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2

 

고요한 정적속에서 태평스레 조을고있던 수림이 벌컥 뒤집혔다.

헉헉거리는 숨소리, 쇠붙이가 부딪치는 소리, 엄한 구령소리…

수림은 결코 예고없이 나타난 래방자들을 친절하게 맞아들이지 않았다.

깔끔한 침엽수들은 바늘처럼 뾰족한 잎사귀를 쳐들고 사람들의 얼굴과 목덜미를 콕콕 찔렀고 잡관목은 그들의 정갱이에 매달려 요동쳤다.

앞에 나무가 있건 바위가 있건 숲속을 꿰지르며 곧추 달리는 련대의 선두에 키가 후리후리한 고급군관이 서있었다.

나이는 스물대여섯살쯤 나보이고 적들의 81미리박격포탄도 뚫지 못할만큼 앞가슴이 든든한데 그가 바로 지난해 5월초 《국군》 한개 대대를 이끌고 공화국으로 의거한 표무강이다.

그때로부터 한해가 지난 오늘 그는 몰라보게 변하였다.

평양에 입성할 당시 시민들의 환대를 받고 감격하여 눈물을 쏟았던 이전 《국군》소령의 어깨우에는 인민군상좌견장이 무게있게 달려있고 포연에 끄슬린 길쑴한 얼굴에도 로숙한 지휘관의 위엄이 어려있었다.

…한주일전 경상북도 안강계선에서 련대를 지휘하던 표무강은 련대정찰로부터 린접부대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곳에 련대만 남았다는 뜻밖의 보고를 받았다.

생각이 착잡해졌다.

이틀전부터 련대는 전선사령부와의 련계가 두절되였다. 무선수들이 《대동강》을 찾고 또 찾았으나 종무소식이다. 지금까지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어째서 《대동강》은 호출에 응하지 않는가? 그동안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건 아닐가? 사실이 그렇다면 그 중대한 변화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정찰소대장이 돌아가자 그는 구분대장들을 호출한 다음 공병들이 통나무와 포탄상자를 뜯어서 만든 군용책상주위를 거닐기 시작하였다.

혹시 적들을 포위환에 끌어들이기 위한 아군의 전술적후퇴가 아닐가? 아니다. 그럼 어째서 우리한텐 아무 련락도 없는가? 설마 《대동강》이 우리 련대를 잊은건 아닐가?

구분대장들이 하나, 둘 모여들고있을 때 웬 낯모를 군관이 비칠거리며 엄페부에 들어섰다.

머리에 둘둘 감은 붕대, 온통 피칠갑을 한 군관복…

《동문 누구요?》

《전선사령부… 련락… 군관입니다.》

《련락군관이라구?》

반가운 나머지 표무강은 련락군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 련대장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련대를 찾아오던 길에…》

힘들게 대답하던 련락군관은 더이상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았다.

《아니, 련락군관동무!》

표무강은 그를 부축하여 감시창과 면하고있는 통나무침대에 눕혔다.

《…적들을 만나서 그만… 같이 오던 동무는 전사하고 나만…》

자기를 엄호하느라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바쳐싸우다 희생된 전우를 그려보듯 련락군관의 두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동안에도 그의 앞가슴은 피로 물들고있었다.

련락병이 품속에 개인붕대를 통채로 밀어넣었으나 피는 멎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

붕대를 또 꺼내드는 련락병을 손짓으로 제지시킨 련락군관은 힘들게, 그러면서도 조급하게 말을 이어갔다.

《련대장동지, 즉시 후퇴하라는… 전선사령부 명령입니다.》

《뭐요, 후퇴?》

표무강의 얼굴은 조각처럼 굳어졌다.

이제는 모든것이 명백해졌다. 어째서 적들이 전에없이 기승을 부리며 달려들었는지, 어째서 린접련대가 종적을 감추었는지. 아, 분하구나. 부산을 코앞에 두고 후퇴하다니…

《미안합니다. 늦어서… 련락군관들이 파견되였지만 모두 도중에… 그래서 제가 세번째로…》

띠염띠염 말하던 련락군관은 그 어떤 촉박감을 느꼈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한마디한마디 피를 토하듯 이어나갔다.

《전선사령부는… 련대가… 최고사령부에… 무사히… 도착할것을…》

표무강은 련락군관의 피묻은 손을 꽉 부여잡았다.

《알겠소.》

숨을 가쁘게 몰아쉬던 련락군관은 초조한 눈빛으로 표무강의 옆에 서있는 대좌를 찾았다.

《련대장…동…지…를… 잘…도와…》

비록 마지막말은 그의 입속으로 잦아들었지만 전선사령부가 자기한테 특별히 준 임무를 알아들은 대좌는 머리를 힘있게 끄덕이였다.

《마음놓소. 련락군관동무!》

그제야 푸- 하고 숨을 길게 토하던 련락군관의 눈동자가 점점 흐려지더니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련락군관동무!… 동무!》

피기가 없는 그의 얼굴에 한점의 미소가 굳어져있었다. 끝끝내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안도감이 림종의 시각을 편안하게 해준것이다.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밤낮으로 달리고 또 달려온 그, 적들과의 조우전에서 사랑하는 전우들을 잃고 피눈물을 뿌리며 뛰여온 사람!

련락군관동무, 걱정말구 편히 눈을 감소.

표무강은 비장한 마음을 안고 군모옆에 손을 가져갔다.

대좌를 비롯한 다른 군관들도 뒤따라 경례를 하였다.

얼마후 그들은 군용책상을 둘러싸고 모여섰다.

근면하고 책임성높은 련대공병들이 든든하게 굴설한 엄페부안에 썰렁한 기운이 떠돌았다.

사태의 엄중성이 모두의 가슴을 얼어들게 하였던것이다.

그래서인지 군관들의 얼굴표정도 각이하였다.

표무강은 심중한 기색이였고 하관이 빠른 대좌의 얼굴은 칼칼하였다.

안경테를 매만지는 련대참모장의 기름한 얼굴에도 불안감이 어려있었다.

누구도 이 결정적인 시각에 선뜻 입을 열지 못하고있었다.

침묵… 침묵…

엄페부안에 드리웠던 팽팽한 공기는 표무강의 걸걸한 목소리에 의해 깨여져나갔다.

《참모장동무, 즉시 후퇴계획을 작성하시오.》

《알았습니다.》

미구에 행군명령이 내리고 련대는 차지하고있던 진지를 남겨둔채 북으로 향하였다. …

《련대장동지!》

앞쪽에서 척후조장이 뛰여왔다.

《적들이 인민들을 추격하고있습니다.》

《련대 전투준비!》

행군중에 있던 련대는 즉시 전투대형으로 넘어갔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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