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2 장

4

 

《휴식!》

아찔한 벼랑길을 통과하느라 지칠대로 지친 전사들에게 있어서 때마침 내려진 휴식구령처럼 반가운 명령이 또 어디 있으랴. 그것도 5분이나 10분이 아니라 한시간동안이나 말이다. 그동안이면 딴딴해진 장딴지를 충분히 주무를수 있고 좋기는 풀밭이나 펑퍼짐한 바위우에 드러누워 소모된 기운을 보충할수 있을것이다.

7대대장을 불러 경계근무를 조직하라고 이른 표무강은 장작개비처럼 뻣뻣한 다리를 끌고 련대를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어느 구분대에 가나 몹시 지치고 피로한 모습들이다. 하긴 강철로 만든 격침도 오래동안 쓰면 무디여지는데 하루도 변변히 쉬지 못하고 달려온 전사들이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19대대에 들린 그는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우불구불하게 올라간 소나무앞에서 멈춰섰다.

두눈이 우멍하고 광대뼈가 튀여나온 두 전사가 락엽무지우에 배낭을 벗지도 못한채 누워있었다. 말할 기운도 없는지 눈을 멍하니 뜨고있던 그들은 련대장을 알아보자 일어나려고 하였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버둥거리기만 하는 그들의 어깨를 슬며시 눌러놓고 돌아서는 표무강의 가슴은 칼로 베는것처럼 아팠다.

이제 또 행군해야겠는데 이들이 과연 일어날수 있을가? 아, 식량문제만 풀려도 한결 낫겠는데.

이틀전 련대지휘부는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정찰병들을 파견하였었다.

다음날 저녁 빈손으로 돌아온 리경일의 보고는 표무강의 피를 끓이였다.

…적들은 집집마다 샅샅이 뒤져 쌀이나 강냉이는 말할것도 없고 간장과 소금까지도 빡빡 긁어가고있는데 이상한것은 련대의 행군로상에 있는 마을들을 앞질러가며 털어내고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고약한짓을 조직한자는 손에 늘 하얀 장갑을 끼고 다니는 《국군》소령이였다.

어느 한 마을에 들어간 그자는 졸개들을 시켜 인민군대한테 식량을 아낌없이 퍼준 농민을 나무에 거꾸로 매달게 하였다. 그리고는 마을사람들에게 《공산군》을 도와주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라고 하면서 톱으로 농민의 두손을 자르게 하였다. 무서운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보며 야멸차게 웃고난 《국군》소령은 손목을 단번에 자르면 고통이 덜어진다고 하면서 천천히 자르라고 명령하였다. 마치 재미난 연극이라도 감상하듯 흥미있는 표정을 짓고 그 끔찍한 광경을 보고있던 그자는 농민의 피가 장갑에 튕겨나자 독오른 뱀처럼 얼굴이 꼿꼿해지더니 새 장갑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장갑을 바꾸어 낀 《국군》소령은 그의 몸에서 피가 더는 흘러나오지 않을 때까지 지키고있다가 휘파람을 불며 가버렸다. …

무거운 마음을 안고 7대대쪽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내짚고있는데 어디선가 구성진 말소리가 날아왔다.

《동무들, 식사를 대접하겠으니 다들 모이시오.》

기진맥진해서 누워있던 전사들은 《식사》라는 말에 벌떡벌떡 일어났다.

《식사?… 어디 있소?》

《어디에 모이라는거요?》

두눈이 화등잔처럼 커진 전사들앞에 나타난것은 푸짐한 식사가 아니라 목이 앙바틈하고 다리가 짧은 련대지휘부 취사원이였다.

그의 손에 아무것도 없는것을 알아본 전사들은 투덜거렸다.

《사람을 그렇게 놀리는 법이 어디 있소?》

《심봉사처럼 고지식한줄 알았는데 영 딴판이군.》

《노상 가마뚜껑밖에 모르더니 오늘은 어떻게 된거요?》

성미가 급해보이는 상등병은 얼굴이 뻘개서 소리질렀다.

《아바이, 숱한 사람들을 모아놓고 어떻게 하자는거요?》

뒤짐을 진 취사원은 여유작작한 태도로 나왔다.

《상등병동무, 결론을 서두르지 마오.》

다들 쓰거워 입들을 다시는데 텁텁한 말소리가 소슬한 가을바람에 실려왔다.

《해방된 그해 내가 소비조합식당에서 료리사로 있을 때 있은 일이요.

하루는 지나가던 붉은군대 대좌가 우리 식당에 들렸소. 헌데 그 사람이 우리 말을 어떻게나 잘 번지는지…》

듣는지 마는지 전사들은 반응이 없었으나 취사원은 제김에 흥이나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그 대좌가 날 찾더니 이렇게 묻는것이였소.

조선음식가운데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뭐요?참, 동무들. 우리 음식가운데서 제일 맛있는게 뭐요?》

저쪽에서 누군가 시들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야 떡이지 뭐겠소.》

그러자 이쪽에서 다른 전사가 《무슨 떡소리를 하는거요? 쩡한 겨울통김치이지.》라고 툭 받아넘겼다.

좀전에 성을 냈던 상등병이 버럭 소리쳤다.

《다 틀렸소. 국수요, 국수!》

여기저기에서 그의 말에 호응하였다.

《옳소. 국수요.》

《나도 국수를 좋아하오.》

《아무렴, 조선사람이야 국수이상 있나.》

몇마디 말로 잠잠하던 련대를 들쑤셔놓은 취사원은 손님들한테서 주문을 받듯 친절하게 말을 이었다.

《나도 동무들처럼 그 대좌한테 국수라고 말해주었소. 그랬더니 그 사람은 국수라는걸 어디 먹어보기요. 하고 식탁에 나앉는것이였소. 그래 농마국수를 한그릇 잘 말아서 가져다주었더니 날더러 먼저 먹어보라는게 아니겠소. 난 이 량반이 국수를 어떻게 먹는가 보려고 그러누나 하고 짐작하고 식초를 슬쩍 치고 겨자까지 듬뿍 넣은 다음 먹기 시작했소. 매끈매끈하고 졸깃졸깃한 국수오리가 목구멍으로 슬슬 넘어가는데 정말 그 맛이란 둘이 먹다가 한사람 죽어도 모를 정도였소.》

어디선가 군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들려오자 취사원은 성수가 나서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내가 국수먹는것을 찬찬히 지켜보던 대좌가 자기도 먹어보겠다고 나섰소. 그래서 한그릇을 말아주었더니 그 사람은 여느 음식처럼 생각하였는지 국수를 입안에 가득 넣고 꿀떡 삼켰소. 챠, 이러니 글쎄 일이 안 날수가 있소? 그 질긴 농마국수가 그만 목에 떡 걸렸단말이요. 급해맞은 그 사람은 얼굴이 시뻘개서 목구멍에 걸린 국수발을 와락와락 잡아당겼는데…》

그가 목구멍에 걸린 국수발을 잡아당기는 흉내를 어떻게나 신통하게 내였는지 전사들은 자기들도 그 대좌처럼 목을 빼들었다 움츠렸다 하다가 나중에는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그통에 배가 고파 죽겠는데 무슨 먹는 소리를 하는가고 언짢아하던 전사들까지도 슬금슬금 일어나 앉았다.

《마침내 국수발을 다 뽑은 대좌는 내가 자기를 망신시켰다고 노발대발하였소. 난 그런게 아니라고, 농마국수는 질겨서 몇오리씩 넘겨야 한다고 설명하였지만 그는 문을 차고 가버렸소.

눈앞이 캄캄해졌소. 설사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도 붉은군대군관이 대노해서 가버렸으니 그게 어디 보통일이요? 속이 조마조마해있는데 한주일이 지나도록 그는 나타나지 않았소. 이젠 됐구나 하고 안도의 숨을 내쉬였는데 하루는 식당밖에서 차소리가 나는게 아니겠소. 지나가는 차겠지 하고 무심히 밖을 내다보니 어이쿠! 그 대좌가 차에서 훌쩍 내리는게 아니겠소. 왜 또 왔노 하고 걱정하는데 대좌는 싱글벙글하며 들어서더니 단번에 국수 두그릇을 청하는것이였소. 에라, 모르겠다. 제가 달라는데야 할수 있나 하고 농마국수 두그릇을 말아서 가져다주었소.》

《그 다음은 어떻게 됐소?》

《이번에도 또 혼났겠지요?》

《그야 물어보나마나지.》

제풀에 등이 달아하는 전사들을 둘러보던 취사원은 다 틀렸다는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원, 우물에 가서 숭늉찾겠군. 내 말을 마저 들어보오. 국수그릇을 끌어당긴 대좌는 가지고 온 전투가방에서 칼도마하구 자그마한 칼을 꺼냈소. 이 량반이 그따위것들은 왜 가져왔노 하고 생각하는데 글쎄 국수오리를 칼도마우에 올려놓고 썩둑썩둑 자르는게 아니겠소? 허 참, 기가 막혀서… 그 다음 한뽐씩 자른 농마국수를 숟가락만 한 걸이대로 입안에 넣고 조심조심 삼켰는데 차츰 먹는 속도가 빨라졌소. 이런 식으로 두번째 그릇까지 요정낸 대좌는 엄지손가락을 내흔들며 오첸 하라쇼!라고 하는것이였소. 그러면서 자기는 2차세계대전때 여러 나라들의 민족음식을 맛보았지만 조선국수처럼 맛있는 음식은 처음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소.

난 동방례의지국의 당당한 후손답게 앞으로 또 오라고 친절히 바래주었소. 그후 대좌는 우리 식당에 자주 왔는데 어떤 날은 한밤중에 부하들까지 데리고 들이닥친적도 있었소. 몇년이 지나 붉은군대가 철수할 때 대좌는 나한테 찾아와 농마국수를 만드는 방법을 배워가지고 돌아갔소. 뭐 로씨야에 돌아가서 안사람한테 배워주겠다는지. 아마 그 사람은 지금쯤 안해가 눌러주는 조선국수를 먹으면서 날 추억할거요. 자, 그 이야기는 그만하고 동무들! 이제 전쟁이 승리하면 우리 식당에 다들 오시오. 그럼 이 최복남이 오늘처럼 구두식사가 아니라 진짜로 쫄깃쫄깃한 농마국수를 곱배기로 대접하겠소.》

그의 말이 떨어지자 전사들은 저저마다 손을 쳐들었다.

《난 미리 세그릇을 신청하겠소.》

《난 네그릇이요.》

《난 큰 대접에다가 통채로 말아주오.》

《그게 어디 사람배요?》

《하하하!》

방금전까지도 맥을 놓고 앉아있던 전사들은 어디서 그런 기력이 생겼는지 사기를 올리였다.

《원, 공짜로 대접하겠다니까 사정들이 없군. 허허허!》

취사원은 흐뭇한지 느물느물 웃었다.

그가 펼쳐놓은 《구두식사》로 하여 분위기는 한결 밝아졌다.

표무강은 그의 잔등을 두드려주고싶었다.

저 엉큼한 취사원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을가?

《자, 배를 실컷 채웠으니 냅다 달려보기요.》

련대장의 호소에 전사들은 기운차게 화답하였다.

《알았습니다!》

련대가 출발하려는데 척후조장이 서너명의 사민들을 데려왔다.

그들은 적들한테 붙들렸다가 겨우 도망쳐나와 산속을 헤매던중 아군을 만난것이다.

그중에서 최가성을 가진 청년은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호소하였다.

《련대장동지, 놈들은 내가 없는 동안에 안해와 어린 아들애를 무참히 죽였습니다. 이 원한을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예?… 절 인민군대에 받아주십시오. 원쑤를 복수하게 말입니다!》

옆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가 먼저 호송병을 주먹으로 때려눕히고 함께 가던 사람들을 구원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되여 련대에 신대원들이 보충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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