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5 장

1

 

오후무렵, 한대의 군용찦차가 수도의 거리를 질주하고있었다.

가루개를 지나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찦차는 종로거리에 들어서자 삐익- 멎어섰다. 건설장으로 밀려가는 지원자행렬이 앞길을 가로막았던것이다.

어깨에 곡괭이와 삽을 둘러메거나 사이좋게 목도를 멘 빨래줄같은 대렬이 거의 끝나는가싶었는데 한무리의 소년단원들이 벽돌을 가득 실은 손달구지를 끌고 나타나자 석줄배기 운전수는 속이 달아서 엉치를 들썩들썩하였다.

옆좌석에 앉아있던 표무강은 한마디 던졌다.

《덤비지 말라구.》

《장령동지, 그러다 늦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 말을 들었는지 말았는지 그는 묵묵히 차창밖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어제 오후, 고급군사학교에서 공부하던 표무강은 다음날 인민군검찰소로 출두하라는 련락을 받았다.

검찰소에서 날 왜 찾는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보았으나 그 리유를 알수 없었다.

어쨌든 가보면 알게 되겠지.

하여 오후강의가 끝나자 검찰소로 가는 길이였다.

문득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영철아, 너 왜 자꾸 내쪽으로 밀리니?》

《쳇, 내가 언제 네쪽으로 밀렸니?》

《힘들면 손달구지를 놓구 비켜라.》

《누가 힘들어서 그런대? 신발이 벗겨져서 그러지.》

나이는 어리지만 아버지, 어머니들을 도와나선 아이들의 기특한 모습을 보자 표무강은 천진한 소년시절로 되돌아가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발동을 끄라구.》

시간이 지체되였다고 안달아하던 운전사는 배포유한 장령의 말에 볼이 부었다.

《장령동지, 가뜩이나 늦었는데…》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찦차에서 훌쩍 뛰여내린 표무강은 무릎운동을 하고 허리를 앞뒤로 굽혔다폈다하였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했는데도 허리가 쿡 쑤셔났다.

이놈의 부상처가 말썽이거던.

전쟁시기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전투에서 다친 허리는 육체적부담이 가해지거나 날씨가 흐리면 영낙없이 쑤셔났다.

그 아픔을 덜려고 장령복속에 군관혁띠를 두개씩이나 차고 다녔으나 강의가 끝나면 부상자리를 그러쥐고 겨우 기숙사로 돌아오군 하였다.

어느날 기숙사에 들렸던 교장 오성국은 호실바닥에 엎드려 옴짝 못하는 그를 보자 몹시 걱정하였다.

《표동무, 주의해야지 큰일나겠소.》

그 주제에 속은 살아서 표무강은 찡그렸던 얼굴에 억지웃음을 띠우고 응답하였다.

《걱정마십시오. 난 끄떡없습니다.》

젊은 혈기만으로도 일생을 무탈하게 살수 있다고 생각하는 천진란만한 제자에게 스승은 단단히 그루를 박았다.

《모르는 소리. 공부를 잘하자면 뭐니뭐니해두 몸이 건강해야 해.》

그때는 차츰 낫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요즘은 때없이 허리가 쑤셔났다. 오늘도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여느때보다 더 저려났다.

어디 누가 견디나보자.

준비운동을 마친 표무강은 나지막한 둔덕을 넘지 못해 아글아글하는 소년단원들을 도와 손달구지를 씽 밀어주었다.

《야아!-》

《만세!-》

손벽을 짝자그르르 치던 아이들은 손을 툭툭 털고있는 장령아저씨를 말똥말똥 쳐다보았다.

《데거, 왕별을 달았다야.》

《쳇, 나두 크면 왕별을 달수 있어.》

그러던 아이들은 한쪽팔소매에 열성자표식을 단 아이의 구령에 따라 씩씩하게 소년단인사를 하더니 참새무리처럼 재잘거리며 떠나갔다.

대견한 눈길로 그애들을 바래운 표무강은 가까운 곳에 있는 건설장으로 눈길을 돌렸다.

찦차를 타고 오면서 본 다른 건설장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복구건설의 불바람이 세차게 일어번지고있었다.

한쪽에서는 벽돌축조가 한창이고 다른쪽에서는 혼합기에서 쏟아놓은 몰탈을 휘틀속에 처넣고있었다.

벌써부터 속이 근질거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표무강은 마침 손수레를 몰고 달려오는 처녀를 발견하였다.

《처녀동무!》

너비가 한뽐만 한 널판자를 타고 요령있게 달려오던 그 처녀는 앞에 사람이 불쑥 나타나자 바빠맞아 손수레를 멈춰세우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심을 잃어버린 외바퀴손수레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어마나!》

그때 표무강의 억센 손이 넘어지려는 손수레를 잡아서 바로 세워주었다.

《아이참, 어쩌자는거예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며 허리를 펴던 처녀는 웬 일인지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상해서 머리를 들던 표무강도 굳어지고말았다.

그 처녀는 전쟁시기에 헤여진 한정아였던것이다.

《아니, 정치공작대원동무가 아니요?》

기쁨으로 빛나던 처녀의 두눈에 가느다란 구름발이 끼였다.

하지만 인츰 그 구름발을 걷어버린 그는 태연히 대답하였다.

《네, 접니다. 한정아예요.》

《이게 몇해만이요?》

표무강쪽에서 먼저 내민 솥뚜껑같은 손을 마주잡은 한정아는 상대방이 힘껏 흔드는대로 내버려두었다.

실로 몇해만의 해후였다.

누가 먼저 그랬는지 두사람은 마주잡았던 손을 슬며시 놓아버리고말았다. 표무강과 한정아는 약속이나 한듯 자기들의 가슴속에 앙금처럼 남아있는 그때의 일을, 련대군의소에서 헤여지던 지난날을 생각하였던것이다. 만약 그 일만 없었더라면 그들은 사선을 함께 헤쳐온 친근한 벗으로 즐겁게 회포를 나누었을것이다.

그들사이에 드리워진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깨뜨린 사람은 표무강이였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소?》

한정아는 깍듯한 어조로 답례하였다.

《전쟁시기 대학을 마저 나오고 지금은 신문기자로 있습니다.》

표무강은 그사이에 처녀가 퍼그나 달라졌음을 알아보았다.

전쟁시기 보았던 애티나는 단발머리는 성숙미를 돋구어주는 굽실굽실한 파마머리로 바뀌였고 더욱 아름다와진 얼굴은 세련미가 풍기는 녀기자의 인품에 잘 어울렸다. 뿐만아니라 딱벌처럼 내쏘던 당돌한 목소리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마 그래서 자기가 한정아를 인차 알아보지 못한것 같았다.

변하지 않은것은 누구든 한번 부딪치기만 하면 어쩔수없이 그속으로 끌려들어갈것만 같은 맑고 큰 두눈이였다.

문득 한정아를 처음 만나던 때 그 호수같은 눈동자속에 풍덩 빠지면 영영 솟구쳐나오지 못할것 같아 속으로 겁먹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로부터 여러해가 지난 오늘, 어깨우에 왕별을 올려놓은 지금에도 그윽하게 빛나는 두눈을 마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연히 헛기침을 깇은 표무강은 손수레에 손을 뻗쳤다.

《내가 좀 몰아보기요!》

《저, 일없겠습니까?》

무슨 말인가 해서 고개를 돌린 표무강은 처녀의 눈길이 자기의 허리에 박혀있는것을 보았다. 헤여진지 몇해가 지났지만 그는 자기가 부상당했던 일을 잊지 않고있는것이다.

세상에 자기의 건강을 걱정해주는 사람처럼 고마운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러나 표무강은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정아가 자기를 동정하는것 같아서였다. 아무튼 한창나이의 인민군장령이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것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닌것이다.

《걱정마오.》

퉁명스럽게 대답한 표무강은 손수레를 잡자마자 왈칵 앞으로 밀었다.

놀라서 뒤로 물러났던 한정아가 따라오며 뭐라고 말하였으나 들은 척 않고 맹렬히 내달렸다.

내가 언제부터 이런 신세가 되였단 말인가?

달려가던 기세로 몰탈을 휘틀속에 처넣은 표무강은 건설자들이 자기의 앞가슴을 힐끔힐끔 보는것을 알았지만 그냥 돌아섰다. 낯도 코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전쟁시기에 받은 훈장들이 여러개나 있지만 난 군공메달이 제일 좋소 하고 설명할순 없는것이다.

널판자에서 탈선된 빈 손수레를 도로 올려놓으려고 힘을 쓰는데 허리가 시큰거렸다.

《음!》

뾰족한 쇠꼬챙이가 박힌것처럼 쑤셔났는데 그 아픔이 어찌나 심한지 잔등으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속에서도 한정아가 지켜본다는 생각이, 자칫하면 처녀앞에서 망신할수 있다는 자각이 갈마들었다.

또다시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겨우 씹어삼킨 표무강은 처녀가 있는 곳으로 씩씩하게 돌아왔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고 대신 작은 편리화자리만 또렷이 남아있을뿐이다.

어디 갔을가?

뛰뛰!- 하는 다급한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에 눈길을 던지자 초조한 얼굴로 시창밖을 내다보는 운전수의 모습이 띄였다.

옆으로 지나가는 건설자에게 손수레를 넘겨준 그는 찦차쪽으로 걸어갔다.

 

련재

독자감상글쓰기
Change the CAPTCHA codeSpeak the CAPTCHA code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19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