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1

 

꽝!

산아래쪽에서 터진 포소리였다.

잠시후 공기를 째는 금속성이 가까와지더니 10대대가 행군하는 선두에서 시뻘건 불기둥이 확 솟구쳐올랐다. 적포병대의 시사사격이였다.

허리를 굽힌 표무강은 주위를 둘러보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은페!》

전사들은 재빨리 산개하여 바위와 나무뒤에 몸을 숨기였다.

사격제원을 수정하는지 몇초동안 잠잠하더니 이윽고 포탄이 연방 날아들기 시작하였다.

꽝, 꽈광!-

꾸르릉, 쉬익!-

포탄이 작렬할 때마다 아름드리나무들이 통채로 날아나고 쪼각난 바위들이 사방으로 뿌려졌다.

조금후에는 얼마 높지 않은 공중에서 앙칼진 폭음이 울리더니 파편들이 죽음의 휘파람을 불며 날아다녔다. 류산탄이였다.

그에 뒤질세라 엠완총과 기관총도 사납게 울부짖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력밀도는 더욱 조밀해지고 그 위력도 간단치 않다. 어림짐작해도 거의 두개 련대에 가까운 화력이다. 필경 아군의 북상을 막기 위해 급파된 적들일것이다. 나머지 적들도 인차 달려들겠는데…

그 판단을 증명하듯 련대의 후위와 우익에서도 총소리와 포소리가 어지럽게 들려왔다. 소백산-죽령계선에서 아군을 《포위소멸》하겠다고 호언장담한 최덕근이 포위환을 바싹 조이는것이다.

표무강은 속이 부직부직 타들었다.

며칠째 굶은 전사들이 허기져서 맥을 추지 못하는데 설상가상으로 적들까지 달려드니 야단이다.

그러던 그는 좌익쪽이 잠잠하다는것을 알아차렸다.

그쪽으로 쌍안경을 돌리자 렌즈속에 높고 아찔한 벼랑이 비껴들었다.

련대는 고사하고 한개 분대도 통과할것 같지 못하다. 아마 그래서 적들이 비워둔 모양이다. 그렇지만 전투를 피하고 포위를 뚫고나가자면 벼랑길을 통과하는 길밖에 다른 출로는 없었다.

뒤에서 전사들의 웅성웅성하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빠져나갈것 같지 못하구만.》

《걱정두 팔자다. 련대장동지가 어련히 대책하지 않으리.》

가뜩이나 마음이 조급한데 그런 말을 들으니 표무강은 더욱 초조해났다. 죽가마처럼 벌렁벌렁 끓는 가슴을 누르고 벼랑주위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역시 출로는 보이지 않는다. 다시 보자.

두번… 네번…

드디여 벼랑중턱에 건너간 가느다란 띠 같은것을 발견하였을 때 멎은줄 알았던 심장이 껑충 뛰여올랐다.

됐구나!

마침 정찰소대장이 눈먼 파편에 얻어맞을가봐 커다란 몸을 잔뜩 숙이고 뛰여왔다.

《련대장동지!》

다짜고짜 그의 손목을 틀어잡은 표무강은 따져물었다.

《남진때 여기 정찰나오지 않았댔소?》

《옛, 나왔댔습니다.》

리경일에게 쌍안경을 넘겨준 그는 손으로 벼랑쪽을 가리켰다.

《저기 중턱에 있는게 길이 아니요?》

쌍안경으로 그쪽을 살펴본 리경일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습니다. 옛날 사냥군들이 다니던 벼랑길입니다.》

《음!-》

련대장의 두눈이 번쩍 빛나는것을 알아본 리경일은 불안한 어조로 뒤를 달았다.

《위험합니다. 길이 좁아서 건너가다가 도중에 떨어져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합니다.》

아까부터 안경을 매만지고있던 련대참모장이 그와 합세하였다.

《련대장동지, 벼랑을 통과하는건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전사들이 벼랑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7대대장도, 11대대장도 한마디씩 했다.

《차라리 여기서 결사전을 벌리는게 어떻습니까?》

《결사전을 합시다!》

지휘관들이 그렇게 나오니 표무강은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정말 내가 모험을 하는게 아닐가? 7대대장의 말대로 결사전을 벌리는게 옳지 않을가?

다음순간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다 바쳐 전선사령부명령을 전달해준 련락군관이 생각났다.

마음의 탕개를 조이듯 군관혁띠를 꽉 조인 표무강은 구분대장들을 둘러보았다.

《군관동무들, 련대가 받은 임무는 전선을 넘어가는거요. 그런데 여기서 결사전을 한다는게 무슨 소리요?…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벼랑을 통과해야 하오.》

구분대장들의 얼굴에 자책의 빛이 어렸다.

《나의 결심은 다음과 같소. 7대대는 붉은 신호탄이 오를 때까지 전방의 적을 견지할것. 기타 구분대는 좌익으로 철수할것. 행군순서는 정찰소대, 19대대, 11대대, 박격포중대, 고사기관총소대… 출발!》

명령을 받은 구분대장들이 뛰여간 후 련대는 위장복을 입은 정찰병들을 선두로 출발하였다.

《뒤로 전달. 구보롯!》

전사들은 앞에 바위가 있건 개울이 있건 가리지 않고 속보로 뛰여갔다.

강행군이 벌어질 때마다 제일 혼나는것은 《사민구분대》였다.

《고남수아저씨, 빨리요. 빨리!》

《서분아주머니, 힘을 내세요!》

한정아가 앞뒤로 뛰여다니며 애썼지만 단련되지 못한 사민들은 대오에서 점점 떨어져나갔다. 그러면 뒤에서 따라오던 통신소대전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그들을 부축하고 내달렸다. 언제 고맙다고 인사할 사이도 없었다. 달려야 한다. 저 벼랑밑에까지!

목에 겨불이 일도록 내달린 련대는 드디여 벼랑밑에 당도하였다.

앞쪽에서 긴장한 표정을 지은 리경일이 달려왔다.

《련대장동지, 적감시병들을 제껴버렸습니다.》

《?》

《서넛이 어물거리는걸 우리가 먼저 발견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표무강은 얼음물을 들이킨것처럼 가슴이 서늘해났다.

역시 최덕근은 가볍게 볼 적수가 아니다. 벼랑에 병력은 배치하지 않았지만 만약을 생각해서 감시를 조직한것이다. 정찰병들이 선손을 썼기망정이지 어쩔번 했는가.

《앞으롯!》

얼마후 산릉선을 톺아오른 련대앞에 벼랑중턱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돌아간 길이 나타났다.

두사람이 겨우 어길만 한 좁은 길우에는 잡초가 무성한데 간혹 새알이 드문드문 놓여있었다. 그밑에는 방아확같은 골짜기가 입을 쩍 벌리고있다. 아차 실수하면 뻐꾹소리도 못 지르고 끝장날판이다.

골짜기를 내려다본 전사들은 당장이라도 몸이 아래로 떨어질것 같은 환각에 눈을 꽉 감았다.

《정찰!》

련대장이 손짓하자 리경일이 성큼 벼랑길에 들어섰다.

한손은 벼랑턱을 잡고 다른 손은 비행기날개처럼 길게 펴고 걸어가는 그의 뒤로 정찰소대가 따라섰다.

날렵하게 움직이는 정찰병들의 뒤를 따라선것은 마사병들이였다.

그런데 겁을 집어먹은 말들이 앞발을 죽어라고 뻗치고 움직이지 않았다.

성난 마사병들이 소리치고 채찍으로 후려갈겼지만 그럴수록 말들은 점점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였다.

표무강의 가슴은 까맣게 타들었다. 지금 흘러가는 한초한초는 적들의 공격을 결사적으로 막고있는 7대대전사들의 생명과 직결되여있는것이다.

그때 늙수그레한 마사병이 겨우 진정시킨 말을 끌고 나섰다.

그는 불안한듯 눈망울을 디룩거리는 말을 놀래울가봐 연방 갈기를 쓸어주며 조심조심 끌고 갔다.

첫번째 말이 벼랑길을 절반쯤 건너가자 두번째 말이 코를 흥흥거리며 움직였다. 그 다음 세번째 말이 따라서고.

그 모양을 지켜보던 전사들이 약속이나 한듯 막혔던 숨을 내쉬는데 돌연 앗!- 하는 비명소리가 터졌다.

네번째 말의 한쪽다리가 벼랑밖으로 미끄러진것이다.

상반신을 뒤로 잔뜩 제낀 젊은 마사병이 죽을힘을 다해 고삐를 잡아당겼지만 이미 몸균형이 헝클어진 말은 점점 벼랑아래로 떨어지고있었다.

《고삐를 놓으라!》

찰나 말은 호으응!- 하고 비명소리를 지르더니 벼랑길밑으로 떨어졌다.

골짜기에서 단말마의 비명과 투닥투닥하는 소리가 스산한 메아리를 일으키다가 잠잠해졌다.

빈몸으로 벼랑길을 넘어온 마사병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어이쿠, 락동강에서부터 끌고 온 말을 여기서 죽이다니.》

그 탄식소리는 그러지 않아도 속이 한줌만해진 전사들의 마음을 더욱 졸아들게 하였다.

《담가대!》

련대장의 구령이 울렸지만 담가병들은 주저주저하며 걸음을 떼지 못하였다.

앞에 선 사람은 일없지만 뒤사람은 소경처럼 발더듬으로 걸어가야 하는데 잘못하면 자기만이 아니라 부상자와 앞사람까지도 위험하니 왜 심장이 떨리지 않으랴. 더구나 방금 말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그들이다.

련대군의소가 전진하지 못하자 그뒤에 선 11대대와 고사기관총소대도 어쩌지 못하고있었다.

표무강은 자기가 어떻게 달려나갔으며 우물거리는 담가병을 밀어내고 담가채를 거머쥐였는지 알지 못하였다.

《앞으롯!》

놀라서 뒤를 돌아본 앞의 담가병은 뒤채를 잡고있는 련대장을 알아보자 용기가 생겨났는지 성큼 걸음을 내짚었다.

벼랑길에 접어든 두사람은 온몸이 귀가 되여 서로의 발자국소리를 가늠하며 조심히 걸어갔다.

벼랑길을 절반쯤 축냈을 때 구배가 심한 굽인돌이가 나타났다. 제일 위험한 구간이 바로 이곳이다.

앞채를 잡은 담가병이 먼저 굽인돌이를 돌아서자 표무강도 담가채를 오른쪽으로 기울이며 따라섰다.

순간 한쪽발이 공기를 밟은것처럼 밑으로 쑥 빠지더니 몸중심이 벼랑밖으로 왈칵 쏠렸다.

머리칼이 곤두서고 선뜩한 느낌이 뒤잔등을 후려쳤다.

벼랑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깐힘을 쓰는데 누군가 자기를 지켜보는것 같았다.

피끗 고개를 들자 담가우에 누워있는 중상자의 커다란 두눈이 안겨왔다.

창황중이여서 그 눈빛에 동정이 어려있었는지 아니면 겁기가 실렸는지 알수 없었으나 버쩍 정신이 들었다.

한숨을 크게 내쉰 표무강은 오른쪽다리에 힘을 세게 주면서 몸을 우로 솟구쳤다.

실패다. 다시한번… 다시한번…

야!- 하는 환성이 터져올랐을 때 그는 자기가 벼랑길우에 올라섰다는것을 알았다. 그와 동시에 막혔던 동이 터진듯 식은땀이 잔등을 타고 시내물처럼 흘러내렸다.

담가에 누워있던 부상병이 울먹울먹하며 부르짖었다.

《련대장동진 나때문에… 날 둬두고… 가십시오.》

이마의 땀을 어깨에 대고 문지른 표무강은 얼굴이 꺼멓게 질려있는 앞의 담가병에게 소리쳤다.

《앞으롯!》

움실움실 움직이던 담가는 드디여 아슬아슬한 벼랑길을 넘어갔다.

와!-

련대장의 용감한 행동에 감동된 담가병들은 저저마다 벼랑길에 접어들었다.

그뒤로 11대대, 박격포중대가 통과하자 《사민구분대》차례가 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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