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3 장

7

 

삼라만상이 잠든 깊은 밤.

산속에서 한점의 모닥불이 타오르고있었다.

어둠에 눌리워 생기없이 타오르던 모닥불은 불시에 확- 하고 키를 솟구었다. 아마 막대기로 불무지를 쑤셔놓았는지 사방으로 빨간 불찌들이 도탄된 탄알처럼 튀여났다.

불빛이 환해지자 모닥불앞에 쭈그리고 앉은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불꺼진 화로인양 정기없는 두눈, 두드러져나온 광대뼈…

련대를 찾아가는 전사 홍일남이였다.

그가 피눈물을 뿌리며 어머니와 헤여져 산속을 헤매고있는지도 벌써 며칠이 지나가고있었다. 이제는 더 걸을 힘이 없었다. 풀뿌리를 캐먹으며 산속을 돌아치다나니 눈앞에서 노란 별찌가 가물거렸고 아무데라도 드러누워 실컷 잠이라도 자고싶은 생각뿐이였다.

지금 뒤잔등에 가붙은 배를 그러안고 기세좋게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느라니 불쑥 이틀전에 맞다들었던 다래덩굴이 떠올랐다.

그날 산속길을 따라 비칠비칠 걷고있던 홍일남은 그만에야 무릎을 꺾으며 풀썩 주저앉았다. 배가 고파서 더 걸을수 없었던것이다.

풀숲에 벌렁 드러누워 숨을 가쁘게 내쉬는데 어디선가 달큰한 향기가 풍겨왔다.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주위를 둘러보니 대여섯발자국앞에 다래나무가 서있었다.

《엉, 다래구나!》

벌떡 일어난 그는 이게 웬 떡이야 하고 달려들어 정신없이 따먹었다.

언제인가 분대원들과 함께 다래를 잔뜩 먹고 배앓이하던 생각이 떠올랐으나 언제 그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혀바닥이 텁텁하도록 게걸스럽게 먹고나자 취기가 오르면서 몸이 좌우로 흔들거렸다.

에라, 좀 쉬였다 가자!

다래나무에 몸을 기대자 기다리고있은것처럼 졸음이 밀려들었다.

앉은채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몸이 옆으로 쏠리며 쿵하고 머리를 바닥에 짓쪼아서야 잠에서 깨여났는데 어림짐작에도 둬시간은 잔것 같았다.

와뜰 놀라서 일어나는데 아래배가 꾸르륵꾸르륵하고 별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수풀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는데 배가 계속 편치않았다.

그때부터 연방 수풀속으로 들락날락하다보니 다리가 매시시해서 그대로 주저앉고말았다.

그날은 온종일 시오리도 길을 축내지 못하였다.

어제는 운수좋다고 해야 할지 칡덩굴을 만났다.

손으로 잡아당겼더니 어찌나 땅속에 뿌리내렸는지 어림도 없었다.

석기시대의 원시인들처럼 뾰쪽하게 생긴 돌을 찾아쥐고 엄지손가락보다 더 굵은 칡뿌리를 끊어가지고는 그채로 입에 넣고 질겅질겅 씹었다.

처음은 슴슴하고 씁쓸하더니 조금 지나자 들큰한게 배앓이를 일으키는 다래보다는 한참 나았다.

두려운것은 결코 배고픔이 아니였다.

군대에 입대한 후 홍일남은 언제 한번 전우들과 헤여진적 없었다. 비록 제대로 먹지 못하고 추위에 떨면서 행군하였지만 그때에는 주위에 생사를 같이하는 전우들이 있었다. 지칠대로 지쳐서 두다리가 어떻게 놓이는지 모르고 걷느라면 《일남이, 힘들지?… 배낭을 달라구.》 하고 손을 뻗치는 분대장이 있었고 밤에 숙영할 때면 남달리 추위를 타는 자기의 몸에 군용모포를 덮어주는 구대원들이 있었다. 지금은 혼자였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드넓은 천지에 남은것은 오직 자기뿐이였다.

그는 련대가 위치하고있던 산으로 허둥지둥 달려갔었다.

웬걸 련대가 날 기다려주랴 하고 단정하면서도 속으로는 제발 전우들이 기다려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그랬으나 정작 텅 빈수림속을 보자 눈앞이 아찔하였다.

방금전까지 꿋꿋하던 두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혹시나하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분대장동지!… 동지들!…》

그 부름소리에 화답한것은 삭풍에 떨고있는 나무들의 애처로운 신음소리였다.

아, 가버렸구나!

안타까운 나머지 마구 태질이라도 하고싶은 심정이였다.

멍하니 서있는데 돌연 가까운 곳에서 딱- 하고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적이다!

재빨리 보총격발기를 절커덕- 잡아당기고 그쪽에 대고 겨누었다.

《누구얏?》

《…》

분명 무엇인가 락엽을 밟으며 살금살금 기여가는것 같은데 눈에 띄우지 않는다.

방아쇠에 건 손가락이 부르르 떨렸다.

찰나 머리우에서 푸드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질겁한 홍일남은 방아쇠를 지끈 잡아당겼다.

땅!-

머리우에서 무엇인가 새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

그것은 나무가지우에 올라앉아 다리쉼을 하고있던 이름모를 산새였다.

허거프게 웃으며 보총을 내리우던 그는 다시금 긴장해졌다.

뒤쪽에서 누군가 수풀을 헤치며 다가왔던것이다.

필경 총소리를 듣고 접근해오는 적들일것이다.

서리가 허옇게 내린 잔디우에 몸을 던지며 총구를 앞으로 내밀었다.

숨을 죽이고 기다렸건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

그제야 홍일남은 자기가 겁에 질려 온순한 수림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있다는것을 알았다.

수림은 낮에 이어 밤에도 그를 놀래웠다.

어제 밤, 성냥을 아끼느라고 모닥불을 피우지 않고 락엽우에 그냥 누웠는데 누군가 어깨를 슬슬 어루만지는것이였다.

《뭐야?》

벌떡 일어나며 보총을 내댔으나 교교한 달빛이 비쳐드는 수림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 뱀이 아닐가?… 쳇, 지금이 어느때라고 뱀이 나와?

다시 자리에 누웠는데 이번에는 머리우에서 부엉부엉하는 스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잠기가 싹 달아나고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아예 일어나 앉고말았다. 그것이 고독감이 불러온 신경과민이라고 생각하니 쓸쓸한 생각이 들었다. 배가 뒤잔등에 가붙은데다 마음마저 싱숭생숭하니 오늘은 30리도 못 가고 일찌감치 모닥불을 피운것이다. …

불무지가 점점 사위여가고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삭정이들이 있겠는데 자리에서 일어날 기운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모든것이 시끄러웠다. 도대체 련대를 찾아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불현듯 모닥불너머로 낯익은 고향집이 안겨들었다.

구수한 낟알냄새를 풍기며 벌렁벌렁 끓고있는 가마, 부뚜막에 앉아 이제나저제나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이제라도 나타나면 발치에 매달려 껑충껑충 뛰여오를 검둥이…

그는 어금이를 꽉 깨물었다.

더러운 놈들, 해보겠으면 나하고 해봐야지 앓는 어머니한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육체의 소모와 함께 극도로 나약해진 의지는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굴러갔다.

혹시 내가 마을에 내려가면 어머니가 풀려나올수 있지 않을가? 사실 적들이 붙잡으려고 하는건 내가 아닌가.

한동안 머리를 싸쥐고있던 그는 고개를 쳐들었다.

이젠 련대를 따라가긴 코집이 글렀다. 그럴바 치고는 이 못난 아들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를 구원하자!

결심을 내린 홍일남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머리우에서 군모가 떨어졌다.

무심결에 군모를 집어드는데 모닥불빛에 오각별이 반짝 빛났다.

정신이 버쩍 들었다.

인민군전사인 내가 지금 어디로 가려 하는가? 뭐, 어머니를 구원하겠다고 적들을 찾아간단 말인가? 그건 변절이고 배신이야. 이 군모를 처음 쓰던 날 군기앞에서 뭐라고 맹세다졌던가. 용감하게 싸워서 후날 어머니앞에 떳떳이 나서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순간을 치욕스러운 한생과 바꾸려 하다니. 아니다. 어머니를 구원하는 길은 련대를 찾아가는것이다!

가슴속에서 그득히 차오르는 불 같은것을 삼킨 홍일남은 북두칠성을 바라보았다.

국자모양으로 생긴 일곱개의 별!

련대는 어디 있을가. 아마 북두칠성이 가리키는 곳에 있을것이다. 그 련대를 따라잡자면 쉬고있을 사이가 없다. 당장 떠나자!

모닥불을 꺼버린 홍일남은 북쪽을 향하여 걸음을 성큼 내짚었다.

얼마 가지 못했는데 앞쪽에서 푸드득- 소리가 났다.

조금후에는 가까운 곳에서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멈춰서지 않고 그냥 걸어갔다. 인민군전사의 앞길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더는 없는것이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오는무렵 홍일남은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다시 일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기운이 빠져버린 두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를 사려물고 수풀속을 기여가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기여가느라니 온몸이 찬이슬에 젖어들고 팔굽이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 그래도 앞으로 또 앞으로 기여갔다.

련대로 가자, 련대가 나를 기다린다!

그 시각 그는 얼마나 무서운 일이 자기를 기다리고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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