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9

 

강행군을 들이대고있는 련대앞에 강이 나타났다.

공병정찰로부터 강폭과 수심에 대하여 보고받은 련대지휘부는 각 구분대별로 강을 도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남진의 길에서 강을 도하한 경험을 가지고있는 전사들은 가까운 곳에 있는 골짜기에서 찍어온 불타다 남은 통나무들로 떼를 뭇고 그우에 박격포와 마차, 부상자들을 싣고 강을 건느기 시작하였다. 헤염칠줄 아는 전사들은 거침없이 강물에 뛰여들었다.

강기슭에 우뚝 서서 련대의 도하를 지켜보고있던 표무강은 《사민구분대》가 생각났다. 아직 습관되지 않아 다른 구분대들의 도하에는 관심을 돌렸지만 한정아가 인솔하는 사민들에 대해서는 미처 관심하지 못하였던것이다.

《정찰소대장!》

정찰병들과 함께 련대후방부도하를 도와주고있던 리경일이 허우대가 큰 몸을 날렵하게 움직이며 달려왔다.

《한개 분대를 데리고 사민구분대에 가오.》

《알았습니다!》

그때 저쪽에서 회색양복을 입은 처녀가 나타났다.

종주먹을 쥐고 달려오는 한정아를 보자 표무강은 속으로 웃었다.

《사민구분대》는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더니 정작 강을 건느자니 겁을 먹은게지.

《련대장동지!》

처녀가 앞으로 뛰여오자 표무강은 짐짓 아무 눈치도 못 차린것처럼 물었다.

《무슨 일이요?》

《저, 강도하때문에 왔습니다.》

그럼 그렇겠지.

자기옆에 서있는 리경일을 손짓하며 표무강은 시원스럽게 알려주었다.

《걱정마오. 정찰병들이 도와줄거요.》

그쯤하면 몹시 고마와할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한정아는 의외로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련대장동지, 우린 자체로 도하하겠습니다.》

《?》

《그저 강을 건너갈 바줄만 주십시오.》

표무강은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강도하에서 제일 미타한 단위는 바로 한정아가 이끄는 《사민구분대》였다. 하지만 그들이 련대의 방조를 받지 않고 자체의 힘으로 강을 도하하겠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그 말을 곧이듣고 내버려두었다가 강을 미처 건느지 못하면 련대의 전반적인 행동에 지장을 줄수 있었다.

《그래, 동무들끼리 도하할수 있소?》

《네.》

《정말이요?》

자존심이 상한 모양 처녀는 두눈을 깔끔하게 내려깔았다.

그가 그렇게 나오자 표무강은 더 따질수 없었다.

후방부련대장을 불러 한정아한테 바줄퉁구리를 내주라고 지시를 주고 돌아서는데 군의소장이 찾아왔다.

《련대장동지, 통나무를 메오는 인원이 모자랍니다. 한개 분대만 더 보내주십시오.》

처녀들이 대부분인 련대군의소는 강을 도하할 때마다 련대의 방조를 받군 하였다.

《여보, 군의이든 간호원이든 총동원해서 메오란 말이요.》

혹을 떼려고 왔다가 오히려 혹을 붙인 군의소장은 여느때없이 성을 내는 련대장을 멍청해서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어깨를 떨구고 걸어가는 그를 보자 표무강은 자기가 큰소리를 친것이 다름아닌 한정아때문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얼마후 련대참모장으로부터 도하가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고있다는 보고를 받은 표무강은 그에게 련대지휘를 맡기고 《사민구분대》가 위치한 강아래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곳에 도착한 그는 두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수심이 깊은 강복판에서 한정아가 바줄퉁구리를 올려놓은 널판자를 밀며 헤염치고있었던것이다.

자유헤염을 치기도 하고 때로 가슴헤염도 능숙하게 섞어가며 자신만만하게 전진하는 처녀의 수영솜씨는 보통수준을 넘어서고있었다.

음, 그래서 바줄만 달라고 했군.

이윽고 강을 건너간 한정아는 굵은 소나무허리에 바줄을 꽁꽁 동여매더니 챙챙한 목소리로 웨쳤다.

《떼목을 띄우세요!》

《사민구분대》는 한덩어리가 되여 적폭격에 무너진 주변마을에서 얻어온 대들보와 도람통으로 무은 떼를 강물에 띄웠다. 그리고는 한정아가 량쪽 강대안을 련결해놓은 바줄에 의지하여 강을 건느기 시작하였다.

그때 저쪽 대안에서 첨벙! 하는 소리가 났다.

한정아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강물속에 뛰여든것이다.

두팔을 엇갈아 휘저으며 떼목에 접근한 그는 뒤에서 힘껏 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아까보다 기운이 점점 빠지는것 같았다. 하긴 아무리 헤염을 잘 친다고 해도 연약한 처녀의 몸으로 큰강을 두번이나 건는다는것이 쉽지 않을것이다.

표무강의 얼굴에 긴장감이 떠올랐다.

힘이 빠진 처녀가 그만 떼목을 놓치고 사품치는 물살에 떠밀려가기 시작하였던것이다.

《어이구, 이 일을 어쩌누?》

《정치공작대원체네, 힘을 내라구!》

떼목에 올라선 사민들은 손을 내젓고 고함을 지를뿐 선뜻 깊은 강물속에 뛰여들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안되겠다 하고 강물속으로 들어서려는데 떼목우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한정아가 있는 힘을 짜내여 떼목에 접근하였던것이다.

기세가 오른 《사민구분대》는 빠른 속력으로 떼를 몰아갔다.

마침내 그들은 다른 구분대들과 거의 같은 시간에 강대안에 당도하였다.

떼목에서 내리는 《사민구분대》를 한사람한사람 맞아주며 생글생글 웃고있는 한정아를 보자 표무강은 생각이 깊어졌다.

사실 그는 한정아의 말을 믿지 않았었다. 집에서 금이야 옥이야 하고 자랐을 처녀가 순전히 자존심때문에 그런다고 단정하였다. 따라서 이제 난관에 부닥치면 제편에서 찾아와 방조를 청할것이라고 믿고있었다. 그렇지만 한정아는 한번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사민구분대》를 인솔할 능력이 있다는것을 현실로 증명하였던것이다. 첫인상에서 느꼈지만 역시 그는 보통처녀가 아니였다.

한편 집결중에 있는 련대쪽으로 《사민구분대》를 이끌고 가면서 한정아는 즐겁던 대학시절을 추억하고있었다.

어느날 대학에서는 쉬는날을 리용하여 해수욕을 조직하였다.

남들은 강물에 뛰여들어 신나게 헤염치고 조개를 잡는데 원래 물을 무서워하는 한정아는 수풀속에 조용히 앉아 레브 똘스또이의 장편소설 《안나 까레니나》를 읽고있었다.

목석같은 남편과 8년동안 무미건조한 생활을 해오다가 청년귀족장교와 깊은 사랑에 빠져 그처럼 갈망하던 인간다운 생활과 행복을 찾으려고 애썼지만 끝내 귀족사회의 버림을 받고 달리는 화물렬차에 몸을 던지는 안나의 비극적운명은 감수성이 풍부한 처녀의 마음을 슬프게 해주었다.

촉촉히 젖은 그의 눈길은 소설의 글줄을 더듬고있었다.

《안나는 아들과의 상봉을 그렇게도 원해왔고 또 그렇게도 오래전부터 꿈꾸었으며 그것에 대해서 마음을 다져왔건만 이 상봉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자기 마음을 뒤흔들리라고는 전연 예기하지 못하였다.

안나는 려관의 쓸쓸한 자기 방에 돌아와서도 오래동안 왜 자기가 이런 곳에 있는지 리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끝장이 났다. 나는 또 홀로 남았다.) 하고 그는 자신에게 말하며 모자도 벗지 않은채 난로옆에 있는 안락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두개의 창문사이에 있는 탁자우에 놓인 청동시계를 쏘아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

《무슨 책을 보기에 찾는것도 모르오?》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든 처녀는 멀끔하게 생긴 남대학생을, 녀대학생들이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차경준을 알아보았다.

안나 까레니나로구만. 에, 레브 똘스또이는 녀주인공의 형상을 통하여 짜리로씨야귀족사회에서 겪고있는 녀성들의 불행한 처지를 반영하고 관료기구의 부패성과 반인민성을 폭로비판하려고 하였소. 바로 여기에 안나 까레니나가 로씨야와 유럽의 비판적사실주의 장편소설들가운데서 주봉을 이루는 근거가 있는거요. 뿐만아니라 그 묘사의 섬세성과 생동성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수준이지.》

경건한 어조로 작품의 우점을 렬거한 그는 활기에 넘쳐 재촉하였다.

《자, 소설은 후에 보구 헤염치러 가기요.》

《…》

《방금 교무부에서 포치했는데 헤염칠줄 모르는 대학생은 학기말시험에 통과시킬수 없다는거요. 아, 정아동무야 전 과목 최우등생인데 락제를 맞는다는게 어디 말이 되오?》

차경준의 말처럼 수영때문에 락제를 맞는다는건 억울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소설책은 접었지만 아직 망설이고있는 처녀를 슬쩍 넘겨다본 차경준은 헌헌한 어조로 물었다.

《혹시 전번 일때문에 그러는건 아니요?》

전번 일이란 한정아가 교복단추를 달아달라고 한 그의 부탁을 거절한것을 두고 하는 말이였다.

그때 차경준은 일부러 교복에서 단추를 두알씩이나 뜯어내고는 한정아더러 좀 달아달라고 하였었다.

첫눈에 그의 속심을 알아차린 한정아는 입술을 감쳐물고 교복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일명 《교복단추사건》이라고 알려진 그 일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보태지고 보태지며 전교적인 화제거리로 떠오르다가 한정아는 아득한 봉우리에 올려세우고 차경준은 아찔한 골짜기로 떨구어버리는것으로 막을 내렸었다.

지금 자기의 성적점수를 걱정하는 차경준의 환한 얼굴에는 그 일로 겪은 번민의 흔적이란 한점도 엿보이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그를 볼 때마다 내가 너무하지 않았을가 하고 생각하던 참이였는데 그쪽에서 대범하게 나오니 역시 남자들이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가세요.》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수영복을 갈아입은 처녀는 앞서가는 차경준을 따라 종종걸음을 다그쳤다.

그러나 막상 시퍼런 강물이 가슴노리에서 출렁거리자 더럭 겁이 났다.

《무서워마오. 헤염이란 깊은 곳에서 배워야 빨리 배우는 법이요.》

앞에서 강물을 헤가르며 걸어가던 차경준이 재촉하자 처녀는 진퇴량난에 빠졌다.

계속 따라가자니 강물이 무섭고 이제 와서 돌아서자니 주위에서 빤히 지켜보는 동료들의 놀림가마리에 들것 같았다.

좋아. 끝까지 가보자!

상큼 한발을 내짚는데 갑자기 몸이 우묵한 곳으로 쑥 빠져들어갔다.

《어마?》

어쩔 사이없이 강물을 꼴깍꼴깍 삼킨 처녀는 마구 두팔을 휘저었다.

겨우 물우에 솟구쳐오르자 애타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금 옆에 있던 차경준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도… 도와… 주세요!》

또다시 입안으로 쓸어들어오는 비릿한 강물!

찰나 어디론가 사라졌던 차경준이 코앞에 불쑥 나타났다.

창황중에도 한정아는 그의 얼굴에 떠도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보았다.

처녀는 그를 향해 뭔가 소리치려고 하였으나 어느새 몸은 돌멩이처럼 물속으로 가라앉고있었다.

이젠 다로구나!

눈앞이 캄캄해지고 손발이 나른해지는 순간 억센 손이 허리를 휘감더니 물우로 힘껏 솟구쳐올랐다.

강기슭으로 나온 차경준은 맥없이 늘어진 처녀를 모래불에 내려놓고는 가버렸다.

울컥울컥 강물을 토하고난 한정아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동정의 빛을 띠운 수십쌍의 눈길이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이런 때는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사라지는것이 상책이였다.

얼마후 처녀들이 모여들어 만든 《울바자》뒤에서 젖은 머리를 손질한 한정아는 교복을 갈아입었다.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울바자》를 나선 처녀는 천연스럽게 일광욕을 하고있는 차경준을 찾았다.

한정아의 평온한 표정에서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그는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그가 앞에 이르렀을 때 한정아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이였다.

찰싹!

얼결에 뺨을 얻어맞은 차경준이 정신을 차렸을 때 처녀는 벌써 저쯤으로 가고있었다.

기숙사로 돌아온 한정아는 분해서 쌔근거렸다.

내가 왜 그런 모욕을 받아야 했담? 그건 헤염을 모르기때문이야. 헤염을 쳤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텐데. 그래, 처녀의 존엄은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지켜야 해!

다음날 한정아는 방과시간이 되자 그처럼 즐겨 찾던 대학도서관이 아니라 대동강으로 향하였다.

단군민족의 유구한 력사를 간직한 어머니강은 언제나처럼 유유히 흐르고있었다.

물끄러미 강물을 보고있는데 마침 수영복을 입은 처녀가 맵시있는 동작을 취하며 물속에 뛰여드는것이 보였다.

물안경을 쓴 머리를 물속에 잠근 그는 두손을 엇저으며 빠른 속도로 헤염치기 시작하였다.

수영선수로구나!

처녀수영선수는 정열적인 뺄헤염으로부터 여유있는 가슴헤염으로 동작을 바꾸며 대동강이 좁다하게 돌아쳤다.

나도 저 처녀처럼 헤염칠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

차경준의 득의양양한 얼굴이 떠오른것은 그 다음이였다.

아니, 다신 그런 모욕을 받을순 없어!

자리를 차고 일어난 한정아는 끝없이 밀려드는 공포를 강잉히 누르며 강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그는 수영선수의 방조를 받으며 이악하게 수영훈련을 하였다.

며칠도 못되여 녀대학생들이 그처럼 부러워하고 지어 시샘까지 하던 한정아의 희맑은 얼굴은 해볕에 타서 고동색으로 변하였다.

《백설공주님이 어떻게 된거니?》

《난 또 흑인처녀가 온줄 알았구나.》

동료들이 놀려주었으나 한정아는 개의치 않고 매일처럼 대동강으로 나갔다.

두달후 대학적인 수영경기가 진행되자 한정아는 뺄헤염종목에서 2등을 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

그때는 차경준을 먼발치에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 순간에는 후날 그를 찾아가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긋한 앞가슴을 쭉 편 한정아는 우물거리고있는 《사민구분대》를 향하여 소리쳤다.

《어째서 행군속도가 떠졌어요?… 자, 빨리 걷자요!》

 

련재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