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8

 

《전화도청과 심문을 통해 알아낸데 의하면 적들은 영주계선에서 아군에 대한 포위환을 결속하려 하고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정찰소대장 리경일은 련대참모장이 전지로 비치고있는 군용지도를 지시손가락으로 꾹꾹 찍으며 설명하고있었다.

《…기동력이 좋은 제3, 제9련대를 여기 소백산과 죽령에 진출시켜 방어진을 펴는 한편 나머지 력량은 남쪽으로부터 아군을 압박하고있습니다. 적사단장 최덕근은 소백산-죽령계선에서 우리 련대를 완전소멸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답니다.》

《흠!》

가소롭다는듯 코웃음을 치는 표무강의 눈앞에 륙사후배의 모습이 밟혀왔다.

몇해전 어느 일요일 당시 《국군》중대장이였던 표무강은 모교인 륙군사관학교로 찾아갔었다.

막사에 들어서니 한주일동안 고된 훈련에 부대낀 사관후보생들이 퀴퀴한 발냄새와 시큼한 땀내가 혼탁된 더러운 곳에서 딩굴고있었다.

입귀로 침을 줄줄 흘리는자, 고래고래 헛소리를 내지르는자, 끄덕끄덕 졸면서 밖으로 나와 막사벽에 대고 오줌을 갈기는자…

그 처참한 몰골을 보고있는데 가까운 곳에 있는 종합훈련장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군가 하고 슬금슬금 가보니 함마로 내리쳐도 끄떡하지 않을만큼 단단하게 생긴 사관후보생이 장애물극복훈련을 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제 키보다 훨씬 높은 담벽을 단숨에 뛰여넘은 그는 먹이감을 겨누고 내려꽂히는 매마냥 철조망밑으로 씽 날아들더니 눈깜빡할 사이에 포복전진으로 철조망을 통과하였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은지 땀이 비오듯 떨어지는 얼굴을 닦을념도 않고 또다시 담벽에 달라붙는것이였다.

마치 지난날의 자신을 보는것 같아 은연중 그에 대한 친근한 감정이 생겨났다.

얼마후 기진맥진해서 훈련장을 나서던 사관후보생은 앞에 뒤짐을 지고 서있는 《국군》중위를 보자 군화뒤축을 딱! 하고 모아붙였다.

《이름이 뭔가?》

《옛, 사관후보생 최덕근!》

표무강은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말하였다.

《15분후에 정문으로 나오라.》

그가 얼떠름해하는 최덕근을 데리고 간것은 사관학교주변에 있는 크지 않은 공원이였다.

펑퍼짐한 잔디밭우에 주저앉은 표무강은 밑도 끝도 없이 최덕근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눈이 사발만큼 커진 최덕근은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두손을 내저었다.

《표선배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표선배님이라는 말에 표무강은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군은 내가 륙사선배라는걸 어떻게 아는가?》

《전 첫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교관님이 륙사 2기 졸업사진을 보여주면서 표선배님이야기를 자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중에 그 유명한 〈100바퀴사건〉을 모르는 친구가 없습니다.》

두해전 표무강은 대구시민폭동을 진압하라는 륙군사관학교 교장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훈련장을 100바퀴 돌라는 처벌을 받았는데 남들 같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그 살인적인 거리를 이를 사려물고 끝까지 달렸었다. 그 일로 하여 그는 미군장교 에드윈 하불의 눈에 들었고 륙사를 졸업하자 급속도로 승진의 계단을 뛰여올랐던것이다.

후배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표무강은 술병을 다시 내밀었다.

《마시라구.》

《선배님, 제가 어떻게 감히…》

《무슨 말이 많아?》

그 위혁적인 태도에 최덕근은 옴짝 못하고 굽어들었다.

《예, 예. 마시겠습니다.》

두사람사이에 술병이 몇번 오가자 선배의 호협한 성미에 감동된 최덕근은 스스럼없이 자기의 경력을 털어놓았다.

그의 부친은 일찌기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독립을 위해 뛰여다닌 애국자로서 한때 독립군양성에 전념한 사람이였다. 독립운동에 그처럼 몰두하였던 까닭으로 그는 여섯살 난 아들마저 고아원에 맡겨버렸다.

남달리 승벽이 세고 의지가 강한 최덕근은 쓰고 단맛을 고스란히 삼키며 고아원을 나오자 중학교를 거쳐 당시 중국군 사관학교인 중앙군관학교에 들어갔다. 독립군출신 부친의 뒤를 이어 군인의 길을 선택한것이다.

군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키가 늘씬하고 예쁘게 생긴 처녀에게 장가들었다.

부부간의 정은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깊었지만 태평양전쟁의 회오리는 최덕근을 아늑한 가정의 울타리안에서 끌어내여 먄마의 쟝글속에 집어던졌다.

코브라들이 단도처럼 뾰족한 혀를 날름거리며 기여들고 모기들이 악착스럽게 달려드는 열대수림속에서 그는 남보다 몇배로 땀을 쏟으며 훈련하였는데 그 의기와 열정에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던중 영악스럽던 사무라이들이 맥없이 항복하자 조선독립에 한몫하려던 초지를 부채접듯 하고 집으로 돌아오고말았다.

그후 부모처자를 데리고 조선으로 나온 최덕근은 륙군사관학교에 들어갔는데 그것은 남의 땅에서 남의 군복을 입어야 하였던 슬픈 시절이 가슴에 걸려 내린 선택이였다. …

무거운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끝낸 최덕근은 오른손을 심장에 대고 열변을 토하였다.

《선배님, 믿어주십시오. 전 살아도 죽어도 제 민족을 지키는 군인이 되렵니다.》

표무강은 볼수록 대견한 후배의 손을 꽉 잡았다.

《믿겠네.》

하지만 운명은 두사람을 지구의 남극과 북극처럼 갈라놓았으니 표무강이 대대를 이끌고 북으로 의거할 때 륙사를 졸업한 최덕근은 미국으로 군사류학을 떠났다.

그가 표무강앞에 처음 나타난것은 희생된 련락군관을 통하여 후퇴명령을 전달받기 며칠전이였다.

당시 아군은 갓 교방한 적들과 치렬한 공방전을 벌리고있었는데 그자들은 지금까지 싸운 《국군》과 전혀 달랐다. 아군의 드센 타격에 사등뼈가 부러지게 얻어맞았지만 꽁무니가 빳빳해서 달아나기는커녕 아득바득 덤벼들었고 퇴각하는 경우에도 잔등을 보이지 않고 마지막까지 총을 쏴대는 악질들이였다.

해당 부대의 전투력은 지휘관의 능력에 비례한다. 적들의 움직임은 그만큼 적지휘관의 능력이 높다는것을 말해준다. 도대체 어떤자인가?

정찰자료에 의하면 그자는 미국에서 군사학교에 다니다가 조선전쟁이 일어나자 부랴부랴 돌아와 사단장이 되였는데 자주 일선참호에 나와 《자유세계》를 수호하기 위해 분골쇄신하라고 사병들을 독려한다고 한다.

어느날 적진속에서 우와!- 하고 함성이 터져올랐다.

련대장감시소에 있던 표무강은 쌍안경을 눈에 가져갔다.

두어깨를 솟구고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참호를 돌아치는 《국군》장성의 모습이 동그란 렌즈속으로 빨려들어왔다.

그자는 허물어진 진지를 보수하던 사병한테서 공병삽을 앗아들고 한참동안이나 흙을 파기도 하고 담가에 누워있는 부상병을 보자 제법 따뜻이 위로하기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사병들은 감격하여 너도나도 박수를 치고있었다.

적수를 노려보던 표무강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였다.

뜻밖에 그자는 잊지 못할 그 잔디밭에서 제 민족을 지키는 군인이 되겠다고 윽윽거리던 륙사후배 최덕근이였던것이다.

너절한 자식!

결국 선배와 후배는 원쑤가 되여 총부리를 들고 마주선것이다. …

참모장에게 소백산-죽령계선에서 적들의 포위를 돌파하기 위한 작전안을 세우라고 명령한 표무강은 군용지도를 골똘히 보고있는 로성익에게 물었다.

《전선사령부 대표동지, 강조할건 없습니까?》

얼핏 머리를 쳐든 로성익은 특별히 말할게 없다는듯 다시금 지도에 눈길을 박았다.

《군관동무들, 그럼 래일 아침, 아니 오늘 새벽 6시에…》

표무강의 뒤말은 천막자락을 들추며 뛰여든 19대대장의 출현으로 끊어졌다.

《련대장동지, 보고할만 합니까?… 우리 대대 전사 한명이 산을 내려갔습니다.》

《뭐요?》

예견치 못하였던 정황에 군관들은 모두 놀랐다.

《누가 승인했소?》

《승인한 사람은 없습니다.》

얼굴이 꺼멓게 질린 19대대장은 온종일 행군에 시달린 전사들이 굳잠에 들었을 때 그 전사가 슬그머니 천막을 빠져나왔는데 마침 순찰병이 단속하자 용변을 보고 인차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보고하였다.

《당장 전사들을 보내오.》

《보냈댔는데 밤중인지라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안경테를 신경질적으로 만지작거리던 련대참모장이 참지 못하고 19대대장을 다불러세웠다.

《동문 뭘 했소? 전사가 탈영하는것도 모르고 뭘 했는가 말이요?》

《그만하오.》

또 뭐라고 한바탕 욕설을 퍼부으려던 참모장을 제지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로성익이였다.

《19대대장동무, 탈영자가 누구요?》

《1중대 3소대 전사 홍일남입니다. 얼마전에 〈국군〉에서 의거해온 전사인데…》

《뭐, 〈국군〉?》

로성익의 얼굴에 경멸에 찬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그 표정은 그런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그럴수 있다고 말하고있었다.

지도우에 색연필을 내려놓은 그는 옆에 서있는 표무강을 바라보았다.

《언제 출발하겠소?》

《원래 계획대로 새벽 6시에…》

로성익은 딱 잘랐다.

《안되오.》

《?》

《그래, 동문 그가 돌아오리라고 믿소?》

《그렇습니다.》

《그 전사가 귀대한다는 담보는?》

그 말속에 숨어있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지만 표무강은 이렇게 응답하였다.

《어쨌든 돌아올겁니다.》

로성익의 얄팍한 입술가에 맴돌던 조소가 스러지자 곧 싸늘한 표정이 떠올라 그 자리를 메꾸었다.

《난 추측이 아니라 현실을 중시하오. 좋소. 그를 믿는가 안 믿는가 하는건 동무생각에 맡기겠지만 련대는 즉시 출발해야겠소.》

위엄이 풍기는 그의 말은 벌써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전선사령부 대표의 지시였다.

마음이 내키지 않은듯 머뭇거리던 표무강은 참모장에게 련대를 기상시키라고 명령하였다.

나무가지들사이로 가닥가닥 비쳐드는 달빛을 솜이불마냥 뒤집어쓰고 깊은 잠에 들었던 숙영지가 벌컥 뒤집혔다.

여기저기에서 무기와 장구류를 걸머진 전사들이 뛰쳐나왔다.

구분대별로 인원점검이 끝나자 곧 출발구령이 내렸다.

눈도 채 뜨지 못하고 어두운 산길을 걸어가는 전사들속에서 불평소리가 줄줄이 쏟아져나왔다.

《19대대 홍일남이가 탈영했다누만.》

《개꼬리 삼년 두어도 황모 못된다고 하더니 그 친구…》

《여, 친구는 무슨 친구? 이제야 더러운 배신자이지.》

전사들이 윽윽 벼르고있을 때 표무강은 착잡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홍일남은 《국군》에서 복무하다가 얼마전에 있은 전투때 의거한 전사였다.

담화를 해보니 그는 비록 《국군》에 강제로 징집되였지만 마음속으로 인민군대를 몹시 동경해왔다고 한다.

본인의 이야기를 빌면 《국군》의 포악무도한 행패질에 시달려온 마을사람들은 그의 어머니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원래 병을 앓고있는데다 며칠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어머니는 거의 죽어가고있었는데 고향마을을 해방시킨 인민군대가 쌀을 가져다주고 몸이 추설 때까지 친혈육처럼 돌봐주었다. 뿐만아니라 산후탈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위해 두툼한 솜이불도 만들어주었고 몇해째 비가 줄줄 새던 지붕도 고쳐주었다는것이다.

후날 그 소식을 안 홍일남은 죽어가던 어머니를 살려준 은인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것은 사람가죽을 쓰고 할짓이 못된다는것을 깨닫고 아군진지로 넘어왔던것이다.

《련대장님, 절 인민군대에 받아주십시오. 어머니앞에 떳떳이 나설수 있게 해주십시오. 제발… 부탁입니다.》

그랬던 그가 상급의 승인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산을 내려갔다. 분명 시오리쯤 떨어진 곳에 있는 고향집으로 달려갔을것이다. 그런데 그곳은 이미 적들에게 강점된 지역이 아닌가. 그가 산을 내리다가 적들한테 붙잡히기라도 하면 련대의 위치가 탄로날수 있다. 그때문에 전선사령부 대표도 즉시 출발할것을 요구한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가? 그는 꼭 돌아올것이다!

가슴속에 먹장구름마냥 밀려드는 불안감을 털어버린 표무강은 련대를 뒤쫓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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