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3 장

9

 

산릉선을 따라 줄기차게 흘러가던 대오는 급제동을 건 렬차마냥 줄렁줄렁 멈춰섰다.

《왜 섰어?》

《혹시 적정이 생긴게 아니야?》

《그런것 같진 않은데…》

다들 고개를 뽑아들고 앞쪽을 보고있는데 한무리의 전사들이 떠들썩하며 밀려왔다.

점점 불어나는 그 대오는 련대가 멈춰선 리유를 알아보기 위해 달려가던 표무강과 부딪쳤다.

《무슨 일이요?》

맨 앞장에 서있던 리경일이 누군가를 왁살스럽게 끌어냈다.

《련대장동지, 이게 누군가 보십시오.》

수밤송이처럼 마구 헝클어진 머리칼, 때국물이 흐르는 얼굴, 너덜너덜한 군복…

《바로 그… 홍일남입니다!》

격분에 넘친 리경일의 말을 듣고서야 표무강은 그가 정말 홍일남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그만큼 그의 모색은 퍼그나 변하였다. 피골이 상접한 얼굴에 살아있는것은 두눈뿐이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껏 《나타나기만 해봐라. 용서치 않을테다!》 하고 별렀지만 정작 련대를 찾아온 그를 보자 어느덧 노여움은 가라앉고 무작정 반가웠다. 마치 잃어버렸던 자식을 겨우 찾은 어머니의 심정이라고 할가.

《일남이, 어디 갔다가 인제야 왔어. 응?》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고 그를 와락 끌어안으려던 표무강은 전기에 닿은것처럼 놀랐다.

귀전을 아프게 울리는 확성기소리.

《나도 이런 결심을 내리자니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앓고있는 어머니를 버리고 련대에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

뜨겁게 달아올랐던 몸이 얼음물에 빠진것처럼 식어버렸다. 대신 반가움에 눌리웠던 분노가 고개를 쳐들었다.

일남이, 난 널 기다렸다. 어머니한테 진짜 효도를 하겠다는 그 마음을 믿었단 말이다. 헌데 넌 그 믿음을 헌신짝처럼 내던지고 어떻게 했는가? 에익, 너절한 자식!

점점 무섭게 변하는 련대장의 얼굴을 일별한 홍일남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련대장동지, 절 용서해주십시오.》

받는 소마냥 욱하고 달려든 리경일이 그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뭐, 언젠 우리더러 산에서 내려오라고 떠벌이더니 이제 와선 용서해달라구?》

밭가운데 서있는 허수아비처럼 잡아당기는대로 이리저리 몸을 흔들거리던 홍일남은 마치 지구가 깨여지기라도 한것처럼 와뜰 놀랐다.

《그, 그건… 무슨 말입니까?》

《그래, 네가 직승기를 타고 돌아치면서 불어대지 않았단 말이야?》

어안이 벙벙해서 서있던 홍일남은 펄쩍 뛰였다.

《난 그러지 않았습니다. 정말입니다.》

주위에 모여있던 전사들이 저저마다 격분을 터뜨렸다.

《이 뻔뻔스러운 자식 봤나?》

《우리가 다 들었는데두 거짓말을 해?》

못내 억울한듯 홍일남은 가슴을 쾅쾅 치며 울부짖었다.

《난 아닙니다. 안 그랬단 말입니다!》

표무강은 착잡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있었다.

《련대장동무!》

뒤에서 비수처럼 날카로운 말소리가 날아와 잔등을 찔렀다.

《나 좀 보기요.》

대렬에서 얼마간 떨어진 곳으로 그를 데리고 간 로성익은 엄하게 질책하였다.

《동문 무엇때문에 주저하는거요?》

《난 주저하는게 아닙니다.》

《그럼 뭐요?》

표무강은 확신에 넘쳐 대답하였다.

《그는 제발로 련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니 사정을 알아보고 처리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로성익의 눈빛이 번뜩이였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그래, 저자가 그동안 무슨짓을 했는지 동무가 보증할수 있소? 적들한테 련대의 비밀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증명할수 있는가 말이요.》

언제 보나 그의 말은 론리가 정연하고 빈틈이 없었다.

그렇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오래동안 없어졌다가 나타난 사람을 어떻게 보증할수 있는가?

로성익은 상급답게 추궁하였다.

《난 지금과 같은 때일수록 동무가 랭철해야 한다고 보오.》

《…》

《됐소. 전사들이 보는데 그만하기요.》

먼저 숲속을 빠져나온 로성익은 위엄있는 자세로 전사들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배신자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몇명의 전사들이 맞받아 소리쳤다.

《총살합시다!》

더는 용서받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홍일남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러던 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군복소매로 눈굽을 훔치고 고개를 쳐들었다. 마지막순간만은 전우들앞에서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전선사령부 대표의 딱딱한 목소리가 울렸다.

《련대장동무, 어서 결심하오!》

《동무들!》

수천쌍의 눈동자가 홍일남의 곁으로 다가가는 련대장을 지켜보았다.

련대를 쭉 둘러보던 표무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동무들의 심정은 알만 합니다. 그러나 난 홍일남동무를…》

전사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이였다.

주위는 고요한데 이따금 헐벗은 나무가지에 죽기내기로 매달렸다가 끝끝내 떨어지는 락엽의 신음소리가 애처롭게 들려왔다.

누군가 사레들렸는지 헛기침을 깇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쿵쿵하는 코소리와 기침소리가 터져나왔다.

련대장의 목소리가 전사들의 머리우를 날았다.

《… 홍일남동무를 용서해주자고 합니다!》

온 련대가 신음비슷한 소리를 내질렀다.

우린 그를 총살하자고 했는데… 그러니 련대장동진 홍일남을 끝까지 믿었구나!

《여보, 련대장동무!》

싸늘하게 울린 그 목소리에 주위의 공기가 금시 얼어붙는것 같았다.

《동문 배신자의 목소리를 못 들었소?》

《들었습니다.》

《그럼 어째서 용서해주자고 하는가?》

홍일남의 손목을 으스러지게 잡은 표무강은 자신심에 넘쳐 말하였다.

《만약 홍일남동무가 정말 방송을 불어댔다면 총살당할줄 알고도 남겠는데 무엇때문에 나타났겠습니까? 그건 량심이 깨끗하기때문입니다.》

로성익은 뭐라고 말하려고 하였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지 얼굴을 찡그렸다.

《한가지 또 말하고싶은건 그 방송은 가짜라는 사실입니다.》

《뭐요?》

로성익은 물론이고 온 련대가 깜짝 놀랐다.

표무강은 확신에 넘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일남동문 국군살이를 할 때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가 중대장한테 죽도록 얻어맞았습니다. 그때 앞이가 부러졌는데 그때문에 자발음이 정확치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들은 목소리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장이라도 함성이 터져오를것 같았지만 전사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수천의 눈동자들에는 뜨거운 빛이 번뜩이고있었다.

도대체 우리들중 누가 홍일남의 발음을 생각이나 하였던가. 없다. 오직 련대장동지만이, 전사를 자신처럼 믿는 그만이 그런 생각을 할수 있었다. 아, 우리가 얼마나 훌륭한 지휘관과 함께 싸우고있는가.

전사들의 가슴속에 차고넘친 그 감정의 파도는 멍하니 서있는 홍일남한테 넘실넘실 밀려갔다.

사품치며 밀려오는 인정의 파도에 휘감긴 홍일남은 그만에야 풀썩 주저앉더니 으흑―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표무강은 어깨를 세차게 떨고있는 홍일남을 버쩍 일으켰다.

《일남이!》

《련대장동지!》

순식간에 두사람은 한덩어리가 되여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전사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이 친구야, 끝내 돌아왔구나!》

《일남이, 우릴 용서하라구.》

홍일남은 목이 꽉 메여 부르짖었다.

《아닙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 다신 련대를…》

눈물을 좔좔 쏟고있던 그는 그리운 전우들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일남이!》

온 련대가 배신자로 락인찍었던 홍일남을, 끝끝내 전우들의 믿음을 되찾은 그를 둘러싸고 들썩거렸다.

련대장의 씩씩한 구령이 수림속을 뒤흔들었다.

《련대 행군 계속, 앞으롯!》

그 모습을 응시하는 로성익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뒤집어질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던 그였다.

처음 홍일남이 련대에 나타났을 때 뇌리에 번개처럼 떠오른것은 혹시 그가 적들을 달고 온게 아닐가 하는 생각이였다.

즉시 련대후위로 전사를 띄웠는데 다행히 적정은 없었다.

안도의 숨은 나갔지만 리해되지 않았다.

그가 어째서 련대를 찾아왔는가? 늦게나마 자기의 배신행위를 후회했을가? 가만, 혹시 홍일남이 의심을 받지 않도록 적들이 일부러 꼬리를 물지 않았을수도 있지 않을가? 어쨌든 용서해서는 안된다. 《제2의 월로쟈》를 총살해서 신념이 떨떨한 전사들에게 경종을 울려야 한다!

일은 자기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번져갔다.

표무강은 남들이 전혀 생각지 못한 《ㅅ》자발음으로 홍일남을 보증하였던것이다. 그것은 결국 전선사령부 대표인 자기에 대한 도전이고 무시였다.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겨우 억제한 로성익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말이 울리고있었다.

《어디 두고보기요. 누가 옳았는지는 시간이 증명할것이요.》

랭담한 얼굴을 쳐든 로성익은 신경질적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

한편 허정효는 방송원계집이 부어준 술을 기분좋게 마시고있었다.

얼마든지 생포할수 있었지만 우정 살려보낸 홍일남이 제편의 손에 총살당하면 굶주림과 추위에 사기가 저락된 《공산군》들속에서 심한 동요가 일어날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중지란의 도화선에 불이 당긴것이나 다름없다. 아마 래일쯤이면 슬금슬금 산을 내리는자들이 속출할것이다. 기다리라. 표무강, 당신이 내앞에 무릎을 꿇을 날도 멀지 않았다!

통쾌한 나머지 술잔을 쭉 기울인 허정효는 야멸차게 웃었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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