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4 장

1

 

웬 일인지 적들은 한낮이 지나도록 잠잠하였다.

아름드리나무들을 뿌리채 뽑아던지던 포탄도 날아들지 않았고 모닥불을 피우기만 하면 반찬냄새맡은 도적고양이마냥 씽 날아들어 기총탄을 퍼붓던 얄미운 적기도 뜨지 않았다.

요란한 폭음과 지독한 화약가스에 움츠러들었던 뭇새들만이 오랜만에 찾아든 안식을 즐기며 흥겹게 지저귀고있었다.

거듭되는 전투와 행군에 습관된 전사들은 오히려 그 정적을 두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적들이 왜 얌전해졌을가?》

《그야 뻔하지. 물러나는척 하다가 다시 달려들자는거야.》

그때 불을 피우고 점심준비를 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녕월군습격전투후 배낭에 쌀을 그득그득 채운 전사들은 성수가 나서 식사차비에 달라붙었다. 한쪽에서는 삭정이를 모은다, 쌀을 꺼낸다 하고 부산을 피우는데 다른쪽에서는 벌써 모닥불을 피우고 군용밥통들을 데룽데룽 걸고있었다.

온 련대가 떠들썩하고있을 때 표무강은 머리를 파고드는 의혹과 씨름하고있었다.

엊저녁부터 적들은 일체 전투행동을 중지하였고 귀가 아프도록 불어대던 방송도 입을 다물었다. 련대정찰은 적들이 아군에 대한 포위를 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보고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군은 아무런 장애없이 북상할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예상치 않게 닥쳐온 정적이 마음에 걸린다. 지금까지 적들은 아군을 막아보려고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도 악착스레 달려들었는데 갑자기 잠잠해졌으니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혹시 최덕근이 무슨 꿍꿍이를 하고있는게 아닐가?

의혹의 덩어리를 이리저리 굴리고있는데 서너발자국앞에 서있는 굵은 잣나무뒤에서 가죽장화가 불쑥 나타났다.

련대에 그런 장화를 신은 군관은 전선사령부 대표뿐이다.

녕월군전투를 둘러싸고 의견마찰이 있은 후 단 둘이 만나기는 처음이였다.

그동안 두사람은 될수록 마주서지 않았는데 그것은 전사들앞에서 자기들의 의견상이를 로출시켜서는 안된다는 자각때문이였다. 그랬었는데 로성익쪽에서 찾아온것을 보면 중요한 일이 생긴 모양이다.

잣나무를 에돌아온 로성익은 차렷자세를 취하는 표무강을 만류하고 이렇게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소?》

《그저 좀…》

《혹시 적들이 왜 물러났겠는가 하고 생각하는게 아니요?》

《옳습니다.》

《뭘 짚이는게 있소?》

《아직은… 정찰이 돌아와야 알수 있을것 같습니다.》

동감이라는듯 고개를 주억거린 로성익은 자기가 에돌아온 잣나무쪽에 눈길을 던졌다.

표무강도 그를 따라 잣나무를 쳐다보았다.

나무우에는 깜찍하게 생긴 청서가 재롱을 부리며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그놈은 탐스러운 꼬리를 요리조리 휘저으며 이 가지에서 저 가지에로 날렵하게 움직이였는데 그만 아뿔싸! 잣송이를 떨구고 말았다.

또르르 굴러가던 잣송이는 공교롭게도 로성익의 발치에서 멎었다.

우연히 차례진 수확물을 흥미있게 내려다보던 그는 잣나무와 청서를 번갈아 보았다.

함치르르한 꽁지를 곧추세운 청서는 자기가 실수하여 떨군 먹이감을 돌려달라고 애원하듯 불룩한 입을 오물오물하였다.

로성익이 허리를 굽히고 잣송이를 집어들자 청서는 새된 소리를 지르며 자비심을 호소하였다.

그는 상체를 뒤로 제꼈다가 탄력있게 팔을 앞으로 휘둘렀다.

잣송이가 멀리 날아가자 청서는 무정한 인간에게 항의하듯 새되게 울부짖더니 다른 나무로 넘어갔다.

《잣송이를 그냥 두면 청서란 놈은 나무에서 내려오게 되오. 그건 곧 위험을 의미하지. 청서를 노리고있던 여우나 매가 달려들수 있거던. 그러니 잣송이를 없애면 청서는 땅에 내려올 일이 없으니 안전해진단 말이요.》

별치않은 산열매에 그렇듯 심각한 운명이 걸려있을줄은 생각지 못하였던 표무강은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손수건으로 손을 깨끗이 닦은 로성익은 정색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토의할 문제가 있소.》

《말씀하십시오.》

심중한 눈으로 표무강을 응시하던 그는 힘주어 말하였다.

《난 적들이 련대를 포기한 기회에 강행군을 들이대자는거요.》

표무강도 그 문제를 생각하고있었지만 께름한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득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그쪽으로 머리를 돌리자 나무들사이로 위장복을 입은 사람들이 달려오고있는것이 보였다.

두 지휘관앞으로 뛰여온 리경일은 로성익의 승인을 받은 다음 표무강한테로 돌아섰다.

《련대장동지, 보고할만 합니까?… 현재 적들은 북상하고있습니다.》

《북상한다구?》

《예, 큼직한 를 심문했는데 최덕근이가 중요한 작전에 참가한다고 했답니다.》

《구체적으로는?》

긴장한듯 침을 꿀꺽 넘긴 리경일은 ××역에 도착한 최덕근사단이 군용렬차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있다고 이야기하였다.

표무강은 속이 후련해났다.

검질기게 따라다니던 최덕근이가 떨어져나갔으니 한숨을 돌릴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던 그는 찬바람을 맞은것처럼 몸을 떨었다.

가만, 우리가 자기들의 안전만 생각하고 전선을 그냥 넘어간다면… 그렇게 되면 최덕근사단은 적집단에 합류될것이고 그만큼 전선의 형편은 어려워질것이다. 아니, 절대로 최덕근을 놔줄수 없다!

《전선사령부 대표동지!》

안도의 기색을 짓고있던 로성익은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았다.

《전 적들의 집결처를 들이쳤으면 합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최덕근을 그냥 놔주지 않겠습니다.》

로성익은 마치 분별없이 헤덤비는 소년을 달래듯 진중한 어조로 일렀다.

《이건 즉흥적으로 결심할 문제가 아니요. 자칫하면 련대가 전멸될수 있단 말이요.》

문득 표무강의 머리속에 그가 《은혜》를 베풀어준 청서생각이 났다.

그때는 그저 심심풀이로 하는 이야기인줄 알았었는데 지금 보니 전선사령부 대표는 벌써 이와 같은 경우를 타산하고있은것이다.

페부가 불어나도록 숨을 크게 들이쉰 그는 불을 토하듯 말하였다.

《설사 련대가 전멸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로성익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련대장동무, 그쯤 말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무슨 고집이요?》

《이건 고집이 아닙니다.》

로성익의 목소리가 대뜸 높아졌다.

《바로 그게 고집이란 말이요. 그래, 동문 련대의 운명을 저 혼자 책임졌다고 생각하오? 보자보자하니까 점점 안하무인격이거던.》

잠간 동안을 두었던 그는 상급답게 훈시하였다.

《명백히 말하지만 동무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전선을 무사히 넘어가는거란 말이요.》

《…》

《내 말이 접수되지 않소?》

표무강은 정말이지 그의 말을 접수할수 없었다.

무엇때문에 전선사령부 대표는 말끝마다 전선을 무사히 넘어가야 한다는 소리만 외우는가? 물론 련대의 운명을 두고 걱정하는 그 마음은 리해된다. 그러나 우리가 어째서 정든 고향과 가족을 뒤에 남겨두고 북으로 가고있는가?

군관혁띠를 꽉 조여맨 그는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전선사령부 대표동지, 난 무조건 적들을 쳐야겠습니다.》

《상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건가?》

《…》

그를 노려보던 로성익은 도끼로 찍듯 내뱉았다.

《정 그렇게 나오면 난 동무를 군사재판에 넘기겠소!》

군사재판이라는 말이 나오자 표무강은 속이 뒤집어졌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구 군사재판에 넘긴단 말인가? 이거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이다. 그렇다고 결심을 바꿀 생각은 조금도 없다. 총탄은 이미 발사되였으니까.

《좋습니다. 하지만 전투가 끝난 후에 군사재판을 받도록 해주십시오.》

로성익의 얼굴은 피기를 잃은것처럼 창백해졌다.

《다 말했소?》

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언제 왔는지 련대참모장이 로성익을 만류하였다.

《전선사령부 대표동지, 왜 이러십니까?》

《…》

《전사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제야 리성을 회복한 로성익은 다소 누그러졌으나 상급다운 자세는 잃지 않고있었다.

《다시말하지만 난 승인할수 없소.》

결패있게 내뱉은 그는 홱 돌아서더니 잣나무뒤로 걸어갔다.

안경테를 매만지고있던 련대참모장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련대장동지, 어떻게 하겠습니까?》

《동문 뭘 말하자는거요?》

《전선사령부 대표동지의 지시대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표무강은 단호하게 명령하였다.

《지도를 꺼내놓소!》

참모장이 주저주저하며 군용지도를 꺼내놓자 그는 현재 아군의 위치와 ××역과의 거리를 가늠해보았다.

100여리!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이다. 전사들이 꽤 견디여낼가?

《련대장동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한쪽어깨를 부자연스럽게 떨군 문화부련대장 김흥선이 서있었다.

《무슨 일이요?》

수더분한 표정을 지은 그한테서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군무자총회를 열고 우리가 무엇때문에 북상하는 적들을 족쳐야 하는가를 알려주는게 어떻습니까?》

표무강은 막혔던 숨길이 확 열리는것 같았다.

군무자총회를 열잔 말이지. 이 친구가 또 지원포를 쏴주는구나!

불현듯 전사들이 즐겁게 외우군 하는 《구두식사》가 생각났다.

그날 련대가 행군준비를 갖추고있을 때 그는 련대부취사원을 찾았다.

《취사원동무, 수고했소.》

가마뚜껑이나 운전하고있으니 남들처럼 평가를 받기는 코집이 글렀다고 소침해있던 취사원은 생각지 않게 련대장의 칭찬을 받자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구두식사는 어떻게 생각해냈소?》

《예, 그건…》

우물쭈물하던 그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실은 문화부련대장동지가…》

그의 입에서 문화부련대장소리가 나오자 표무강은 뗑해졌다.

그 사람이 《구두식사》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취사원은 맛좋은 료리를 하듯 손세를 써가며 이야기하였다.

《…동무들이 힘들어하는데 재미난 이야기가 있으면 들려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취사일은 자신있는데 그런 일만은 절대로 못한다고 했더니 문화부련대장동진 어색해할게 없다, 그저 전사들을 우리 식당에 찾아온 손님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하면서 제 등을 떠밀어주었습니다.》

《음, 그랬단 말이지.》

그 일이 있은 다음부터 그는 김흥선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그는 전선사령부 대표가 씨름경기를 승낙하지 않았을 때에도 자기를 지지해주었고 녕월군습격전투도 같이 책임지겠다고 나섰었다. 오늘은 또 자기의 속마음을 슬그머니 들여다보고 좋은 방도를 내놓은것이다.

여태 김흥선을 고깝게 생각해오던 자신이 부끄러워났다.

흥선이, 고맙네!

옆에서 챙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련대장동지, 련대군의소 간호원 하사 신주옥 만날만 합니까?》

그들앞에 나타난 처녀는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들어박힌 처녀간호원이였다.

《말하오.》

간호원처녀가 뭔가 말을 꺼내려는데 웬 일인지 안절부절 못하던 김흥선이 박격포중대에 가봐야겠다고 하고는 부리나케 돌아섰다.

《아이참!》

간호원은 바삐 사라지는 그를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떻게 된 일이요?》

《문화부련대장동진 어깨에 찰과상을 입었습니다.》

《뭐, 찰과상?》

표무강은 좀전에 어깨를 조심조심 놀리던 김흥선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래서였구나!

며칠전 김흥선은 느닷없이 날랜 정찰병 두명을 붙여달라고 제기하였다.

왜 그러는가고 물으니 적들을 들이치고 라지오를 구해오겠다는것이였다.

표무강은 그런거야 정찰병들한테 명령하면 어련히 구해오겠는데 문화부련대장이라는 사람이 꼭 나서야겠는가고 밀막았다.

김흥선은 자기가 문화부련대장구실을 잘하지 못하였다고, 전사들은 최고사령부소식을 알고싶어하는데 어떻게 앉아있겠는가고 고집을 부렸다. 어릴적부터 김흥선은 순박하고 어진 성미였지만 일단 고집을 세우면 범같은 표무강도 어쩌지 못하였었다.

하여 그는 정찰병들과 함께 산을 내려갔고 끝내 라지오를 구해왔었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온 련대가 련대지휘부로 모여들었다.

김흥선이 라지오눈금판을 돌리자 쏴- 하는 소음이 나더니 이어 《조국보위의 노래》가 울려나왔다.

 

    가슴에 끓는 피를 조국에 바치니

    영예로운 별빛이 머리우에 빛난다

    …

노래가 끝나자 《삐삐삐-》 하고 시간을 예고하는 음향이 흘러나오다가 갑자기 방송원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여기는 조선중앙방송국입니다. 일곱시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목소리에 이어 우뢰소리처럼 격렬한 남자방송원의 목소리가 산골짜기를 뒤흔들었다.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 영용한 아군부대들은…》

보도가 끝나자 전사들은 서로 얼싸안고 울고웃으며 환성을 터쳤다.

그때 표무강은 벙글벙글 웃고있던 김흥선을 보았지만 부상을 당한줄은 몰랐었다. …

《문화부련대장동진 처치를 하자는데 계속 피합니다.》

《그건 어째서?》

《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아무렴 문화부련대장이 이 처녀가 무서워 달아나겠는가?

무심결에 간호원을 바라보던 표무강은 속으로 놀랐다.

《?!》

그것은 한 찰나 그는 본래의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왔다.

《동문 간호원이 맞소?》

련대장한테 지원포사격을 기대하고있던 간호원은 두눈을 깜빡거렸다.

《간호원이라면 부상자가 어디 가든 따라가서 처치해야지.》

《알았습니다. 련대장동지!》

맵시있게 거수경례를 한 간호원처녀는 위생가방을 달랑거리며 뛰여갔다.

 

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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