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3 장

4

 

서분이가 갑자기 배를 그러안고 돌아갔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가 다된것처럼 남산만 한 배를 쓸어만지며 미소를 머금고있던 그는 언제 그랬던가싶게 숨이 넘어갈것처럼 고통스러워하였다.

《에구머니!… 엄마, 나 죽어요!》

연방 신음소리를 지르며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는것을 보니 일이 심상치 않았다.

당황해진 한정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분이옆을 뱅글뱅글 맴돌기만 하였다.

《아주머니, 왜, 왜 그러세요. 네?》

급한 나머지 서분이는 한정아의 손을 붙잡고 애원하였다.

《날 좀 살려줘요. 배가 막 아파요오- 당장 끊어지는것 같애요. 에구머니!》

창황중에도 한정아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참, 내가 무슨 산파라도 된다구. 헌데 이 일을 어쩜 좋담?

문득 처녀는 녀성의 본능으로 어머니가 되자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고통스러우면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환희와 행복의 절정으로 솟구쳐오르는 그러한 시각이 닥쳐왔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아이를 낳는것을 한번도 본적이 없고 이런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깜깜인지라 그저 걱정하는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서분이는 더욱 아부재기를 쳤다.

《배가 점점 더 아파요. 이러다가 내가 죽는게 아닐가요?… 에구, 에구머니!》

죽는다고 소리치는 서분이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한정아는 《잠간, 내 인차 갔다올게요. 그때까지 견디여야 해요!》 하고 웨치다싶이 말하고는 무작정 돌아섰다.

련대군의소에 빨리 알려야 한다!

종주먹을 쥐고 뛰여가던 그는 멈춰섰다.

가만, 내가 어디로 가고있니?

련대군의소에도 중상자들과 허약자들이 차고넘치는데 그 판에 임신부까지 들이닥치면…

련대장앞에서 《사민구분대》는 내가 책임진다고 장담하였던 말이 생각났다.

련대군의소는 안되겠어. 그럼 누굴 데려올가?… 옳지. 우물집아주머니를 데려오자. 그 아주머닌 아이를 낳아보았으니 경험이 있을거야.

마침 일이 될세라 숙영준비구령이 내렸다.

그와 함께 서분이도 진통이 멎었는지 잠잠해졌다.

일없지 않을가? 아니야. 그래도 우물집아주머니를 데려와야 해.

서분이한테로 되돌아간 한정아는 제꺽 풀숲우에 모포를 깔고 그를 눕혀놓은 다음 숙영준비를 서두르는 《사민구분대》쪽으로 달려갔다.

사정이야기를 들은 우물집녀인은 혀를 쯧쯧 찼다.

《에구, 서분이가 끝내… 그러지 않아두 이젠 해산할 때가 되였겠는데 하고 걱정했었네. 자, 이러구있을새가 없어. 어서 가자구.》

우물집녀인을 데리고 돌아오니 서분이는 새우처럼 허리를 꼬부리고 옴짝 못하고있었다.

한정아는 우물집녀인과 함께 개인천막을 치고나서 끙끙 신음소리를 내고있는 서분이를 부축하여 그안에 눕혔다.

《어디 좀 보자. … 참, 아지민 밖에 나가있다가 찾으면 들어오라구.》

용의주도하게 움직이는 우물집녀인을 보자 한정아는 호- 하고 한숨이 나갔다. 좀전에는 앞이 캄캄했는데 이젠 마음을 놔도 될것 같았다.

이마에 송골송골 내돋은 땀을 손등으로 훔친 처녀는 기꺼운 마음으로 천막을 나섰다.

《난… 난 더 못 견디겠어요. 에구머니!》

《이제 곧 어머니가 되겠는데 무슨 엄살이 그렇게 많아. 겁을 먹지 말고 내 말대로만 하라구.》

천막안에서 들려오는 녀인들의 이야기를 듣느라니 한정아는 저도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앞으로 서분아주머니처럼 되겠지. 어마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담?

두볼을 감싸진 한정아는 뒤늦게야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는데 저쯤에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얼씬거렸다.

《누구예요?》

맨앞에서 씨엉씨엉 걸어오던 키가 후리후리한 군관이 대답하였다.

《나 련대장이요.》

저으기 놀란 한정아는 얼핏 천막쪽을 돌아보았다.

아이참, 하필 이런 때 나타날건 뭐람.

표무강을 향해 맞받아 걸어간 한정아는 도담하게 앞을 막아섰다.

《련대장동지, 여기로는 못 갑니다.》

우뚝 멈춰선 표무강은 곱지 않은 눈으로 마주보았다.

《왜 못 간다는거요?》

《지금 천막안에서… 어쨌든 이쪽으로는 안됩니다.》

표무강은 그 말에는 아랑곳않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리유를 말해보오.》

《이건 우리 녀자들의 일입니다. 그런것까지 보고해야 합니까?》

그렇게 말하면 물러날줄 알았는데 표무강은 끄떡하지 않았다.

《련대에 배속된 이상 련대장은 무엇이나 다 알아야 하오. 그것이 설사 녀성들에 한한 일이라도 말이요.》

《?!》

결국 그는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일부러 찾아온것이다.

련대장동진 서분아주머니가 해산한다는것을 어떻게 알았을가?

《군의소장동무, 들어가서 환자상태를 알아보오.》

의료기구가 든 가방을 들고 그의 뒤에 서있던 련대군의소장이 천막쪽으로 걸어갔다.

한정아는 공연히 양복자락을 쥐였다놓기도 하고 돌돌 말기도 하면서 속으로 토달거렸다.

련대에 부담을 주지 않자고 그랬는데 뭐가 좋지 않아 그럴가?

처녀의 마음을 알리 없는 표무강은 엄한 기색을 지었다.

《동문 여기가 적후라는걸 잊은게 아니요? 이제라도 적들이 달려들면 어떻게 하겠소?》

《?》

사실 한정아는 해산문제에만 신경을 썼지 그런 정황은 전혀 예견하지 못하였다.

표무강은 사정을 봐주지 않고 연방 조겨댔다.

《말이 난김에 한마디 하기요. 동문 쩍하면 사민구분대는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는데 잘못 생각하고있다고 보오. 지휘관은 자기의 자존심을 시위할것이 아니라 전사들의 운명을 책임져야 한단 말이요.》

《네?》

한정아는 뭔가 항변하고싶었지만 말이 나가지 않았다. 표무강의 말이 옳았던것이다. 실지로 자기가 《사민구분대》를 책임진다는 견해에는 다분히 처녀의 자존심이 작용하고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책임에 대한 자기의 견해와 표무강의 견해는 큰 차이를 가지고있었다.

애꿎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고있는데 천막안에서 련대군의소장이 급히 걸어나왔다.

《련대장동지, 산모상태가 좋지 못합니다. 고열이 나고 출혈증세가 있는데 자칫하면 대출혈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오?》

《빨리 수술을 해야지 산모도 아이도 위험합니다.》

비로소 한정아는 사태가 얼마나 급한지 깨달았다.

당황해난 처녀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래기에 매달리는 심정으로 앞에 서있는 표무강을 쳐다보았다.

허공에서 두사람의 눈길이 마주쳤다.

(련대장동지, 어쩌면 좋아요?)

(동문 정말 한심하오.)

(그래요. 허지만 지금 그걸 론해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표무강의 두툼한 입술에서 단호한 목소리가 튀여나왔다.

《군의소장동무, 수술을 시작하오.》

《알았습니다. 자, 주옥동무와 혜순동문 수술준비!》

련대군의소장의 뒤를 따라 어깨에 위생가방을 둘러멘 처녀간호원들이 천막안으로 뛰여들었다.

그들의 일사불란한 행동을 보자 한정아는 표무강련대장이 이미전부터 해산준비를 착실히 해놓고있었다는것을 알았다.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빨개진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옆으로 돌아선 한정아는 속으로 빌었다.

서분아주머니, 제발… 제발 순산을 해주세요!

돌연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련대참모장이 뛰여왔다.

《련대장동지, 적입니다!》

《뭐요, 병력은?》

《한개 련대쯤 되는데 이쪽으로 밀려옵니다. 아직은 아군을 발견하지 못했으니 인차 빠지면 될것 같습니다.》

《그건 안되오. 지금 한창 해산중이란 말이요.》

《련대가 포위되면 어쩌겠습니까?》

표무강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련대 전투준비!》

안경테를 불안스럽게 만지작거리던 련대참모장이 물었다.

《여기서 전투를 벌리자는겁니까?》

《그렇소. 해산이 끝날 때까지 견지하기요.》

《알았습니다.》

련대참모장이 달려가자 표무강은 천막에 대고 소리쳤다.

《군의소장동무, 련대가 적을 막겠으니 마음놓고 해산방조를 하오. 알겠소?》

《알았습니다.》

꽝, 꽈꽝!-

뚜룩, 뚜루룩-

포탄이 날아와 작렬하고 총탄이 나무가지들을 무자비하게 꺾어버렸다. 어디선가 육박전이 벌어진듯 악, 악 하는 고함소리와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터져올랐다.

그속에서도 천막에서는 《아주머니, 조금만 힘을 내시오. 한번만 더!》 하는 련대군의소장의 부드러운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얼마간 지나자 부상당한 전사들이 밀려들었다.

심한 부상을 입은 그들이였지만 지나가는 간호원들을 붙잡고 해산이 어떻게 되였는가고 물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한정아의 눈굽은 뜨겁게 젖어들었다.

아,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가. 자기의 부상처보다 산모와 새 생명의 출생을 더 걱정하는 뜨거운 마음들!

그 진실한 모습은 처녀의 망막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군상으로 새겨졌다.

돌연 천막안에서 으앙!-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천막자락을 들추고 밖으로 뛰쳐나온 련대군의소장은 얼굴의 땀을 훔칠념도 않고 목청껏 소리쳤다.

《동무들, 보병이 태여났소. 어하하하!》

그 소식은 즉시 전투장으로 날아갔다.

총탄이 떨어진 보총에 총창을 꽂고있던 전사들은 용기백배하여 적들속으로 뛰여들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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