무, 서윤호동무가 오늘 몸이 불편해서 미학토론회에 참가하지 못했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예, 치료를 좀 받아야겠다면서 조퇴를 받았습니다.》

유진수는 문득 서윤호의 집에 아직 가보지 못했다는것을 의식하며 얼굴을 붉혔다. 정치부장과 약속한지도 보름이 썩 지났는데 여적 새까맣게 잊어먹고있은것이다. 사업에서 빈틈이 없고 깐깐하다고 평가받는 자기에게 그런 공백이 있다는것이 놀라왔다.

《단장동지, 오늘 밤에 가보겠습니다. 너무 바쁘게 맴돌다나니 그만…》

전상근이 무중 반가운 기색을 지으며 자기가 식료품과 약품을 준비한것이 있으니 잊지 말고 가져가라고 일렀다.

《…저녁켠에 총정치국에서 회의가 있어서 끝난 다음에나 갈 생각이였는데 좀 늦어질것 같구만.》

《마음놓고 일을 보십시오.》

《그럼 부탁하겠소.》

유진수는 자기를 제때에 깨우쳐준 단장이 고마왔다.

 

×

 

유진수는 창조형상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다 처리한 늦은저녁에야 선구자동에 있는 서윤호의 집으로 향했다. 좀 늦기는 했어도 무엇인가 한 인간을 위해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웠다.

그의 집앞에 이르러 문을 두드렸으나 응답이 없었다. 옆집의 중년녀인이 문밖으로 얼굴을 빠금히 내밀더니 집이 빈것 같다고 알려주었다.

거의나 한시간을 기다렸으나 서윤호는 나타나지 않았다. 혹시 어데선가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듯 한 환각에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냥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리가 점점 뻣뻣해났다. 지루할 지경이였다.

별수없이 옆집문을 두드리고 식료품과 약품이 들어있는 구럭지를 넘겨주며 집주인이 오면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어디서 왔다고 할가요?》

녀인이 잠기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부대에서 왔댔다고 알려주십시오. 그럼 수고많겠습니다.》

서윤호를 만나지 못한것이 아쉽긴 했으나 헛걸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어쨌든간에 빚진 마음을 털어버릴수 있게 된것이다.

계단을 내리는데 밑에서 두런두런하는 말소리가 가까와졌다. 목소리를 들으니 서윤호인듯 했다. 때늦게라도 만날수 있다는 반가움에 안도의 숨이 훌 나갔다.

서윤호의 껄껄 웃는 소리에 해맑은 목소리가 뒤따랐다. 딸이였다.

서윤호가 딸의 부축을 받으며 계단을 오르고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목소리가 거나했다. 식당이요, 로친이요 하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눈길이 미치지 않는 안쪽복도로 돌아서며 그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보지 말았어야 할 서윤호의 리면과 맞다들렸다는 불쾌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힘들게 오고 내껏 기다린것이 후회되였다. 서윤호와 딸의 발자국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을 때에야 진수는 다시 층계를 내렸다.

서윤호, 음악가로서 군가집단과 함께 걸어온 그의 인생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아마 일찌기 상처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오랜 병마에 포로되여 정신적안정마저 잃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그의 존재는 다른 선창자들과 함께 부각되였을것이다.

이미 자기를 낡았다고 인정하며 인생에 서둘러 종지부를 찍으려는것이 아닌지 걱정되였다. 차라리 인민군예술학원과 같은 교육기관에서 일하는것이 옳지 않겠는가 생각되였다.

(오히려 그것이 좋은 선택일수 있다.)

했으나 유진수는 트지한 심경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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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서 《불멸의 향도》]군가뢰성 (제3회)
[총서 《불멸의 향도》]군가뢰성 (제4회)
[총서 《불멸의 향도》]군가뢰성 (제5회)
[총서 《불멸의 향도》]군가뢰성 (제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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