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 회)

제 4 장

왜땅에 나타난 관음보살

2

 

송희령이 쯔시마에 도착하여 알아보니 송운대사가 거느리는 조선사신일행은 이미 수일전에 왜나라의 본토로 건너갔었다.

송희령은 유정이가 무사히 건재하다는것을 알고 기뻤으나 이번엔 더 큰 우려가 그의 가슴을 조였다.

본토는 쯔시마보다 몇곱절로 험난하고 위험한 곳이여서 송운대사네의 신변안전이 몹시 걱정됐던것이다.

왜나라에는 절간들이 산속과 마을들과 읍거리들에 절제없이 지어진지라 쯔시마도읍 한끝의 자그마한 절에 림시로 거처를 정한 송희령은 주변의 민가들을 돌며 병자들을 치료하여 끼식벌이를 했다.

그는 휩싸여드는 불안에 속이 막 답답해나 염기에 절은 맵짠 하늬바람이 살갗을 짙트게 만드는 초겨울이였건만 바람을 쏘이려고 먼 성밖에까지 나다니였다.

그가 밥값이나 치르느라고 절간을 관할하는 왜중의 친척벌되는 병자를 치료해준것이 발단이 되여 근처의 이러저러한 환자들이 왕진을 청탁하였고 그러해서 날이 감에 따라 령험스럽고 신통력을 지닌 조선의 녀의승에 대한 소문이 바람같이 퍼져돌았다.

송희령이가 숙소로 정한 외당으로는 불문을 익히려고 오는 왜인중들과 병을 고치려고 오는 환자들이 문돌쩌귀가 닳아빠질 정도로 찾아들었다.

어느날 늦은 아침을 치르고난 송희령이 절간을 벗어나 거리 한복판에 자리잡은 객관앞의 행길을 지나는데 가까운 옆산에서 땔나무단을 지게로 산더미같이 담아 지고오던 객관의 부엌어멈이 다리맥이 빠졌는지 갑자기 털썩 무너져앉았다.

희령은 촉급히 다가가 어멈을 부축하여 일으켰다.

헌데 왜인으로 여겼던 그 늙수그레한 어멈이 뜻밖에도 조선말로 사례를 해오는것이였다.

《고맙소이다, 의스님.》

그 소리에 희령은 놀라 눈이 커지며 어멈은 조선사람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부엌어멈은 눈물이 글썽해져 삼거웃같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고국에서 오신 스님들은 어쩜 이리도 하나같이 인정이 많으신지 참.》 이러며 감탄을 금치 못하는것이였다.

의아하여 굳어지는 희령이한테 부엌어멈은 전에 조선사신으로 이곳에 와 머무르던 수염풍성한 도사가 자기처럼 왜땅에 끌려와 노예살이를 강요당하는 동포들의 처지를 동정하여 자비를 한량없이 베풀던 얘기를 자랑삼아 늘어놓았다.

《그러니 송운대사님께서 이곳 객관에서 숙식을 했나요?》

《그렇사옵니다. 그 스님은 참으로 인정이 한량없으시고 인품과 기개가 출중한분이옵니다. 여기 대마도에 첫발을 들여놓기 바쁘게 우린 전승국의 사신이니 그리 알고 조처하오.- 하고 호령을 하니 예껏 하늘높은줄 모르고 으시대던 관원들이 갑신닥대며 쩔쩔매질 않겠나유.》

희령은 제 마음속에 우상의 존재로 품고있던 송운대사에 대한 얘기를 들으니 기쁨이 무상히 솟음쳤다. 이즈막 나라일을 떠메고 왜나라 막부가 있는 곳으로 건너가 야수의 무리속에서 뇌심초사하며 간난신고를 치르고있을 련인의 정다운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눈굽이 저려들며 심정이 저으기 애달파졌다.

송희령은 그날부터 쯔시마의 멀고 가까운 곳곳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겉으로 주변왜인들이 보기에는 쇠정스러운 불가의 녀승이 이채로운 속세의 풍경을 부감하며 머리쉼을 하는것 같은 산책이였으나 사실상 본인인 희령으로서는 이곳 쯔시마땅을 풍우마냥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조선사신행차의 발자취를 따르며 그들이 남긴 숨결을 느끼는 편답이였다. 한길 더 깊이 파고들어 그의 솔직한 심중을 헤쳐본다면 사신일반이라기보다 사신일행의 행수인 송운대사에 대한 애정스러운 발더듬이기도 했다.

어느날 송희령은 절간을 나서자 첫걸음에 왜인아전들이 곡간의 생쥐처럼 들락이는 관사부터 들려보았다.

그가 관사대문앞에 착 이르는데 안에서 사람죽어가는 소리가 났다.

웬일인가 하여 기웃이 들여다보니 관원 하나가 배를 그러안고 댁실댁실 굴고있었다.

여느 관원들은 빙 둘러선채 멍청해서 그를 지켜보기만 하는것이였다.

용무를 보러 밖으로 나가던 어떤 관원이 《하필 꼭두새벽에 묵은 밥덩이를 찬물에 말아먹고 나와서 저 지랄을 부릴게 뭐람.》 하고 힐난하며 지나쳤다.

송희령은 배를 그러안고 나딩구는 그 관원이 체기로 인한 급성위염이 와 그런다는것을 간파하고 슬며시 안으로 들어가 침대를 뽑아들고 그에게로 다가섰다. 멍청해서 지켜보던 여느 관원들에게 환자를 반듯이 눕히고 팔다리를 붙잡으라 하고는 환자의 도포와 내의를 헤쳐놓고 명치아래부위에 침대 몇개를 열십자로 벌려 한대씩 살살 비벼꽂았다.

한식경쯤 지나자 환자이던 관원은 이자까지 꾀병을 앓은 사람처럼 아무 일도 없은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왜인관원은 희령에게 고맙다며 외뿔머리를 연방 갑삭거리더니 어디 사는 녀의승이며 관가에는 어째 왔댔는가고 물었다.

희령이가 조선에서 온 의승인데 관가구경이나 좀 하려고 들렸다고 대답하자 그 관원은 신세갚음삼아 자원하여 그의 안내를 맡아나섰다.

관사의 명칭은 서산사(절간이름)였다. 가만히 살피니 관사대문중보에 걸려있어야 할 편액(명칭을 써붙이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왜나라 풍속에는 편액이 없고 공관을 통칭 절이라고 한다는것이다.

송희령은 생활풍조며 관습이 조잡하고 절제없는 안팎을 두루 돌아보고나서 왜인관원을 앞세우고 근처 촌락으로 향했다.

해풍이 쩝쩔한 소금내와 비릿한 물내를 풍기며 불어오는 큰길을 걸을 때 입심 센 왜인관원이 삼베도포를 흩날리면서 자칭 설명을 늘어댔다.

쯔시마주의 별명은 방진(한자음)인데 땅은 타원형으로 길쭉하여 동서가 수백여리고 남북은 수십여리라 여러개의 군과 수십개의 향으로 나누어 군엔 소다이묘를, 매 향에는 주관 하나씩 두고 사무라이들과 백성을 다스린다고 했다. 대개 그 토지가 척박하여 별반 나는것이 없으니 산에는 따비밭도 없고 들에는 개울이 없으며 주택에는 남새밭도 없다. 오직 바다의 산물을 건져내여 그것으로 물물교역을 하여 구해들인 낟알로 식량을 이어간다. 바다기물은 서쪽에서는 초량에 모아들여 북으로 오사까와 에도에 통하고 동쪽으로는 장기에도 나간다. 그리고 남방의 동족인 아란타며 복건이며 소주사람들이 배로 교역하러 오니 그들을 통해 주옥서(코에 뿔난 소)의 대모, 상아, 피혁과 후추, 당귀, 소목(약용식물) 및 비단과 수예품들이 자꾸 모여들어온다. 쯔시마사람들은 그들과 교역하여 원근도시에 왕래하면서 리를 남김으로써 생활하는것이다.

그러므로 도주이하 누구든지 거간노릇하지 않는자가 없으며 관권덕에 리득을 일확천금하듯이 모아 공부(관리의 집)의 기물복식의 화려함과 연회의 도락이 막부장관에 못지 않고 세족(대대로 벼슬해오는 족속)과 부호와 봉군(군으로 봉함을 받은 귀족)에 비길만 하다. 가병이나 관병들에게 름료(봉급으로 주는 식량)를 주는 외에는 관가나 관원이 백성들에게 대여곡을 주거나 구제미를 주는 법이 없다. 그러해서 농군은 귤, 참대, 기장 등을 생산하고 어부는 물고기를 잡고 가노와 관노는 주인과 객의 더부살이로 얻어먹으며 살아간다.

송희령은 자질구레한 그 말을 흘려들으며 씁쓸히 웃기만 했다.

이곳에 발을 들여놓던 첫날에 이미 거짓과 기만을 좋아하고 털끝만한 리익을 놓고도 칼부림까지 서슴지 않는 왜인들의 야한 습성과 구차스럽고 각박한 생활조건에 침을 뱉은 그였다.

이러하니 왜놈들이 세세년년 조선의 비옥한 땅과 재부를 탐내여왔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을 접한 동쪽과 서쪽에 종벽, 려명이라는 지명을 가진 두 산이 등허리를 굶주린 이리마냥 움츠리면서 줄기쳤는데 절과 신사와 민가가 귤나무숲속에 웅기중기 모여앉아있었다.

해안을 지나친 토사도로를 따라 한식경쯤 걷노라니 돌을 쌓아 만든 제방이 나졌다.

동쪽과 서쪽의 두 산어구로 수천척이 넘게 뻗어간 제방안은 무연한 참대밭이고 또 그안으로는 새초이영을 쓴 인가가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이어졌다.

바다사냥과 참대제품으로 생업을 이어간다는 그 어촌을 지나 남쪽으로 시오리쯤 가노라니 경치좋은 산등에 웅좌를 튼 절간이 나졌다.

이정암이라 불리우는 그 절간은 도승 겐소가 거처하던 곳이라 한다.

《겐소법사께선 구천에 승천하시와 보살님으로 부활해 이 땅의 수만 중생들을 극락에로 인도하고계시외다.》

왜인관원이 주절대는 소리에 송희령은 격분이 불끈 살아났다.

겐소(현소) 그놈은 도요또미 히데요시의 앞잡이로서 조선과의 교류문건작성과 통상중계를 맡아보면서 렴탐질과 모략으로 히데요시놈을 받들어 임진왜란을 몰아온 장본인중의 하나였고 전쟁 전기간에도 간교스러운 권모술수로써 온갖 참화를 조작해 들씌운 조선사람들의 철천지원쑤였기때문이다.

이정암에는 에도막부에서 직접 임명해보낸 관록있는 장로가 거처하고있었다.

장로는 막부로부터 록미를 하사받아 먹으면서 예전의 겐소처럼 조선과의 교류에 관한 일을 맡아보고있었다. 조선에서 보내온 문서도 그앞에 들어가서야 뜯어보고 또 쯔시마의 발송문서도 그가 검열하고야 허락하므로 요시또모도주도 그를 은근히 두려워한다는것이다.

동행해온 왜인관원이 문지기를 서던 불목하니에게 조선녀의승이 왔다고 통고를 하자 인차 자색법의를 품위있게 차려입은 중늙은이인 장로가 나타나 총총히 섬돌계단을 밟아내려오더니 희령이앞에 공순히 읍례를 표했다.

《나무아미타불!》

희령이도 례의있게 두손바닥을 모아 앞가슴에 얹으며 답례를 했다.

《나무아미타불!》

희령이가 왜말로 능숙하게 대척하자 장로는 한층더 반색을 하는것이였다.

《하찮은 소승들의 루처를 수고로이 찾아주신 녀의승께 사의를 드리옵니다.》

이러면서 직분에 어울리지 않게 까까머리를 수그리는 늙은 장로를 본 희령은 턱자없는 그 존대가 께름했으나 내색은 금하고 상대의 교직과 체면을 고려하여 겸양스러운 태도를 취했다.

《년세와 승직이나 공직을 보나 선사님은 소승에 비할바없이 훨씬 웃자리에 놓인분이니 소승이 면구함이 없도록 하대를 하옵소서.》

그러자 장로는 허심한 태도를 지으면서 량손을 크게 내젓는것이였다.

《천만부당이옵니다. 조선의 도승들을 어찌 승직이나 년한으로 금새를 가르겠소이까. 불도의 리념에 성실한 조선불승들을 홀시하면 부처님의 벌을 받소이다. 녀의승앞에 체면없는짓이긴 하오만 송운대사님때의 변고를 생각하문 지금도 심기가 저리옵니다.》

《변고라니요?! 송운대사님이 혹 난사를 당했던게 아닌가요?》

《난사는 대사님이 아니라 우리 이정암의 소승들이 당했지요.》

장로는 영문을 몰라 의아쩍어하는 희령에게 당시의 정황을 그대로 얘기해주었다.

마가을철의 어느날 쯔시마에 체류중인 조선사신일행이 이정암에 유람을 왔을 때 있은 일이라고 했다.

 

젊은 호행원들을 거느리고온 유정은 사원안팎을 두루 돌아보고나서 산아래로 내려가다가 근처의 조밭머리에서 문득 걸음발을 멈추었다.

수십마지기가 넘는 조밭에서는 이정암에 종속된 사노들이 조가을을 하고있었다.

가을해야 할 밭면적은 많고 절기는 때를 넘었는지라 제때에 걷어들이지 못한 탐스럽게 익었던 조이삭들이 아깝게도 고삭아지며 밭고랑들에 떨어지여 쥐와 새먹이감으로 되고있었다.

자고로 가을철에는 일손이 딸리여 부지깽이도 뛴댔건만 이정암의 중들은 사원의 터전이고 또 저희네가 먹어야 할 낟알이 미처 꺼들이지 못해 류실되는데도 불도승은 손에 흙을 묻혀서는 안된다는 소협한 관습에 사로잡혀 잘 익은 조이삭이 스러져가는것을 빤히 보면서도 몇이 안되는 사노들에게만 밭일을 맡기고 경당에 들어앉아 나무아미타불만 외우고있었다.

그러다나니 겨우 일여덟밖에 안되는 인원으로 수십마지기의 조가을을 하느라 역사를 치르고있었다.

제대로 먹지를 못해 피골이 상접한데다가 누덕누덕 덧기운 먹베잠뱅이를 걸친 사노들이 비지땀을 철철 흘리면서 힘겹게 일하는 광경을 한참 지켜보며 가슴아픈 표정을 짓던 유정은 밭머리에 승복을 벗어놓고 속저고리 바지바람에 조밭속으로 들어섰다.

그는 의아해하는 호행원들한테 싱긋이 웃으며 선동을 했다.

《어쩌다 바람쐬러 나왔는데 오륙놀림이나 좀 하고 가자구.》

유정스님이 말은 그랬으나 실지로는 고역에 시달리는 사노들을 동정하여 그들의 일손을 하나라도 도우려고 하며 또 스님자체가 유점사주지를 할 때도 봄씨붙임으로부터 시작하여 김장용남새가을에 이르기까지 일체 부대밭농사를 제가 손에 흙을 묻히며 앞장에 나서서 해왔다는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홍창해, 계명이, 오팔이네는 뒤따라 손발을 걷어붙이고 일할 차비를 했다.

그런데 백손이가 끔찍해하는 거동으로 유정이를 만류했다.

《이러시면 도사님의 귀체에 흠이 가옵니다. 일본의 절간에서는 사미들까지도 천노를 하대하며 부려먹는 판인데 일개국의 종판사이며 도총섭이며 주지이신 대사님이 어이 쌍된 일에 몸을 적시오이까? 체면을 생각하셔야 하옵니다.》

이러다가 되려 유정의 고집에 못이겨 종내는 백손이까지도 일판에 몸을 잠그고말았다.

그들은 조밭으로 들어가 사노들이 예비로 갈아놓은 낫을 하나씩 집어들었다.

피가 한동이씩이나 끓어넘치는 젊은 혈기라 어싸어싸 선소리를 치며 서로 경쟁적으로 일손을 다그쳤다.

유정스님이 앞선에서 폭넓게 이랑을 잡아나가면서 번개치듯이 낫날을 휘둘러 벤 조대들을 알맞춤히 모아 단으로 묶어 엇싸- 그루박아 세우면 계명이나 백손이, 홍창해 같은 날파람군들이 스님과 경쟁하듯이 재빠른 동작으로 불이나게 왼손, 오른손을 놀리는 속에 앞서거니뒤서거니하면서 열댓행보가 실히 될 수십이랑의 조를 단번치기로 베여 묶어놓는다.

매 사람당 한줄씩 널려놓은 조단을 힘장사인 오팔이 혼자서 열댓단씩 그러안아 와짝 날라다가 수레로 실어나르기 좋게 군데군데 모아놓았다.

반겻 실히 그렇게 일하느라니 누구라없이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하고 잔등이 화락하게 젖었건만 한사람도 일손을 떼지 않았다.

처음엔 장골의 낯선 도승과 젊은 무사들이 어려워 슬슬 눈치보기를 하며 곁을 잘 안 주던 사노들이 그들이 진심으로 일판에 몸을 잠그자 보는 눈빛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였다.

한뉘 사찰에 얽매여 살아오며 지체높은 불도승이 손에 농쟁기를 잡고 일하는것을 처음 보아오는 사노들은 놀랍고 희한해하다가 유정이가 일본말을 류창하게 번지며 이것저것 생활상의 문제들을 가지고 허심하게 저희들과 의논을 하자 점차 어려움을 잊고 한데 어울리며 속에 있는 말까지 허물없이 주고받았다.

젊은 호행원들과 사노들이 서로 찧고불며 롱담도 건늬고 우스개질도 하면서 합력을 해 일손을 다그치다나니 한겻만에 열마지기남는 면적의 조를 가을걷이해치웠다.

그날 낮에 도주를 만날 일이 생겨 관사에 내려갔다가 돌아오던 이정암의 장로가 마침 그 광경을 띄여보고 황황히 유정이네한테로 달려왔다.

장로는 장발수염을 가슴팍까지 치렁치렁하게 드리운 왕년의 중이 막부의 의지에 따라 조선에서 일본국과의 통상교류를 위해 국서를 지니고 와 현재 도주의 환대속에 있는 조선사신임을 알아보고는 송구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다.

장로는 흙과 조검불에 어지러워진데다가 낫날에 베여 피까지 내밴 유정의 두손을 부여안으며 사색을 지었다.

《대사님께서 이러시면 우린 뭐가 되옵니까?》

그러자 유정은 선한 웃음으로써 장로를 안심시키며 대척했다.

《소승도 낟알을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일손이 딸리여 애써 지은 낟알이 썩어나는걸 보면서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소이다.》

《그 심정은 고마우나 이 일이 혹 불계를 어기는 행위로 불가의 지탄을 받지나 않겠는지 걱정되옵니다.》

이런 위구를 표하며 한숨을 내긋는 장로를 어이없이 바라보던 유정은 정색해서 말그루를 박았다.

《우리가 준수하려는 불계의 근본리치로 말한다면 그건 불쌍한 생령을 극진히 아끼고 위함이 아니옵니까.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우리가 이 숱한 조를 가을하느라고 고역을 치르는 저 불쌍한 사노들을 잠시 도와준건 불계를 지킨 소행임이 분명하니 불가의 지탄을 받을 걱정은 아니해도 될것이옵니다. 장로님, 불승들이 먹고 사는 낟알은 념불에서가 아니라 바로 저 근면한 민생들의 손에서 나오는것이니 사노들을 아끼고 위해줘야 하옵니다.》

비록 누그러진 음성으로 나직하니 이르는 말이였으나 그 말은 장로의 가슴을 세차게 울리였다.

그날밤 땀을 철철 흘리며 낫질을 하고 무거운 조단도 져나르던 조선사신의 모습이 눈앞에서 그냥 얼른거리며 뇌리에서 섬광이 일어 잠을 못 잔 장로는 이튿날 이정암의 불승들을 조가을에 동원시켰다.

 

장로는 여기서 회억담을 마치며 면구함을 숨기지 않았다.

《송운대사님만 봐도 조선의 불도승들이 준수하는 불도의 리념은 과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것이라는게 잘 알리옵니다.》

장로의 개심된 심중의 토로를 들으면서 송희령은 참으로 송운대사님은 보살이 되고도 남을분이라고 생각했다.

이정암의 장로는 송희령을 류달리 곰살궂게 대해주었고 그의 편의를 적극 보장해주었다.

왜중들의 환대속에서 천험절경의 산수유람을 호사롭게 하고 거처지로 돌아오는 희령의 가슴속에선 왜인들한테 조선중의 품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불계의 진수를 옳바로 인식시켜준 송운대사에 대한 사모의 정이 한가득 차넘쳤다. 그 애모쁜 정은 단비를 맞은 참대순마냥 그가 지닌 중임에 대한 옹호심으로 우적우적 줄기쳐 자랐다. 송희령은 이곳 쯔시마땅에 남겨진 송운대사의 자취를 심정이 뜨겁게 감수할수록 자신이 진정으로 그를 사모하고 위한다면 내 나라의 존엄을 빛나게 떨쳐가고 또한 나라와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 뇌심초사하는 그를 적극 도와야 한다는 깨달음이 목화솜에 와닿은 물처럼 머리속으로 흘러들었다.

하여 송희령은 자기도 한몸 아낌없이 나라위한 일에 떨쳐나 송운대사가 떠멘 국운을 함께 걸머지고 헌신분투하는것이 송운대사와 진실로 운명을 같이하며 정을 두터이 하고 그에 대한 삼상지탄의 그리움도 푸는것이라는 자각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비록 연약한 아녀자의 몸일지언정 아무토록 용을 써서라도 왜국본토까지 사신행차를 뒤따라가 나라와 민족의 리익을 실현해가는 송운대사의 성업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송희령이 사신행차가 가있다는 본토로 어떻게 해야 건너갈것인가를 암중모색하던 어느날 이곳 쯔시마로 건너올 때 어지간히 신세를 지며 낯을 익혔던 그 재판이 불쑥 송희령을 찾아들었다.

《본관이 듣자하니 니고는 이미 저승문턱을 넘어섰던 사람도 되끌어내여 환생시키는 용한 의원이라기에 신세를 좀 지자고 왔소.》

《신세로 말한다면 내쪽이나 그쪽이나 피차일반이니 어서 기탄없이 사유나 얘기하소이다.》

송희령이가 허심하게 대응을 하자 재판은 몹시 급해하는 태도로 용건을 터놓았다. 요즈막에 도주가 중병에 들어 생사가 막바지에 이르렀으니 속히 가서 치료를 좀 해달라는것이였다.

재판이 처음 나타났을 때부터 그저 어떤 환자치료때문에 찾아왔겠지하고 범상하게만 여기던 송희령은 환자가 도주라는 소리에 자못 긴장되여 자중하다가 혹시 자기가 도주의 병을 고쳐주면 조선사신행차가 가있다는 본국으로 건너가는데 어떤 유익한 도움을 받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응해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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