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1

 

잔등에 배낭을 메거나 보짐을 머리우에 올려놓은 사람들이 울창한 수림속을 헤치고있었다.

일행은 스무명가량 돼보였는데 이마에 광목수건을 질근 동인 중늙은이도 있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는 총각애도 있었다. 그리고 노루꼬리만큼 짧은 행렬뒤에는 배가 남산만 한 임신부가 뚱기적뚱기적 따라가고있었다.

가둑나무들이 허리를 치는 산등성이에 올라선 일행은 《나 다리 아파!》 하는 애된 말소리가 들려오자 무춤무춤 멈춰섰다.

사람들의 눈길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칠것처럼 아래입술을 비죽거리고있는 대여섯살 난 총각애한테 쏠렸다.

《에구, 어른들도 힘든데 어린것이 오죽하겠어요?》

《그럼 어디에 맡기고 올게지.》

《애엄마가 잘못되였는데 누구한테 맡긴다는거예요?》

《허, 그렇지.》

다들 입을 쩝쩝 다시는데 한손에 보퉁이를 들고 다른 손에는 총각애의 손목을 잡고있던 젊은 남자가 슬슬 아이를 얼렸다.

《우리 영남이 용치. 아까처럼 또 노래를 부르렴.》

《싫어, 싫어.》

처음 산길을 떠났을 때는 재미나서 제법 뜀박질까지 하더니만 이젠 어지간히 맥을 뽑았는지 땅바닥에 폴싹 주저앉은 총각애는 작은 주먹으로 무릎을 콩콩 두드렸다.

애처로운 눈길로 아들애를 바라보던 총각애아버지는 할수 없었던지 등을 돌려댔다.

《자, 업혀라!》

총각애는 기다렸던듯이 아버지의 넙적한 잔등우에 깡충 뛰여올랐다.

《꼭 붙잡아라.》

《야, 좋다!》

환성을 올린 총각애는 아픈 발로 험한 산속길을 걷지 않게 된것이 너무 좋아서 발쭉발쭉 웃었다.

총각애를 얼리느라 잠시 멈춰선 틈에 다리쉼을 한 사람들은 또다시 터벅터벅 걷기 시작하였다.

귀청을 찢는 총소리가 몰방으로 터진것은 그때였다.

따쿵, 따따쿵-

뚜룩, 뚜루룩!-

졸지에 당한 일이여서 사람들은 물웅뎅이에 모인 싸그쟁이마냥 와글거리기만 하였다.

그러는데 앞쪽에서 처녀의 당돌한 목소리가 날아왔다.

《엎드리세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땅우에 넙적넙적 엎드렸다.

핏, 핏핏-

부러진 나무가지들이 뚝뚝 떨어지고 바위를 때리고 튀여난 탄알들이 바싹 마른 가랑잎우에 떨어져 그물그물 연기를 피워올렸다.

《여러분!》

겁을 먹고 땅에 머리를 틀어박고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쳐들었다.

방금전 엎드리라고 소리친 처녀가 자신감이 넘치는 눈길로 그들을 둘러보았다.

《제 말을 들으세요. 제가 이제 구령을 치면 저기로…》

사람들은 그가 손짓하는 동쪽수림에 눈길을 모았다.

《…냅다 달려가세요. 자, 하나둘… 뛰자요!》

와닥닥 자리를 차고 일어난 그들은 둥지를 벗어난 새들마냥 와르르 달려갔다.

뒤미처 총탄들이 쏟아졌으나 송곳 하나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한 혼성림은 든든한 몸으로 피신자들을 막아주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여가던 사람들속에서 한 녀인이 무엇에 발을 걸채였는지 앞으로 넘어지며 보기 흉하게 나딩굴었다.

《에구머니!》

죽음이 발뒤축을 바싹 물고 따라오는지라 누구도 임신부가 넘어진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통에 혼자 떨어진 녀인은 두팔을 땅에 뻗치고 움씰움씰 모지름을 썼지만 종시 일어나지 못하자 울상을 지었다.

따쿵, 따따쿵-

앞쪽에서 총탄이 날아들자 임신부는 창황중에도 불룩한 배를 두손으로 감쌌는데 비록 자기는 죽는다고 해도 배속의 아이만은 살리고싶은 모성의 본능이 공포에 질린 눈동자에서 번뜩이고있었다.

《아주머니!》

사람들이 죽기내기로 사라진 수림속에서 단발머리처녀가 총알처럼 달려나왔다.

영낙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고있던 녀인은 처녀를 보자 그만에야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정, 정치공작대원동무, 흐흑!-》

정치공작대원! 그렇다. 대오에서 떨어진 임신부를 찾아 되돌아온 단발머리처녀는 ㅅ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정치공작대로 파견되였던 한정아였다. 그는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자 자기를 따라나선 마을사람들과 함께 북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아주머니, 이러고있으면 어떻게 해요. 자, 내 손을 잡아요!》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임신부를 일으켜세운 한정아는 질질 끌려오는 그를 데리고 사람들이 사라져버린 숲속을 향하여 힘겹게 걸어갔다.

안깐힘을 다하여 겨우 숲속에 들어선 그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있는데 앞쪽에서 한 남자가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한정아는 임신부를 부축한채 한팔을 쳐들었다.

《아저씨, 어딜 가세요?》

《저기 내 배낭이… 배낭이…》

그 사나이가 가리킨 곳은 좀전에 한정아네가 엎드려있던 곳이였다.

아마 혼맹이가 빠져 뛰여가다가 그만 나무가지에 걸려 배낭이 벗겨진 모양이다.

《정신있어요?》

하지만 처녀의 팔을 뿌리친 사나이는 마구 뛰여갔다.

《서분아주머니, 이젠 저쪽으로 가세요.》

임신부를 숲속으로 떠밀어보낸 한정아는 오던 길을 되돌아 달려가며 소리쳤다.

《아저씨, 돌아서세요.》

배낭에 온 정신이 쏠린 사나이는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다.

도무지 제정신을 가진 사람같지 않다.

숨이 턱에 닿아 뛰여간 한정아는 마치 잃어버렸던 보물을 찾기라도 한듯 배낭을 정히 어루만지는 그를 보자 억이 막혔다.

《뭘 하고있어요? 빨리 피하지 않구.》

그 경고를 증명이라도 하듯 앙칼진 소리를 지르며 날아든 총탄들이 주위에 푹푹 박혔다.

《어구구!》

한정아는 어물거리는 그의 손을 와락 잡아당겼다.

《어서 일어나세요. 어서요!》

그제야 사나이는 황황히 일어나더니 배낭을 둘러멨다.

《자, 어서 뛰자구.》

한정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자기때문에 지체되였는데 오히려 제편에서 재촉하고있으니 이런 사람을 두고 뭐라고 해야 하는가.

그를 데리고 안전한 숲속으로 들어선 한정아의 눈앞에 며칠전의 일이 불쑥 떠올랐다.

그날 일행은 경사급한 산릉선을 오르고있었는데 맨뒤에서 게사니걸음을 하고있던 서분이가 다가오더니 이렇게 속살거렸다.

《아까부터 수상한 남자가 우릴 계속 따라와요.》

뒤를 돌아보자 웬 사나이가 스무발자국정도 간격을 두고 어기적어기적 따라오고있었다.

서분이더러 잠간 서있으라고 이른 한정아는 사나이를 향해 마주 걸어갔다.

수풀을 헤가르며 돌진하듯 걸어오는 처녀를 보자 그 사나이는 기가 질렸는지 무춤 멈춰섰다.

《아저씬 누구세요?》

《…》

《어째서 우릴 따라오는거예요?》

《…》

사나이의 얼굴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것을 본 한정아는 그가 귀를 듣지 못하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인지 수상한 사람이라는 경계감은 사라지고 측은한 마음이 갈마들었다.

할수없이 그는 사나이에게 어디로 가는 길인가고 손시늉으로 물었다.

사나이는 배낭을 훌쩍 추스르더니 석쉼한 목소리로 《난 북으로 가는 길일세.》 하고 대답하는것이였다.

아이참, 난 또 벙어리인줄 알았네.

금시 터져나오는 쓴웃음을 목구멍으로 삼켜버린 한정아는 다기차게 재촉하였다.

《그럼 떨어지지 말고 바싹 따라오세요.》

그가 따라서는것을 본 한정아는 서분이를 부축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몇걸음도 옮기기 전에 뒤에서 《어구구!》 하는 비명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그 사나이가 풀숲에 떨어진 배낭을 움켜잡고 이리저리 살피고있었다.

《아저씨, 무슨 일이예요?》

그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꿍꿍거리기만 하였다.

《제가 도와드릴가요?》

갈고리눈을 치뜬 사나이는 처녀의 손을 툭 밀어버렸다.

한정아가 무안해하는데 옆에 있던 서분이가 살그머니 손을 잡아끌었다.

《그냥 가자요. 싫다는데.》

한정아도 속이 좋지 않았지만 듣기 좋게 일렀다.

《우린 먼저 가겠어요.》

사나이는 끊어진 배낭끈을 잇느라고 고개도 들지 않았다.

한동안 걷다가 혹시나 하고 돌아보니 그는 아까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느릿느릿 따라오고있었다. …

도대체 배낭속에 무슨 《보물》이 있기에 늘 말썽을 일으킬가?

앞으로 짬이 생기면 꼭 알아봐야겠다고 한정아는 생각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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