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회)

제 1 장

10

 

가을비는 행군하는 전사들에게 있어서 또 하나의 적이라고 할수 있다.

가파로운 산릉선을 톺아오르느라 몸이 화독처럼 달아올랐을 때는 젠장, 비라도 콱 쏟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이 골짜기, 저골짜기에서 우- 우- 불어오는 하늬바람에 오솔오솔 추워나고 때아닌 비까지 쏟아지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게다가 아차 실수하여 발을 잘못 짚으면 얼음판처럼 반들거리는 산비탈을 타고 주르르 미끄러지다가 덤불이나 홈타기에 구겨박히기 쉽다.

가을비는 가시아버지턱수염밑에서 긋는다는 속담을 비웃듯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오후에도 그칠줄 몰랐다.

표무강은 련대의 중간에 위치한 11대대와 같이 행군하고있었다.

지겨운 비를 맞아서 그런지 좀처럼 기분이 나지 않고 걸음도 맥이 없다. 아니, 그까짓 비야 좀 맞은들 뭘 하는가. 휴식참이 되면 마른 삭정이를 골라 모닥불을 피우고 젖은 군복을 말리우면 그만이다. 그보다 걱정스러운것은 식량이 바닥난것이다.

한시간전 얼굴이 컴컴하게 질린 후방부련대장은 식량재고가 하루분밖에 남지 않았다고 보고하였다.

《야단났습니다. 이러다 다들 쓰러지면…》

표무강은 벌컥 성을 냈다.

《동문 뭘 하는 사람이요? 아낙네처럼 우는소리나 하겠으면 별을 떼란 말이요.》

사실 식량문제가 제기된것은 벌써 며칠전이였다.

표무강은 부상자들을 제외한 나머지 군인들에게 하루 한끼씩 죽을 공급하라고 명령하였다.

다행히도 남쪽의 깊은 산속에는 다래가 많았다.

굵은 나무를 오불고불 감으며 재간스레 올라간 덩굴에는 대추모양의 풀색열매들이 가득 달려있었다.

행군중에 다래나무를 발견한 전사들은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와- 하고 달려들었다.

정신없이 따먹고나니 혀가 터갈라졌지만 멀건 죽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하던것에 비하면 호사라고 할수 있었다.

그러나 하루이틀 지나자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달고 향기로운 열매는 공포의 대상으로 변하였으니 배앓이하는 전사들이 부쩍 생겨난것이다. 그때문에 련대의 행군은 지체되였고 군의들과 간호원들은 바빠났다.

그래도 정찰병들은 좀 낫겠지 하고 정찰소대에 가보았더니 그쪽 형편도 마찬가지였다.

세끼 굶으면 군자가 없다고 적진을 제 집 드나들듯 하며 《혀》를 둘러메고 오던 대장부들도 마가을 잠자리처럼 나른해서 맥을 추지 못하였다. 정찰소대장인 리경일부터 샘물가에 넙적 엎드려 주린 배를 물로 채우는 형편이니 다른 정찰병들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오늘 아침에는 지금껏 없던 락오자까지 생겨나 온 련대가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어수선하였다.

출발을 앞두고 인원점검을 해보니 11대대에서 네명이 보이지 않았다.

부랴부랴 대대를 풀어 밤새 숙영하던 골짜기를 훑었는데 눅눅해진 가랑잎을 덮고 나란히 누워있는 그들을 겨우 찾아냈다.

《저희들을… 남겨두고… 가십시오.》

억이 막혀 보고있던 표무강은 11대대장에게 명령하였다.

《동무가 책임지고 후송하오.》

련대에 짐이 될바에는 차라리 죽는게 낫다고 우기던 락오자들은 굵은 나무가지와 모포로 만든 담가에 실려 대오를 따라섰다.…

한동안 걸음을 옮기던 표무강은 무정한 하늘을 마뜩지 않게 올려다보았다.

제길, 이놈의 가을비도 적들 편인가?

《돌이다!》

웃쪽에서 터진 다급한 고함소리였다.

버쩍 머리를 쳐든 그는 산비탈을 타고 굴러내리는 바위를 발견하자 아래쪽에 대고 소리쳤다.

《피하라!》

무기와 장구류를 걸머지고 조심조심 산을 내리던 전사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웃쪽을 쳐다보다가 디굴디굴 굴러내리는 커다란 돌들을 보자 어쩔바를 몰라하다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누군가 부주의로 건드린 돌이 박혀있던 돌을 뽑아던지고 또 그것들이 더 많은 돌을 들추어내며 짓쳐내리는 위세란 실로 무시무시하였다.

우당탕… 퉁탕…

산을 통채로 뒤흔들며 굴러내리는 불가항력의 돌사태는 태평스럽게 졸고있던 아름드리나무들을 닥치는대로 짓조기고 박혀있던 바위들을 들부셨다. 그러고도 성차지 않은듯 산밑으로 무연하게 펼쳐진 강냉이밭을 한바탕 짓뭉개고나서야 즘즘해졌다.

산을 내리자마자 표무강은 구분대별로 인원점검을 하라고 지시하였다.

결과 19대대에서 세명, 공병중대에서 두명, 7대대에서 한명, 고사기관총소대에서 두명이 돌사태에 다쳤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부상자들과 환자들이 가득한데 또 여러명의 환자가 발생하였으니 쩍하면 담가가 모자란다, 약품이 떨어졌다 하고 우는소리를 하던 련대군의소장은 기가 막혀 한숨만 풀풀 내쉬였다.

《박격포는 분해하고 포마들은 련대군의소에 넘길것!》

련대장의 명령에 따라 분해된 박격포들은 그러지 않아도 무거운 장구류를 메고 행군하던 전사들의 어깨와 잔등우에 올라갔다.

포신과 포판 등의 무게때문에 허리가 잔뜩 구부러진 그들을 보자 든든하게 생긴 포마들을 넘겨받고 기뻐하던 련대군의소장도 미안했던지 슬며시 돌아섰다.

《휴식!》

굶주리고 지친 전사들은 채양처럼 생긴 바위밑이나 나무아래로 비틀비틀 걸어갔다.

여느때 같으면 끼리끼리 모여앉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던 돌사태를 두고 떠들썩 이야기판을 벌렸겠지만 다들 덤덤해서 비를 긋거나 끄덕끄덕 졸았다.

그 처량한 모습은 표무강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련대장동무!》

비물이 줄줄 흐르는 턱을 훔치며 다가온 사람은 김흥선이였다.

《구분대별오락회를 조직하는게 어떻습니까?》

잠자고있던 표무강의 굵은 눈섭이 꿈틀거렸다.

남은 식량때문에 속이 타죽겠는데 문화부련대장이라는 사람은 왕청같이 오락회타령을 하고있으니 이거야 어디 손발이 맞아야 해먹지 않겠는가. 영덕계선에서 전사한 이전 문화부련대장은 이렇지 않았다. 무슨 문제이든 꺼내기만 하면 적극 지지해주었고 여기저기 뛰여다니며 자기가 놓친 구석들을 메꾸어주군 했었다. 김흥선은 그와 다르다. 우들우들 떨고있는 전사들을 놓고 오락회를 조직한다니 어디 말이 되는가.

대줄기마냥 쏟아지던 비는 기운이 진했는지 점점 가늘어지고있었다.

주위에는 나무잎사귀에서 떨어지는 잔잔한 비방울소리,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나무가지소리가 아슴푸레 들려왔다.

그속에서 김흥선의 침착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련대장동무, 우리가 언제 오락회를 중단한적 있습니까. 전투가 끝나면 제꺽 전호를 보수하고 돌아앉아 노래를 부르고 춤도 추지 않았습니까.》

그의 말은 옳았다.

아닌게 아니라 전사들은 전투가 끝나면 눈깜빡할 사이에 진지를 보수하고 모여앉아 오락회를 열군 하였다. 숙천벌에서 농사짓다가 입대한 전사는 《백두산말기에 백학이 너울너울…》 하고 고정곡을 구성지게 뽑았고 용해공출신 병사는 용광로앞에서 쇠물을 뽑던 자랑을 하였다.

지금은 그때의 활기롭던 광경을 찾아볼수 없다. 어디를 둘러보나 지친 얼굴들과 무거운 한숨뿐이다. 짬만 있으면 오구구 모여앉아 재잘거리던 간호원들조차 입을 봉해버렸다. 그것을 알고있었지만 현재의 형편에서는 어쩔수 없다. 당장 급한것은 오락회가 아니라 련대의 목을 조이는 식량문제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흥선은 또 다른 말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지금 전사들속에서 좋지 못한 소문도 돌고있습니다. 어떤 전사들은 적들이 평양을 점령했다고 떠드는데 정말 공화국이 살아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고있습니다.》

표무강의 얼굴에 노기가 어렸다.

《그게 대체 누구요?》

김흥선은 누구라고 찍지 않았지만 표정을 보면 한두명이 아닌것 같았다.

표무강은 성급하게 따져물었다.

《그래, 문화부련대장동문 어떻게 할 생각이요?》

《실은 나도 어떻게 하면 전사들의 사기를 높일수 있을가 하고 생각하는중입니다.》

그한테 별로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듣고나니 가뜩이나 공허하던 마음이 더욱 허전해났다.

《돌아가겠습니다.》

스적스적 걸어가는 그를 응시하던 표무강은 주먹으로 옆에 서있는 소나무를 힘껏 들이쳤다.

천지조화를 부리는 하늘의 덕분으로 묵은 먼지를 씻어버리며 명상에 잠겨있던 소나무는 뜻밖의 타격에 놀라 몸을 부르르 떨더니 《침범자》의 머리우에 바늘같은 잎사귀들을 마구 뿌렸다.

뾰족한 잎사귀들이 목덜미를 따끔따끔 찔렀으나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채 군복깃을 와락와락 열어제꼈다.

갈수록 험산이라더니 어느 일 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발등에 떨어진 식량문제, 련대안에 나도는 류언비어, 홍일남의 탈영, 손발이 맞지 않는 문화부련대장…

이제 또 어떤 문제가 제기되겠는지 알수 없다.

문득 표무강은 자기의 어깨우에 집채같은 바위가 올라앉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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