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3

 

짧은 전투가 끝난 후 척후조장의 안내를 받으며 나타난 사람은 뜻밖에 아리잠직한 처녀였다.

얼굴이 단아하고 몸도 버들가지처럼 연연한것을 보니 고생이란 전혀 모르고 곱게 자란 귀공녀같았다.

처녀를 응시하던 표무강은 저력있는 어조로 말을 건넸다.

《난 련대장이요. 동문 누구요?》

《전 해방지구에 파견되였던 정치공작대원입니다.》

《동무가 대렬을 책임졌소?》

《네.》

《헌데 무슨 사람들이요?》

《제가 북으로 간다니까 같이 가겠다고 따라나선 마을사람들입니다. 련대장동지, 저희들을 구원해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생김새를 보면 나무가지에 돋아난 새싹처럼 유약한것 같은데 맑고 또렷한 목소리에는 당돌한 기품이 느껴졌다.

처녀의 뒤에 늘어서있는 사민들을 둘러본 표무강은 명령조로 말하였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련대에 배속되여야겠습니다.》

사민들속에서 와!- 하고 환성이 터졌다.

군대와 함께 북으로 간다고 하니 이젠 한시름을 놓았다는 기색들이였다.

그러나 두눈을 살풋이 내려깔고있던 처녀가 이렇게 응답하는것이였다.

《련대장동지, 고맙지만 저희들은 걱정말고 어서 떠나십시오.》

슬금슬금 처녀의 주위에 모여든 사민들이 웅성웅성하였다.

《군대동무들하구 같이 가자구요.》

《옳수다. 우리끼리 가다가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알겠소?》

처녀는 침착한 어조로 설복하였다.

《군인동무들은 한시바삐 북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짐이 될순 없지 않아요. 이것도 다 인민군대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자요.》

당장 련대를 따라설것처럼 윽윽하던 사람들은 아쉬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떤 사람은 맥이 빠졌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기까지 하였다.

그렇지만 처녀는 자기의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련대장동지, 이분들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만일 처녀가 자기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였더라면 표무강은 아무 생각없이 돌아섰을것이다. 했으나 전혀 믿어지지 않을뿐더러 지어 허망하다고밖에 할수 없는 그 말에 그의 얼굴을 유심히 뜯어보지 않을수 없었다.

동그스름한 얼굴을 액틀처럼 감싼 까만 단발머리, 한여름철 샘마냥 시원하게 빛나는 두눈, 보기 좋게 부풀어오른 두뺨사이에 작은 산인양 오똑 솟은 코, 꽃잎같은 입술…

남자라면 누구나 반할 미인형의 얼굴이다. 그러나 키가 별로 크지 않고 몸도 연약한 그가 선뜻 책임지겠다고 나서자 저절로 허거픈 웃음이 새여나왔다.

주위에 둘러서있던 군관들도 재미있다는듯 싱글싱글 웃으며 처녀를 지켜보았다.

근엄한 표정을 지은 표무강은 위엄있게 말하였다.

《두말말고 련대에 배속되오.》

이마우에 드리워진 한모숨의 머리칼을 귀바퀴너머로 쓸어넘긴 처녀는 반발하듯 이야기하였다.

《련대장동지, 전 군인이 아닙니다. 그러니 련대장동지가 저에게 명령을 할 권리도 또 제가 집행할 의무도 없다고 봅니다.》

표무강은 두눈을 부릅떴다.

여태 자기한테 그런 태도를 취한 사람은 없었다. 군관들과 전사들은 련대장이 명령하면 《알았습니다!》 하고 대답할뿐이다.그런데…

듣기 좋게 말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는 어성을 높였다.

《동무, 전시하에서 사민들은 해당 관할구역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단 말이요. 알겠소?》

웬간한 처녀 같으면 간담을 서늘케 하는 그 으름장에 겁을 먹고 주춤했을것이지만 처녀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당돌한 눈길로 마주보았다.

순간 표무강의 눈에서 튀여나온 사나운 눈길이 산중의 호수처럼 그윽한 처녀의 눈동자속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두터운 담벽도 단번에 뚫어버릴것 같은 그 눈길은 처녀의 눈빛에 부딪치자 도로 튀여나왔다.

또다시 표무강의 눈길이 날아들고 그러면 처녀가 맞받아치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반복되였으나 승부는 나지 않았다.

1분… 3분…

표무강의 가슴속에서 불덩이 같은것이 치밀어올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수천수만의 적들이 달려들어도 겁이라는것을 모르던 내가 처녀 하나 눌러놓지 못하다니.

그때 옆에 서있던 련대참모장이 나직이 귀띔하였다.

《련대장동지, 빨리 이곳을 떠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렇다. 총소리를 냈으니 인차 적들이 달려들것이다.

《참모장동무, 련대 출발준비!》

《알았습니다.》

련대참모장이 뛰여가자 표무강은 정면돌입이 아니라 우회전술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동무, 여긴 적후요. 어느 순간에 적들과 조우할지 모르오. 그래, 아까처럼 위험한 정황이 조성된다면 어떻게 하겠소? 저 사람들을 공화국의 품으로 데려갈수 있겠는가 말이요?》

《네?》

사람들을 공화국의 품으로 데려갈수 있겠는가 하는 말은 확실히 처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은것 같았다.

잠시 두눈을 깜빡이며 생각을 굴리던 처녀는 드디여 결심을 내렸다.

《좋습니다. 련대와 함께 가겠습니다.》

아무렴, 그렇겠지.

뒤로 돌아서려는데 처녀가 이런 말을 꺼내는것이였다.

《헌데 조건이 있습니다.》

《?》

《혹시 도움받을 일이 생기면 제가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례사롭지 않게 울리는 그 말속에는 자기가 부탁하지 않는 이상 《사민구분대》에 특별한 관심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송곳같은 자존심이 깔려있었다.

표무강의 눈앞에 불현듯 고려청자기가 떠올랐다.

그것은 비록 아름답고 정교하지만 조심히 다루지 않으면 깨여질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도자기를 감상하기만 할뿐 감히 다치지 않는다.

지금 그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였다. 첫 대면부터 만만치 않은 처녀를 무작정 휘여잡으려고 하면 바로 상상속의 고려청자기처럼 깨여질수 있는것이다.

《알겠소.》

우선우선하게 대답한 표무강은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등뒤에서 처녀가 호-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것을 알지 못하였다.

사민구분대, 운수중대뒤에 들어서시오.》

와!-

눈동자처럼 아끼던 자동차들을 소각해버리고 사기를 잃었던 운수중대전사들은 《사민구분대》에 달려들어 저저마다 배낭과 이불보퉁이를 받아내리느라 야단법석하였다. 아버지잔등에 업혀가던 총각애도 씨름군처럼 어깨가 벌어진 하사의 어깨우로 넘겨졌다.

너럭바위처럼 펀펀하고 살집좋은 인민군대아저씨의 어깨우에 옮겨앉은 총각애는 신이 나서 엉치를 들썩들썩하였다.

《군대아저씨, 말처럼 뚜걱뚜걱 달릴수 있나요?》

《암, 있구말구.》

《그럼 한번 달려보라요.》

콤파스로 원을 그린것 같은 동그란 얼굴에 장난기어린 웃음을 담은 총각애는 어린애다운 얕은꾀로 어른을 소박한 놀음에 끌어들이려고 하였다.

《얘, 그럼 못써.》

총각애를 인민군대한테 넘겨주고 미안해하던 아버지가 버릇없는 자식을 질책하는데 하사는 앞발을 쳐든 준마마냥 팔목을 구부린 두팔을 우로 올렸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라. 자, 떠난다!-》

《이랴!》

총각애의 챙챙한 웨침소리가 떨어지는것과 동시에 땅을 박차며 달려나간 하사는 《뚜걱뚜걱… 뚜걱뚜걱…》 하고 입으로 소리치며 뛰여갔다.

그 모양을 본 전사들은 재미난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껄껄 웃었다.

그런데 한쪽에서는 갈고리눈을 한 사나이와 전사들사이에 심상치 않은 싱갱이질이 벌어지고있었다.

《아바이, 그러지 말구 배낭을 주십시오.》

《글쎄, 안된다니까.》

《허 참, 그 무거운걸 메고 어떻게 따라다닌다고 그럽니까?》

《별걱정을 다하는군.》

무안해진 전사들은 도대체 영문을 알수 없다는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련대 출발!》

련대는 발차신호를 받은 렬차마냥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한정아는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질서를 잡느라고 애썼다.

《고남수아저씨, 배낭끈을 주의하세요. … 서분아주머닌 내 손을 잡으세요. 아이, 어서요!》

이렇게 되여 후날 이런저런 곡절을 산생시킨 《사민구분대》는 련대와 함께 간고한 북행길에 올랐다. 이제 련대의 앞길에 어떤 난관과 시련이 기다리고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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