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3 장

8

 

휴식구령이 내리자 고남수는 수풀속으로 엉기적엉기적 들어갔다.

그가 어째서 조용한것을 찾는가 하는것을 알고있는 사람은 련대적으로 한정아밖에 없다. 본인이 그 일을 조심조심 하고있는데다 한정아까지 입이 쓰거워서 말을 꺼내지 않는 바람에 고남수의 《추행》은 그때까지 비밀로 남아있었다.

한정아는 더는 참고있을수 없었다.

엊그제 식량구입조가 산을 내려갔다가 도중에 실패하고말았다.

련대가 차지한 산을 겹겹으로 에워싼 적들은 기관총과 화염방사기까지 동원하여 공격하였다. 그통에 여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삐라와 방송을 통해서도 아군을 어쩌지 못한 적들은 비렬하기 짝이 없는 기아작전으로 넘어갔던것이다.

그리하여 련대의 식량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온 련대가 칡뿌리와 산열매, 나무껍질에 매달렸다.

그속에서도 누구보다도 더 속을 태우는 사람이 있었느니 그는 산모시중을 들고있는 한정아였다.

얼마전까지는 련대장의 명령으로 부상자들한테 공급되는 쌀을 한줌씩 조절하여 내주었는데 이제는 낟알그림자도 볼수 없었다. 오늘 낮에도 누군가 건사했던 가죽혁띠를 우려낸 뿌연 물을 산모에게 먹이였는데 아무리 쥐여짜도 젖이 나오지 않았다.

갓난아기는 엄마가 자기를 속였다고 밸풀이라도 하듯 앙앙 울어댔다.

진땀을 빨빨 흘리며 발버둥치는 영보를 지켜보는 한정아의 가슴은 마른 가랑잎처럼 바싹바싹 타들었다.

천막을 빠져나와 몰래 울고있던 처녀는 문득 고남수의 쌀배낭이 생각나자 눈물을 훔치고 나섰다.

허기져 누워있는 《사민구분대》속에는 그가 없었다. 고남수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 여기저기 찾아헤매이다가 양지바른 곳에 웅크리고 앉아 배낭을 뒤지고있는 그를 발견하였다.

《아저씨!》

《어구구!》

도적질을 하다가 들키운 사람처럼 와뜰 놀란 고남수는 상대방이 한정아라는것을 알자 마음을 놓은듯 배낭아구리를 꽉 조였다.

《아저씨, 행군구령은 아직 내리지 않았어요.》

말은 이렇게 하였으나 한정아의 눈길은 불룩한 배낭에 박혀 떨어지지 않았다.

뒤늦게야 그 눈치를 차린 고남수는 몸으로 배낭을 슬그머니 가리웠다. 그러더니 바지주머니에서 굵다란 칡뿌리를 뽑아 내주었다.

《임자 배고프면 이걸 씹으라구.》

엉큼한 고남수는 어떻게 하나 처녀를 얼려보려고 수를 쓰고있었다.

이 아저씨가 순순히 쌀을 내놓을가?… 아마 산모가 굶고있다는것을 알면 얼마간이라도 내줄거야.

사정을 이야기한 한정아는 절절한 어조로 부탁하였다.

《아저씨, 한사발만 좀 주세요. 후날 꼭 물어드리겠어요.》

먼 남쪽하늘가를 바라보는 고남수의 얼굴은 돌부처마냥 굳어져있었다. 그냥 놔두면 래일 아침까지라도 그렇게 있을것 같았다.

《아저씨!… 아저씨!》

《으-응? 》

마치도 딴세상에서 돌아온것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있던 고남수는 처녀의 손에 들려있는 바가지를 보자 무의식적으로 배낭아구리를 헤쳤다.

옥백미를 보자 한정아는 기뻐서 막 환성을 지르고싶었다.

쌀이구나. 이젠 됐어!

금시 눈앞에 엄마젖을 맛있게 먹고 캐득거리고있는 영보의 귀여운 모습이 얼른거렸다.

하지만 그 상상은 배낭아구리를 도로 조여매는 고남수의 모습으로 하여 땅에 떨어진 유리처럼 박산났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꿍- 하고 배낭을 어깨에 둘러멘 고남수는 귀머거리처럼 먼 하늘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쌀을 내줄수 없다는 태도였다.

한정아는 말이 다 나오지 않았다.

사람이 어쩜 이럴수 있는가? 이런 인간과 지금껏 함께 지냈단 말인가?

격분에 찬 처녀의 입에서 맵짠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말해보세요. 그래, 죽어가는 산모와 갓난아기를 위해 쌀 한줌도 줄수 없단 말인가요? 네?》

그러거나말거나 고남수는 자기한테 필요할 때면 곧잘 써먹는 귀머거리흉내를 내고있었다.

처녀의 가슴속에서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인간의 량심이란 꼬물만큼도 없는 수전노!

한정아는 마디마디에 경멸의 감정을 담아 내뱉았다.

《다신 구걸하지 않겠어요. 그렇지만 똑똑히 알아두세요. 아저씨같은 인간은 우리 대렬에 있을 자리가 없다는걸 말이예요.》

총알처럼 내쏜 한정아는 찬바람을 일구며 돌아섰다.

뒤에서 떠듬거리는 말소리가 추근추근 따라왔다.

《임, 임자, 내, 내 말을…》

처녀의 귀에는 그 말이 남이야 죽든살든 자기만 좋으면 된다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변명처럼 들려왔다.

총총히 걸어가던 한정아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나 지금이나 고남수의 배낭은 조금도 줄지 않고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가 옥백미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는것이다. 실지로 그는 좀전에 칡뿌리를 손에 들고있었다. 모를 일이다. 어째서 쌀을 등에 지고 가면서 굶고있는가? 남도 안 주고 자기도 안 먹는 이런 사람을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가.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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