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4

 

전선사령부 대표 로성익은 랭담한 표정을 짓고있었다.

생각할수록 표무강의 처사가 불만스러웠던것이다.

가뜩이나 늦어졌는데 사민들까지 데리고 가겠다니 제정신인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적들한테 포위되면 그 후과를 무엇으로 보상한단 말인가. 지휘관이라면 마땅히 서뿌른 인정에 매달릴것이 아니라 어떤 정황속에서도 침착성과 랭정성을 유지해야 하는것이다.

문득 그의 얄팍한 입술이 실그러졌다.

흠,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전선사령부를 출발한 로성익은 타고 오던 찦차가 고장나는통에 도보행군을 하다보니 여름해가 서산마루에 걸터앉았을무렵에야 표무강련대에 당도하였다.

고지를 오르기 전에 먼지묻은 군복을 탁탁 털고 가죽장화를 윤기나게 닦은 그는 군복자락을 가죽혁띠밑으로 바싹 잡아내렸다. 그리고는 마침 고지로 올라가는 전사의 안내를 받으며 련대지휘부로 향하였다.

포격을 맞은 나무들이 박격포신처럼 비죽비죽 서있는 고지릉선을 오르는데 어디선가 벅적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3소대장동지, 주의하십시오.》

《여, 앞을 보라. 그 친구부터 넘어뜨려야 해.》

로성익은 앞에서 걷고있는 전사에게 저기서 뭣들 하는가고 물었다.

《휴식참에 구분대별 무릎씨름경기를 하고있습니다.》

《뭐요?》

전선사령부 대표의 표정이 굳어지자 공연히 싱글거리던 전사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박수소리와 고함소리, 군용밥통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는쪽으로 걸어가던 로성익은 커다란 원을 짓고 둘러선 전사들을 보자 멈춰섰다.

그안을 넘겨다보니 열댓명의 군인들이 한쪽다리에 다른쪽 무릎을 올려놓고 껑충껑충 뜀박질을 하고있었다. 저저마다 제무릎으로 상대방의 무릎을 올려치거나 내려치기도 하고 혹은 온몸으로 들이받기도 하는데 그 광경에 정신이 팔린 전사들은 전선사령부 대표가 도착한줄도 모르고 응원에 열을 올리고있었다.

모두 면내의바람인데다 한데 어울려 돌아가니 도대체 누가 지휘관이고 누가 전사인지 알아볼수 없었다.

로성익의 두눈이 꼿꼿해졌다.

전사들속에 끼워 무릎씨름을 하고있는 련대장 표무강을 알아본것이다.

그 역시 전사들과 마찬가지로 면내의차림이였는데 방금 옆에서 달려드는 전사의 무릎을 밑으로부터 올리쳐서 허궁 떠밀어버리고는 의기양양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흠, 련대장이라는 사람이…

쓰거운 눈길로 지켜보는데 표무강을 향해 다섯명의 전사가 와르르- 달려들었다.

제법 치렬한 무릎씨름이 벌어졌다.

몸집이 든든한 표무강은 좌충우돌하면서 상대방들을 하나, 둘 넘어뜨렸다. 그러느라니 자기뒤에서 은밀하게 다가드는 전사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련대장이 해이된 틈을 노리고있던 그 전사는 또 한명의 적수를 물리치고 흡족해서 서있는 표무강을 힘껏 들이받았다.

불의에 공격을 받은 표무강은 중심을 잃고 비칠거리다가 그만에야 우습강스럽게 나딩굴고말았다.

《7대대가 이겼다아!-》

련대장을 꺼꾸러뜨린 전사들은 신이 나서 만세를 불렀다.

엉치를 툭툭 털며 일어난 표무강은 억울하다는듯 불평을 부렸다.

《여, 심판. 뒤에서 달려드는건 반칙이야, 반칙!》

유쾌한 승리자들은 비위살좋게 련대장의 주장을 물리쳤다.

《련대장동지, 그건 반칙이 아닙니다.》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졌으면 솔직하게 인정하십시오.》

로성익의 눈에 엄한 빛이 스쳐지나갔다.

지휘관이라면 전사들과 일정한 간격을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위신이 떨어지고 나중에 지휘권을 잃을수 있다는걸 그래 모른단 말인가?

련락을 받은 표무강이 군복단추를 급히 채우며 뛰여왔다.

《전선사령부 대표동지, 련대는 휴식중에 있습니다. 련대장 표무강.》

그를 지켜보던 로성익은 불만스러운 어조로 따져물었다.

《련대장동문 내가 도착한다는 련락을 받았소?》

《받았습니다.》

로성익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선사령부 대표가 도착한다는 련락을 받았으면 상급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련대장동무가 꼭 무릎씨름에 참가해야겠소?》

그쯤하면 눈치를 차릴줄 알았는데 표무강은 주저없이 응답하였다.

《내가 씨름경기에 참가하니 전사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로성익은 속으로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무래도 안되겠군. 시작부터 신을 든든히 신겨야지.

《앞으로는 전사들과 너무 허물없이 지내는걸 삼가해야겠소. 알겠소?》

《…》

《의견이 있소?》

여전히 침묵을 지켰지만 표무강의 길쑴한 얼굴에는 불만의 기색이 력연하였다. …

그날도 느꼈지만 오늘도 역시 표무강은 무슨 일이든 랭철하게 따져보지 않고 즉흥적으로 처리하는것 같다. 하긴 련대를 지휘한다고는 하지만 이제 겨우 25살이 아닌가. 나도 그 나이에 붉은군대 대대장을 하면서 범 무서운줄 모르는 하루강아지처럼 용감하였지만 그만큼 단순하였고 그로 하여 얼마나 많은 실수를 저질렀던가. 내가 옆에서 잘 이끌어주자!

생각에서 깨여난 그는 표무강의 옆으로 다가서는 군관을 띄여보았다.

두달전에 새로 왔다는 문화부련대장 김흥선이다.

그가 뭐라고 이야기하자 표무강은 대뜸 《후에 보기요.》 하고 퉁명스럽게 잘랐다.

시골농사군처럼 순박하게 생긴 김흥선은 의견이 있는지 뭔가 말하려고 하다가 말없이 물러났다.

그 광경을 목격한 로성익의 눈가에 엷은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표무강과 김흥선은 사철 푸르싱싱한 참대들이 우거진 락동강가의 자그마한 농촌마을에서 함께 자란 막역지우라고 한다.

표무강이 사자같은 소년이라면 김흥선은 사슴같은 소년이였다.

그처럼 판이한 성미였지만 그들은 장난세찬 유년시절은 말할것도 없고 어깨가 쩍 벌어진 청년시절에도 언제 한번 다툰적 없었다.

나라가 해방되자 그들은 륙군사관학교에 함께 들어갔다.

륙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국군》에 들어간 후에도 그들의 우정은 변함없었는데 어느날 안해를 잃은 김흥선이 용약 북으로 의거하는 바람에 두사람은 헤여지고말았다.

표무강은 북으로 의거하자 친구의 행처부터 찾았지만 38경비대에서 근무하던 김흥선은 다른 부대로 소환되고 없었다. 그랬던 그가 문화부련대장으로 임명되여오는 바람에 두사람은 감격적인 해후를 하게 되였다고 한다. 그러한 김흥선이니 다른 군관들앞에서 고향친구와 다투고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 그런 사람이 갈범같은 표무강을 어떻게 휘여잡는단 말인가.

입을 다시며 돌아선 그는 무심결에 《사민구분대》쪽을 바라보다가 반색을 지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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